전통문화

 

 

 

 

宮嶋博史 曰

“小農社會論을 經濟史로만 보면 안 됩니다. 그러면 잘했다, 성공했다는 결론밖에 안 나옵니다. 정치,사회 구조와 함께 봐야 지금의 문제점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小農社會論이란 일본 학계가 동아시아의 근대화를 설명하기 위해 내세운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식민지, 박정희 시대 경제 성장을 높게 평가하는 一群의 經濟史學者들을 통해 소개되어서 껄끄럽다. 그러나 정작 日本人 小農社會論者, 宮嶋博史(58) 성균관 대학교 동아시아 學術院 교수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줬다.

小農社會, 국가에 대한 반성이 없다

小農社會論은 소규모 自給自足農(小農)들이 밀집해 살고 있던 동아시아는 대규모 富農 중심의 西歐와는 다른 형태의 사회였다. 그래서 근대화의 길도 달랐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동아시아가 성장하면서 나온 이론이라 왠지 합리화의 냄새가 짙다. 宮嶋 교수는 그러나 결과로 합리화하는 이론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宮嶋博史 曰
”小農社會論은 한마디로 유럽과 비교해 동아시아에는 封建地主, 즉 국가 권력에 저항할 세력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근대화의 출발인 土地改革은 빠른 時日 內에 성공적으로 완수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항받지 않은 왕권이나 국가권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진다는 문제를 낳습니다.”  한마디로 “국가”와 “市民權”에 대한 개념이 희박하다는 것. 동아시아의 민주주의가 부진한 이유다. “[民願]이라는 단어가 대표적입니다. 西歐 사람들은 세금 받았으니 당연히 해야 하는 서비스라 생각하지만, 동아시아 사람들은 마치 국가가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宮嶋 교수는 60년代 末, 新左翼 열풍이 휩쓸 때 교토 대학을 다녔다. “일본의 386”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웃는다. 역동적인 한국이 부럽다는 말도 했다. 일본의 戰後 민주주의와 우경화 문제와 함께 생각하면, 그의 학문적 관심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小農社會論이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유럽식 기준에서 벗어나자

小農社會論은 [고대-중세-근대]라는 시대 구분도 무너뜨린다. “그 3分法은 르네상스 때 西區人들이 만든 겁니다. 중세는 暗黑期였고, 자신들은 옛날 고대 그리스의 이상향을 되살리는 사람들이라 설정한 겁니다. 철저히 西區의 기준이죠.”  그런데 동아시아는 아무런 고민 없이 고스란히 베껴왔다. 宮嶋 교수가 보았을 때 동아시아에서 의미있는 시대는 “16세기”(조선 中期)부터다. 그 시절의 전통이 지금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어서다. 근대사 연구가 19세기 개항 때부터가 아니라 16세기 朝鮮史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强調하는 이유다.

그래서 [주자학]도 긍정적이다. “사회의 토대인 [小農]을 어떻게 통치할까 생각해보면, 주자학은 정말 훌륭한 이론 체계예요.”  世界史的으로 비교해봐도 토지의 私的 所有, 科擧制와 관료제, 미약하고 非世襲的 身分制 등을 담은 주자학은 가장 선진적인 이론 체계였다. 인권,민주주의 개념은 없었지만 가장 근대적이었다. 이것을 중국은 宋시대에, 한국은 세종대왕 때 이미 성취했다. 이렇게 보면 전통은 “낡아서”가 아니라 “내부적으로 극복되지 못해서” 문제다.

●”식민지 近代化論? 그런 건 없다”

東京大 교수로 일본에서도 유명한 학자였던 그를 2002년 성균관 대학교가 불렀을 때, 반응은 좋지 않았다. “유명한 학자 초빙은 좋은데, 왜 하필 저 사람이냐.”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의 主張을 차분히 듣다 보면 그에게 “식민지 近代化論者”라는 편견은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이야 “그래도 (오해가) 많이 풀렸다.”라며 차분히 웃을 정도는 됐다. 그래도 식민지 近代化論이라는 단어에 대한 反感은 여전하다. “그 단어 자체에 부정적인 선입관이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식민지 近代化論이란 없다고 말합니다.”

經濟史 연구자로 대표적 식민지 近代化論者로 꼽히는 安秉直, 李榮薰 서울대 교수와도 친분이 깊다. 지난주에는 安 名譽敎授의 병문안도 다녀왔고, 李榮薰 교수와도 자주 교류한다. 그래서 “뉴라이트”, “교과서 포럼”과 “해방 前後史의 再認識” 출간에 이르기까지, 李 교수의 최근 활발한 대외활동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기본적으로는, 훌륭한 연구자예요. 그런데…. 지난해에 소주 한잔 하면서 정치적인 그런 거 말고 연구자로서 가자, 그러니 알았다고 하긴 했는데….”

宮嶋 교수는 小農社會論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집대성한 저작물을 준비 중이다. 벌써 10년째 집필 중인데 80%쯤 완성됐다고 한다. 빨리 내달라고 재촉 아닌 재촉을 하면서도 빨리 나올 수 있을까 걱정된다. 인터뷰할 자리조차 잡기 어려울 정도로 책으로 뒤덮인 연구실은, 그가 “아직도 욕심 많은” 연구자임을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글 사진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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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81&aid=0000086702 

 

 

 

 

조선시대 후반 18세기 이후는 대부분의 농민이 경제적으로 엇비슷하게 평등한 小農社會였다는 것은 資本主義萌芽論者와 植民地近代化論者가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小農社會가 발전하여 조선 후기에는 시장경제가 발달하고 화폐의 유통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그리하여 동아시아的인 근대화가 형성되었다는 것이 宮嶋博史 교수의 主張입니다.

 

 

 

 

 

 


朝鮮の近代化は 16世紀に手始め

 

 

 

 

宮嶋博史 曰

小農社会論を 経済史にだけ見てはいけないです. それではお上手だった, 成功したという結論しか出ないです. 政治,社会構造とともに見ると今の問題点がどこから来たのか分かります.

‘小農社会論と言う(のは) 日本学界が東アジアの近代化を説明するために立てた概念だ. 我が国では植民地, 朴正煕時代経済成長を高く評価する 一群の 経済史学者らを通じて紹介されてごつごつした感じだ. しかしいざ 日本人 小農社会論者, 宮嶋博史(58) 成均館大学東アジア 学術院 教授は全然違った話を聞かせた.

小農社会, 国家に対する反省がない

小農社会論は小規模 自給自足農(小農)らが密集して暮していた東アジアは大規模 富農 中心の 西欧とは違う形態の社会だった. それで近代化の道も違ったと説明する. ところで東アジアが成長しながら出た理論だからなんだか合理化のにおいが濃い. 宮嶋 教授はしかし結果に合理化する理論ではないと説明した. 

宮嶋博史 曰
小農社会論は一言でヨーロッパと比べて東アジアには 封建地主, すなわち国家権力に抵抗する勢力がなかったということです. だから近代化の出発である 土地改革は早い 時日 内に成功的に完遂されます. しかし一方では抵抗受けない王権や国家権力がすぎるほど肥大になるという問題を生みます.  一言で ¥"国家¥"と ¥"市民権¥"に対する概念が稀薄だということ. 東アジアのデモクラシーが不振な理由だ. [民願]という単語が代表的です. 西欧 人々は税金受けたから当然しなければならないサービスだと思うが, 東アジア人々はまるで国家が恩恵授与を施すことのように思います.”

宮嶋 教授は 60年代 末, 新左翼 熱風が荒す時京都大学を通った. ¥"日本の 386¥"という言葉に首をうなずきながら笑う. 躍動的な韓国が羨ましいという話も言った. 日本の 戦後 デモクラシーと右傾化問題とともに思えば, 彼の学問的関心がどこで始まったのか, 小農社会論が何を狙っているのか見当をつけることができる.

ヨーロッパ式基準から脱しよう

小農社会論は [古代-中世-近代]という時代仕分けも崩す. その 3分法はルネサンスの時 西区人らが作ったんです. 中世は 暗黒期だったし, 自分たちは昔の古代ギリシアの理想郷をいかす人々だから設定したんです. 徹底的に 西区の基準です.  ところで東アジアは何らの悩みなしにそっくりそのまま引き写して来た. 宮嶋 教授が 見た時東アジアで意味ある時代は 16世紀(朝鮮 中期)からだ. その時代の伝統が今私たちの生に影響を与えてイッオソだ. 近代史研究が 19世紀開港時からではなく 16世紀 朝鮮史から始ま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 強調する理由だ.

そのため [朱子学]も肯定的だ. 社会の土台である [小農]をどんなに統治するかと思って見れば, 朱子学は本当に立派な 理論体系です.  世界史的に比べて見ても土地の 私的 所有, 科挙制と官僚制, 微弱で 非世襲的 身分制 などを盛った朱子学は一番先進的な理論体系だった. 人権,デモクラシー概念はなかったが一番近代的だった. これを中国は 宋時代に, 韓国は 世宗大王の時もう成就した. こんなに見れば伝統は古くてはなく内部的に克服されることができなくて問題だ.

●植民地 近代化論? それはない

東京大 教授で日本でも有名な 学者だった彼を 2002年成均館大学が呼んだ時, 反応は良くなかった. 有名な学者招聘は良いのに, どうしてあの人なのか.増えた雰囲気だった. ところで彼の 主張をじっくりと聞いて見れば彼に植民地 近代化論者という 偏見は似合わない. 今はそれでも (誤解が) たくさん解けた.と言いながら じっくりと笑うほどはなった. それでも植民地 近代化論という単語に対する 反感は相変らずだ. その単語 自体に否定的な先入観が敷かれています. それで私は植民地 近代化論と言う(のは)ないと言います.

経済史 研究者で代表的植民地 近代化論者で数えられる 安秉直, 李栄薫 ソウル大教授とも親しみが深い. 先週には 安 名誉教授の見舞も行って来たし, 李栄薫 教授ともよく交流する. それでニューライト, 教科書フォーラムと解放 前後史の 再認識 出刊にのぼるまで, 李 教授の最近活発な対外活動がいつまでも気にかかるようだった. 基本的には, 立派な研究者です. ところが…. 去年に焼酒一杯飲みながら政治的なそんなの以外に研究者として行くと, だから分かったと言ったりしたが….

宮嶋 教授は 小農社会論に対する自分の考えを集大成した著作物を準備の中だ. もう 10年目 執筆の中なのに 80%ほど完成されたと言う. 早く来月だと催促ではない催促をしながらも早く出ることができるか心配になる. インタビューする席さえ取りにくい位に本で覆い被せた研究室は, 彼がまだ欲張る研究者なのを言ってくれたからだ.

文写真釣太性記者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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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処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81&aid=0000086702 

 

 

 

 

朝鮮時代後半 18世紀以後は大部分の農民が経済的に等しく平等な 小農社会だったというのは 資本主義萌芽論者と 植民地近代化論者が共通的に認める部分です. 小農社会が発展して朝鮮後期には市場経済が発達して貨幤の流通量が爆発的に増加します. そして東アジア的である近代化が形成されたということが 宮嶋博史 教授の 主張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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