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3월 18일까지 대덕사의 탑두 「취광원」이 공개하고 있었으므로, 발길을 옮겼다.취광원의 정원(백적정)을 보기 때문에 있다.

 

 대덕사의 경내를 걷는 것은 좋아한다.흰 벽이 적기 때문에인가, 묘신사의 경내만큼 밝기를 느끼지 않지만, 토담이 침착한 색이 기분을 누그러지게 해 준다.전국시대에 대덕사를 방문한 Luís Fró is는, 여기의 소보에 도착해 「서로 집의 우아 청정, 정원의 교묘하게 우수하는 것을 노력하고 있다」라고 적었지만, 현재에도 많은 뛰어난 정원이 존재해, 16 세기의 정원도 4개 남아 있다.작년에 투고한 「대선원·서원 정원」도, 그 1개이다.

 

 

 취광원에 도착.배관료는 600엔.특별 공개는 배관료가 상당히 비싼 것이 난점.게다가 사진 촬영이 엄금.이것도 괴롭다.

 

 취광원은 미요시 요시쓰구가 양부·미요시 나가요시의 보리를 조상하기 위해, 1566년에 건립되었다.하지만, 1573년, 미요시 요시쓰구는 오다 노부나가의 공격을 받아 자해 해, 미요시 이에모또종은 멸망 한다.시주하는사람을 잃은 취광원에서 만났지만, 1589년에 센리큐우가 여기를 보리사로 했다.

 센리큐우가 여기를 보리사로 한 이유는 모르지만, 미요시 나가요시의 제·실휴(요시카타)가 다도에 통해 센리큐우와 교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그러나, 이것도 추측의 역을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그러면 취광원의 정원을 보자.그 뜰은, 중요문화재의 houjou의 남쪽으로 작 정 되고 있다.요컨데 houjou남뜰이다.

 

 

취광원정원」, 16 세기.

 

 별명 「백적정」.태지에 돌을 중심으로 구성된 히라니와고산수 정원이다.

 미리 여러 가지 책을 봐 이 뜰을 머리에 그리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면, 상상과 상당히 다르고 있었다.사진에서는, 위와 같게, 뜰의 안쪽에 저평인 석조가 줄지어 있는 만큼 밖에 안보이지만, 1개1개(살)의 돌이 밝고, 형태도 좋아서, 뜰로부터 발 다투어지는 에너지를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왼쪽으로 츠루시마, 오른쪽으로 카메시마가 있어, 각각 송이 심어져 있다.그리고, 양 섬을 낮게 걸쳐 놓을 수 있었던 이시바시가 연결한다.게다가 서쪽의 호죠앞에도 섬이 있고, 사라소우쥬의 노목이 심어져 있다(2 상의 사진으로 보인다).매우 경사스러움을 느끼는 구성이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츠루시마 카메시마설을 뽑지 않는 의견도 있는 것 같다(해설의 사람은, 츠루시마·카메시마는 아니면 단호히라고 부정하고 있었다).

 

 뜰의 돌의 대부분은 대선원·서원 정원과 같이, 아와의 세이세키(녹니편암)를 사용하고 있다.그 돌질과 낡음 겨자라고, 양자는 아마 같은 시대에 채석되었다고 생각된다고 한다.피부의 색이나 모습이 훌륭하고, 이 뜰의 좋은 점은, 이 돌의 매력에 지는 곳(중)이 클 것이다.

 

 

 그런데, 메이지 시대에 그려진 취광원정원의 그림이 남아 있지만(위의 그림), 현재와 큰폭으로 차이가 난다.이시바시아래에는 백사의 강이 흘러 앞의 넓은 백사부의 바다에 씻어지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또, 석조 이외에 재배나 예입도 눈에 띈다.선사의 엄숙한 뜰이라고 하는 것보다, 느긋한 너글너글함을 느끼는 뜰이었던 것 같다.


 이 뜰은 센리큐우가 만들었다고 하는 설도 있지만, 뜰의 돌은 그것보다 낡은 것이라고 생각되므로, 취광원의 창건 당초부터 존재하고 있던 가능성이 높다.다만, 위의 그림으로 알 수 있듯이, 시대와 함께, 이 뜰도 모습을 바꾸어 왔다고 생각되어 센리큐우도 이 뜰에 손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지금은, 일면의 푸른 태지에, 밝은 돌이 형태 좋게 짜여져 확실히 선사에 어울리는 뜰이 되고 있었다. 

 

 

취광원houjou의 오회

 

 그런데, 취광원이라고 하면, houjou의 국보 장벽화(16 세기 후반)에 접하지 않는 것에는 가지 않을 것이다.그린 것은, 가노 쇼에이·가노 에이토쿠의 부자이다.이 중, 예의 사이와 의발의 사이, 및 불간을 아버지·가노 쇼에이가 담당해, 실안과 단나의 사이를 아이·카노 사카에덕이 담당했다.양자는 부모와 자식이면서, 완전히 화풍이 다른 것이 흥미롭다.

 

 

 취광죠우루리의 책당(houjou)의 장벽화 배치도

 


 

 

국보, houjou예의 사이 「Syousyou 팔경도」, 가노 쇼에이붓.위는 예의 사이 서쪽의 오회.

 

 취광원의 houjou에 발을 디디면, 우선은 예의 사이의 오회의 해설을 받을 수 있다.매우 넓은 깊이가 있는 온화한 표현의 산수화로, 마츠에의 아버지·가노 모토노부의 대화면 구성을 계승하고 있다.덧붙여서, 이 오회의 뒤편은, 아래의 그림이지만, 그 화풍의 너무나 달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국보, houjou실안 「화조도」, 가노 에이토쿠의 붓.위는 실중동측의 오회.


 실안의 화조도는 취광원의 오회로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특히 동쪽의 봄의 경에 그려진 거대한 매화의 나무는, 보는 것을 압도하는 강력함으로 가득 차 있다.아버지·마츠에와 달라, 에이토쿠의 그림에는 공간의 깊이가 별로 없지만, 모티프가 극단적으로 확대 강조되어 방의 안쪽에 강요해 오는 박력을 가지고 있다.

 

 

실나카니시측의 방, 단나의 사이도, 가노 에이토쿠가 담당.「금기서화도」, 당연히 국보이다.

 

 중세의 선승이 이상으로 한 중국 문인의 세계도, 에이토쿠가 그리면 보시는 바와 같이.너무 조금 힘이 들어가서 있다고 하는지, 에너지가 남아 돌고 있다고 할까.세상의 평가는 사계 화조도가 위.다만, 현재는 그림물감의 대부분이 벗겨져 떨어짐 해 버리고 있어 본래는 더 색채의 강한 화면이었다고 한다.


 

의발의 사이는 아버지·마츠에가 그렸다.국보 「죽호유원도」.팔을 교차시킨 범은, 목계 용호도의 범을 찍은 것.


 에너지 있어 넘은 오회로 장식된 단나의 사이의 뒤편(북측)으로 돌면, 범과 원숭이의 따끈따끈으로 한 마츠에의 그림을 당한다.에이토쿠의 그림에 비해 눈에 상냥하게 친밀감을 느끼지만, 임펙트의 크기에서는 에이토쿠에 이르지 않는다.

 가노 에이토쿠는 일찍부터 그 재능을 조부·모토노부에 찾아내져 약동감 넘치는 강력한 회화를 낳아, 모모야마라고 하는 시대의 요청에 잘 응해 갔다.지금까지 회화에 별로 흥미가 없었던 자신이지만, 취광원houjou의 에이토쿠의 오회를 보고, 갑자기 사자도 병풍이나 히노키도 병풍을 보고 싶어진 것에서 만났다.

 

 

마지막

 

 

 

 


聚光院・特別公開

 

 3月18日まで大徳寺の塔頭「聚光院」が公開していたので、足を運んだ。聚光院の庭園(百積庭)を見るためである。

 

 大徳寺の境内を歩くのは好きだ。白壁が少ないためか、妙心寺の境内ほど明るさを感じないが、土壁の落ち着いた色が気持ちを和ませてくれる。戦国時代に大徳寺を訪れたLuís Fróisは、ここの僧坊について「互いに家の優雅清浄、庭園の巧妙に勝ることを努めている」と記したが、現在でも多くの優れた庭園が存在し、16世紀の庭園も4つ残っているのだ。去年に投稿した「大仙院・書院庭園」も、その1つである。

 

 

 聚光院に到着。拝観料は600円。特別公開は拝観料が結構高いのが難点。おまけに写真撮影が厳禁。これも辛いね。

 

 聚光院は三好義継が養父・三好長慶の菩提を弔うため、1566年に建立された。だが、1573年、三好義継は織田信長の攻撃を受けて自害し、三好家本宗は滅亡する。檀越を失った聚光院であったが、1589年に千利休がここを菩提所とした。

 千利休がここを菩提所とした理由は分からないが、三好長慶の弟・実休(義賢)が茶の湯に通じ、千利休と交流を持っていたため、という話もある。しかし、これも推測の域を出ない。

 

 

 

 さて、それでは聚光院の庭園を見よう。その庭は、重要文化財のhoujouの南側に作庭されている。要するにhoujou南庭だ。

 

 

聚光院庭園」、16世紀。

 

 別名「百積庭」。苔地に石を中心に構成された平庭枯山水庭園である。

 あらかじめ色んな本を見てこの庭を頭に描いていたのだが、実際に見てみると、想像とかなり違っていた。写真では、上のように、庭の奥に低平な石組が並んでいるだけにしか見えないが、1つ1つの石が明るく、形も良くて、庭から発せられるエネルギーを強く感じることが出来た。

 

 

左に鶴島、右に亀島があり、それぞれ松が植えられている。そして、両島を低く架けられた石橋が繋ぐ。さらに、西側の方丈手前にも島があって、サラソウジュの老木が植えられている(2つ上の写真に見える)。非常にめでたさを感じる構成だが、人によっては鶴島亀島説を採らない意見もあるようだ(解説の人は、鶴島・亀島ではないと、きっぱりと否定していた)。

 

 庭の石の大半は大仙院・書院庭園と同じく、阿波の青石(緑泥片岩)を使用している。その石質と古さからして、両者はおそらく同じ時代に採石されたと考えられるという。肌の色や姿が素晴らしく、この庭の良さは、この石の魅力に負うところが大きいだろう。

 

 

 ところで、明治時代に描かれた聚光院庭園の絵が残っているのだが(上の図)、現在と大幅に異なっている。石橋の下には白砂の川が流れ、手前の広い白砂敷の海にそそがれている様子が描かれている。また、石組以外に植栽や刈込も目立つ。禅寺の厳かな庭というより、ゆったりとしたおおらかさを感じる庭だったようだ。


 この庭は千利休が作ったという説もあるが、庭の石はそれより古いものだと思われるので、聚光院の創建当初から存在していた可能性が高い。ただし、上の絵で分かるように、時代と共に、この庭も姿を変えてきたと思われ、千利休もこの庭に手を加えている可能性が高い。今は、一面の青い苔地に、明るい石が形良く組まれ、まさに禅寺にふさわしい庭となっていた。 

 

 

聚光院houjouの襖絵

 

 さて、聚光院といえば、houjouの国宝障壁画(16世紀後半)に触れないわけにはいかないだろう。描いたのは、狩野松栄・狩野永徳の父子である。このうち、礼の間と衣鉢の間、及び仏間を父・狩野松栄が担当し、室中と檀那の間を子・狩野栄徳が担当した。両者は親子でありながら、全く画風が異なるのが興味深い。

 

 

 聚光院本堂(houjou)の障壁画配置図

 


 

 

国宝、houjou礼の間「Syousyou八景図」、狩野松栄筆。上は礼の間西側の襖絵。

 

 聚光院のhoujouに足を踏み入れると、まずは礼の間の襖絵の解説をしてもらえる。広々とした奥行きのある穏やかな表現の山水画で、松栄の父・狩野元信の大画面構成を受け継いでいる。因みに、この襖絵の裏側は、下の絵だが、その画風のあまりの違いに驚かざるを得ない。

 

国宝、houjou室中「花鳥図」、狩野永徳の筆。上は室中東側の襖絵。


 室中の花鳥図は聚光院の襖絵で最も有名ではないだろうか。特に東側の春の景に描かれた巨大な梅の木は、見るものを圧倒する力強さに満ちている。父・松栄と違い、永徳の絵には空間の奥行きがあまり無いが、モチーフが極端に拡大強調され、部屋の内側に迫り来る迫力を持っている。

 

 

室中西側の部屋、檀那の間も、狩野永徳が担当。「琴棋書画図」、当然国宝である。

 

 中世の禅僧が理想とした中国文人の世界も、永徳が描けばご覧の通り。ちょっと力が入り過ぎているというか、エネルギーが有り余っているというか。世間の評価は四季花鳥図の方が上。ただし、現在は絵具の多くが剥落してしまっており、本来はもっと色彩の強い画面だったという。


 

衣鉢の間は父・松栄が描いた。国宝「竹虎遊猿図」。腕を交差させた虎は、牧谿の龍虎図の虎を写したもの。


 エネルギー有り過ぎの襖絵で飾られた檀那の間の裏側(北側)に回ると、虎と猿のほのぼのとした松栄の絵に出くわす。永徳の絵に比べて目に優しく親しみを覚えるが、インパクトの大きさでは永徳に及ばない。

 狩野永徳は早くからその才能を祖父・元信に見出され、躍動感あふれる力強い絵画を生み出し、桃山という時代の要請にうまく応えていった。今まで絵画にあまり興味が無かった自分だけど、聚光院houjouの永徳の襖絵を見て、急に唐獅子図屏風や檜図屏風を見たくなったのであった。

 

 

終わ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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