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赤飯

일본인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유사한 생활 양식에 놀랄 때가 많다.

우리가 생일날 먹는 찰밥, 팥이나 콩이 들어가 붉은 색을 띠게 된다.

그러니까 경사스러운 날에는 붉은 색이 도는 밥을 먹는다는 말인데 왜 경사스러운 날에 붉은 밥을 먹게 되었을까?

제삿밥은 희다. 혼령 즉 귀신이 붉은 색을 싫어 하기 때문에 제사상에는 흰밥을 사용한다고 한다.  

동지 팥죽  

전기가 없던 기나긴 밤은 귀신이 나타나기 딱 좋은 날 아니었을까?

日本人と対話を交わしてみると類似の生活様式に驚く時が多い.
私たちが誕生日食べるこわ飯, 小豆や豆が入って行って.
だからおめでたい日には赤い色がご飯を食べるという話なのにどうしておめでたい日に赤いご飯を食べるようになっただろうか?

は白い. 魂霊すなわち鬼が赤い色が嫌だから祭祀膳には白ご飯を使うと言う.

電気がいなかった長々しい夜は鬼が現われるぴったり良い日ではなかっただろうか?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었지만 정리를 하고 나면 깔끔해 진다.

경사스러운 날 붉은 색을 사용 귀신을 물리친다는 의미

죽은 사람을 위해 흰밥을 사용 제를 지내고 산사람의 뜻 깊은 날에는 나쁜 귀신을 물리 친다는 의미로 팥이 들어간 찰밥을 사용한다.

混乱する部分があったが整理をしてからはこぎれいになる.
おめでたい日 赤い色を使用 鬼を退けるという意味
deathんだ人のために白ご飯を使用祭祀を執り行なって生きている人の意味深い日には悪い鬼を退けるという意味で小豆が入って行ったこわ飯を使う.

 

일본의 경우 우리와 유사하지만 웬지 모를 불확실한 측면이 있는 赤飯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赤飯의 유래를 잠시 살펴 보자.
日本の場合私たちと似たり寄ったりだが何故か分からない不確実な側面がある 赤飯という名前で存在する.
赤飯の来由をしばらくよく見よう.

 

 

http://ja.wikipedia.org/wiki/%E8%B5%A4%E9%A3%AF
赤飯の起源
古代より赤い色には邪気を祓う力があるとされ、例えば墓室の壁画など呪術的なものに辰砂が多く使われ、また、日本神話の賀茂別雷命や比売多多良伊須気余理比売出生の話に丹塗矢(破魔矢の神話的起源)の伝承があることからも窺える。また、神道は稲作信仰を基盤として持ち(田の神など)、米はとても価値の高い食糧と考えられてきた。このため、古代には赤米(英: Camargue red rice)を蒸したものを神に供える風習があったようである(現在でもこの風習は各地の神社に残っている)。その際に、お供えのお下がりとして、人間も赤米を食べていたと想像される。米の源流を辿ると、インディカ種とジャポニカ種に辿り着く。インディカ種は赤っぽい色をしており、ジャポニカ種は白である。縄文時代末期に日本に初めて渡ってきた米はこの2種の中間の種類で、ちょうど赤飯くらいの色だった。この米を、日本人は江戸時代になる前まで食べていた。しかし、稲作技術の発展による品種改良でより収量が多く作りやすい米が出てきたこと、食味の劣る赤米を領主が嫌って年貢として収納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ことから、次第に赤米は雑草稲として排除されるようになった。だが赤いご飯を食べる風習自体は生き続け、白い米に身近な食材である小豆等で色付けする方法が取られるようになったと考えられる。赤飯にゴマを乗せるのは、白いご飯を赤くしたことを神様にゴマかすためである。
팥찰밥 기원
고대부터 붉은 에는 사기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여겨져 예를 들면 벽화 주술적인 진사() 많이 사용되고 , 일본 신화 賀茂別雷命 比売多多良伊須気余理比売 이야기 (破魔矢 신화 기원) 전승 있는 것 에서 엿볼 수 있다., 신도 벼농사 신앙 기반으로서 가져(벼의 풍작을 빌기위해 모시는 신 ), 쌀은 매우 가치가 비싼 식량이라고 생각되어 왔다.이 때문에, 고대에는 붉은 쌀(: Camargue red rice)을 찐 것 바치는 풍습 있던 것 같다(현재에도 풍습 각지 신사 남아 있다).그 때, 공양 후물림으로서 인간 붉은 쌀 먹고 있었다고 상상된다. 원류 더듬으면, 인디카 쟈포니카 겨우 도착한다.인디카 빨강 같은 을 하고 있어, 쟈포니카 흰색이다.죠몽 시대 말기 일본 처음으로 건너 2 중간 종류, 정확히 팥찰밥만한 이었다. , 일본인 에도시대가 되기 까지 먹고 있었다.그러나, 벼농사 기술 발전에 의한 품종 개량으로 보다 수량 많이 만들기 쉬운 나온 것, 음식맛 뒤떨어지는 붉은 쌀 영주 싫어 해 연공으로서 수납할 수 없었던 으로부터, 점차 붉은 쌀 잡초로서 배제되게 되었다.하지만 붉은 먹는 풍습 자체 살아 나가 친밀한 식품 재료 으로 채색하는 방법 취해지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팥찰밥 참깨 싣는 것은, 붉게 한 것을 에게 참깨 빌려주기 때문에 있다.

 

現在は、祭りや誕生祝いなど吉事に赤飯を炊く風習が一般的であるが、江戸時代の文献「萩原随筆」に『凶事ニ赤飯ヲ用ユルコト民間ノナラワシ』と記されており凶事に赤飯を炊く風習がこの頃には既にあった[4]。凶事に赤飯を炊く理由は不明ではあるが、赤色が邪気を祓う効果がある事を期待した為という説や、いわゆる「縁起直し」という期待を込めて赤飯が炊かれたとも考えられる。又、古くは凶事に赤飯を食べていたものが何らかの理由で吉事に食べるように反転したという説もある。
현재, 축제 생일축하 경사 팥찰밥 밥하는 풍습 일반적이지만, 에도시대 문헌하기와라 수필 흉사 팥찰밥 유르코트 민간 노나라와시라고 기록되고 있어 흉사 팥찰밥 밥하는 풍습 요즘에는 이미 있던[4].흉사 팥찰밥 밥하는 이유 불명하기는 하지만, 적색 악의 효과 있는 기대 때문이라고 하는 이나, 이른바 재수 수선」이라고 하는 기대 담고 팥찰밥 밥해졌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옛날에는 흉사 팥찰밥 먹고 있던 것 어떠한 이유 경사 먹도록(듯이) 반전했다고 하는 도 있다.

 

일본의 경우 불명확한 사실을 억지로 맞추기 위해 극히 논리적이지 못한 전개가 많다.

에도시대의 특정 시기 전에는 흉사에 赤飯을 사용 했는데 그것이 불명확한 이유로 경사에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서두에서 말한 바와 같이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맞기도 하다.

흉사에 사용 했다는 것은 주술적 의미로 붉은 색을 사용했다는 의미로 붉은 색이 흉사에 사용되어 잡귀를 막아 주므로 경사에 사용하여 잡귀의 접근을 봉쇄하는 것이다. 

日本の場合不確かな事実を無理やりに合わせるために極めて論理的ではない展開が多い.
江戸時代の特定時期の前には凶事に 赤飯を使ったがそれが不確かな理由で慶事に使われたというのだ.
全然先後が当たらないようだが書き始めで言ったところのようにつくづくと考えて見れば当たったりする.
凶事に使ったということは呪い的意味で赤い色を使ったという意味で赤い色が凶事に使われて雑鬼を阻んでくれるので慶事に使って雑鬼の接近を封鎖するのだ.

 

한일 양국의 赤飯의 유래의 공통 분모는 다음 두가지 사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韓日両国の 赤飯の来由の共通分母は次二つの事例で捜す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

 



 

木簡からみた古代の赤米
百済時代の遺跡から出土した木簡の一つに赤米が記されていることが明らかにされた. 墨書で 「太公西美前部 赤米二石」
. ここに記されたʠ前部ʡとは当時の百済の首都の行政区分の一つであるという. したがって, (地名)+赤米+(量) が記され,わが国の赤米木簡と記載形式は類似し, 赤米が入った容器に付けられた付札木簡の一種と考えられよう.古代に百済とわが国は密接な関係にあり, 仏教をはじめ大陸の多くの文化や事物が百済を通してわが国へ伝来し, また百済からの多くの渡来人が移住したことがよく知られている. 百済の赤
米木簡は~世紀前半頃のものと推定されることからもわが国の飛鳥期の赤米木簡の一時代前のものと考えられる. わが国の赤米の歴史を考える上でも今後百済遺跡から出土する木簡からは目が離せない
백 제시대의 유적으로부터 출토한 목간의 하나에 붉은 쌀이 기록되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묵서로「태공서미앞부분 붉은 쌀2석」. 여기에 기록된 前部는 당시의  백제의 수도의 행정구분의 하나이다고 한다. 따라서, (지명)+붉은 쌀+(양)이 기록되어 일본의 붉은 쌀 목간과 기재 형식은 유사해, 붉은 쌀이 들어간 용기에 붙일 수 있었던 첨부 목간의 일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대에  백제와 일본은 밀접한 관계에 있어, 불교를 시작해 대륙의 많은 문화나 사물이  백제를 통해 우리 나라에 전래되고, 또  백제로부터가 많은 도래인이 이주했던 것이 잘 알려져 있다.  백제의 붉은 쌀 목간은~세기 전반무렵의 것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부터 우리 나라의 飛鳥기의 붉은 쌀 목간의 한 시대전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 나라의 붉은 쌀의 역사를 생각하는데 있어서도 향후  백제 유적으로부터 출토하는 목간에서는 눈을 떼어 놓을 수 없다

近年の飛鳥京遺構から劇的な発見として「飛鳥京跡苑池遺構」から表裏に次の記載を持つ木簡が出土した。
『戊寅年12月尾張海評津嶋五十戸 韓人ァ田根春赤米斗加支各田ァ金』
私にはさっぱり読めませんが、解説によりますと、戊寅年は天武天皇7年(西暦678年)、尾張海評は尾張の国海郡となり「海」は後に「海部」の2字になり、評は今の郡、五十戸は1里と読み、すなわち西暦678年尾張国海部郡津嶋里となり。後半は
韓人ァ田根で「ァ」は活字に無く「ア」と「マ」の間くらいの字で、これは「部」の省画異体字、田根は人名、次の「春」は誤記で、原書の間違いで、「春」の日の字は臼の字を入れる、「つく」とよんで、酒造用の赤米の事、斗加支(とかさ)は枡などの上を均す事、「各」は「額」の省画異体字で各田ァで(ぬかたべ)の金さんという人名との事。
근년의 飛鳥京遺構로부터 극적인 발견으로서 「飛鳥京跡苑池遺構」로부터 표리에 다음의 기재를 가지는 목간이 출토했다.
「무 인년 12월 尾張海評津嶋五十戸 韓人ァ田根春赤米斗加支各田ァ金」 , 무인년은 텐무천황 7년(서기 678년), 尾張海評은 尾張의国海郡이 되어 「海」는 후에 「海部」의 2자가 되어, 評은 지금의 군, 50호는 1리라고 읽어, 즉 서기 678년 尾張国海部郡津嶋里가 되고,후반은 韓人ァ田根으로 「ァ」는 활자에 없고 「ア」와「マ」의 중간 글자로, 이것은 「部」의 성화 이체자, 田根은 인명, 다음의 「春」은 오기로, 원서의 실수로, 「春」의 날의 글자는 맷돌의 글자를 넣는, 「つく」라고 읽고, 酒造用의 붉은 쌀의 일, 斗加支는 枡등의 위를 평균화하는 일, 「 各 」은 「額」의 성화 이체자로 各田ァ(쌀겨 먹어)의 김씨라고 하는 인명의 것.   

 

한일 양국에서 발굴된 적미가 기록된 목간의 특이점은

1.목간에 기록된 형식이 일치

2.일본에서 발굴된 목간의 주인공은 한인 김씨 

韓日両国で発掘された赤米が記録された木簡の特異點は
1.木簡に記録された形式が一致
2.日本で発掘された木簡の主人公は韓人金さん

 

戊寅年,天武天皇7年(西暦678年) 尾張海評의 韓人金氏의 내용에서 당시 신라가 깊숙히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 준다.
郡評論争은 일본역사 최대 미스테리 중의 하나로 받아 들여진다.
戊寅年,天武天皇7年(西□678年) 尾張海評の 韓人金氏の内容で当時新羅が深く席を取っていることを見せてくれる.
郡評論争は日本史最大ミステリー中の一つで受けて入れられる.

評(こおり、ひょう)とは、古代朝鮮および古代日本での行政区域の単位。『日本書紀』は「大化の改新」の時に「郡」が成立したと記すが、「郡」と言う用語が用いられるのは、大宝律令制定以降であり、それ以前は「評」を使っていた文書(木簡類)が見つかっている
평 (고오리(고을))이란, 고대 조선 및 고대 일본에서의 행정구역의 단위.「일본 서기」는 「다이카 개신」때에 「군」이 성립했다고 적지만, 「군」이라고 하는 용어가 이용되는 것은, 다이호 율령 제정 이후여, 그 이전은 「평」을 사용하고 있던 문서(목간류)가 발견되고 있다

일본의 탄생-작은 증거 墓誌
http://blog.naver.com/marich77/40185018180
에서 시작하여 수차례의 연재로 이어진 글에서 신라의 일본 지배에 대한 역사적 추론을 소개한 바 있지만

646년 大化の改新
647 김춘추의 일본 방문

그리고 다음 내용이 재미있다. 자세한 것은 다음 기회에...


日本の誕生-小さな証拠 墓誌 http://blog.naver.com/marich77/40185018180 で始めて何回の連載につながった文で新羅の日本支配に対する歴史的推論を紹介した事があるが

646年 大化の改新
647 金春秋の日本訪問

そして次の内容がおもしろい. 詳しいことは次機会に...

  



TOTAL: 8943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4863
No Image
그런데 어떻게 한 것일까하고 고맹은 ....... pipecloud 2013-10-24 3382 0
4862
No Image
郡評論争-평제의 은폐 Marich 2013-10-24 2686 0
4861
No Image
군 평론쟁-평제의 은폐 Marich 2013-10-24 3266 0
4860
No Image
박근혜의 패션 dkool 2013-10-24 3468 0
4859
No Image
일본제 안료가 나쁘다!! dkool 2013-10-23 5109 0
4858
No Image
郡評論争-대화개신 Marich 2013-10-22 3473 0
4857
No Image
군 평론쟁-타이카 개신 Marich 2013-10-22 4420 0
4856
No Image
re:현관 Marich 2013-10-18 3545 0
4855
No Image
조선시대 북촌 사진 roffkfk1 2013-10-18 2898 0
4854
No Image
찰밥 Marich 2013-10-17 3262 0
4853
No Image
팥찰밥 Marich 2013-10-17 4364 0
4852
No Image
현관 Marich 2013-10-15 3133 0
4851
No Image
현관 Marich 2013-10-15 5144 0
4850
No Image
아카마 신궁 黒猫 2013-10-09 3501 0
4849
No Image
속·Shikoro인 건물 栄養市民 2013-10-01 4118 0
4848
No Image
日帝가 變形시킨 조선시대 귀족 마을 roffkfk1 2013-10-01 4683 0
4847
No Image
오사카의 Shikoro인 건물 栄養市民 2013-09-30 4001 0
4846
No Image
Japan 100 years ago nc31f3v 2013-09-28 3651 0
4845
No Image
1923 간토 대지진 일본을 구하라 namgaya33 2013-09-27 4189 0
4844
No Image
日 우익의 혐한 시위, 해외네티즌 맹....... eroGG 2013-09-27 3744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