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의 지리적 위치]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어 궁궐에 드나드는 고위 관료들이 거주하던 지역이었다.
물론 북촌에는 權門勢族의 집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크고 작은 官衙나 궁궐이 함께 공존하였다.
그 중에 행정구역으로서 陽德坊에 속하는 桂洞은 북촌을 대표하는 주거지중 하나이며,
官衙 건물과 別宮이 함께 공존하는 지역이었다.
특히 桂洞은 濟生洞 또는 桂生洞의 略稱으로 이름에서 보여지듯이
이곳에 국가의 의료시설 중에 하나인 濟生院이 있었기 때문에 命名된 것이었다.
[조선시대 당시 북촌의 鳥瞰圖]
조선시대에는 오늘날 북촌에서 볼수있는 작은 규모의 소형화된 한옥과 다르게
조선의 고급 관료들과 양반들의 웅장한 기와집이 밀집되어 있었다.
지금의 소형화된 한옥은 1930年代 日帝時代에 변형된 것이다.
북촌 한옥마을 전경
북촌 한옥마을의 건축양식은 전통한옥이 소형화 된 것으로 봐야한다.
원래 북촌은 조선시대 왕족과 고위 관료들의 住宅地區로
지금보다 넓고 큰 규모의 한옥들이 밀집된 지역이었는데,
1930年代 日帝時代에 개발업자들이 소규모로 분할하여 改良韓屋으로 변경한 다음 민간에 분양하였다.
조선시대의 북촌은 지금보다 敷地도 넓어서
왕족이나 고위 관료들의 기와집 저택들이 웅장하고 화려하게 밀집해있었다
[北村の地理的位置]
景福宮と昌徳宮の間において宮廷に出入りする高位官僚たちが居住した地域だった.
もちろん北村には 権門勢族の家たちだけあるのではなかった.
多様な 官衙や宮廷が一緒に共存した.
その中に行政区域として 陽徳坊に属する 桂洞は北村を代表する住居地中一つであり,
官衙 建物と 別宮が一緒に共存する地域だった.
特に 桂洞は 済生洞 または 桂生洞の 略称で名前で見えるように
こちらに国家の医療施設の中にひとつの 済生院があったから 命名になったのだった.
[朝鮮時代当時北村の 鳥瞰図]
朝鮮時代には今日北村で見られる小さな規模の小型化された韓屋と違うように
朝鮮の高級官僚たちと両班たちの雄大壮厳な瓦の家が密集されていた.
今の小型化された韓屋は 1930年代 日帝時代に変形されたのだ.
北村韓屋村全景
北村韓屋村の建築様式は伝統韓屋が小型化になったことで見なければならない.
元々北村は朝鮮時代王族と高位官僚たちの 住宅地区で
今より広くて大きい規模の韓屋たちが密集された地域だったが,
1930年代 日帝時代に開発業者たちが小規模で分割して 改良韓屋に変更した後民間に分譲こんにちはだった.
朝鮮時代の北村は今より 敷地も広くて
王族や高位官僚たちの瓦の家邸宅たちが雄大壮厳で派手に密集してい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