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대선원에 갔습니다.

 

대선원은, 대덕사 산내에 있는, 대덕사의 탑두의 하나.1509년의 창건으로, 호죠나 돌로 꾸민 정원 등, 창건 당초의의 것이 많이 남는다.

내부 사진은 엄금으로, 정원을 촬영하는 일도 불가능.이것은 철저히 하고 있다.

 

 

 

절의 부엌으로부터 국보의 호죠에 진행되면, 오른손에 돌과 모래의 돌로 꾸민 정원이 나타난다.그래, 이것이 나라의 특별 명승 및 사적으로 지정된, 무로마치 시대의 명원 「서원 정원」이다.

 

이 정원은 면적 불과 100평방 미터 정도의 크기로, 호죠의 토호쿠구석에 구형에 배치되어 있다.중요한 것은, 툇마루와 정원의 높낮이차이가 매우 작은 일(토호쿠에 위치하는 서원과 뜰의 높낮이차이는 30 cm).이것은, 서원에 몸을 두었을 때, 툇마루와 뜰의 연속감을 강조하기 위해(때문에)이다.그 결과, 뜰이 보다 가까이에  느껴지고 돌로 꾸민 정원이 출발하는 에너지를 강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 이러한 정원이 등장하는 계기를 조금 말해 두고 싶다.

 

생명이 있는 중생은 물론, 초, 목, 산, 천, 석이라고 한 것까지, 모두프랑스이다.같은 뉘앙스의 말은 여러가지 있다고 하여, 그러한 생각이 불교에는 존재하지만, 선의 세계에서는 이것이 특히 강조되어 대자연안에 프랑스를 찾아&A, 불변의 진리를 미도리일이 중시되었다.

그러나, 거리가 커지면 자연과의 거리가 떨어지고, 주위에 훌륭한 환경이 갖추어지는 것도 어려워진다.맑고 깨끗한 물을 손에 넣는 것도 곤란에 된다.무로마치 시대에는 시중에 사원이나 탑두가 늘어서, 아무리 대자연을 존경하는 선사라고 해도, 언제나 언제나 조건이 좋은 토지를 손에 넣는 것 등 도저히 불가능했다.거기서, 조건의 엄격한 작은 부지안에서도, 대자연을 느끼게 하는 정원을 만드는 것이 요구되어 갔던 것이다.

 

탑두 사원이 늘어서는 대덕사의 산내

 

또, 같은 시대에 유행한 수묵 산수화도, 선의 정원에 큰 영향을 주었다.수묵 산수화는, 몇 안 되는 지면에 대자연을, 먹일색과 선에 의해서 표현하는 예술이다.그리고, 대자연의 경치인 산, 타키, 오카, 오오미등을 상징적인 방법을 섞어 암시적으로 표현해 나가지만, 이것이 선의 작 정에도 강하게 영향을 주었다.

즉, 대자연 그 자체의 형태를 그대로 정원에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정원에 도입하는 요소를 철저하게 음미해, 배제해, 생략 한 형태로 수중에 넣었다.그리고, 수묵 산수화와 같이 대자연의 경치를 암시적으로 표현해, 몇 안 되는 공간에, 무한하게 퍼지는 대자연의 진리를 표현하려고 했다.

대선원의 서원 정원은, 그러한 배경의 아래에서 탄생한, 전형적인 고산수 정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서원 정원이지만, 사진왼쪽이 봉래산의 산들을, 우측이 강의 하류를 표현한다.봉래산의 안쪽에 2살의 타테이시를 세울 수 있어 그것을 폭포(고롱)에 진단한다.거기로부터 물이 낙하해 돌의 다리를 빠져 나가, 강에 흐르기 시작한다.그 강의 물은 일단, 사진 중앙의 언에 제지당해 그 후 사진 오른쪽의 강의 하류에 표류한다.

위의 사진으로 주목 해야 할 것은, 사진 좌측의 툇마루의 근처에 있는, 표면이 평평한 돌.이 돌은 「침향나무석」이라고 불려 툇마루의 평면과 평행 해서 배치되는 것으로, 툇마루와 뜰과의 연속성을 강조해, 시각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이루어 있다.또, 사진 우측의 큰 돌은 「보물선」으로, 강의 하류를 유유히 진행되는 모습을 나타낸다.

 

파일:Daisen-in2.jpg

봉래산의 웅대한 경치(석조)를 줌 업.안쪽의 폭포로부터 물이 흘러 돌의 다리를 빠져 나가고 강에 흐른다.사진왼쪽의 큰 2개의 돌은, 오른쪽이 부동석, 왼쪽이 관음석.사진 앞의 돌이, 방금전의 침향나무석.

 

 

봉래산으로부터 흐르는 강의 흐름은, 사진의 중해(호죠의 북정)에도 도달한다.사진 좌측의 건물은 중요문화재의 「십운헌」으로, 단무지 스님이 미야모토 무사시에게 검도의 비법을 전수한 장소라고 한다.

 

대선원의 개조, 마사노리대 히지리 국사 일 「후루다케종긍」(1465년~1548년)의 목조좌상.호죠의 실안(호죠 남쪽의 중앙의 방) 안쪽에 자리잡는다.

 

 

국보 「호죠」, 1513년

 

일반적인 호죠와 같이, 6실구성.중앙의 미닫이는 아이 딸린 사람 미닫이가 되고 있다.주위 모두 창호를 넣고 있어 모두 떼어낼 수 있다(참고·위로부터 3번째의 사진).

 

호죠 정원(호죠남뜰), 나라의 명승

 

호죠 정원은, 2개의 성사가 있을 만한 백사 깔개의 고산수 정원이다.물결 모양만 붙일 수 있던 이 뜰은 대해로 불려 무한하게 퍼지는 정숙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옆에 있는 현관도, 국보의 일부.

 

 

호죠 내부의 오회.소아미의 산수화, 가노 모토노부의 화조도, 가노 유키노부의 사계 경작도등이 갖추어진다.

 

 

그리고, 대선원이라고 하면 말주변이 좋은 81세의 주직·오제키 종원씨가 있다.대선원은 외국인 관광객(특히 서양인)이 대부분 방문한다.주직씨는 영어도 능숙하고, 유창하게 회화하고 있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은, 호죠의 툇마루를 5주이상 천천히 돌았다.서원 내부에 들어가는 것은 할 수 없지만, 서원 툇마루에서 앉아 서원 정원을 차분히 바라보고 있었다.실로 기분 좋은 한때였다.

 

 

마지막

 

 

 


大仙院の書院庭園

大仙院に行きました。

 

大仙院は、大徳寺山内にある、大徳寺の塔頭の1つ。1509年の創建で、方丈や石庭など、創建当初のものが多く残る。

内部写真は厳禁で、庭園を撮影することも不可能。これは徹底している。

 

 

 

庫裏から国宝の方丈へ進むと、右手に石と砂の石庭が現れる。そう、これが国の特別名勝及び史蹟に指定された、室町時代の名園「書院庭園」である。

 

この庭園は面積わずか100平方メートル程度の大きさで、方丈の東北隅に鉤形に配置されている。重要なのは、縁側と庭園の高低差が非常に小さいこと(東北に位置する書院と庭の高低差は30cm)。これは、書院に身を置いた時、縁側と庭の連続感を強調するためである。その結果、庭がより身近に感じられ、石庭が発するエネルギーを強く感じることができるだろう。

 

 

さて、それではこのような庭園が登場するきっかけを少し述べておきたい。

 

生命のある衆生はもとより、草、木、山、川、石といったものまで、みな仏である。同じニュアンスの言葉は様々あるとして、そのような考えが仏教には存在するが、禅の世界ではこれが特に強調され、大自然のなかに仏を見い出し、不変の真理を見取ることが重視された。

しかし、街が大きくなれば自然との距離が離れるし、周囲に素晴らしい環境が揃うことも厳しくなってくる。清らかな水を手に入れることも困難になってくる。室町時代には市中に寺院や塔頭が建ち並び、いくら大自然を尊ぶ禅寺といえど、いつもいつも条件のよい土地を手に入れることなど到底不可能であった。そこで、条件の厳しい小さな敷地の中でも、大自然を感じさせる庭園を作ることが求められていったのである。

 

塔頭寺院が建ち並ぶ大徳寺の山内

 

また、同じ時代に流行した水墨山水画も、禅の庭園に大きな影響を与えた。水墨山水画は、わずかな紙幅に大自然を、墨一色と線によって表現する芸術である。そして、大自然の景色である山、滝、大河、大海などを象徴的な方法を交えて暗示的に表現していくが、これが禅の作庭にも強く影響した。

即ち、大自然そのものの形をそのまま庭園に導入するのではなく、庭園に取り入れる要素を徹底的に吟味し、そぎ落とし、省略した形で取り込んだ。そして、水墨山水画と同じく大自然の景色を暗示的に表現し、わずかな空間に、無限に広がる大自然の真理を表現しようとした。

大仙院の書院庭園は、そのような背景のもとに誕生した、典型的な枯山水庭園だと言えるだろう。

 

 

さて、書院庭園だが、写真左が蓬莱山の山々を、右側が川下を表現する。蓬莱山の奥に2つの立石が立てられ、それを滝(枯滝)に見立てる。そこから水が落下して石の橋をくぐり、川に流れ出す。その川の水は一旦、写真中央の堰に止められ、その後写真右の川下に流れ着く。

上の写真で注目すべきは、写真左側の縁側の近くにある、上面が平らな石。この石は「沈香石」と呼ばれ、縁側の平面と平行して配置されることにより、縁側と庭との連続性を強調し、視覚的に重要な役割を果たしている。また、写真右側の大きな石は「宝船」で、川下を悠々と進む姿を表す。

 

ファイル:Daisen-in2.jpg

蓬莱山の雄大な景色(石組)をズームアップ。奥の滝から水が流れ、石の橋をくぐって川に流れる。写真左の大きな2つの石は、右が不動石、左が観音石。写真手前の石が、先ほどの沈香石。

 

 

蓬莱山から流れる川の流れは、写真の中海(方丈の北庭)にも到達する。写真左側の建物は重要文化財の「拾雲軒」で、沢庵和尚が宮本武蔵に剣道の極意を伝授した場所という。

 

大仙院の開祖、正法大聖国師こと「古岳宗亘」(1465年~1548年)の木造坐像。方丈の室中(方丈南側の中央の部屋)奥に鎮座する。

 

 

国宝「方丈」、1513年

 

一般的な方丈と同じく、6室構成。中央の引き戸は子持ち障子となっている。周囲全て建具を入れており、全て取り外すことが出来る(参考・上から3番目の写真)。

 

方丈庭園(方丈南庭)、国の名勝

 

方丈庭園は、2つの盛砂があるだけの白砂敷きの枯山水庭園である。波模様だけ付けられたこの庭は大海と呼ばれ、無限に広がる静粛の世界を表現している。

 

横にある玄関も、国宝の一部。

 

 

方丈内部の襖絵。相阿弥の山水画、狩野元信の花鳥図、 狩野之信の四季耕作図などが揃う。

 

 

あと、大仙院といえば口達者な81歳の住職・尾関宗園さんがいる。大仙院は外国人観光客(特に西洋人)が多く訪れる。住職さんは英語も達者で、流暢に会話していたのが印象的だった。

自分は、方丈の縁側を5周以上ゆっくりと回った。書院内部に入ることは出来ないけど、書院縁側で座って書院庭園をじっくりと眺めていた。実に心地よい一時であった。

 

 

終わ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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