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그런데, 오사카의 부케야시키(타케시의 집)이지만, 이것이 거의 존재하고 있지 않다.부유 농민의 집이 대량으로 있는데 대해, 무사의 집은 극단적으로 적은 것이다.단지, 조사했는데, 1개만 존재하고 있었다.모리구치시에 있는 「구나카니시가 주택」이다.

 나카니시가는 16 세기 중순에 이 땅에 이주해 토지를 개척해, 5개의 마을을 연(만든) 집이다.에도 초기에 오와리 토쿠가와가와 혼인 관계를 가진 것으로부터, 에도시대는 오와리번의 오오사카(오사카) 템마창고 저택봉행의 직무를 대대 맡았다고 한다.


 

 그 집은, 보통 주택가에 있었다.사진왼쪽이 입구.사진의 도로는 단순한 생활로로 보이지만, 이것은 「지절가도」이다.이 가도에 접하고 저택이 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훌륭한 문이 보였다.구나카니시가 주택의 정문, 「다이몬」이다.

 

 다이몬은 1776년의 건조.말을 탄 채로 출입하기 위해(때문에), 문이 비싸게 만들어지고 있다(2.7 m).덧붙여서, 배관료가 필요하고, 200엔이든지.

 

 

 다이몬을 기어들면 주가게가 보였다.「주가게」는 1793년 건조.지금의 주가게는 3대째로, 1555년, 1616년에 전의 주가게가 지어지고 있다.

 이 집에는 나카니시가의 사람들이 최근까지 살고 있었지만, 1995년의 한신 대지진으로 손상되었으므로, 집을 명도해, 모리구치시에 관리받게 되었다고 한다.그 후, 집전체가 보수 공사를 받아 2002년에 완료했다.따라서, 건물의 외관은 새롭게 보인다.

 

보수의 자취가 곳곳에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러면 주가게의 평면도를 보자.위가 북측.우측으로 토방, 좌측으로 거실.거실은 복잡하고, 겉(남쪽)에 접객을 위한 방이 줄서, 뒤편(북측)에 가족의 일상생활을 위한 방이 줄지어 있다.

 

 

 주가게에는 출입구가 4개 존재하고 있다.신분에 의해서 출입하는 장소가 다른 것이다.이 근처는 역시 부케야시키일 것이다.사진 오른쪽의 출입구(호구)는 신분이 낮은 사람등이 출입하는 장소.

 

 

 토방의 겉정면에 있는 「대문구」.연공을 납입하는 농민도 여기로부터 들어간다..차를 넣기 위해, 아래의 깔판은 떼어내는 것이 가능하다.

 

 

토방의 뒤에, 에도시대에 사용된대8차가 놓여져 있었다.약 60 kg의 쌀가마니를 8개 쌓을 수가 있었다.

 

 

「집안의 현관」.집주인이나 집주인과 동격의 사람이 출입하는 장소.

 

 

그리고, 가장 격식이 높은 인물이 방문했을 때에 사용하는 「대현관」.훌륭한 현관 마루가 붙어, 위에 와고도 보인다.

 

 

 현관 마루로부터 오른 곳에 있는 「대현관의 사이」.덧붙여서, 평면도에 보도록(듯이), 여기를 지나지 않고, 반간의 복도를 지나 직접 zashiki에 갈 수가 있게 되어 있지만, 이것은 다이묘에게 주어지는 택지에 모방하고 있다.

 

 

Zashiki.접객의 사이로, 평상시는 사용하지 않는 방.장식 기둥이 닦아 통나무는 아니고 각주인 것은, 조금 고풍이라고 말할 수 있다.

 

 

 Zashiki 외측에는 L자형·1간폭의 다다미 깔개광연(칼집의 사이)이 붙어, 그 외 측에반간이 젖어 인연을 설치하고 있다.해가 비치는 칼집의 사이나 젖어 인연은, 지금의 계절에는 최고로 기분이 좋은 장소다.뜰을 보면서 좀 쉬었다.

 

 매우 넓은 뜰이, 주가게의 서쪽, 서남 방향으로 퍼지고 있다.이 집이나 구하징가를 보고, 역시 zashiki는 남쪽 하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자신의 집의 zashiki는 북측에 있으므로, 날이 별로 쑤시지 않고, 어슴푸레한 방이니까이다.

 

 

 복잡하게 뒤얽히는 거실에 대해, 토방은 천정이 높고, 넓다.기둥이나 대들보는 굵고, 호쾌 그 자체다.천정이 낮고, 침착한 분위기의 거실과의 대비가 재미있다.

 여기의 토방은 사진으로 보이도록(듯이) 중 우량, 리우량이 있지만, 표 우량은 없다.중우량은 옛 것이지만, 리우량은 12년전의 보수로 새롭게 바꿀 수 있던 것이다.너무나 크기 때문에, 헬리콥터로 매달고라고 옮겨 온 것 같다.그리고, 조전의 연기 반환의 대들보도, 같은 새로운 것으로, 이것도 헬리콥터가 신세를 졌다.

 

 

 여기의 집은 카와라부키이지만, 부뚜막 위에 「자욱해 방편(kemuridashi)」가 없고, 「매달아 창」으로 연기를 처리한다.끈을 잡아당기면 창이 열린다.

 

 

 토방으로부터 거실을 보자.사이에 다다미를 깐 히로시키가 있다.그리고 개구부는 왼쪽의 kuchinoma경계가 2간, 오른쪽의 daidoko경계가 1간반.구하징가와 같은 느낌이다.

 

 

 구하징가와의 차이는, daidoko경계의 미닫이.구하징가가 밝혀내 3개 도랑인데 대해, 이쪽은 1개 도랑에서, 구석에 두껍닫이(Sliding-door Box)를 설치하고 있는 것.Box에 3매의 미닫이를 수납해, daidoko경계를 전개할 수 있다.단지, 구하징가가 쭉 개폐하기 쉬운데.

 

 

 가족의 일상생활을 위한 방은 거실의 뒤편(북측)에 퍼진다.위는 부엌(daidoko)으로부터 찍은 사진.접객 공간과는 달라, 차이 상인방의 사용이 눈에 띄었다.

 

 

 거실의 가장 안쪽에는, 방(heya)으로 불리는 집주인의 방이 있다.왼쪽의 오의 안쪽에는, 갈아 입기의 방이 설치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촌장의 집과 잘 비슷하지만, 높은 다이몬, 훌륭한 현관 마루를 갖춘 대현관 등, 과연 무사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 풍격을 갖추고 있었다.전국적으로 봐도 무사의 집은 매우 적고, 유지도 큰 일이어서, 이 집과 같이 마을 전체로 보존을 생각해 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마지막

 

 

 

 

 


大阪・武士の家

 

 さて、大阪の武家屋敷(武士の家)だが、これがほとんど存在していない。富裕農民の家が大量にあるのに対し、武士の家は極端に少ないのである。ただ、調べたところ、1つだけ存在していた。守口市にある「旧中西家住宅」である。

 中西家は16世紀中頃にこの地に移住して土地を開拓し、5つの村を開いた(造った)家である。江戸初期に尾張徳川家と婚姻関係を持ったことから、江戸時代は尾張藩の大坂(大阪)天満蔵屋敷奉行の役職を代々務めたという。


 

 その家は、普通の住宅街にあった。写真左が入口。写真の道路はただの生活路に見えるが、これは「枝切街道」である。この街道に面して屋敷が建てられていたのである。


 

立派な門が見えた。旧中西家住宅の正門、「大門」である。

 

 大門は1776年の建造。馬に乗ったまま出入りするため、門が高く造られている(2.7m)。因みに、拝観料が必要で、200円なり。

 

 

 大門を潜ると主屋が見えた。「主屋」は1793年建造。今の主屋は3代目で、1555年、1616年に前の主屋が建てられている。

 この家には中西家の人々が最近まで住んでいたが、1995年の阪神大震災で傷んだので、家を明け渡し、守口市に管理してもらうことになったという。その後、家全体が補修工事を受け、2002年に完了した。従って、建物の外見は新しく見える。

 

補修の跡が所々に見られる。

 

 

 さて、それでは主屋の平面図を見よう。上が北側。右側に土間、左側に居間。居間は複雑で、表側(南側)に接客のための部屋が並び、裏側(北側)に家族の日常生活のための部屋が並んでいる。

 

 

 主屋には出入り口が4つ存在している。身分によって出入りする場所が異なるのである。この辺はやはり武家屋敷だろう。写真右の出入り口(戸口)は身分の低い者などが出入りする場所。

 

 

 土間の表側正面にある「大戸口」。年貢を納める農民もここから入る。。車を入れるため、下の敷板は取り外すことが可能だ。

 

 

土間の裏に、江戸時代に使用された大八車が置いてあった。約60kgの米俵を8つ積む事が出来た。

 

 

「内玄関」。家主や家主と同格の人が出入りする場所。

 

 

そして、最も格式が高い人物が訪れた時に使用する「大玄関」。立派な式台が付き、上に蛙股も見える。

 

 

 式台から上がった所にある「大玄関の間」。因みに、平面図に見るように、ここを通らず、半間の廊下を通って直接zashikiに行く事が出来るようになっているが、これは大名屋敷に倣っている。

 

 

Zashiki。接客の間で、普段は使わない部屋。床柱が磨き丸太ではなく角柱であるのは、少し古風と言える。

 

 

 Zashiki外側にはL字型・1間幅の畳敷き広縁(鞘の間)が付き、その外側に半間の濡れ縁を設置している。日が当たる鞘の間や濡れ縁は、今の季節には最高に気持ちいい場所だ。庭を見ながら一休みした。

 

 広々とした庭が、主屋の西、西南方向に広がっている。この家や旧河澄家を見て、やはりzashikiは南面していてほしいと思った。自分の家のzashikiは北側にあるので、日があまり差し込まず、薄暗い部屋だからである。

 

 

 複雑に入り組む居間に対し、土間は天井が高く、広い。柱や梁は太く、豪快そのものだ。天井が低く、落ち着いた雰囲気の居間との対比が面白い。

 ここの土間は写真に見えるように中牛梁、裏牛梁があるが、表牛梁はない。中牛梁は昔のものだが、裏牛梁は12年前の補修で新しく取り替えられたものである。あまりに大きいので、ヘリコプターで吊るして運んできたらしい。あと、竈前の煙返しの梁も、同じく新しいもので、これもヘリコプターのお世話になった。

 

 

 ここの家は瓦葺だが、竈の上に「煙り出し(kemuridashi)」が無く、「吊り下げ窓」で煙を処理する。紐を引っ張ると窓が開く。

 

 

 土間から居間を見よう。間に畳敷きのヒロシキがある。そして開口部は左のkuchinoma境が2間、右のdaidoko境が1間半。旧河澄家と同じような感じである。

 

 

 旧河澄家との違いは、daidoko境の引き戸。旧河澄家が突き止め3本溝なのに対し、こちらは1本溝で、端に戸袋(Sliding-door Box)を設置していること。Boxに3枚の引き戸を収納し、daidoko境を全開できる。ただ、旧河澄家の方がずっと開閉しやすいけど。

 

 

 家族の日常生活のための部屋は居間の裏側(北側)に広がる。上は台所(daidoko)から撮った写真。接客空間とは異なり、差鴨居の使用が目に付いた。

 

 

 居間の一番奥には、部屋(heya)と呼ばれる家主の部屋がある。左の襖の奥には、着替えの部屋が設置されている。

 

 

 全体的に庄屋の家とよく似ているが、高い大門、立派な式台を備えた大玄関など、さすがに武士の家と言える風格を備えていた。全国的に見ても武士の家は非常に少なく、維持も大変なので、この家のように町全体で保存を考えていかなければならないだろう。

 

終わ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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