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신라 삼보(三寶)의 하나로, 삼국유사에 의하면 643년(선덕여왕 12)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

한 자장(慈藏)의 요청으로 건조되었다 한다. 그러나 645년(선덕여왕 14) 처음 건축을 시작하여 그

해 4월 8일에 찰주를 세우고 이듬해 완공했다는 설도 있는데, 이는 황룡사 구층탑지 심초석(心礎

石) 안에서 도굴된 신라황룡사찰주본기(新羅皇龍寺刹柱本記)에서 비롯한 것이다.

아홉 개의 층은 모두 신라 변방의 나라들을 가리켰고 탑을 세움으로써 이웃의 침해를 누를 수 있었

다고 한다. 이 탑은 건립된 후 50년이 지난 698년(효소왕 7) 벼락을 맞아 불탄 이래 여러 차례 중수

되어 웅장한 모습을 유지해왔으나 1238년(고려 고종 25) 몽골의 병화(兵火)로 가람 전체가 불타버

려 그 후로는 중수되지 못하였다.

 

개성 불일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9층 금동탑과 황룡사 9층 목탑 모형

 

 

 

찰주본기(刹住本記)에 따르면 황룡사 9층 목탑은 철반(鐵盤) 7보이고, 그 아래가 30보 3척(鐵盤己

上高七己下高?步三尺)이라고 하였다. 이때 1보는 6척이므로 철반 이상의 높이가 42척(尺), 이하는

183척(尺)이라고 하여 총 225척(尺)으로 밝히고 있다.

 

찰주본기(刹住本記) 872년. 남북국 시대 통일 신라.

 

 

한편 삼국사기에서는 “경문왕 13년(873년) 9월에 (기울어진) 탑의 개조가 완료되니, 9층으로 높이

는 22장(220尺)이었다”고 쓰고 있다.

 

삼국사기와 찰주본기의 기록을 비교해 볼때 삼국사기 보다는 찰주본기의 기록이 더욱 상세하므로

찰주본기의 기록을 따라 높이를 추정해 보자.

 

척(尺)은 과연 얼마의 길이일까?

척(尺)은 자라고도 하는데 자의 한자어가 척(尺)이다. 이 척(尺)은 손을 펴서 물건을 재는 형상의

상형문자로 최초에는 18cm정도로 추정된다. 이것이 차차 길어져서 漢나라 때는 약 23cm, 唐나라

때는 약 24.5cm정도 였다.

고려 및 조선시대 초기까지는 32.21cm를 1자로 했으나, 세종 12년의 개혁시에 31.22cm로 바꾸어

사용해 오다가 한말(1902년)에 일제의 곡척(曲尺)으로 바뀌면서 30.303 cm로 통용되었다.

한편 얼마전 경기 하남시 춘궁동 이성산성 안 저수지 터에서 7세기 신라인들이 쓰던 자의 하나인

당척(唐尺)이 발견되었는데, 길이는 29.8cm였다. 이것은 신라 석굴암 측량시 요네다가 결론내린 신

라 당척(唐尺)의 길이 29.7cm와도 일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통일신라 이후의 1척일뿐 통일 신라 이전에는 고구려척(高句麗尺)이 사용되었다.

고구려척(高句麗尺)은 고대에 사용되었던 척(尺)중 가장 긴 장척(長尺)으로 고구려척(高句麗尺) 1

척(尺)은 1.176곡척(35.6328cm)이었다. 이 고구려척(高句麗尺)은 신라와 백제·일본에 전해져 백제

의 미륵사지, 신라의 황룡사지, 일본의 호오류사(飛鳥寺) 등이 고구려척(高句麗尺)으로 만들어지

며, 삼국통일후 당척(唐尺)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이렇게 각 시대마다 척(尺)의 길이가 다르므로 황룡사 목탑의 높이를 계산할 때는 그 당시의 길이

를 사용해야 한다. 따라서 신라시대의 고구려척(高句麗尺)인 1척=35.6328cm을 사용해 높이를 계산

하면,

 

철반이상 42척 × 35.6328cm = 14.97m

철반이하 183척 × 35.6328cm = 65.21m

∴ 황룡사 목탑의 총 높이 = 80.18m이다.

 

본 건물의 높이가 65.21m이므로 각 층은 평균 약 7.25m이다. 각 층이, 7m의 높은 높이의 천장으로

만 구성한다면 80m에 이르는 높은 건물을 지탱하는 것은 목재 건물에서는 아마 상당한 무리가 있

었을 것이다.

 

따라서 각 층에서 지붕의 기와를 얹은 곳은 새로운 층으로 설계하여 목조 구조를 지탱하는 장치를

두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중국 산서성 응현 목탑의 구조인데, 응현 목탑은 밖에서 보면 5층이

지만 안에서 보면 각 층마다 암층이 있어 내부에서는 9층의 구조를 가진다. 이를 暗9층이라고 한다.

황룡사 목탑도 이러한 구조를 가진 것으로 본다.

 

경주 남산의 마애구층탑

 

 

 

아래 금동탑을 보고 생각이 나서 올려봅니다.


黄竜寺 9階木塔


新羅サンボ(三宝)の一つで, 三国有史によれば 643年(宣徳女王 12) 唐で留学を終えて帰国

一磁場(慈蔵)の要請で乾燥したと言う. しかし 645年(宣徳女王 14) 初めて建築を始めて彼

日 4月 8日にチァルズを立てて翌年完工したという説もあるのに, これは黄竜寺九層塔誌シムチォソック(心礎

石) 中で盗掘されたシンラファングリョングサチァルズボンギ(新羅皇竜寺刹柱本記)から始めたのだ.

九個の階は皆新羅辺方の国々を示したし塔を建てることで隣りの侵害を押すことができる

すべてで言う. この塔は建立された後 50年がすぎた 698年(酵素王 7) かみなりを迎え燃えた以来何回も重水

になって雄大壮厳な姿を維持して来たが 1238年(高麗高宗 25) モンゴルの兵禍(兵火)で伽藍全体がブルタボ

リョその後では重水され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開城不一四肢石塔で発見された 9階金銅塔と黄竜寺 9階木塔模型

 

 

 

チァルズボンギ(刹住本記)によれば黄竜寺 9階木塔は鉄盤(鉄盤) 7見えて, その下が 30補 3尺(鉄盤己

上高七己下高?歩三尺)と言った. この時 1見る 6尺なので鉄盤以上の高さが 42尺(尺), これする

183尺(尺)と言って総 225尺(尺)で明らかにしている.

 

チァルズボンギ(刹住本記) 872年. 南北国時代統一新羅.

 

 

一方三国史記では “経文王 13年(873年) 9月に (傾いた) 塔の改造が完了したら, 9階で高さ

は 22枚(220尺)だった”と書いている.

 

三国史記とチァルズボンギの記録を比べて見る時三国史記よりはチァルズボンギの記録がもっと詳細なので

チァルズボンギの記録に付いて高さを推正して見よう.

 

尺(尺)は果していくらの長さだろう?

尺(尺)は者とも言うのに者の漢字語が尺(尺)だ. この尺(尺)は手を伸ばして品物をはかる形象の

象形文字で最初には 18cm程度に推定される. これがだんだん長くなって 漢国の時は約 23cm, 唐国

焚く約 24.5cm程度であった.

高麗及び朝鮮時代初期までは 32.21cmを 1字にしたが, 世宗 12年の改革の時に 31.22cmに変えて

使って来ている途中述べた言葉(1902年)に日製の曲尺(曲尺)に変わりながら 30.303 cmで通用した.

一方この間京幾河南市春宮洞理性酸性の中貯水池ところにで 7世紀新羅人たちが使った自分の考えひとつの

ダングチォック(唐尺)が発見されたが, 長さは 29.8cmだった. これは新羅石窟庵測量の時ヨネにギョルロンネリン神さま

だとダングチォック(唐尺)の長さ 29.7cmとも一致するのだ.

 

しかしこれは統一新羅以後の 1尺のみ統一新羅移転にはゴグリョチォック(高句麗尺)が使われた.

ゴグリョチォック(高句麗尺)は古代に使われた尺(尺)中一番長い丈尺(長尺)でゴグリョチォック(高句麗尺) 1

尺(尺)は 1.176曲尺(35.6328cm)だった. このゴグリョチォック(高句麗尺)は新羅と百済・日本に伝わって百済

の彌箇寺地, 新羅の黄竜寺地, 日本の好悪類社(飛鳥寺) などがゴグリョチォック(高句麗尺)で万たち語だ

と, 三国統一の後ダングチォック(唐尺)を受け入れる前までずっと使われた.

 

こんなに各時代ごとに尺(尺)の長さが違うので黄竜寺木塔の高さを計算する時はその頃の長さ

を使わなければならない. したがって新羅時代のゴグリョチォック(高句麗尺)である 1尺=35.6328cmを使って高さを計算

すれば,

 

鉄盤以上 42尺 × 35.6328cm = 14.97m

鉄盤以下 183尺 × 35.6328cm = 65.21m

∴ 黄竜寺木塔のすべて高さ = 80.18mだ.

 

本建物の高さが 65.21mなので各階は平均約 7.25mだ. 各階が, 7mの高い高さの天井で

さえ構成したら 80mに至る高い建物を支えることは木材建物では多分相当な無理がイッ

オッをのだ.

 

したがって各階で屋根の瓦を上げた所は新しい階に設計して木造構造を支える装置を

置いたことと見える. これは中国山西省ウングヒョン木塔の構造なのに, ウングヒョン木塔は外から見れば 5階が

だが中で見れば各階ごとにアムツングがあって内部では 9階の構造を持つ. これを 暗9レイヤードだと言う.

黄竜寺木塔もこのような構造を持ったことで見る.

 

慶州南山の磨崖九層塔

 

 

 

下の金銅塔を見て思い出してあげて見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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