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1908年 9月 25日

 

ソウル鉱業株式会社社長ヘンリコルブランは証人で出頭しなかったが

アメリカ総領事の前で金鉱持分に投資された国債補償基金に関して述べた宣誓口述書を

その前日受けたと裁判長が  被告に言った

 

口述書

 

ヘンリコルブランは正式に宣誓して次のように証言こんにちはだった

彼はソウル鉱業会社社長なのにこの会社は  美合衆国コネティカット州によって組職されて存在して

韓国で業務を行う会社だと言った

1908年1月ベセルという人がコルブランに近付いて当時ベセルの処分下にあった韓国の国債

補償基金の一部を投資するのに関して相談した

1908年 1月 16日あるいは  その前後に受託者たちを代表してソウル鉱業株式会社の株式 125株を

買い入れる条件で  その代金 25.000ウォンに対する領収証を発行したしコルブランとスミスが

ここに署名したし 125注意株式予約がソウル鉱業株式会社予約者名簿に上げられたし 25.000原義

 

領収証はコルブと言う(のは)ボストウィク開発会社によって見た口述書に伝達して保管されてからベセルが

25.000ウォンを現金で支払い次第に彼に伝達するように  になった

スミスはコルブと言う(のは)会社のマネージャーです

 

口述書に証拠 Aに表示されて添付される

 

その後 1908年 2月3日ベセルはソウル鉱業会社を代表した見た口述者に 上記 ソウル鉱業株式会社 125株

予約代金全額で 25.000ウォンを支払ったしそこで 1908年 1月 16日付けになった領収証を

本口述自家ベセルに伝達した

 

 

 

口述者はまたコルブと言う(のは)ボストウィク開発会社が国債補償支援金総合所の口座で受け付けた預金総額は

42.978.67ウォンだが 3万ウォン小切手1枚が引き出しされて支払いされたから

現在コルブと言う(のは)ボストウィク会社に 同基金口座に残っているエグムエックは 12.978.67ウォンでありなさいと述べた

 

証拠添付

一金 25.000ウォン

私たちはここに 日貨25.000ウォンを韓国国債補償支援金受託者たちから正に領袖したし

が金額に対して私たちは 美合衆国コネティカット州 ハートフォード素材ソウル鉱業会社の完全払いこみされた株式

125株を [1株当たり 美貨 1百ドル ]アメリカから到着し次第に受託者たちに導くことに

同意する

コルブと言う(のは)ボストウィク開発会社

証人 H.E コルブと言う(のは)マネージャー J.F スミス

 

nisiokatuyosi

ベッセルさんは対話によって上海銀行仁川代理店に 30.000円を振り込みました当日 25.000を取り出して

コルブと言う(のは)ボストウィクの金鉱山主の予約金で消費してしまいました

 

が状態が

自ら消費したことは株式 25.000ウォンと自宅建築 5.000ウォン

自宅建築は 1907年 9月から 3月の間そうだとする状況

.....................................................................

 

 

証拠添付資料で言う受託者たちは[ 梁起鐸尹雄烈バックヨングギュ]です

 

1908年 9月 15日梁起鐸公判で

 

 

検事——25.000ウォンを金鉱持分に投資した後残った 5.000ウォンは  どうなったのか?

 

ベセル——-マルタンに貸してくれた

 

ベセルの自宅建築件は統監府文書によると

 

統監府文書

1908年 7月 20日

国債補償金消費事件の調査報告 [件]

前記 募集金額の中で 2万 5千ウォンでコルブランを通じてアメリカハードフィールド京城金鉱株式会社の株券を

買い入れたがベセルの名医なのか役員の名医なのかまだ判明されなかった

またベセルが 5.000ウォンを直接素地と   あると  する 5.000ウォンは 同人の家屋修繕に

消費したという報告があって調査の中だ

 

ベセルの家屋修繕は推測性発言で証拠はないと思います

裁判でも言及されていないです

 

 


헨리 콜브란의 선서 구술서

1908년 9월 25일

 

서울광업 주식회사 사장 헨리 콜브란은 증인으로 출두하지 않았지만

미국 총영사 앞에서 금광 지분에 투자된 국채보상 기금에 관해 진술한 선서 구술서를

그 전날 받았다고 재판장이  피고에게 말하였다

 

구술서

 

헨리 콜브란은 정식으로 선서하고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그는 서울 광업회사 사장인데 이 회사는  美합중국 코네티컷州에 의해 조직되어 존재하며

한국에서 업무를 행하는 회사라고 하였다

1908년1월 베델이라는 사람이 콜브란에게 접근하여 당시 베델의 처분下에 있던 한국의 국채

보상기금의 일부를 투자하는데 관해 상의하였다

1908년 1월 16일 혹은  그 전후에 수탁자들을 대표해서 서울광업 주식회사의 주식 125주를

매입하는 조건으로  그 대금 25.000원에 대한 영수증을 발행하였고 콜브란과 스미스가

이에 서명하였으며 125주의 주식예약이 서울광업 주식회사 예약자 명부에 올려졌고 25.000원의

영수증은 콜브란 보스트위크 개발회사에 의해 본 구술서에 전달되어 보관되었다가 베델이

25.000원을 현금으로 지불하는 대로 그에게 전달하도록  되었다

스미스는 콜브란 회사의 지배인 입니다

 

구술서에 증거 A로 표시되어 첨부된다

 

그 후 1908년 2월3일 베델은 서울 광업회사를 대표한 본 구술자에게 上記 서울 광업주식회사 125주

예약 대금 전액으로 25.000원을 지불하였고 거기에서 1908년 1월 16일자로 된 영수증을

본 구술자가 베델에게 전달하였다

 

 

 

구술자는 또 콜브란 보스트위크 개발회사가 국채보상 지원금 총합소의 구좌로 접수한 예금총액은

42.978.67원이지만 3만원 짜리 수표1장이 인출되어 지불되었기 때문에

현재 콜브란 보스트위크 회사에 同기금 구좌에 남아 있는 에금액은 12.978.67원 이라고 진술하였다

 

증거 첨부

일금 25.000원

우리는 여기 日貨25.000원을 한국 국채 보상 지원금 수탁자들로 부터 정히 영수했으며

이 금액에 대해 우리는 美합중국 코네티컷州 하트포드 소재 서울광업회사의 완전 불입된 주식

125주를 [1주당 美貨 1백달러 ]미국으로 부터 도착하는 대로 수탁자들에게 인도할 것에

동의한다

콜브란 보스트위크 개발회사

증인 H.E 콜브란 지배인 J.F 스미스

 

nisiokatuyosi

베셀씨는 대화에 따라 상하이 은행 인천 대리점에 30.000엔을 입금했습니다 당일 25.000을 꺼내

콜브란 보스트위크의 금광산주의 예약금으로 소비해 버렸습니다

 

이 상태가

스스로 소비한 것은 주식 25.000원과 자택 건축 5.000원

자택 건축은 1907년 9월 부터 3월 사이 그렇다고 하는 상황

.....................................................................

 

 

증거 첨부 자료에서 말하는 수탁자들은[ 양기탁 윤웅렬 박용규]입니다

 

1908년 9월 15일 양기탁 공판에서

 

검사 ----25.000원을 금광 지분에 투자한 후 남은 5.000원은  어떻게 되었는가?

 

베델-----마르탱에게 빌려 주었다

 

베델의 자택 건축 건은 통감부 문서에 의하면

 

통감부 문서

1908년 7월 20일

국채 보상금 소비 사건 조사 보고 [건]

前記 모집금액 중 2만 5천원으로 콜브란을 통해 미국 하드필드 경성 금광 주식회사의 주권을

매입하였는데 베델의 명의인지 임원의 명의인지 아직 판명되지 않았다

또 베델이 5.000원을 직접 소지하고   있다고  한다 5.000원은 同人의 가옥 수선에

소비했다는 보고가 있어 조사 중이다

 

베델의 가옥 수선은 추측성 발언으로 증거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재판으로도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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