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수렵 채취의 죠몬인과 벼농사를 지었던 야요이인으로 야요이 시대와 죠몬 시대를 구분 짓는 것은 일반적인 시각인 것 같다.
그런데 야요이인들이 어떻게 벼농사를 짓게 되었던 것일까?
라는 의문에 도달하면 일본인 학자들의 의견은 여러 갈래로 찢어진다.
인류학 민속학 고고학 문헌사학자 식물학자로 나뉘어 의견이 분분하지만 모든 것을 융합시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일본 학자들의 크나큰 맹점일 것이다.
狩猟採取の縄文人と稲作をした彌生人で彌生時代と縄文時代を区分することは一般的な視覚のaようだ
ところで彌生人たちがどんなに稲作をするようになったことだろう?
という疑問に到逹すれば日本人学者たちの意見は多くの分岐点で破れる.
人類学民俗学考古学文献史学者植物学者で分けられて意見がまちまちだがすべてのものを融合させて思うことができないのが日本学者たちの大きい盲点であるでしょう.

벼농사를 짓는 주체는 인간이며 그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 주거방식, 종교등 모든 것이 일목요연하게 설명되어야 한다.
도구는 고대 한국 주거는 중국 종교는 남방이라는 식으로 본연을 흐려 버리면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다.
稲作をする主体は人間でその人間が使う道具, 住居方式, 宗教等すべてのものが一目瞭然するように説明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
道具は古代韓国,住居は中国,宗教は南方というふうに本然を濁ごしてしまえば説明が不可能なのだ.

구석기 시대의 유물을 조작했던 사례를 보면서 일본에서는 고대사의 부족한 부분을 학문이라는 포장을 덧씌워 기원을 거슬러 올려 주변국과 비슷한 환경을 조성하는데 힘쓰는 모습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세계 일류국가 국민으로서 고대사의 초라한 역사를 뿌리로 가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다.
旧石器時代の遺物を操作した事例を見ながら日本では古代史の不足な部分を学問という包装をさらにかぶせて起源を逆ってあげて周辺国と似ている環境を造成するのに力をつくす姿にすぎるほど集中しているということを感じた.
世界一流国家国民として古代史の見窄らしい歴史を根で持つことを恥ずかしくここはのだ.

일본에서는 죠몬 야요이 고분 그 다음에 역사시대로 진입을 시도한다.
日本では縄文彌生古墳その次に歴史時代に進入を試みる.

wiki에 의하면
弥生土器
1884 年(明治17年)3月2日、東京府本郷区向ヶ岡弥生町(現東京都文京区弥生)の向ヶ岡貝塚で貝や縄文土器とともに口縁を除いてほぼ完形の壺が出土した。 発見者は、学士院会員・海軍中将造兵総監有坂鉊蔵、理学博士・坪井正五郎、白井光太郎。 発見地については、1889年(明治22年)坪井正五郎が『東洋学芸誌』に報告し、1923年(大正12)に発見者の有坂鉊蔵が記録を残している。向ヶ丘貝塚の正確な位置については長い間不明であったが、東京大学文学部考古学研究室が、本郷キャンパスの一角、工学部9号館の近くで遺構の一部を確認し [1]、その周辺であることがほぼ確定的となった。1974年、東京大学構内で弥生土器が発見され、翌年発掘調査が行われた。その区域から環濠と考えられるV字形の溝が検出された。この調査地点が、弥生の壺の発見者である有坂鉊蔵の向ヶ丘貝塚の記述と合致し、弥生の壺発見場所はV字形環濠のうちのどこかであった可能性が高い。同遺跡は「弥生二丁目遺跡」という名称で史跡指定されている。
1884년(메이지 17년) 3월 2일, 東京府本郷区向ヶ岡弥生町(現東京都文京区弥生)의 向ヶ岡貝塚에서 조개나 죠몽 토기와 함께 구연을 제외하고 거의 완형의 항아리가 출토했다. 발견자는, 학술원 회원・해군 중장 造兵総監有坂鉊蔵, 이학 박사・坪井正五郎、白井光太郎. 발견지에 대해서는, 1889년(메이지 22년) 坪井正五郎가 「동양학예지」에 보고해, 1923년(타이쇼 12)에 발견자의 有坂鉊蔵가 기록을 남기고 있다.向ヶ丘貝塚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불명했지만 , 도쿄대학 문학부 고고학 연구실이, 本郷 캠퍼스의 일각, 공학부 9호관의 근처에서 옛날 건축의 잔존물의 일부를 확인해, 그 주변인 것이 거의 확정적이 되었다.1974년, 도쿄대학 구내에서 야요이 토기가 발견되어 다음 해 발굴 조사를 했다.그 구역으로부터 환호라고 생각할 수 있는 V자형의 도랑이 검출되었다.이 조사 지점이, 야요이의 항아리의 발견자인 有坂鉊蔵의 向ヶ丘貝塚의 기술과 합치해, 야요이의 항아리 발견 장소는 V자형환호 중 어디선가 있던 가능성이 높다.동유적은 「弥生二丁目遺跡」이라고 하는 명칭으로 사적 지정되어 있다.

 

 

 

야요이 시대를 본격적으로 살펴 보기 전에 일본에서 행해지고 있는 야요이시대의 開始年代를 거슬러 올리려는 시도에 대해서 알아보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자.
彌生時代を本格的によく見る前に日本で行われている 弥生時代の 開始年代を逆ってあげようとする試みに対して調べてどんな問題があるのか調べよう. 

 

歴博発表資料「弥生時代の開始年代について」を巡って     小林滋
http://wwr2.ucom.ne.jp/hetoyc15/hitori/yayoijidai1.htm

  この5月19日に「国立歴史民俗博物館」(以下、「歴博」)によって発表されました研究結果は、例えば朝日新聞(注1)によれば、「弥生時代の始まりが、考古学の定説より500年さかのぼりそうだと、考古学界では戸惑いが広がった。研究結果が事実なら、古代史の枠組みを大きく修正せざるを得ないからだ」というわけで、かなりのセンセーションを考古学界のみならず一般人の間にも引き起こしました。
 올 5월 19일에 「국립 역사 민속 박물관」(이하,「력박」)에 의해서 발표되었던 연구 결과는, 예를 들면 아사히 신문(주 1)에 의하면, 「야요이 시대의 시작이, 고고학의 정설보다 500년 거슬러 올라갈 것 같다면, 고고학계에서는 당황스러움이 퍼졌다.연구 결과가 사실이라면, 고대사의 골조를 크게 수정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것으로, 상당한 센세이션을 고고학계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사이에도 일으켰습니다.
  ですが、この研究結果は、これまで公開されている僅かな情報だけからすれば、いわれるような驚天動地のものではなく、むしろ様々の(それも大きな)問題点を抱え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考えられます。そこで、以下においては、「歴博」のホームページに掲載されております発表資料(注2)を、そうした観点に立ちながらヤヤ詳しく検討してみたいと思います。これまで(03.6.7時点)、本稿に述べるような具体的な指摘をされる研究者が管見には入っておらず、こうしたあり方だとマスコミの力で学説の成否を決めるということにもなりかねないという危惧もあるからです。
  그렇지만, 이 연구 결과는, 지금까지 공개되고 있는 얼마 안되는 정보만으로부터 하면, 듣는 것처럼 하늘이 놀라고 땅이 움직임의 것이 아니고, 오히려 다양한(그것도 큰)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거기서, 이하에 대해서는, 「력박」의 홈 페이지에 게재되고 있는 발표 자료(주 2)를, 그러한 관점에 서면서 한층 더 자세하게 검토해 보고 싶습니다.지금까지(03.6. 7 시점), 본고에 말하는 구체적인 지적을 하시는 연구자가 좁은 식견에는 들어가지 않고, 이러한 본연의 자세라면 매스컴의 힘으로 학설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것에도 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위구심도 있기 때문입니다.
  (注1) 2003年5月20日付35面。
  (注2) http://www.rekihaku.ac.jp/kenkyuu/news/index.htm#zu1

(注8) 本年5月24日付読売新聞には、「旧石器捏造問題の検証を続けていた日本考古学協会は、東北旧石器文化研究所の藤村新一前副理事長が関与した遺跡の採集・発掘資料について、すべて捏造と断定した。24日の総会で最終報告として発表する」との記事があります。
  多少の勘ぐりかもしれませんが、歴博の記者会見の日が「5月19日」とされたのも、「5月24日」の日本考古学協会による発表以前に行わなければ捏造事件との関連性を質されてしまう懼れがあると判断したからではないでしょうか?そうでなければ、なぜ通常考えられる手順に従って日本考古学協会で研究成果を発表したアトに記者会見を行わなかったのでしょうか?
(주 8) 올해 5월 24 일자 요미우리 신문에는, 「구석기 날조 문제의 검증을 계속하고 있던 일본 고고학 협회는, 토호쿠 구석기 문화 연구소의 藤村新一전부이사장이 관여한 유적의 채집・발굴 자료에 대해서, 모두 날조라고 단정했다.24일의 총회에서 최종보고로서 발표한다」라고의 기사가 있습니다.
  다소의 억측일런지 모르겠지만, 력박의 기자 회견의 날이 「5월 1 9일」이라고 여겨졌던 것도, 「5월 24일」의 일본 고고학 협회에 의한 발표 이전에 실시하지 않으면 날조 사건과의 관련성을 물어져 버리는 두려움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는 아닐까요?그렇지 않으면, 왜 통상 생각할 수 있는 순서에 따라서 일본 고고학 협회에서 연구 성과를 발표한 아트에 기자 회견을 실시하지 않았을까요?

このように全体的に短い本文の中で、同じ事柄が繰り返し述べられています。例えば、
 a.「概要」の項において、「九州北部の弥生時代早期から弥生時代前期にかけての土器(夜臼Ⅱ式土器・板付Ⅰ式土器)に付着していた炭化物などの年代を、AMS法による炭素14年代測定法によって計測したところ、紀元前約900~800年ごろに集中する年代となった」。
 b.「研究の経過」の項において、「これまで得られた30点以上の試料の年代データを分析し、弥生時代前期初頭の年代として紀元前800年前後(誤差30年程度)という数値を得た」。
 c.「測定結果」の項において、「夜臼Ⅱ式、板付Ⅰ式の土器に付着したスス・コゲから得られた年代は、夜臼Ⅱ式が前900~750年の間に95%、板付Ⅰ 式を前800年ごろに95%の確率で絞り込むことができる。このように、九州北部の弥生時代早期から弥生時代前期にかけての夜臼Ⅱ式土器・板付Ⅰ式土器に代表される試料11点のうち、10点が紀元前約800年をはさむ年代に集中する結果となった」。
 d.「炭素14年代にもとづく弥生時代の開始年代」の項において、「夜臼Ⅱa式が前9世紀末頃、夜臼Ⅱb式・板付Ⅰ式が前8世紀初め頃となっている。…すなわち、北部九州の弥生早期は少なくとも前9世紀、弥生前期は前8世紀までさかのぼる可能性がつよくなってきた」。
이와 같이 전체적으로 짧은 본문 중(안)에서, 같은 일을 되풀이하여 말할 수 있고 있습니다.예를 들면,
  a.「개요」의 항에 대하고, 「큐슈 북부의 야요이 시대 조기부터 야요이 시대 전기에 걸친 토기(야구Ⅱ식 토기・板付Ⅰ식 토기)에 부착하고 있던 탄화물등의 연대를, AMS법에 따르는 탄소 14 연대 측정법에 따라 계측했는데, 기원 전 약 900~800년즈음에 집중하는 연대가 되었다」.
 b.「연구의 경과」의 항에 대하고, 「지금까지 얻을 수 있던 30점 이상의 시료의 연대 데이터를 분석해, 야요이 시대 전기 초두의 연대로서 기원 전 800 년 전후(오차 30년 정도)라고 하는 수치를 얻었다」.
  c.「측정 결과」의 항에 대하고, 「야구Ⅱ식, 板付Ⅰ식의 토기에 부착한 검댕・누룽지로부터 얻을 수 있던 연대는, 야구Ⅱ식이 전 900~750년간에95%, 이타즈케Ⅰ식을 전 800년즈음에95%의 확률로 좁힐 수 있「측정 결과」의 항에 대하고, 「야구Ⅱ식, 板付Ⅰ식의 토기에 부착한 검댕・누룽지로부터 얻을 수 있던 연대는, 야구Ⅱ식이 전 900~750년간에95%, 板付Ⅰ식을 전 800년즈음에95%의 확률로 좁힐 수 있다.이와 같이, 큐슈 북부의 야요이 시대 조기부터 야요이 시대 전기에 걸친 야구Ⅱ식 토기・板付Ⅰ식 토기로 대표되는 시료 11점 가운데, 10점이 기원 전 약 800년을 끼우는 연대에 집중하는 결과가 되었다」.
  d.「탄소 14년대에 의거하는 야요이 시대의 개시 연대」의 항에 대하고, 「야구Ⅱa식이 전 9 세기말무렵, 야구Ⅱb식・板付Ⅰ식이 전 8 세기 초 무렵이 되고 있다.…즉, 북부 큐슈의 3월 조기는 적어도 전 9 세기, 야요이 전기는 전 8 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이 강해졌다」. 

 

국립역사민속박물관에서 야요이 시대를 600년 이상 거슬러 올리려는 시도에 대해 국립역사민속박물관의 발표 내용의 허구를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지만 사실 이런 내용은 논쟁만 가중시킬 뿐 결정적으로 허구를 파묻을 내용은 아니다.
과학적 연구에 대한 허구성이 지적되고 있지만 이것을 무시하고 역사를 거슬러 올려 보려는 시도는 다음과 같은 실질적 연구 성과 앞에서는 사상누각이 되어 버린다.
国立歴史民俗博物館で弥生時代を 600年以上逆ってあげようとする試みに対して国立歴史民俗博物館の発表内容の虚構を条目別に指摘しているが実はこういう内容は論争だけ加重させるだけ決定的に虚構を埋める内容ではない.
科学的研究に対する虚構性が指摘されているもののこれを無視して歴史を逆ってあげて見ようとする試みは次のような実質的研究成果の前では砂上の樓閣になってしまう. 

 


歴博(国立歴史民俗博物館)・炭素14年による弥生年代遡上論の問題点
http://yamatai.cside.com/katudou/kiroku276.htm

 

上図は2004年に報告された対雁2遺跡のデータであるが、たとえば、資料Beta-186241と資料Beta-186229(○印)は、同一生活面の資料であるにもかかわらず土器付着炭化物のほうが640年も古くでる。
また、Beta186242とBeta-186231(△印)も同一生活面の資料だが、土器付着炭化物のほうが、600年古く出ている。
他の遺跡でも同様な観測データが得られている。
たとえば、千歳市のチプニー2遺跡では、炭化物と擦文土器付着物とのあいだに、650年の差が生じているし、根室市穂香竪穴群では340年の違いが現れている。
いずれも土器付着物のほうが古く出る。
좌도는 2004년에 보고된 対雁2遺跡의 데이터이지만, 예를 들어, 자료 Beta-186241으로 자료 Beta-186229(○표)는, 동일 생활면의 자료인 것에도 불구하고 토기 부착 탄화물 쪽이 640년이나 낡게 나온다.
또, Beta186242와 Beta-186231(△표)도 동일 생활면의 자료이지만, 토기 부착 탄화물 쪽이, 600년 낡게 나와 있다.
다른 유적에서도 동일한 관측 데이터가 얻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千歳市의 치프니 2 유적에서는, 탄화물과 철기시대 초기의 토기 부착물과의 사이에, 650 나이차가 생기고 있고, 根室市穂香竪穴群에서는 340년의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모두 토기 부착물 쪽이 낡게 나온다.


彌生時代 - 祈願

狩猟採取の縄文人と稲作をした彌生人で彌生時代と縄文時代を仕分け作ることは一般的な視覚のaようだ.
ところで彌生人たちがどんなに稲作をするようになったことだろう?
という疑問に到逹すれば日本人学者たちの意見は多くの分岐点で破れる.
人類学民俗学考古学文献史学者植物学者で分けられて意見がまちまちだがすべてのものを融合させて思うことができないのが日本学者たちの大きい盲点であるでしょ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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