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弥生時代 - 住居

도래인이 어디에서 왔을까? 하는 의문은 "도래인이 어떤 생활을 했으며 그런 생활을 영위한 곳은 어디에 있나" 라고 하는 지극히 당연한 답으로 부터 풀릴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일본인 학자들은 대륙을 거쳐 한반도를 지나 북큐슈에 도달했다라고 주장한다.
인류의 발원지가 아프리카 이므로 아프리카를 포함시키면 지극히 상식적인 초등학생도 받아 들이기 쉽지만 이들이 대륙이라는 글자를 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到来人がどこから来ただろうか? する疑問は "到来人がどんな生活をしたしそんな生活を営んだ所はどこにあるか" と言う極めて当たり答から解け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
多くの日本人学者たちは大陸を経って朝鮮半島を通って北九州に到逹したと主張する.
人類の発源地がアフリカであるのでアフリカを含ませれば極めて常識的に誰でも受け入れやすいがこれらが大陸という字を抜くことができない理由は何だろう?

중국으로 부터 직접 도래를 주장하고 싶다면 당시 중국의 주거 형식이 일본에서 출토되는 것을 소개하면 좋겠지만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도래인의 의식주 중에서 파악 가능한 주거의 형태가 도래인의 성격을 대변할 것이다.
고대 한국으로 부터 많은 도래인이 일본으로 건너 갔겠지만 특정지역의 주거 형식이 일본에서 널리 발견되고 있다.

http://blog.naver.com/marich77/40189440389
야요이시대-환호에서 중국형 환호라는 곳에서 중국형 주거형식이 나올까? 아니면 한국형 주거형식이 출토될까?
彌生時代-環濠で中国型環濠という所で中国型住居形式が出ようか? それとも韓国型住居形式が出土されるか?

오늘은 일본에 널리 분포된 송국리형 주거에 대해서 알아보자.
中国にから直接到来を主張したければ当時中国の住居形式が日本で出土されることを紹介すれば良いがそうなのが存在しなかったら到来人の衣食住の中で把握可能な住居の形態が到来人の性格を代弁するでしょう.
古代韓国から多い到来人が日本に渡ったが特定地域の住居形式が日本で広く発見されている.
今日は日本に広く分布された宋国利型住居に対して調べよう.
 

 

大地に刻まれた交流史 ~弥生時代の竪穴住居~     東憲章 ( 宮崎県教育庁文化財課 )
http://www.miten.jp/miten/modules/popnupblog/index.php?param=8-201004
こうした弥生時代の九州において、非常に特徴的な二つの竪穴住居が存在する。
 「松菊里(ショウキクリ)型住居」と「花弁状間仕切り住居」である。前者は、円形の平面プランで、床面中央部に土坑と2基の柱穴を持つことが特徴である。韓国の青銅器時代、初期稲作関連の遺跡として有名な「松菊里(ソングンニ)遺跡」で多く発見され、命名された。この松菊里型住居は、佐賀県や福岡県など玄界灘沿岸の北部九州地域を中心に、弥生時代前期の初期稲作関連遺跡で発見されている。このことは、我が国の初期稲作は、大陸から朝鮮半島経由で伝播したことの傍証となっている。そして、この松菊里型住居は、高鍋町持田中尾遺跡や都城市肱穴遺跡など、本県でも発見されている。
 後者は、弥生時代後期の南九州に分布する特徴的な竪穴住居である。平面形が円形や方形に掘り込まれた竪穴住居の壁の一部が内側に向かって張り出し、住居内の空間を仕切っている。その全体平面形が、花が開いたように見えることから「花弁状間仕切り住居」と呼ばれている。床面の中央に土坑や2基の柱穴を持つものも見られることから、「松菊里型住居」が変容したものとする意見も見られる。
 従来、南九州のみに見られる局地的な住居形態と考えられてきたが、近年、熊本県・佐賀県・大分県などの中部・北部九州地域での発見が相次いで報告されている。また、時期的には、前期の所産である「松菊里型住居」と、後期の所産である「花弁状間仕切り住居」を繋ぐ前期末や中期のものであるとの指摘もあり、注目されている。
이러한 야요이 시대의 큐슈에 대하여, 매우 특징적인 두 개의 수혈 주거가 존재한다.
 「송국리형주거」와「꽃잎장간 구분 주거」이다.전자는, 원형의 평면 플랜으로, 마루의 면 중앙부에 토갱과 2기의 주혈을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한국의 청동기 시대, 초기 벼농사 관련의 유적으로서 유명한 「송국리 유적」에서 많이 발견되어 명명되었다.이 송국리형주거는, 佐賀県이나福岡県등 玄界灘沿岸의 북부 큐슈 지역을 중심으로, 야요이 시대 전기의 초기 벼농사 관련 유적에서 발견되고 있다.이것은, 우리 나라의 초기 벼농사는, 대륙에서 한반도 경유로 전파 한 것의 방증이 되고 있다.그리고, 이 송국리형주거는, 高鍋町持田中尾遺跡이나 都城市肱穴遺跡등, 宮崎현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후자는, 야요이 시대 후기의 미나미큐슈에 분포하는 특징적인 수혈 주거이다.평면형이 원형이나 방형에 판 수혈 주거의 벽의 일부가 안쪽으로 향해 내다 붙여, 주거내의 공간을 나누고 있다.그 전체 평면형이, 꽃이 벌어진 것처럼 보이는 것부터 「꽃잎장간 구분 주거」라고 불리고 있다.마루의 면의 중앙에 토갱이나 2기의 주혈을 가지는 것도 볼 수 있는 것부터, 「송국리형주거」가 변용한 것으로 하는 의견도 보여진다.
 종래, 미나미큐슈에만 볼 수 있는 국지적인 주거 형태라고 생각할 수 있어 왔지만, 근년, 구마모토현・사가현・오이타현등의 중부・북부 큐슈 지역에서의 발견이 연달아 보고되고 있다.또, 시기적으로는, 전기의 소산인 「송국리형주거」라고, 후기의 소산인 「꽃잎장간 구분 주거」를 연결하는 전기말이나 중기의 것이다라는 지적도 있어, 주목받고 있다.
 

 

 

弥生時代の住居は、縄文時代の晩期に朝鮮半島からもたらされた「松菊里型住居」と縄文住居の重層として展開する。「松菊里型住居」が最初に発見されたのは、1968年のことである。韓国忠清南道の休岩里遺跡でみつかった住居跡は、円形平面の中央に大きな楕円形ピットをもち、左右対称の位置に2本の主柱穴が掘られていた。この特異な住居平面が発掘当初から注目されていたとすれば、「休岩里型住居」という呼称が与えられて然るべきであった。しかし、休岩里遺跡の報告書は1990年になってようやく刊行されたため、1975年から調査が始まった同じ忠清南道の松菊里遺跡での発見例が先行して有名になってしまったという経緯がある。それを学術用語として、最初に論文で使用したのは日本人の中間研二[1987]であった。中間は、「松菊里型住居」を朝鮮半島無文土器(青銅器)時代中期の住居としている。日本の縄文時代晩期から弥生時代中期にほぼ併行する時代である。
야요이 시대의 주거는, 죠몽 시대의 만기에 한반도로부터도 전해진 「송국리형주거」라고 죠몽 주거의 중층으로서 전개한다.「송국리형주거」가 최초로 발견된 것은, 1968년의 일로이다.한국 충청남도의 휴암리유적에서 발견된 주거자취는, 원형 평면의 중앙에 큰 타원형 피트를 갖고, 좌우 대칭의 위치에 2개의 본 기둥구멍이 파지고 있었다.이 특이한 주거 평면이 발굴 당초부터 주목받고 있었다고 하면, 「휴암리형주거」라고 하는 호칭이 주어져 그에 적합한에서 만났다.그러나, 휴암리유적의 보고서는 1990년이 되어 간신히 간행되었기 때문에, 1975년부터 조사가 시작된 같은 충청남도의 송국리유적에서의 발견예가 선행해 유명하게 되어 버렸다고 하는 경위가 있다.그것을 학술 용어로서 최초로 논문으로 사용한 것은 일본인의 中間研二[1987]이었다.中間은, 「송국리형주거」를 한반도 무문 토기(청동기) 시대 중기의 주거로 하고 있다.일본의 죠몽 시대 만기부터 야요이 시대 중기에 거의 병행 하는 시대이다.

松菊里型の住居
松菊里型住居は、朝鮮半島の松菊里遺跡でみられた、円形の竪穴住居の一種です。床中央に大きな穴を持ち、それに付随して小さな柱穴が相対する位置にほられています。松菊里型住居は、日本では北部九州地方などでみられ、朝日遺跡では、弥生時代中期前半ころの松菊里型住居が2軒みつかっています。
SA126 は直径約7.6mの竪穴住居で、周溝を全周させています。床面には炭化物の他、赤色顔料が濃密に散布していました。床の中央には、両側に2つの柱穴を持つ穴があり、その中に焼土や炭化物が残っていました。また貯蔵穴には床面同様、赤色顔料が流れ込んでおり、内部から焼土、炭化物、管状骨製品をはじめとする獣魚骨がみつかっています。
61H・SB45も直径7.3mとほぼ同様の規模です。中央に小穴を伴う大きな穴を有し、6本の柱穴を持っています。
송 국리형주거는, 한반도의 송국리유적에서 볼 수 있던, 원형의 수혈 주거의 일종입니다.마루 중앙에 큰 구멍을 가져, 거기에 부수 해 작은 주혈이 대립되는 위치에 뚫려져 있습니다.송국리형주거는, 일본에서는 북부 큐슈 지방등에서 볼 수 있고 朝日유적에서는, 야요이 시대 중기 전반무렵의 송국리형주거가 2채 발견되고 있습니다.
SA126는 직경 약 7.6 m의 수혈 주거에서, 주구를 사방 시키고 있습니다.마루의 면에는 탄화물의 외, 적색 안료가 농밀하게 살포하고 있었습니다.마루의 중앙에는, 양측으로 2개의 주혈을 가지는 구멍이 있어, 그 중에 토양을 태우는 일이나 탄화물이 남아 있었습니다.또 저장구멍에는 마루의 면 같이, 적색 안료가 흘러들고 있어 내부로부터 토양을 태우는 일, 탄화물, 관 모양 골제품을 시작으로 하는 수어골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61 H・SB45도 직경 7.3 m와 거의 같은 규모입니다.중앙에 작은 구멍을 수반하는 큰 구멍을 가져, 6개의 주혈을 가지고 있습니다.

松菊里型(系)竪穴住居
 松菊里型(系)竪穴住居は 1985年に忠清南道松菊里遺跡において見つかった円形間取り竪穴住居を標識タイプとして中間研志氏に
よって提唱されました。その特徴は竪穴床面中央にある中央土坑(ピット)とその土坑両端(脇)に各1つの柱穴があることで、日本においては弥生時代の円形間取り竪穴住居のことを主にいっています。近年大韓民国考古学者により柱穴のあり方などから朝鮮半島における地域性が指摘され、日本においても多様な形が見つかってきました。
 송국리형(계) 수혈 주거는 1985년에 충청남도송국리유적에 있어서 발견된 원형 배치 수혈 주거를 표지 타입으로서 中間研志씨에 의해서 제창되었습니다.그 특징은 수혈마루의 면 중앙에 있는 중앙토갱(피트)과 그 토갱양단에 각 1개의 주혈이 있는 것으로, 일본에 있어서는 야요이 시대의 원형 배치 수혈 주거를 주로 말하고 있습니다.근년 대한민국 고고학자에 의해 주혈의 본연의 자세등에서 한반도에 있어서의 지역성이 지적되어 일본에 있어도 다양한 형태가 발견되어 왔습니다. 

 


分布と変遷
 これまでの調査によれば、弥生時代開始期にあたる春秋戦国時代や前漢時代の中国大陸においては確認されておらず、無文土器時代
の朝鮮半島や弥生時代の西日本の限られた地域に多くみられます。日本においては、太平洋側では愛知県尾張地域や長野県西南部、
日本海側では新潟県や長野県長野市近辺が分布の東限になり、北海道や東北地方、関東地方では確認されていません。
左ページに示したのは弥生時代前期と中期前葉の松菊里型(系)竪穴住居が確認された遺跡の分布です。
日本においては弥生時代前期に九州地方から東海地方西部に広がり、方形・長方形間取りの竪穴住居から松菊里型(系)竪穴住居に
変化しております。弥生時代中期前葉にはさらに東の愛知県に広がりますが、北九州地方ではすでに長方形間取り竪穴住居への変化がみ
られ、日本海側の地域や長野県へはやや遅れて広がるようです。
  지금까지의 조사에 의하면, 야요이 시대 개시기에 해당하는 춘추전국시대나 전한시대의 중국 대륙에 있어서는 확인되지 않고, 무문 토기 시대의 한반도나 야요이 시대의 서일본이 한정된 지역에 많이 볼 수 있습니다.일본에 있어서는, 태평양측에서는 愛知県尾張地域이나 長野県西南部, 일본해측에서는 新潟県이나 長野県長野市부근이 분포의 동한이 되어, 홋카이도나 동북지방, 관동지방에서는 확인되고 있지 않습니다.
윗 그림에 나타낸 것은 야요이 시대 전기와 중기전엽의 송국리형(계) 수혈 주거가 확인된 유적의 분포입니다.
일 본에 있어서는 야요이 시대 전기에 큐슈 지방에서 동해 지방 서부에 퍼져, 방형・장방형 배치의 수혈 주거로부터 송국리형(계) 수혈 주거에 변화하고 있습니다.야요이 시대 중기전엽에는 한층 더 동쪽의 愛知県에 퍼집니다만, 키타큐슈 지방에서는 벌써 장방형 배치 수혈 주거에의 변화가 보여 일본해측의 지역이나 長野県에는 약간 지각해 퍼지는 것 같습니다.

起源
 松菊里型(系)竪穴住居の起源は中間氏が大韓民国にある遺跡名をつけているように、朝鮮半島にその起源があると考えられています。朝鮮半島で無文土器時代前期の忠清南道休岩里遺跡のものが最も古く、日本には朝鮮半島系の遺物が比較的多く見られる遺跡において多く見つかっていることが根拠です。しかし日本においても縄文時代晩期後半の福岡県松丸D遺跡においてすでに見られ、あまり時間
差なく伝わったようです。
 송국리형(계) 수혈 주거의 기원은 中間씨가 대한민국에 있는 유적명을 적고 있듯이, 한반도에 그 기원이 있다고 생각되고 있습니다.한반도에서 무문 토기 시대 전기의 충청남도휴암리유적의 것이 가장 낡고, 일본에는 한반도계의 유물이 비교적 많이 볼 수 있는 유적에 있어 많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 근거입니다.그러나 일본에 있어도 죠몽 시대 만기 후반의 후쿠오카현 마츠마루D유적에 있어 벌써 볼 수 있어 별로 시간차이 없게 전해진 것 같습니다.

終末
 松菊里型(系)竪穴住居の終末は、九州地方、四国西部地方、東海地方以東の地域では弥生時代中期後葉には方形・長方形間取り竪
穴住居に戻りますが、中国地方、近畿地方では弥生時代終末期(一部の地域では古墳時代前期)まで根強く営まれます。
  송국리형(계) 수혈 주거의 종말은, 큐슈 지방,四国서부 지방, 東海 지방 이동의 지역에서는 야요이 시대 중기 후손에게는 방형・장방형 배치 수혈 주거로 돌아옵니다만, 츄고쿠 지방, 킨키 지방에서는 야요이 시대 종말기(일부의 지역에서는 고분 시대 전기)까지 뿌리 깊게 영위됩니다.

問題点
 この松菊里型(系)竪穴住居が大韓民国・日本国両国の考古学者に注目されるのは何故でしょうか。私どもも含めて、このカタチの竪
穴住居が分布やその営まれる時期などから、朝鮮半島・日本における農耕文化の開始と極めて関連の深い現象と考えられているからに他
なりません。また松菊里型(系)竪穴住居のカタチが朝鮮半島や日本のそれまでの竪穴住居に比べて明らかに異なる特徴をもつことも大
きな要因と思われます。 それでは松菊里型(系)竪穴住居がどうして朝鮮半島や西日本の地域に広がったのでしょうか。もちろんその理由には稲作技術や金属器利用といったより大きな背景があるように思われますが、あくまでその主たる要因は当時の建築技術や建築伝統の中に存在し、この時代の竪穴住居は竪穴住居の中で変化すると思っています。そこで注目されるのは第1の特徴としてあげた中央土坑とその両端(脇)にある柱穴の存在です。松菊里型提唱者の中間氏は当初の松菊里型(系)竪穴住居には、中央土坑の底などに平坦な石などが置かれているものがあることと土坑の両脇にある柱穴の存在から、杵などによる穀類などの脱穀などの作業を想定されているようです。また中央土坑の周りで比較的石器製作の痕と思われる石器の未製品や石くずが発見されることから中央土坑には石器製作のための土坑としての役割も想定されています。
 이 송국리형(계) 수혈 주거가 대한민국・일본 양국의 고고학자에 주목받는 것은 왜입니까.저희들도 포함하고, 이 모양의 수혈 주거가 분포나 그 영위되는 시기등에서, 한반도・일본에 있어서의 농경 문화의 개시와 지극히 관련의 깊은 현상이라고 생각되고 있기 때문인 것 이외에는 없습니다.또 송국리형(계) 수혈 주거의 모양이 한반도나 일본의 지금까지의 수혈 주거에 비해 분명하게 다른 특징을 가지는 것도 큰 요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송국리형(계) 수혈 주거가 어째서 한반도나 서일본의 지역에 퍼졌는지요.물론 그 이유에는 벼농사 기술이나 금속기 이용이라고 했던 것보다 큰 배경이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만, 어디까지나 그 주된 요인은 당시의 건축 기술이나 건축 전통안에 존재해, 이 시대의 수혈 주거는 수혈 주거안에서 변화한다고 생각합니다.거기서 주목받는 것은 제1의 특징으로서 준 중앙토갱과 그 양단(겨드랑이)에 있는 주혈의 존재입니다.송국리형제창자의 中間氏는 당초의송국리형(계) 수혈 주거에는, 중앙토갱의 바닥 등에 평탄한 돌등이 놓여져 있는 것이 있는 것으로 토갱의 양쪽 겨드랑이에 있는 주혈의 존재로부터, 저등에 의한 곡류등의 탈곡등의 작업이 상정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또 중앙토갱의 주위에서 비교적 석기 제작의 자국이라고 생각되는 석기의 미제품이나 돌쓰레기가 발견되는 것부터 중앙토갱에는 석기 제작을 위한 토갱으로서의 역할도 상정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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