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半島は寒冷地である為に日帝も、
茶を栽培する為に、相当苦労したようです。
以下は、それを物語る1926年3月当時の京城新聞の記事です。
韓国人は苦労して朝鮮に緑茶栽培を伝えた
日帝に感謝しましょう。
生れ出た製茶業
http://www.lib.kobe-u.ac.jp/das/jsp/ja/DetailView.jsp?LANG=JA&METAID=00717638京城日報 1926.3.28(大正15)
朝鮮-人は古来から茶を愛喫しない、ただ僅かに上流社会に見られるのみであったが、それも支那茶(中国茶)であって朝鮮内の生産の茶は少しも無かったのである。然るに日本人の移住が開始されてより、茶の需要が漸次増加するに至り、日本茶の移入を仰ぐのみならず、何度も栽培を試みたものであったけれども、いずれも皆失敗していたが、明治42年の交、井深和一郎なる人が全羅北道井邑郡山原面において静岡県産の種子を以て試培したところ見事に成功して以来、その地方一体の特産物と発展するに至り、1年前よりは朝鮮-人の栽培者も生ずるといった訳で、順調に普及が加速化したようだ。
(中略)
未だ生産額は微々たるもので、日本人技術者を必要とするのであるが、将来を有望視されている事は確かである
(中略)
移入茶は大部分が緑茶で玉露、煎茶、番茶、ホウジ茶、粉茶、抹茶を含むのであろうが猶内地産紅茶、及び台湾産の烏龍茶も少量(推定1万円)有るものと思われる。然してその外に朝鮮において消費せられる茶は紅茶、支那茶あり、支那茶は居留支那人の飲用する外、上流朝鮮-人間に需要ある事は前記の通りにして又、紅茶および烏龍茶は外国人間にコーヒ、ココアの代用として、支那人や鮮人の間には、支那茶の代用として又内地人間においても内地の緑茶、又はコーヒ、ココアの代用品として需用されるのである
(中略)
朝鮮への移入茶は静岡物が6割、山城物が3割、その他1割という割合で朝鮮から見て静岡と京都が最重要な事となる
(中略)
朝鮮における製茶業は、喫茶民族の人口増殖が考えられるのみならず朝鮮-人も近時、上流社会のみならず一般に愛喫されるようになって来た事は顕著なものであるから、今後、加速度の発展を見るべき事は予想されるが、しかし、それでも此、急増の需要を満たす訳には行かず、内地移入も一層増加すると見なければならぬ。同時に支那茶・紅茶の輸入も決して侮るべからざるに至る事は明白と言って差支えない
記事の画像
韓国の茶摘み風景
日本の茶摘み娘
한반도는 한랭지이기 위해 일제도,
차를 재배하기 위해, 상당히 고생한 것 같습니다.
이하는, 그것을 이야기하는 1926년 3월 당시의 경성 신문의 기사입니다.
한국인은 고생해 조선에 녹차 재배를 전했다
일제에 감사합시다.
태어나 나온 제차업
http://www.lib.kobe-u.ac.jp/das/jsp/ja/DetailView.jsp?LANG=JA&METAID=00717638경성 일보 1926.3.28(타이쇼 15)
(중략)
아직도 생산액은 미미한 것으로, 일본인 기술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장래를 유망시 되고 있는 일은 확실하다
(중략)
이입차는 대부분이 녹차로 옥로, 엽차, 엽차, 호 구더기차, 가루차, 가루차를 포함하는 것이든지 유내지산 홍차, 및 대만산의 우롱차도 소량(추정 1만엔)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별로 그 외에 조선에 있어 소비 다투어지는 차는 홍차, 시나차 있어, 시나차는 거류 시나인의 음용 하는 밖, 상류 조선-인간에게 수요 있다 일은 앞에서 본 대로로 해 또, 홍차 및 우롱차는 외국인 사이?`노코히, 코코아의 대용으로서 시나인이나 선인의 사이에는, 시나차의 대용으로서 또 내지 인간에 있어도 내지의 녹차, 또는 커피, 코코아의 대용품으로서 수용 되는 것이다
(중략)
조선에의 이입차는 시즈오카물이 6할, 산성물이 3할, 그 외 1 할이 말하는 비율로 조선에서 보고 시즈오카와 쿄토가 최대중요인 일이 된다
(중략)
조선에 있어서의 제차업은, 끽다 민족의 인구 증식을 생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사람도 최근, 상류 사회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애끽 되게 되어 온 일은 현저한 것이기 때문에, 향후, 가속도의 발전을 봐야 할 일은 예상되지만, 그러나, 그런데도 차, 급증의 수요를 채우는 것 가지 않고, 내지 이입도 한층 증가한다고 보지 않으면 되지 않다.동시에 시나차·홍차의 수입도 결코 경시하기에 이르는 일은 명백이라고 말해 지장이 없다
기사의 화상
한국의 차잎 따기 풍경
일본의 차잎 따기딸(아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