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o-mino.la.coocan.jp/page736.html
日本人研究者は三国史記新羅本紀にナックなので, なぜの大飢饉が起きた日を AD193ニョンロ認識して中国と連帯比較をしながら
研究がこれ以上これから進むことができませんね.
ところで中国側三国志では非Mihoが 200年代人で出たら変は変です.
しかしなぜの大飢饉事件は AD193年ではない, AD253年と言う言葉です.
伐休紀(ボルヒュギ) 10年, AD253年.
十年 六月 倭大饑 男女一千余口乞食来泊 命居南鄙閑地 賜食就業 是為倭圃 与作平斉名
10年(AD253年) 6月, 倭(なぜ)が 大饑饉(大飢饉)が入って, 男女 1千名余が 乞食(こじき)してお腹をつけて来たら, 命じて 南鄙(鍋)の 閑地(韓紙)に住むようにして, 食糧を与えて働き口を得るようにした. これが 倭圃(ウェポ)だ. 一緒に耕作して, 平等に頭どおり分けた.
*新羅本紀ボルヒュイサグム 10年, AD193年
十年 春正月甲寅朔 日有食之 三月 漢祇部女 一産四男一女 六月 倭人大饑 来求食者千余人
10年(193) 春 1月, 一日甲寅に和食があった. 3月, 韓祇部(寒気部)の女がいっぺんに息子四つと娘一人を生んだ. 6月, 倭人(倭人)が大きく飢えて, 食べ物を求めに来た人が 1000人余りもなった.
*AD253年 -AD193年= 60年偏差.
AD193年 vs AD253年.
正確に 60年の偏差が出ます.
日本人立場(入場)では日本書紀崇神天皇記事になぜの大飢饉事件が技術になっているのに,
新羅本紀には AD193年だと書かれているからお互いに連帯が当たらないから変です.
これは日本側で <伐休紀>の存在が分からないからです.
三国史記新羅本紀の紀年が操作されながら, 日本側で新羅の紀年が正確に分からないから日本書紀の紀年の秘密も解くことができないでしょう.
1次原因は三国史記新羅本紀の紀年が操作されながら起き始め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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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연구자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낚여서, 왜의 대기근이 일어난 해를 AD193년로 인식하여 중국과 연대 비교를 하면서
연구가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죠.
그런데 중국측 삼국지에서는 비미호가 200년대 사람으로 나오니 이상하긴 이상하죠.
하지만 왜의 대기근 사건은 AD193년이 아닌, AD253년이란 말이죠.
伐休紀(벌휴기) 10년, AD253년.
十年 六月 倭大饑 男女一千余口乞食來泊 命居南鄙閑地 賜食就業 是爲倭圃 與作平齊名
10년(AD253년) 6월, 倭(왜)가 大饑饉(대기근)이 들어, 남녀 1천여명이 乞食(걸식)하여 배를 대어 오니, 명하여 南鄙(남비)의 閑地(한지)에 살도록 하고, 식량을 주고 일자리를 얻게 하였다. 이것이 倭圃(왜포)이다. 함께 농사짓고, 평등하게 사람수대로 나누었다.
*신라본기 벌휴이사금 10년, AD193년
十年 春正月甲寅朔 日有食之 三月 漢祇部女 一産四男一女 六月 倭人大饑 來求食者千餘人
10년(193) 봄 1월, 초하루 갑인에 일식이 있었다. 3월, 韓祇部(한기부)의 여자가 한꺼번에 아들 넷과 딸 하나를 낳았다. 6월, 倭人(왜인)이 크게 굶주려, 먹을 것을 구하러 온 사람이 1000여명이나 되었다.
*AD253년 -AD193년= 60년 편차.
AD193년 vs AD253년.
정확히 60년의 편차가 납니다.
일본인 입장에서는 일본서기 숭신천황 기사에 왜의 대기근 사건이 기술이 되어 있는데,
신라본기에는 AD193년이라고 적혀 있으니 서로 연대가 맞지 않으니 이상하겠죠.
이는 일본측에서 <伐休紀>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이죠.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기년이 조작되면서, 일본측에서 신라의 기년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에 일본서기의 기년의 비밀도 풀지 못하고 있죠.
1차 원인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기년이 조작되면서 일어나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