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1.채화는 무엇인가

 

조선시대 궁중 채화는 궁중의 연회나 중요한 의례가 있을때 장식용으로 쓰이던 造花이다

궁중 채화(綵花)는 궁궐의 전문 花匠에 의해 만들어졌다

 

비단에 여러 색으로 염색하고 재단하여 만드는데 꽃가루를 묻힌 노루의 털로 채화 꽃잎에

덧입혀 향기를 내기도 하고

꽃수술(stamen)은 한가닥 한가닥 모두 송화 가루나 꿀을 묻혀 만들어 실제로 나비나 벌이

날아오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생화(生花)인 眞花와 구별하기 위해 假花라고도 한다

 

비단 모시 밀랍 꿀 등 재료를 정성스럽게 다듬고 염색하여 모란 매화 등 꽃을 만들어 나비 벌 새 등

상서로운 의미의 곤충 동물들을 정교하게 재현하여 장식한다

 

2.채화의 유래

 

중국 남북조 시대에 채화라는 명칭이 생겼으며 隋 唐시대에는 군주가 하사하는 반사품 등으로

제도화 되었다

한국은 금이나 금속을 오려 만든 삼국시대 金花에서 비롯되었는데 채화의 구체적인 전개는

고려시대 부터 라고 할 수 있다

 

고려 공민왕은 왕비 노국 공주가 죽자 노국 공주가 좋아했던 모란을 채화로 만들어 방에 두고

보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고려의 채화는 왕실의 장식품을 만들고 관리하는 中尙署와 尙衣局 소속의 花匠들에 의해

전문화 되었다

 

3. 채화의 확산

채화는 조선시대에 와서 더욱  다양해지고 발전하였다 왕실뿐 아니라 사대부 양반가에서도

혼례나 잔치가 있을때 채화를 장식용 꽃으로 사용하였다

 

 

 

 

18세기 조선시대 회혼례 그림의 일부

음식 위에 올린 꽃이 채화인데 이렇게 음식 위에 올린 꽃은 床花라고 한다

 

 

 

純祖 己丑年 進饌 池塘板 미완성

 

순조 지당판은 1829년 순조 즉위 30년 40세의 생신때 생신을 기념하는 잔치를 창경궁에서 성대하게

열린 것을 純祖 己丑年 進饌儀軌의 기록을 참고하여 재현하였다

 

 

 

弘碧桃花樽

 

지당판 (池塘板은 궁중에서 가무를 위해 연못처럼 꾸민 꽃의 무대이고 弘碧桃花樽은 궁중에서

중요한 의례가 있을 때 양쪽 옆에 놓아 두는 꽃장식이다

 

 

 

순조 지당판 완성

 

高宗 池塘板

高宗壬寅進宴儀軌의 기록을 참고하여 재현하였다

 

 

 

床花

음식 위에 올리는 채화를 床花라고 한다

 

이것은 국내 최고 채화 匠人 황수로 교수의 외조부가 대한제국 당시 高宗으로 부터 하사받은 어사화

라고 한다

 

 

채화는 꿀 밀랍 모시 비단을 사용해 만들기 때문에 오래 보존하는 것이  어렵고 의례가 끝나면

채화는 소각해 버리므로 유물로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거기다가 조선왕조가 무너지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채화의 제작 기술이 단절되었는데

국내 최고의 채화匠人이며 (중요 무형  문화재 제124호) 동국대 종신 석좌 교수 황수로 여사님에

의해  복원되었다

 

채화의 제작 기술은 조선왕조의 궁중 진연 의궤에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고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황 교수가 본 마지막 기록은 대한제국 1902년 高宗壬寅進宴儀軌라고 한다

 

 

 

 

 채화 (綵花)匠人 중요 무형 문화재 황수로 교수

 

황 교수는  대한제국 궁내부 主事를 지낸 외조부의 친구가 궁중의 꽃 담당자였던 관계로

외조모 어머니 이모들이 비단을 짜고 염색하여  채화를 즐겨 만들었는데 이런 가풍 덕분에

그는 궁중 채화 제작 기술을 자연스럽게 습득했다고 한다

 

4. 한국의 꽃장식 문화

 

황교수는 1960년 일본 유학 시절에

일본인들이 꽃을 장식하는 문화는 한국에는 없는  일본의  전통 문화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황교수는 자신이 어릴때 부터 보고 배운 조선의 채화에 대해 설명했는데

일본인들이 증거를 내어라 라고 요구하여 귀국하면

한국의 전통 꽃 장식 문화를 반드시 복원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조선의 궁중행사에서나 선비들은 살아 있는 꽃을 꺽어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삼가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유교이념으로 생명 존중의 마음과

궁중 의례에서 꽃이 시들어 버리는 것을 막고 (왕에게 바치는 꽃이 시들면 不敬한 일이라고 생각함)

또 음식 위에 生花를 올리면 벌레나 꽃가루가 떨어지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朝鮮時代花飾り採火 (綵花)

 

1.採火は何か

 

朝鮮時代宮廷採火は宮廷の宴会や重要な儀礼がある時飾り用で使われた 造花だ

宮廷採火(綵花)は宮廷の専門 花匠によって作られた

 

絹に多くの色で染色して裁断して作るのに花粉をつけたノロ鹿の毛で採火花びらに

ドッイブヒョ香りを出したり

花手術(stamen)は一本一本皆送話粉や蜂蜜をつけて作って実際に蝶や儲け

飛んで来たりすると言う

ところで生花(生花)である 真花と区別するために 仮花とも言う

 

仮に麻密蝋蜂蜜など材料を念入りに整えて染色して牡丹梅など花を作って蝶着新しいなど

めでたい意味の昆虫動物たちを精巧に再現して飾る

 

2.採火の来由

 

中国南北朝時代に採火という名称が生じたし 隋 唐時代には君主が下賜する反射品などで

制度化になった

韓国は金や金属を切り取って作った三国時代 金花から始まったが採火の具体的な展開は

高麗時代からと言える

 

高麗恭愍王は王妃露国公州が死ぬと露国公州が好きだった牡丹を採火で作って部屋に残して

見たという話が伝える

高麗の採火は王室の飾りを作って管理する 中尚署と 尚衣局 所属の 花匠らによって

専門化になった

 

3. 採火の拡散

採火は朝鮮時代に来てもっと  多様になって発展した王室だけではなく士大夫ヤングバンがでも

婚礼や宴がある時採火を飾り用花で使った

 

 

 

 

18世紀朝鮮時代回婚〓絵の一部

食べ物の上にあげた花が採火なのにこんなに食べ物の上にあげた花は 床花と言う

 

 

 

純祖 己丑年 進饌 池塘板 未完成

 

順調至当版は 1829年順調即位 30年 40歳の誕生日時誕生日を記念する宴を昌慶宮で盛大に

開かれたことを 純祖 己丑年 進饌儀軌の記録を参考して再現下だった

 

 

 

弘碧桃花樽

 

至当版 (池塘板は宮の中で歌舞のために池のように構えた花の舞台で 弘碧桃花樽は宮の中で

重要な儀礼がある時両方横に置いておく花飾りだ

 

 

 

順調至当版完成

 

高宗 池塘板

高宗壬寅進宴儀軌の記録を参考して再現下だった

 

 

 

床花

食べ物の上にあげる採火を 床花と言う

 

これは国内最高採火 匠人 黄数で教授の外祖父が大韓帝国当時 高宗から下賜受けた御賜花

と言う

 

 

採火は蜂蜜密蝋麻絹を使って作るから長く保存するのが  難しくて儀礼が終われば

採火は焼却してしまうので遺物で残っているのがあまりない

そこに朝鮮王朝が崩れて日帝強制占領期間を経って採火の製作技術が断絶されたが

国内最高の採火匠人であり (重要無形  文化財第124号) 東国大終身ソックズァ教授黄数で女史様に

義解  復元された

 

採火の製作技術は朝鮮王朝の宮廷塵煙儀軌に詳細に説明されていて絵で描かれている

 

黄教授が見た最後の記録は大韓帝国 1902年 高宗壬寅進宴儀軌と言う

 

 

 

 

 採火 (綵花)匠人 重要無形文化財黄数で教授

 

黄教授は  大韓帝国宮内部 主事を執り行なった外祖父の友達が宮廷の花担当者だった関係で

外祖母お母さん叔母たちが絹を組んで染色して  採火を楽しんで作ったがこんな家風おかげさまで

彼は宮廷採火製作技術を自然に習得したと言う

 

4. 韓国の花飾り文化

 

黄教数は 1960年日本留学時代に

日本人たちが花を飾る文化は韓国にはない  日本の  伝統文化という言葉を聞いて

衝撃を受けたと言う

黄教数は自分が幼い時から見て学んだ朝鮮の採火に対して説明したが

日本人たちが証拠を出しなさいと要求して帰国すれば

韓国の伝統花飾り文化を必ず修復すると念をおしたと言う

 

朝鮮の宮廷行事でも士たちは生きている花を折って家に入って来ることを遠慮したと言うのに

その理由は儒教理念で生命尊重の心と

宮廷儀礼で花が萎んでしまうことを阻んで (王に捧げる花が詩たちなら 不敬韓日だと思い)

また食べ物の上に 生花をあげれば虫や花粉が落ちることを憂慮したからで思わ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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