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중국·야마니시성 대동시에 왔습니다.

 

 대동이라고 하면 운강바위굴이나 현공사가 유명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가지 않았다.무엇을 보러 왔는가라고 하면, 료·긴토키대의 건조물을 보러 왔던 것이다.료나 긴토키대의 건물은, 감 주나 이주를 실시하는 등, 구조적으로 재미있을 것 같기 때문에이다.

 우선은 「선화사」에 발길을 옮겼다.

 

 

 호텔을 나오고, 선화사를 목표로 한다.사진은 북측의 고루, 남쪽의 남대문을 잇는 도로에서, 대동에서는 가장 정비된 길의 하나.뭐, 안에 들어오면 울퉁불퉁 투성이의 길은 아직 많은데.아침부터 클락션의 소리가 시끄러운 것은 중국에서는 어디에서라도 같다.

 

 

선화사는 이 대로의 근처에 있다.찾을 것도 없었다.그것 같은 거대한 지붕이, 이미 거기로 보이고 있다.

 

 

 선화사의 입구는 남쪽.측도를 다니고 간다.

 

 

 남쪽으로 도착했습니다.여기도 자주(잘) 정비되고 있다.대동은 지금, 대동성을 급피치에 정비하고 있습니다.

 정면의 문은 「천왕문」에서, 긴토키대의 건조물.입구는 이 문의 오른손에 있지만, 배관료는 50원.비싸다!일본엔으로 약 800엔이다.

 

 

 선화사안에 들어왔다.

 첫인상은 「매우 자주(잘) 정비되고 있데」.배관료의 높이의 이유를 알 수 있는 것 같았다.초록도 많고, 상당히 돈을 들이고 있다.한편, 참배객은 거의 없다.배관료가 그토록 비쌌으면, 중국의 일반인은 좀처럼 참배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선화사의 가람.천왕전, 삼성전, 타이유우 호텐이 일직선에 줄선다.좌측으로 보현각이 있다(배차사진).

 

 

삼성전」, 긴토키대·1143년 건립

 

 삼성전은 정면 5간·측면 4간, 우진각 지붕의 형식의 건물에서, 남쪽 해 선다.일본의 건물에 비해 1간폭이 매우 크고, 정면은 5간이라도 32.5 m 있고, 측면도 19 m이상 있다.

 공포는 1 손끝+2 오다레목(중국식이라면 단초쌍하앙)의 3 손끝힐조, 그리고 경사 오늘의 편성.매우 떠들썩하고 건물에 웅대한 감각을 주고 있다.구석 성장도 현저하게 볼 수 있다.그리고, 역시 전의 벽이 두껍다.중국이구나로 가장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군요.

 삼성전은 내부에 긴토키대의 소상 불상을 안치한다(내부 사진은 금지).

 

 

 삼성전의 「경사 오늘」.60도 방향으로 뛰쳐나온다.3 도박에서 사기를 치는 것은 좌우에 3개 나오고 있어 매우 진이네 인상을 준다.료·긴토키대 특유의 공포라고 한다.

 

 

 내부에 들어가고 생각한 것은 「실내 높이가 높은데」.화장 지붕 밑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서는 20 m정도 있을 지도 모르다.불상도 크지만, 그것보다 슈미단의 높이가 인상 깊었다.불상으로부터 꽤 내려다 봐지네요.

 

 구조도 독특하고, 북측의 입측 기둥 4개 이외의 기둥을 생략 하고 있다.그 입측 기둥도 중앙 2개는 보통 장소에 있지만, 좌우의 입측 기둥은 조금 앞에 어긋나 있다.그리고 각각 4개의 기둥으로부터, 상하 2개 거듭한 굵은 계량을 남쪽의 측주근까지 건네주어, 넓은 무 기둥 공간을 만들고 있다.단지, 중앙 2개의 입측 기둥으로부터 남쪽의 측주까지 3간 있으므로, 과연 무리가 있었는지, 중도에 첨주를 세워 보강하고 있지만.

 또, 좌우의 입측 기둥으로부터 북쪽의 측주까지 똑같이 계량을 건네주어, 북측의 입측주근의 위치에 태병속을 두어, 두관과 대륜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이 삼성전은, 내부의 기둥을 생략 할 뿐만 아니라, 이주도 실시해, 내부 공간의 확대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의 뒤(북쪽)로 돌아 왔다.정면으로 타이유우 호텐이 서, 오른쪽으로 문수각, 왼쪽으로 보현각이 선다.

 

 

「보현각」은 긴토키대·1154년 건립.지붕은 2겹이지만, 내부는 3층.

 

 

  사실은 촬영 금지이지만, 이만큼 찍어 버렸습니다.뒤측에상에 오르는 계단이 있다.이 건물 뿐만이 아니라, 모든 건물에 청소 담당의 여성이 있고, 깨끗이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문수각은 최근의 건립이므로 패스.

 

 

그런데,  드디어 타이유우 호텐에 간다.타이유우 호텐은 전적 봐의 높은 기단 위에 서, 전에 광대한 월대를 갖춘다.

 

 

  「타이유우 호텐」, 료시대·12 세기 초두무렵의 건립

 

 선화사최고의 건물.정면 7간·40.6 m, 측면 5간·24.6 m의 큰 건물이다.공포는 2 손끝의 힐조(중앙간은 경사 오늘)로 삼성전보다 간소하다.또, 머리 장군목코에 어떤 장식도 실시하지 않는 근처는 고풍으로, 료시대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건축물의 기둥과 기둥 사이는 중앙이 가장 넓고, 구석에 가는에 따라 좁아진다.구석 부분은 근처에 또 하나 공포를 두어 구석의 공포와 연결하는 「이라고 주조」를 채용한다(삼성전도 같다).

 

 

 

 타이유우 호텐의 내부를 밖으로부터 찍어 보았다.큰 건물이므로, 청소 담당의 여성이 2명 있었습니다.내부는 큰 소상 불상이 5체 거둘 수 있고 있다.역시 여기도, 슈미단의 높이가 우수리는 아니다.중앙의 불상 위에 장식 천정(조정), 그 정면으로 격천정을 마련해 그 이외는 화장 지붕 밑으로 한다. 

 

 구성은 일본의 중세 밀교 불당같고, 앞 2간을 Gejin, 그 안쪽의 2간을 Naijin로서 불상을 안치해, 그 뒤로 게다가 1간 있다.

 Gejin내는 좌우 2 홈바시라가 남아, 중앙 4개의 기둥이 감 주 되고 있다.Naijin와 Gejin경계의 기둥(사진으로 보이는 기둥)을 가장 높게 해, 그 위에 Naijin 후방의 주상으로부터 Gejin 중간까지의 길이의 대홍량을 건네주어, 한층 더 그 위에 홍량을 2개 거듭해 Sasu조를 두고 지붕을 지탱하고 있다.구조적으로는, 중세 밀교 불당의 「몸사확대식」에 가까운 것이 있을 지도 모르다.

 타이유우 호텐의 내부도, 고려대인 감각을 맛조생이라고 준다(다만, 높이감은 삼성전이 강하게 느꼈다).주위에는 24 하늘 소상이 둘러싸고 있었다.

 

 

 타이유우 호우뎀마에의 「월대」.전적 봐의 광대한 공간이다.범종이나 북도 갖춰진다.

 

 

타이유우 호텐의 뒷모습.두꺼운 벽에서 둘러싸져 기둥도 안보이기 때문에, 프레인 그 자체다.구석 성장은 볼 수 있는데.

 

 

 다음날도 선화 테라노마에를 지나면, 무엇인가 이벤트가 있는지, 많은 몸치장한 아줌마들이 모여 있었다.사진은 선화사의 남쪽에 있는 5용벽(명시대)의 전.

 

 선화사를 방문하고, 중국의 사원의 분위기를 충분히 맛볼 수 있었다.정비된 경내, 참배객이 거의 없는 조용한 환경···가장 들려 오는 소리는, 거리의 자동차의 클락션의 소리인 w 

 

 

마지막

 

 


中国の寺院・善化寺

 

 

中国・山西省大同市にやってきました。

 

 大同といえば雲岡石窟や懸空寺が有名だが、時間がなくて行かなかった。何を見に来たかというと、遼・金時代の建造物を見に来たのである。遼や金時代の建物は、減柱や移柱を行うなど、構造的に面白そうだからである。

 まずは「善化寺」に足を運んだ。

 

 

 ホテルを出て、善化寺を目指す。写真は北側の鼓楼、南側の南大門を結ぶ道路で、大同では最も整備された道の1つ。まあ、中に入ればデコボコだらけの道はまだ多いけど。朝からクラクションの音が喧しいのは中国ではどこでも同じ。

 

 

善化寺はこの通りの近くにある。探すまでもなかった。それらしき巨大な屋根が、もうそこに見えている。

 

 

 善化寺の入口は南側。側道を通っていく。

 

 

 南側に到着しました。ここもよく整備されている。大同は今、大同城を急ピッチで整備しています。

 正面の門は「天王門」で、金時代の建造物。入口はこの門の右手にあるのだが、拝観料は50元。高い!日本円で約800円である。

 

 

 善化寺の中に入った。

 第一印象は「非常によく整備されているな」。拝観料の高さの理由が分かるような気がした。緑も多いし、随分とお金をかけている。一方、参拝客はほとんどいない。拝観料があれほど高かったら、中国の一般人はなかなか参拝し辛いのではないか。

 

 善化寺の伽藍。天王殿、三聖殿、大雄宝殿が一直線に並ぶ。左側に普賢閣がある(拝借写真)。

 

 

三聖殿」、金時代・1143年建立

 

 三聖殿は正面5間・側面4間、寄棟造りの建物で、南面して立つ。日本の建物に比べて1間幅が非常に大きく、正面は5間でも32.5mあるし、側面も19m以上ある。

 組物は1手先+2尾垂木(中国式なら単抄双下昂)の3手先詰組、そして斜きょうの組み合わせ。非常に賑やかで建物に雄大な感覚を与えている。隅伸びも顕著に見られる。あと、やはり磚の壁が分厚い。中国だなぁと最も思わせる部分ですね。

 三聖殿は内部に金時代の塑像仏像を安置する(内部写真は禁止)。

 

 

 三聖殿の「斜きょう」。60度方向に飛び出す。3手目は左右に3つ出ており、非常に賑やな印象を与える。遼・金時代特有の組物という。

 

 

 内部に入って思ったことは「室内高が高いな」。化粧屋根裏で、最も高い位置では20m程度あるかもしれない。仏像も大きいが、それより須弥壇の高さが印象深かった。仏像からかなり見下ろされますね。

 

 構造も独特で、北側の入側柱4本以外の柱を省略している。その入側柱も中央2本は普通の場所にあるが、左右の入側柱は少し手前にずれている。そしてそれぞれ4本の柱から、上下2本重ねた太い繋梁を南側の側柱筋まで渡し、広い無柱空間を作っているのだ。ただ、中央2本の入側柱から南側の側柱まで3間あるので、さすがに無理があったのか、中途に添柱を立てて補強しているが。

 また、左右の入側柱から北の側柱まで同じように繋梁を渡し、北側の入側柱筋の位置に太瓶束を置き、頭貫と台輪を受けている。

 このように三聖殿は、内部の柱を省略するだけでなく、移柱も行い、内部空間の拡大に努めているのである。

 

 

 三聖殿の後ろ(北)にまわってきた。正面に大雄宝殿が立ち、右に文殊閣、左に普賢閣が立つ。

 

 

「普賢閣」は金時代・1154年建立。屋根は2重だが、内部は3層。

 

 

  本当は撮影禁止だが、これだけ撮ってしまいました。後ろ側に上に上る階段がある。この建物だけでなく、全ての建物に掃除係りの女性がいて、綺麗に拭き掃除をしていた。

 文殊閣は最近の建立なのでパス。

 

 

さて、 いよいよ大雄宝殿に行く。大雄宝殿は磚積みの高い基壇の上に立ち、前に広大な月台を備える。

 

 

 「大雄宝殿」、遼時代・12世紀初頭頃の建立

 

 善化寺最古の建物。正面7間・40.6m、側面5間・24.6mの大きな建物である。組物は2手先の詰組(中央間は斜きょう)で三聖殿より簡素である。また、頭貫の木鼻に何の装飾も施さない辺りは古風で、遼時代の特徴と言える。

 柱間は中央が最も広く、端に行くに従い狭くなる。隅部分は隣にもう1つ組物を置いて隅の組物と連結する「てん柱造」を採用する(三聖殿も同じ)。

 

 

 

 大雄宝殿の内部を外から撮ってみた。大きな建物なので、掃除係りの女性が2人いました。内部は大きな塑像仏像が5体収められている。やはりここも、須弥壇の高さが半端ではない。中央の仏像の上に装飾天井(藻井)、その正面に格天井を設け、それ以外は化粧屋根裏とする。 

 

 構成は日本の中世密教仏堂のようで、手前2間をGejin、その奥の2間をNaijinとして仏像を安置し、その後ろにさらに1間ある。

 Gejin内は左右2本柱が残り、中央4本の柱が減柱されている。NaijinとGejin境の柱(写真に見える柱)を最も高くし、その上にNaijin後方の柱上からGejin中間までの長さの大虹梁を渡し、さらにその上に虹梁を2つ重ね、Sasu組を置いて屋根を支えている。構造的には、中世密教仏堂の「身舎拡大式」に近いものがあるかもしれない。

 大雄宝殿の内部も、高大な感覚を味わせてくれる(ただし、高さ感は三聖殿の方が強く感じた)。周囲には24天塑像が取り囲んでいた。

 

 

 大雄宝殿前の「月台」。磚積みの広大な空間である。梵鐘や太鼓も備わる。

 

 

大雄宝殿の後姿。分厚い壁で囲われて柱も見えないので、プレーンそのものだ。隅伸びは見られるけど。

 

 

 次の日も善化寺の前を通ると、何かイベントがあるのか、大勢の着飾ったおばさん達が集まっていた。写真は善化寺の南側にある五龍壁(明時代)の前。

 

 善化寺を訪れて、中国の寺院の雰囲気を充分に味わえた。整備された境内、参拝客がほとんどいない静かな環境・・・最も聞こえてくる音は、街中の自動車のクラクションの音であったw 

 

 

終わ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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