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사항으로(関連事項で)
縄文時代農耕論
http://blog.naver.com/marich77/40191500275
佐藤洋一郎의 날조 의혹 1(佐藤洋一郎の捏造疑惑 1)
http://blog.naver.com/marich77/40191052555
佐藤洋一郎의 날조의혹 2(佐藤洋一郎の捏造疑惑 2)
http://blog.naver.com/marich77/40191212800
日本の考古学は、公共事業ブームの「行政大発掘時代」に年間1,000億円の研究費をもらったのだそうだ。20年間で2兆円!
それが「捏造発覚」で、全部ムダだったとわかった。自責の念に駆られて、一人くらい自殺しそうなものだ…
しかし、他方では岡山大の松木武彦、東海大の北條芳隆氏などのように、こつこつと新しい考古学を開拓している学者もいる。ミトコンドリアDNAの分析で、「縄文農耕」を証明したと喧伝していた静岡県立大学の佐藤洋一郎は、いつの間にか消えてしまった。帯広畜産大学の中野益男と同じである。
일본의 고고학은, 공공 사업 붐의 「행정대발굴 시대」에 연간 1,000억엔의 연구비를 받았던 것이다 한다.20년간에 2조엔!
그것이 「날조 발각」으로, 전부 소용없었다는 것을 알았다.자책하는 마음에 몰리고, 한 명 정도 자살하는 그런 정도의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岡山大의 松木武彦, 東海大의 北條芳隆씨등과 같이, 꾸준히 새로운 고고학을 개척하고 있는 학자도 있다.미토콘드리아 DNA의 분석으로, 「죠몽 농경」을 증명했다고 훤전하고 있던 静岡県立大学의 佐藤洋一郎는, 어느새인가 사라져 버렸다.帯広畜産大学의 中野益男도 같다.
일본의 고고학계가 과학적 분석기법을 동원하여 죠몬시대의 농경을 증명하기 애써 왔지만 다음의 사례를 보면 일본 국민을 현혹시켰던 과학적 분석기법이 허위였던 것을 알 수 있다.
日本の考古学界が科学的分析技法を動員して縄文時代の農耕を証明する労力して来たが次の事例を見れば日本国民を惑わした科学的分析技法が虚偽だったことが分かる.
http://www.asahi.com/culture/news_culture/TKY201012100408.html
縄文農耕の証明ならず 京都・上里遺跡、破れぬ最後の壁 2010年12月11日10時55分
縄文農耕がついに証明されるかもしれない――。そんな期待を抱かせた上里遺跡(京都市西京区)の出土品の分析結果がこのほどまとまった。縄文時代の集落跡から植物の種や実が多数出土し、注目を集めていたが、結果はそこまで届かなかった。
縄文は狩猟採集の社会で、農耕を持たない時代とされてきた。ところが近年、土器に残る痕跡の研究や年代測定によって、ヒエやマメなどが生活の周囲にあったことが確実になってきた。だが、確認されたのはいずれも野生種のある穀類。縄文農耕があったことを証明するには、栽培種であるのが確実な植物が、しっかりした考古学の調査で発見され、間違いなく縄文時代の年代を示すことが必要だと考えられるようになっている。
そんなところに登場したのが上里遺跡だった。京都市埋蔵文化財研究所が2001~09年度にわたり調査し、縄文晩期の溝の遺構からコメが19個見つかった。日本に野生種のコメはないとされる。さらにマメ類が340個、ドングリ類が800個以上出土。農耕具と考えられる石器も多く発見された。
죠몽 농경을 증명하지 못하고 교토・카미자토 유적, 깨지지 않는 마지막 벽 2010년 12월 11일 10시 55분
죠몽 농경이 마침내 증명될지도 모른다.그런 기대를 안게 한 카미자토 유적(교토시 니시쿄구)의 출토품의 분석 결과가 이번에 결정되었다.죠몽 시대의 취락자취로부터 식물의 종이나 열매가 다수 출토해, 주목을 끌고 있었지만, 결과는 거기까지 닿지 않았다.
죠몽은 수렵 채집의 사회에서, 농경을 가지지 않는 시대로 여겨져 왔다.그런데 근년, 토기에 남는 흔적의 연구나 연대 측정에 의해서, 피나 콩등이 생활의 주위에 있었던 것이 확실히 되었다.하지만, 확인된 것은 모두 야생종이 있는 곡류.죠몽 농경이 있던 것을 증명하려면 , 재배종인 것이 확실한 식물이, 견실한 고고학의 조사에서 발견되어 틀림없이 죠몽 시대의 연대를 나타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런 곳에 등장한 것이 카미자토 유적이었다.교토시 매장문화재 연구소가 2001~09년도에 걸쳐 조사해, 죠몽 만기의 溝의 유적으로 부터 쌀이 19개 발견되었다.일본에 야생종의 쌀은 없다고 여겨진다.한층 더 콩류가 340개, 종리류가 800개 이상 출토.농경도구라고 생각할 수 있는 석기도 많이 발견되었다.
年代を測定すると、マメ類は3200~3000年前で土器型式から想定した縄文晩期の年代と合致した。だが、コメはマメ類よりも500年ほど後の弥生時代の年代だった。測定し直したが、結果は変わらなかった。同研究所の吉崎伸調査課長によると、コメは弥生の地層から落ち込んだ可能性が高いようだ。
マメ類は遺伝子を調べた。遺伝子は検出できたが栽培種か野生種かの判断はつかないという。比較・参照できる古い時代の遺伝子があまり見あたらないのだという。
青森・三内丸山遺跡の登場以来、縄文のイメージは大きく変わった。農耕が存在して不思議だと思う人は今では少ないだろう。京都大の泉拓良教授によると、もともと農耕の有無による時代区分は、経済基盤の違いをもとに時代を分けるべきだとの考えから戦前に誕生したもので、発掘調査の結果ではないという。
その時代概念を刷新しようと考古学者が挑んでいるのが縄文農耕の証明だが、最後の壁がなかなか破れない。それが縄文という時代のはるかさなのかもしれないが、「手がかりはそろったと考えています」と泉教授。今後はマメ類の遺伝子研究を広げる方針だという。
연대를 측정하면, 콩류는 3200~3000년전에 토기 형식으로부터 상정한 죠몽 만기의 연대와 합치했다.하지만, 쌀은 콩류보다 500년 정도 후의 야요이 시대의 연대였다.다시 측정했지만 ,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동연구소의 吉崎伸 조사 과장에 의하면, 쌀은 야요이의 지층으로부터 침체한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콩류는 유전자를 조사했다.유전자는 검출할 수 있었지만 재배종인가 야생종인가의 판단은 붙지 않는다고 한다.비교・참조할 수 있는 낡은 시대의 유전자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아오모리・산나이 마루야마 유적의 등장 이래, 죠몽의 이미지는 크게 바뀌었다.농경이 존재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지금은 적을 것이다.교토대의 이즈미 히로시 아키라 교수에 의하면, 원래 농경의 유무에 의하는 시대 구분은, 경제 기반의 차이를 기초로 시대를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전쟁 전에 탄생한 것으로, 발굴 조사의 결과는 아니라고 한다.
그 시대 개념을 쇄신 하려고 고고학자가 도전하고 있는 것이 죠몽 농경의 증명이지만, 마지막 벽이 좀처럼 깨지지 않는다.그것이 죠몽이라고 하는 시대의 아득함 인지도 모르지만, 「단서는 모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이즈미 교수.향후는 콩류의 유전자 연구를 펼칠 방침이라고 한다.
縄文期の京都でアズキ栽培 上里遺跡出土資料で判明
http://www.kyoto-np.co.jp/sightseeing/article/20120727000057 2012年07月27日 10時55分
京都市西京区大原野の上里遺跡から出土した縄文晩期(約2800年前)のアズキが栽培種だったことが、市埋蔵文化財研究所や国立歴史民俗博物館(千葉県佐倉市)の研究者によって明らかになった。出土アズキの形状を野生種と比較すると明らかな差が現れ、研究者は「稲作以前の農耕を証明する完全な資料」としている。
市埋文研が2001~09年に実施した発掘調査で、炭化した豆類が約100点出土し、栽培の可能性が指摘されていた。豆類をアズキと確定した後、博物館の西本豊弘教授たちが計測できる形状を保つ10点について、野生種(ヤブツルアズキ)や現在栽培されている「宝早生小豆」「大納言小豆」と比較した。
その結果、全長や幅が野生種と重なる個体もあったが、豆の「へそ」の長さと、へそを中心とした厚みで明確な差が現れ、現在の栽培種に近かった。一般に豆類は栽培化が進むと厚みが増すとされている。また、出土アズキは炭化して縮んでおり、本来はもう少し大きいとみられることもあって「アズキが栽培され、食料として利用されたことは確実」と結論づけた。
全国の縄文遺跡から豆や雑穀類が出土し、栽培の可能性が指摘されている。山梨県の遺跡では07年に、土器に残る大豆の痕跡から、大豆を栽培していた例が確認されている。
縄文時代に詳しい京都大の泉拓良教授(考古学)は「出土した実物で栽培が実証された初の例といえる。縄文人が栽培というアイデアを持って種を選択できる農耕民の素質を持っていたことを示している。今後は、アズキの起源や栽培化のプロセスの解明が課題になる」と話している。
研究結果は動物考古学研究会刊行の学術誌「動物考古学29号」に掲載された。
京都市西京区大原野의 上里遺跡으로부터 출토한 죠몽 만기( 약 2800년전)의 팥이 재배종이었던 일이, 시 매장문화재 연구소나 국립 역사 민속 박물관(지바현 사쿠라시)의 연구자에 의해서 밝혀졌다.출토 아즈키의 형상을 야생종과 비교하면 분명한 차이가 나타나 연구자는 「벼농사 이전의 농경을 증명하는 완전한 자료」라고 하고 있다.
市埋文研이 2001~09년에 실시한 발굴 조사에서, 탄화한 두류가 약 100점 출토해, 재배의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었다.두류를 팥이라고 확정한 후, 박물관의 西本豊弘 교수들이 계측할 수 있는 형상을 유지하는 10점에 대해서, 야생종이나 현재 재배되고 있는 「宝早生小豆」 「大納言小豆」등과 비교했다.
그 결과, 전체 길이나 폭이 야생종과 겹치는 개체도 있었지만, 콩의 「배꼽」의 길이와, 배꼽 중심으로 한 두께로 명확한 차이가 나타나 현재의 재배종에 가까웠다.일반적으로 두류는 재배화가 진행되면 두께가 더한다고 여겨지고 있다.또, 출토 팥은 탄화해 줄어들고 있어 본래는 좀 더 크다고 볼 수 있기도 해 「팥이 재배되어 식료로서 이용된 것은 확실」이라고 결론 지었다.
전국의 죠몽 유적으로부터 콩이나 잡곡류가 출토해, 재배의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다.야마나시현의 유적에서는 07년에, 토기에 남는 대두의 흔적으로부터, 대두를 재배하고 있던 예가 확인되고 있다.
죠몽 시대를 잘 아는 교토대의 이즈미 히로시 아키라 교수(고고학)는 「출토한 실물로 재배가 실증된 첫 예라고 할 수 있다.죠몽인이 재배라고 하는 아이디어를 가져 종을 선택할 수 있는 농경민의 소질을 가지고 있던 것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향후는, 팥의 기원이나 재배화의 프로세스의 해명이 과제가 된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연구 결과는 동물 고고학 연구회 간행의 학술잡지 「동물 고고학 29호」에 게재되었다.
2010年12月 上里遺跡에서 출토된 팥의 유전자를 분석했으나 아무런 성과를 건져 내지 못한 것 같다.그런데 2년이 경과한 2012年07月에 죠몬시대에 쿄토에서 핕을 재배한 것이 증명되었다고 발표한다.증거는 팥의 크기가 야생종 보다 컸다는 것.출토된 팥의 크기를 분석하는데 몇년의 세월이 필요했을까?유전자 검사를 통해 불리한 증거가 나오면 은폐하고 계속 재배 증거를 찾다가 세월이 흘러 도저히 시간을 끌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크기를 기준으로 재배종이었다고 발표하는 일본고고학자들의 수준
2010年12月 上里遺跡で出土された小豆の遺伝子を分析したが何らの成果を引き上げ出すことがしたようだ事ができない.ところで 2年が経過した 2012年07月に縄文時代に京都で アズキを栽培したのが証明されたと発表する.証拠は小豆の大きさが野生種より大きかったということ.出土された小豆の大きさを分析するのに何年の歳月が必要だったろうか?遺伝子 検査を通じて不利な証拠が出れば隠蔽してずっと栽培証拠を捜している途中時間を引きずることができない都合に至ると三尺童子も分かる大きさを基準で栽培種だったと発表する日本考古学者たちの水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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