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 또는 문짝을 上下의 문틀에 홈을 파서 끼우고,
홈을 따라 미끄러지면서 두꺼비집이나 벽 속에 밀어넣음으로써
문 전체를 여닫게 한 窓戶를 말한다.
문짝이 하나인 것을 외 미닫이,
두 짝으로 된 것을 雙 미닫이라고 하며,
주로 韓屋에 많이 사용된다.
때때로 甲窓을 달아 두꺼비집을 겸하기도 한다.
아래사진은 1827년에 건립된 雲岡故宅
雲岡故宅 1827年 건립
樂善齋
1847년 건립.
壽康齋과 錫福軒, 樂善齋 3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는 창경궁 영역에 속해 있었으나 현재는 창덕궁 영역에 속해있다.
덕혜옹주와 이방자 여사가 모두 이곳 樂善齋에서 말년을 보냈으며
純宗이 승하하자 純宗의 妃인 순정효황후 尹妃가 여생을 보내기도 했다.
樂善齋는 承政院日記와 樂善齋 상량문을 통해
憲宗 13년(1847年)에 건립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일본인들은 樂善齋의 미닫이 문이
일본의 영향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 같지만
실제 창덕궁 樂善齋가 건립된 年度는 1847년으로
일본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窓 またはとびらを 上下のかまちにホームを売って挟んで,
ホームに沿って滑りながら安全器や壁の中に押し入れることで
門全体を開閉するようにした 窓戸を言う.
とびらがひとつののをそらんじて引き戸,
二人の相棒になったことを 双 引き戸だと言って,
主に 韓屋にたくさん使われる.
時々 甲窓をつけて安全器を兼ねたりする.
の下写真は 1827年に建立された 雲岡故宅
雲岡故宅 1827年 建立
楽善斎
1847年建立.
寿康斎と 錫福軒, 楽善斎 3個の建物で成り立っている
元々は昌慶宮領域に属していたが現在は昌徳宮領域に属している.
ドックヒェオングズと異邦者女史が皆こちら 楽善斎で末年を送ったし
純宗が崩御すると 純宗の 妃であるスンゾングヒョファングフ 尹妃が余生を送ったりした.
楽善斎は 承政院日記と 楽善斎 サングリャングムンを通じて
憲宗 13年(1847年)に建立されたことが確認された.
日本人たちは 楽善斎の引き戸門が
日本の影響だと言いたいようだが
実際昌徳宮 楽善斎の建立された 年度は 1847年で
日本とはどんな関係がない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