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무너져 내린 동쪽 성곽
아주 일부만 남아있다.
간간히 옛 성곽이 남아있다.
그나마 상태가 좋은 북쪽 성곽
무너진 속쌓기가 보인다.
1977년 12월 31일 전라북도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되었다.
운봉고원(雲峰高原)과 황산(荒山)의 산줄기로 구획되어 있는 아영고원(阿英高原)은 백제의 아막산
(阿莫山), 신라의 모산성(母山城) 등으로 불리던 곳이다. 행정상으로는 아막성이 독립되어 있다가
1391년(공양왕 3)에 운봉현에 예속되었다.
‘아막’이란 주성(主城)·주곡(主谷)을 뜻하는데, 이 지역이 섬진강의 계곡분지를 나타내는 지형상의
특색과 중요한 방어진지라는 데서 나왔다. 이 성은 삼국시대에 백제와 신라 간에 격전이 벌어진 곳
으로 총길이 633m에 달한다. 602년(무왕 3)에 백제가 아막성(阿莫成)을 공격하여 신라 장군 무은
(武殷)이 전사하자, 그 아들인 화랑 귀산(貴山)이 추항과 함께 백제군을 물리쳤으나 둘 다 전사하였
다는 기록이 있다.
성터는 동북쪽을 접한 사각형을 이루는데, 북변 수구에 북문지(北門址), 서변 중앙에 서문지(西門
址), 동남우(東南隅)에 가까운 동변에 동문지(東門址)가 남아 있다. 길이 208.1m, 주위 총 632.8m에
이르는 북변은 곡선의 성벽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동변과 서변은 각각 길이 147.1m, 126.9m이며
거의 직선이다.
성 안에 삼국시대의 기와조각과 백제의 자기조각 등이 퇴적되어 있는데, 북문지 수구 동편에는 지
름 1.5m의 원형석축(圓形石築) 정호지(井戶址)가 있다.
だ崩れ落ちた東城郭
とても一部だけ残っている.
たまに昔の城郭が残っている.
それさえも状態が良い北城郭
崩れたソックサッギが見える.
1977年 12月 31日全羅北道記念物第38号に指定された.
雲峰高原(雲峰高原)と硫酸(荒山)の山なみに区画されている牙営高原(阿英高原)は百済のアマックサン
(阿莫山), 新羅のモサンソング(母山城) などと呼ばれた所だ. 行政上ではアマックソングが独立されている途中
1391年(恭譲王 3)に雲峰県に隷属した.
‘アマック’と言う(のは)走性(主城)・主穀(主谷)を意味するのに, この地域が纎津江の谷盆地を現わす地形上の
特色と重要な防御陣地というやけどして出た. この聖恩三国時代に百済と新羅の間に激戦が起った所
で全長 633mに達する. 602年(武王 3)に百済がアマックソング(阿莫成)を攻撃して新羅将軍ムウン
(武殷)が戦死すると, その息子である画廊帰山(貴山)がツハングとともに百済軍を退けたが二つとも戦死する
つける記録がある.
城跡は東北の方を接した四角形を成すのに, 北辺守旧に北門誌(北門址), 西辺中央に西門跡地(西門
址), 東南優(東南隅)に近い同弁に同窓誌(東門址)が残っている. 長さ 208.1m, 周り総 632.8mに
のぼる北辺は曲線の城壁がそのまま残っていて, 同弁と西辺はそれぞれ長さ 147.1m, 126.9mで
ほとんど直線だ.
城の内に三国時代の瓦の破片と百済の自分切れなどが堆積されているのに, 北門誌数で東の方には地
ルム 1.5mの原型石垣(円形石築) 正号だ(井戸址)があ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