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1200여년 전 신라인의 손에 의해 씌여져 일본 열도에 건너갔던 한권의 두루마리 불경이 일본 가나 문자의 기원을 밝혀줄 열쇠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3일 그동안 일본인이 베껴왔을 것으로 추정되던 원효의 ‘판비량론(判比量論)’이 신라에서 적힌 문서이며, 일본 가타카나 문자가 한국에서 넘어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고바야시 요시노리(小林芳規) 교수의 주장을 관심깊게 보도했다.

도쿄신문은 이날 후지모토(藤本幸夫) 도야마대학 교수의 말을 인용, “한자를 읽는 보조수단으로서의 가타카나의 원형이 한국에 있었을 가능성은 있다”며 “신라의 문헌에서 가타카나와 비슷한 문자가 발견된 것은 귀중한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전날 교토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서도 10여명의 일본 기자들은 ‘가타카나 한국 유래설’에 대해 쉴새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사실, 이번에 신라의 문서로 확인된 ‘판비량론’은 그동안 일본인이 신라에 가서 베껴온 것으로 추측됐었다. 일본이 이를 중요문화재(보물급)로 지정했던 것도 그 때문. 그러나, 오타니 대학의 미야자키 겐지(宮崎健司) 교수가 97년 종이의 지질(紙質)과 당시 정황을 살펴볼 때 신라에서 만든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됐고, 고바야시 교수는 이번에 신라인의 각필을 확인함으로써 이 주장을 뒷받침한 것이다.

‘판비량론’에서는 수십가지의 각필이 발견됐다. 특히 한자 발음을 읽기 위한 ‘문장부호’처럼 생긴 각필이 다수 발견됐는데, 이는 이후 일본에서 발견되는 각필 문장부호와는 전혀 다른 모양의 것들이다. 일본인이 베낀 책이라면 신라식 각필까지 베낄 리가 없다는 논리다.

일본 가타카나 문자의 기원 문제와 관련, 비상한 관심을 끄는 것은 한자의 발음을 표시한 것으로 보이는 부호 두가지이다. 첫번째는 뿌리 근(根)자 옆에 쓰인 ‘マリ’라는 글자다. 이 글자중 ‘マ’자는 부(部)자의 오른쪽 부(우부방) 부분을 줄인 것이며 ‘リ’자는 ‘리(利)’자를 줄인 것 같다고 고바야시 교수는 추측했다. 이중 ‘リ’자는 현대 일본 가타카나에서도 ‘리’로 읽는다. ‘부리’라고 적은 것으로 추측된다는 주장이다. 또 한 자는 ‘공(共)’자 옆에 적힌 ‘궁(宮)’이라는 한문자이다.

고바야시 교수는 “삼국사기에 보면 원효대사의 아들인 설총이 불경을 신라 말로 읽었다는 글이 있는데, 각필의 발견되면서 이 말이 설총이 신라어로 각필을 사용, 불경을 풀이한 것이라는 뜻이라고 추측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물론 발견된 각필이 정말로 ‘부리’라고 읽은 것인지, 또 정말로 가타카나의 기원인지는 아직 알수 없다는 것이 고바야시 교수의 신중한 입장이다. 특히 현대어 ‘뿌리’는 15세기때까지만 하더라도 ‘불휘’라고 읽혔기 때문에, 과연 이 글자가 ‘부리’라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는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라는 설명이다. 또 신라시대의 언어를 추측하기에도 실례가 지나치게 적다는 점 역시 한계점이라고 고바야시 교수는 스스로 지적했다.

고바야시 교수의 주장에 대해 국내 학자들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안병희 서울대 명예교수는 “뿌리 근(根)의 15세기 발음은 ‘불휘’이기 때문에 신라시대에 ‘부리’로 읽었을 가능성은 없고, ‘マ’를 부(部)의 약자로 보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남풍현 한국구결학회 회장은 “신라시대에 뿌리를 ‘부리’로 읽었을 가능성은 없지만, ‘マ’를 부(部)의 약자로 쓴 사례는 여러 차례 나온다”며 “각필 연구의 권위자인 고바야시 교수가 새로운 자료 발굴을 통해 일본 가타카나의 신라 전래설을 주장한 것은 매우 흥미롭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술사학자인 강우방 이화여대 교수는 “신문에 소개된 ‘판비량론’의 필체가 매우 활달하고 훌륭하다”며 “신라인의 붓글씨 연구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했다.


◆고바야시 교수는/ 각필 권위자, 신가-고려 불경서도 흔적 발견

고바야시 요시노리(小林芳規·73) 교수는 1961년 일본에서 최초로 각필 문헌을 찾아낸 동아시아 각필연구의 권위자다. 일본 학자로서는 최고의 영예인 ‘은사상’(恩賜賞)과 ‘일본학사원상’(日本學士院賞)을 잇달아 수상하기도 했다.

고바야시 교수는 당초 일본 문헌의 원문 한자 옆에 가나와 함께 각필로 새겨져 한자 발음이나 번역 순서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 훈점(訓点)이 일본의 독자적 발명이라고 주장해왔다. 이것이 점차 가나 문자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0년7월 서울 성암고서박물관의 신라·고려 불경에서도 점과 부호 등의 각필 흔적을 처음으로 발견, 한국에서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입장을 바꿨다. 2000년 말에는 우리 문헌에 각필로 새겨진 구결(口訣)이 일본 가나의 원류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일본 가나의 한반도 유래설을 다룬 고바야시 교수의 주장은 2000년 11월 일본 공영방송인 NHK 메인 뉴스에서 비중있게 보도된 이래 지금까지 그의 연구활동을 추적하는 취재팀이 구성돼 있을 정도라고 한다. 도쿄 문리과대를 졸업, ‘각필문헌의 국어학적연구’ ‘각필이 안내하는 세계’ 등의 저서가 있다.


新羅文献で日本行くが似ている文字発見される

1200余年の前新羅人の手によってスィになって日本列島に渡った一冊の継ぎ紙仏経が日本行くが文字の起源を明らかにしてくれる鍵に浮び上がっている.

日本言論たちは 3日その間日本人が引き写して来たことに推定された元曉の ‘パンビリャングでは(判比量論)’が新羅で書かれた文書であり, 日本仮タカや文字が韓国から越えて来た可能性が大きいという小林Yoshinori(小林芳規) 教授の主張をグァンシムギブゲ報道した.

東京新聞はこの日Fujimoto(藤本幸夫) 富山大学教授の言葉を引用, “漢字を読む補助手段としての片仮名の原型が韓国にあった可能性はある”と “新羅の文献で片仮名に似ている文字が発見されたことは貴重な事実”と評価した. 前日京都で開かれた記者会見場でも 10人余りの日本記者たちは ‘仮タカや韓国由来書を’に対してのべつ幕無しに質問をこぼし出した.

事実, 今度新羅の文書で確認された ‘パンビリャングでは’はその間日本人が新羅へ行って引き写して来たことに推測された. 日本がこれを重要文化財(宝物級)と指定したこともそのため. しかし, 誤打だから大学のMiyazaki健司(宮崎健司) 教授が 97年紙の地質(紙質)と当時情況をよく見る時新羅で作ったのではないかと言う疑問を申し立てる始まったし, 小林教授は今度新羅人のガックピルを確認することでこの主張を裏付けたのだ.

‘パンビリャングでは’では数十種類のガックピルが発見された. 特に漢字発音を読むための ‘文章符号’のように見えるガックピルが多数発見されたが, これは以後日本で発見されるガックピル文章符号とは全然違った模様のものなどだ. 日本人が引き写した本なら新羅式ガックピルまで引き写すわけがないという論理だ.

日本仮タカや文字の起源問題と関連, すごい気を引くことは漢字の発音を表示したように見える符号二つだ. 一番目は根およそ(根)定木そばに使われた ‘マリ’という字だ. この字中 ‘マ’字は部(部)自分の考え右側部(右阜傍) 部分を減らしたことで ‘リ’字は ‘里(利)’者を減らしたようだと小林教授は推測した. この中 ‘リ’字は現代日本片仮名でも ‘里’で読む. ‘くちばし’と書いたことに推測されるという主張だ. また一寝る ‘球(共)’字横に書かれた ‘宮(宮)’という漢文字だ.

小林教授は “三国史記に見れば元曉大師の息子であるソルチォングが仏経を新羅の言葉で読んだという文があるのに, ガックピルの発見されながらこの言葉がソルチォングが新羅語でガックピルを使用, 仏経を解いたことだという意味だと推測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と付け加えた.

もちろん発見されたガックピルが本当に ‘くちばし’と読んだことか, また本当に片仮名の起源かはまだわからないということが小林教授の愼重な立場だ. 特に現代語 ‘根’は 15世紀時までにしても ‘ブルフィ’と読ませたから, 果してこの字が ‘くちばし’というのが妥当なのかはまだ解けない問題という説明だ. また新羅時代の言語を推測するにも失礼がすぎるほど少ないという点も限界点だと小林教授は自ら指摘した.

小林教授の主張に対して国内学者たちも敏感な反応を見せている. 安ビョンヒソウル大名誉教授は “根およそ(根)の 15世紀発音は ‘ブルフィ’であるから新羅時代に ‘くちばし’で読んだ可能性はなくて, ‘マ’を部(部)の弱者に見にくい”と言った. 南風県韓国口訣学会会長は “新羅時代に根を ‘くちばし’で読んだ可能性はないが, ‘マ’を部(部)の弱者に書いた事例は何回も出る”と “ガックピル研究の権威者である小林教授が新しい資料発掘を通じて日本片仮名の新羅伝来説を主張したことはとてもおもしろくて価値がある”と言った. 一方美術史学者である雨降り部屋梨花女大教授は “新聞に紹介された ‘パンビリャングでは’の筆記体が非常に活逹で立派だ”と “新羅人の筆文字研究にも非常に貴重な資料”で評価した.


◆小林教授は/ ガックピル権威者, 酸っぱいか-高麗仏経にも跡発見

小林Yoshinori(小林芳規・73) 教授は 1961年日本で最初でガックピル文献を捜し出した東アジア各必至区の権威者だ. 日本学者としては最高の栄誉である ‘恩師上’(恩賜賞)と ‘日本学士原状’(日本学士院賞)を相次いで受賞したりした.

小林教授は最初日本文献の原文漢字横にガーナと一緒に各ピロー刻まれて漢字発音や翻訳手順を知らせてくれる役目を一フンゾム(訓点)が日本の独自的発明だと主張して来た. これが徐徐にガーナ文字で発展したというのだ. しかし 2000年7月ソウルソングアムゴソバックムルグァンの新羅・高麗仏経でも点と符号などのガックピル跡を初めて発見, 韓国で伝わった可能性が高いと立場を変えた. 2000年末には私たち文献に各ピロー刻まれた口訣(口訣)が日本ガーナの源流である可能性が高いという主張まで広げた. 日本ガーナの韓半島来由説を扱った小林教授の主張は 2000年 11月日本公営放送である NHK メインニュースで比重ありげに報道された以来今まで彼の研究活動を追跡する取材チームが構成されているほどだと言う. 東京文理過大を卒業, ‘ガックピルムンホンの国語学籍研究’ ‘ガックピルが案内する世界’ などの著書が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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