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俺はコーヒーがすきだという主張と
俺は紅茶がすきだという主張との間には
コーヒーと紅茶の優劣についての
ディスカッションの成立する余地はない。
論争がしばしば無意味で不毛なのは,
論争者がただもっともらしいレトリックで
自己の嗜好を相互にぶつけ合っているからである。
自己内対話は,自分のきらいなものを自分の精神のなかに位置づけ,
あたかもそれがすきであるかのような自分を想定し,
その立場に立って自然的自我と対話することである。
他在において認識するとはそういうことだ。
国際交流よりも国内交流を,
国内交流よりも,人格内交流を!
自己自身のなかで対話をもたぬ者が
どうしてコミュニケーションによる進歩を信じられるのか。」
丸山眞男『自己内対話』,みすず書房,1998年。
私がkj clubの議論を読んで不毛だと思う点は、
丸山がかつて指摘した「自己内対話」の重要性を
kj参加者の多くが軽視しているからだと思う。
レトリックを駆使し、自己の「嗜好」とやらを他者に押し付ける前に、
私たちがやるべきことは、自分自身への真摯な問いかけだと思う。
丸山眞男の言う「引き下げデモクラシー」の醜態が今も横行する現代
近代的主体としての「啓蒙的理性」を自己の内部の殻から「開かれた精神」へ
「理性と知性の専制主義」から私たちの精神を開かれた地平線へ救い出すこと
他者との「不断のコミュニケーション」と
その不断の「内面化」による「主体」内部での「緊張関係」の維持、
「自己内対話」の永続的な展開
これこそが「永久革命」としての近代民主主義という「構¥想」に他ならないのだから。
この掲示板の参加者がどんな「構¥想」を持ち、
どんな「嗜好」でどんな「レトリック」で他者を批判してもよい。
ただ、どの場合でも自分自身との常なる対話は大切にしたいと思う。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고 하는 주장과
나는 홍차를 좋아한다고 하는 주장과의 사이에는
커피와 홍차의 우열에 대한
디스커션의 성립하는 여지는 없다.
논쟁이 자주 무의미하고 성과가 없는 것은,
논쟁자가 단지 지당한 것 같은 리토릭으로
자기의 기호를 서로 서로 부딪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내 대화는, 자신의 싫어하는 것을 자신의 정신 속에 평가해
마치 그것을 좋아하는가와 같은 자신을 상정해,
그 입장에 서서 자연적 자아라고 대화하는 것이다.
타재에 대해 인식한다고는 그런 것이다.
국제 교류보다 국내 교류를,
국내 교류보다, 인격내 교류를!
자기 자신 속에서 대화를 가지지 않는 사람이
어째서 커뮤니케이션에 의한 진보를 믿을 수 있는 것인가.」
마루야마 마코토남 「자기내 대화」, 봐 주석 서점, 1998년.
내가 kj club의 논의를 읽어 성과가 없다고 생각하는 점은,
마루야마가 일찌기 지적한 「자기내 대화」의 중요성을
kj참가자의 대부분이 경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리토릭을 구사해, 자기의 「기호」인지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것은, 자기 자신에게의 진지인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마루야마 마코토남이 말하는 「인하 민주주의」의 추태가 지금도 횡행하는 현대
근대적 주체로서의 「계몽적 이성」을 자기의 내부의 껍질로부터 「열린 정신」에
「이성과 지성의 전제 주의」로부터 우리의 정신을 열린 지평선에 구조해 내는 것
다른 사람과의 「부단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그 부단한 「내면화」에 의한 「주체」내부에서의 「긴장 관계」의 유지,
「자기내 대화」의 영속적인 전개
이것이 「영구 혁명」으로서의 근대 민주주의라고 하는 「구상」과 다름없으니까.
이 게시판의 참가자가 어떤 「구상」을 가져,
어떤 「기호」로 어떤 「리토릭」으로 다른 사람을 비판해도 괜찮다.
단지, 어느 경우에서도 자기 자신과의 상 되는 대화는 소중히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