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国の窃盗団により日本に不法搬入された文化財を日本から取り戻すことに成功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300&key=20170913.22009005157国際新聞 (韓国語) 2017.9.13
日本に盗品である事実を突きつけ取り戻した英雄はヤン・メンジュン釜山博物館長ら2人
「日本に奪われた15世紀の朝鮮時代の墓誌が再び戻ってきた涙が出ます」
国外素材文化財財団(以下、国外財団)が朝鮮王朝初期を代表するイ・ソンジェ(1390~1453)の墓から盗掘された墓誌(亡者の行跡を書いて墓に付着した石や図版)が1998年6月金浦空港を通じて日本に不法搬出されたが、先月24日、19年ぶりに故国に戻ってきたと12日明らかにした。
墓誌は高さ28.7センチ、最大幅25.4センチの磁器製。李先斉の事績が表裏・側面に248の文字で記されており、保存状態は良好という。史料としてだけでなく美術品としての価値も高いとされ、今後、韓国の文化財に指定される可能性もある。
墓地が故国に戻ることが出来ることになった功労者は、この資料が盗難品であることを立証する図が決定的な契機になった。絵を描いた人は当時金海空港文化財鑑定官室で働いていたヤン・メンジュン(66)前釜山博物館長とチェ・チュンウク鑑定委員である。2013年釜山博物館で退任した前館長は、現在、釜山市文化財委員として活動中だ。
この日会ったヤン前館長は、20年以上前のことをありありと思い浮かべ感激した。イ墓誌は、日本で抜け出す約1ヶ月前の1998年5月に金海空港からまず搬出しようとする動きがあった。彼は「当時の墓誌を見てすぐにチェ鑑定委員と一緒に盗まれた文化財であると直感し疑った」と述べた。
二人はイ墓誌の搬出を許さないために3、4日間文化財鑑定官室に泊まり込んで二枚の絵に残した。また、これをもとに文化財管理局(現文化財庁)に情報提供調書を送った。イ墓誌は、重要な文化財であることは知っていたが、盗まれた文化財のリストに上がっていないと通知が来たために差し押さえ措置や捜査機関に申告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ヤン前館長は「当時、これらのレポートを全国の空港や港など散布たが、最終的には、日本に不法搬出された。その時の不安感や挫折感は言葉で表現できない」と回想した。全羅南道光州にいたイ・ソンジェの墓からこっそり盗掘された墓地は、二人の努力も虚しく最終的には1カ月後、国内の文化財窃盗団によってスーツケースに隠されて金浦空港を通じて日本に不法搬出された訳だ。
国外財団は2014年10月にイ墓誌の所在を日本国内で確認した後、返還させる為に全力を挙げた。二枚の絵に墓地の形態と名門(銘文)まで詳しく描写されて現代に不法に売買されたという事実を日本人所蔵者に何度も突きつけて粘り強く交渉し奪還することができた。
川林産国外財団チーム長は「2人の誠実な公務員がなければ、不法盗難品という事実を究明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だろう。返還の理由が違法盗難品という事実を話したら知らずに購入した所蔵者もようやく断念して心を開き所蔵を諦めた」と2人の努力を褒め称えた。韓国に戻ったイ墓誌は日本人所蔵者の意思に応じて、国立中央博物館に寄贈された。博物館は20日から10月31日まで、朝鮮室でイ墓誌を展示する。
한국의 절도단에 의해 일본에 불법 반입된 문화재를 일본에서 되찾는 것에 성공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300&key=20170913.22009005157국제 신문 (한국어) 2017.9.13
일본에 도품인 사실을 들이대어 되찾은 영웅은 얀·멘즐 부산 박물관장등 2명
「일본에 빼앗긴 15 세기의 조선시대의 묘지가 다시 돌아온 눈물이 나옵니다」
국외 소재 문화재 재단(이하, 국외 재단)이 조선 왕조 초기를 대표하는 이·손 제이(1390~1453)의 무덤으로부터 도굴된 묘지(망자의 행적을 써 무덤에 부착한 돌이나 도판)가 1998년 6월 김포공항을 통해서 일본에 불법 반출되었지만, 지난 달 24일, 19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고 12일 분명히 했다.
묘지는 높이 28.7센치, 최대폭 25.4센치의 자기제.리처제의 업적이 표리·측면으로 248의 문자로 기록되고 있어 보존 상태는 양호라고 한다.사료로서 뿐만이 아니고 미술품으로서의 가치도 높다고 여겨져 향후, 한국의 문화재로 지정될 가능성도 있다.
묘지가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공로자는, 이 자료가 도난품인 것을 입증하는 도화 결정적인 계기로 되었다.그림을 그린 사람은 당시 김해 공항 문화재 감정관실에서 일하고 있던 얀·멘즐(66) 전 부산 박물관장과 최·틀우크 감정 위원이다.2013년 부산 박물관에서 퇴임한 전 관장은, 현재, 부산시 문화재 위원으로서 활동중이다.
이 날 만난 얀전 관장은, 20년 이상전의 일을 또렷이 떠올려 감격했다.이 묘지는, 일본에서 빠져 나가는 약 1개월전의 1998년 5월에 김해 공항으로부터 우선 반출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그는 「당시의 묘지를 보자마자 최 감정 위원과 함께 도둑맞은 문화재이라고 직감 해 의심했다」라고 말했다.
두 명은 이 묘지의 반출을 허락하지 않기 위해(때문에) 3, 4일간 문화재 감정관실에 묵어 2매의 그림에 남겼다.또, 이것을 기초로 문화재 관리국(현문화재청)에 정보 제공 조서를 보냈다.이 묘지는, 중요한 문화재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도둑맞은 문화재의 리스트에 오르지 않았다고 통지가 왔기 때문에 압류 조치나 조사기관에 신고할 수 없었다.
얀전 관장은 「당시 , 이러한 리포트를 전국의 공항이나 항구 등 살포가, 최종적으로는, 일본에 불법 반출되었다.그 때의 불안감이나 좌절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라고 회상했다.전라남도 광주에 있던 이·손 제이의 무덤으로부터 몰래 도굴된 묘지는, 두 명의 노력도 허무하고 최종적으로는 1개월 후, 국내의 문화재 절도단에 의해서 슈트 케이스에 숨겨지고 김포공항을 통해서 일본에 불법 반출된 (뜻)이유다.
국외 재단은 2014년 10월에 이 묘지의 소재를 일본내에서 확인한 후, 반환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2매의 그림에 묘지의 형태와 명문(명문)까지 자세하게 묘사되어 현대에 불법으로 매매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일본인 소장자에게 몇번이나 들이대어 끈질기게 교섭해 탈환할 수 있었다.
강임산 국외 재단 팀장은 「2명의 성실한 공무원이 없으면, 불법 도난품이라고 하는 사실을 구명할 수 없었을 것이다.반환의 이유가 위법 도난품이라고 하는 사실을 이야기하면 알지 못하고 구입한 소장자도 간신히 단념하고 마음을 열어 소장을 단념했다」라고 2명의 노력을 칭찬해 칭했다.한국으로 돌아온 이 묘지는 일본인 소장자의 의사에 따르고, 국립 중앙 박물관에 기증되었다.박물관은 20일부터 10월 31일까지, 조선실에서 이 묘지를 전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