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그런데, 현재의 구하징가 주택·주가게의 평면도이다.우측으로 토방(작업 공간), 좌측으로 거실(거주 공간)을 둔다.제일 좌측은 「서학루」라고 불리는 안쪽의 zashiki로, 1835년 건조.4 방 배치 부분의 zashiki는 정면으로 현관 마루 현관이 설치되어 있으므로, 「현관의 사이」적인 의미가 강할 것이다.

 

 

 그러면, 우선은 토방으로부터 보고 간다.우측으로 보이는 사무소 부분이, 원래는 마야(maya)로, 소나 말을 기르고 있던 장소.사진 좌옥에 부뚜막이 있다.

 

 

  근대적인 벽돌 구조의 부뚜막이 보였다.토방의 이 부분을 카마야(kamaya)라고 부르고 있다.사진 중앙의 큰 대들보는 「연기 반환의 대들보」라고 해지고 부뚜막으로부터 나오는 연기를 차단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덧붙여서 자신의 집의 토방도 이것과 같은 배치로, 연기 반환의 대들보도 존재했지만, 40년 이상전에 현대적인 부엌과 거실에 개조했으므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부뚜막은 옛날은 kudo로 불려 킨키 지방이 많은 민가에서 취사에 사용되었다.킨키 지방에서는, 취사는 난로보다 부뚜막의 사용이 중심이다.또, 오사카의 민가에서는 난로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구하징가도, 자신의 집도, 난로가 존재하지 않는다.추운 경우는, 오로지 화로에 의지할 뿐.

 

 

 토방을 올려보자.일본의 민가는, 구조를 보는 재미가 강하게 느껴진다.

 자리수 방향으로 3개의 대들보(도리 간수대들보)가 통과한다.앞에서 리우량, 중우량, 표 우량이다(사진은 뒤편에서 겉으로 향해 찍었다).표 우량과 리우량의 사이가, 정확히 주가게의 몸사폭에 상당한다.그리고, 중우량이 중간 지점이 되도록(듯이) 몸사 대들보(오두막대들보)를 걸쳐 놓고 있다.이와 같이, 중간의 도리 간수대들보를 오두막대들보의 중간 지점으로 하는 구조가, 킨키 지방 old 민가의 특징이다고 한다(물론, 예외도 있지만).

 또, 토방상에 죽책자 천정을 씌우고 지붕 밑을 보이지 않지만, 이것도 킨키 지방의 민가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양식이다.

 

 

 토방에서 굉장한 것이 쿠마토리쵸의 「츄우카 주택」(17 세기, 중요문화재).오사카에서도 최대급의 토방을 가지고 있다.과연 키시와다번의 필두 촌장만의 (일)것은 있다.

 Daidoko가 토방에 돌출하는 「식 있어 차이계」의 사이 잡기로, 이것은 센슈 남부나 와카야마현 북부(중세 말기, 네고로사 지배 지역)에 퍼지고 있지만, 구조적으로는 오모테, 안, 뒤에 도리 간수대들보를 통해, 중앙의 도리 간수대들보를 중간 지점으로서 오두막대들보를 두고 있어 오사카의 정형 4 방 배치와 크게 공통되고 있다.양자는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는 것일까.

 또, 이 건물은 zashiki경계가 완전하게 벽(사진우오의 벽)에서 닫혀지고 있어 시대의 낡음을 느끼게 한다.그리고 그 zashiki에는, 당초는 툇마루로부터 직접 출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에, 여기의 daidoko에 코스프레 닌자가 등장했다!

 

 

 ···구하징가로 돌아오자.다음에, 토방으로부터 거실을 본다.거실의 앞에 마루의 「히로시키」가 있다.여기는 사용인의 식사 스페이스였거나, 수면 장소이기도 했다.또, 본 대로, 거실에의 출입구이기도 하다.

 거실의 개구부는, 사진 우측의 daidoko가 1간반, 좌측의 kuchinoma가 2간으로 daidoko와의 경계가 반간 좁다.각각 미닫이를 넣어 나누지만, daidoko와의 경계는 밝혀내 도랑의 3매문으로, 문은 구석의 반간 부분에 3매 거두고 있다.그 결과, 사진과 같이 크고 통로 할 수 있다.

 

 

 다음에, 거실을 보자.사진 앞이 daidoko로, 안쪽이 nando.그 경계는 1간반으로, 상목집주택에서(보다) 쭉 개방되었다.단지, zashiki와 nando와의 경계가 아직 완전하게 닫히고 있지만.여기가 완전하게 개방되어 4개의 방모두를 일체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오사카에서는 19 세기 이후의 일로이다.

 

 

 일본 민가에서 눈에 띄는 것의 1개에 「차이 상인방」이 있다(사진은 자신의 집의 차이 상인방).이것이 거실의 방 경계로 종횡에 다니고 있는 것은 일본 민가만이 가능한 경치일 것이다(무사의 집이나 귀족의 집은, 차이 상인방이 적다).자신의 집의 차이 상인방은 꽤 크지만(시대가 내리면 성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별로 크면 좋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너무 크면 무거워지고, 가려지는 기둥에 부담이 온다.

 특히 거실의 중앙에 있어 구조상도 중요한 안중심은, 손상을 막기 위해 4분마주 앉음(4 방향에서 가려진다)을 피하는 경향에 있다.예를 들면 구하징가에서는 nando와 zashiki의 경계가 벽이므로 문제 없고, 자신의 집에서는, 그 경계를 적상인방으로 하는 것으로, 4분마주 앉음을 피하고 있다.

 덧붙여서 일본에서 가장 낡은 차이 상인방은 1607년 건조의 쿠리야마가 주택(고죠시)에서, 킨키 지방은 다른 지역에서(보다) 옛부터 차이 상인방을 사용하고 있었다.

 

 

 Nando 사진.사진 좌측이 벽(nando와 zashiki의 경계)에서 닫히고 있다.당연, 여기에는 차이 상인방이 들어가지 않는다.사진 우측이 개방되고 툇마루가 되어 있지만, 여기가 개방적으로 되는 것은 에도시대라도 시대가 내리고 나서이므로, 당초는 닫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사카의 호농의 거실은 대개 이런 식으로 비슷비슷함이지만, 시대가 내리는 것에 따라 개방적으로 되어, 최종적으로 벽이 모두 철거해지고, 4개의 방모두를 일체화 할 수 있게 되어 갔다.그 4 방 배치의 기원은 상목집주택이나 후루이가 주택과 같은 개막 출연부 3 방 배치로, 이미 이즈미시의 화기 유적의 가마쿠라 시대의 옛날 건축의 잔존물로부터, 개막 출연부 3 방 배치라고 생각되는 것이 몇 채 확인되고 있는 것 같다.단지, 그 구조는 중앙의 도리 간수대들보를 오두막대들보의 중간 지점으로 하는 것이 많아, 킨키 지방 이외의 「객실형 주거」란 크게 차이가 난다고 한다.

 뭐, 자신은 객실형의 old 민가는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왠지 말할 수 없지만, 금년의 새로운 목표가 1개증가했다.「많은 객실형 주거를 본다」.이것이다.

 

 

 그리고, 오사카에서 또 하나 신경이 쓰이는 옛날 건축의 잔존물이 토요나카시의 일본 민가 취락 박물관에 있었다.「구이즈미야 주택」이다(17 세기 후반, 중요문화재).

 이 건물은 건물 벽쪽의 출입구에서, 방 배치는 상당히 일반과 다르고 있지만( 「섭단형」이라고 불려 중세 말기, 관령·호소카와씨의 지배 지역에 많이 볼 수 있다), 구조는 3개의 도리 간수대들보가 대로, 중앙의 형량을 중간 지점으로 할 것 같게 오두막대들보를 두고 있어 많은 킨키 지방의 평들이 민가와 닮아 있도록(듯이)도 생각된다.오두막조는 Sasu 구조는 아니고 서까래 구조이고, 전체적으로 폐쇄적으로 매우 낡음이 눈에 띄지만, 이 집의 종적관계형의 방 배치나 구조가, 일반적인 킨키 지방의 민가와 어떻게 관계가 있는지, 매우 흥미롭다.단지, 너무 길어 지므로 , 이것으로 끝난다.

 

뒷모습.가는 률의 기둥을 조밀하게 늘어놓아 세워 토담을 두껍게 해 구조적으로 보강하고 있다.

 

마지막

 

 

 


続・大阪豪農の家

 

 さて、現在の旧河澄家住宅・主屋の平面図である。右側に土間(作業空間)、左側に居間(居住空間)を置く。一番左側は「棲鶴楼」と呼ばれる奥のzashikiで、1835年建造。4間取り部分のzashikiは正面に式台玄関が設置されているので、「玄関の間」的な意味合いが強いだろう。

 

 

 それでは、まずは土間から見ていく。右側に見える事務所部分が、元はマヤ(maya)で、牛や馬を飼っていた場所。写真左奥に竈がある。

 

 

  近代的なレンガ造りの竈が見えた。土間のこの部分をカマヤ(kamaya)と呼んでいる。写真中央の大きな梁は「煙返しの梁」と言われ、竈から出る煙を遮る役割を担う。因みに自分の家の土間もこれと同じ配置で、煙返しの梁も存在したが、40年以上前に現代的な台所と居室に改造したので、今は存在しない。

 竈は昔はkudoと呼ばれ、近畿地方の多くの民家で炊事に使用された。近畿地方では、炊事は囲炉裏より竈の使用が中心である。また、大阪の民家では囲炉裏が存在しない場合も多い。旧河澄家も、自分の家も、囲炉裏が存在しない。寒い場合は、専ら火鉢に頼るのみ。

 

 

 土間を見上げよう。日本の民家は、構造を見る面白さが強く感じられる。

 桁方向に3つの梁(桁行梁)が通る。手前から裏牛梁、中牛梁、表牛梁である(写真は裏側から表側に向かって撮った)。表牛梁と裏牛梁の間が、ちょうど主屋の身舎幅に相当する。そして、中牛梁が中間支点となるように身舎梁(小屋梁)を架けている。このように、中間の桁行梁を小屋梁の中間支点とする構造が、近畿地方old民家の特徴であるという(勿論、例外もあるが)。

 また、土間上に竹簀子天井を被せて屋根裏を見せないが、これも近畿地方の民家で一般的に見られる様式である。

 

 

 土間で凄いのが熊取町の「中家住宅」(17世紀、重要文化財)。大阪でも最大級の土間を持っている。さすが岸和田藩の筆頭庄屋だけのことはある。

 Daidokoが土間に突き出る「喰い違い系」の間取りで、これは泉州南部や和歌山県北部(中世末期、根来寺支配地域)に広がっているが、構造的には表、中、裏に桁行梁を通し、中央の桁行梁を中間支点として小屋梁を置いており、大阪の整形4間取りと大きく共通している。両者は非常に近い関係にあるのだろう。

 また、この建物はzashiki境が完全に壁(写真右奥の壁)で閉じられており、時代の古さを感じさせる。そしてそのzashikiには、当初は縁側から直接出入りしていたのである。

 

 

・・・・・しばらくすると、ここのdaidokoにコスプレ忍者が登場した!

 

 

 ・・・旧河澄家に戻ろう。次に、土間から居間を見る。居間の手前に板敷きの「ヒロシキ」がある。ここは使用人の食事スペースだったり、睡眠場所だったりした。また、見ての通り、居間への出入り口でもある。

 居間の開口部は、写真右側のdaidokoが1間半、左側のkuchinomaが2間と、daidokoとの境が半間狭い。それぞれに引き戸を入れて仕切るが、daidokoとの境は突き止め溝の3枚扉で、扉は端の半間部分に3枚収めている。その結果、写真のように大きく開口出来るのだ。

 

 

 次に、居間を見よう。写真手前がdaidokoで、奥がnando。その境は1間半で、箱木家住宅よりずっと開放された。ただ、zashikiとnandoとの境がまだ完全に閉ざされているが。ここが完全に開放され、4つの部屋全てを一体化できるようになるのは、大阪では19世紀以降のことである。

 

 

 日本民家で目に付くものの1つに「差鴨居」がある(写真は自分の家の差鴨居)。これが居間の部屋境に縦横に通っているのは日本民家ならではの景色だろう(武士の家や貴族の家は、差鴨居が少ない)。自分の家の差鴨居はかなり大きいが(時代が下ると成が高くなる傾向がある)、別に大きければ良いという訳ではない。あまり大きいと重たくなるし、差される柱に負担がくる。

 特に居間の中央にあって構造上も重要な内大黒柱は、損傷を防ぐ為に4方差し(4方向から差される)を避ける傾向にある。例えば旧河澄家ではnandoとzashikiの境が壁なので問題ないし、自分の家では、その境を吊鴨居とすることで、4方差しを避けている。

 因みに日本で最も古い差鴨居は1607年建造の栗山家住宅(五條市)で、近畿地方は他の地域より古くから差鴨居を使用していた。

 

 

 Nando写真。写真左側が壁(nandoとzashikiの境)で閉ざされている。当然、ここには差鴨居が入らない。写真右側が開放されて縁側になっているが、ここが開放的になるのは江戸時代でも時代が下ってからなので、当初は閉じられていたのだろう。

 

 さて、大阪の豪農の居間は大体こんな感じで似たり寄ったりだが、時代が下るにつれて開放的になり、最終的に壁が全て取り払われて、4つの部屋全てを一体化出来るようになっていった。その4間取りの起源は箱木家住宅や古井家住宅のような前座敷3間取りで、既に和泉市の和気遺跡の鎌倉時代の遺構から、前座敷3間取りと思われるものが数軒確認されているらしい。ただ、その構造は中央の桁行梁を小屋梁の中間支点とするものが多く、近畿地方以外の「広間型住居」とは大きく異なっているという。

 まあ、自分は広間型のold民家はほとんど見ていないので、何とも言えないが、今年の新しい目標が1つ増えた。「多くの広間型住居を見る」。これである。

 

 

 あと、大阪でもう1つ気になる遺構が豊中市の日本民家集落博物館にあった。「旧泉屋住宅」である(17世紀後半、重要文化財)。

 この建物は妻入りで、間取りは結構一般と異なっているが(「摂丹型」と呼ばれ、中世末期、管領・細川氏の支配地域に多く見られる)、構造は3つの桁行梁が通り、中央の桁梁を中間支点とするように小屋梁を置いており、多くの近畿地方の平入り民家と似ているようにも思える。小屋組はSasu構造ではなく垂木構造だし、全体的に閉鎖的で非常に古臭さが目立つが、この家の縦割り型の間取りや構造が、一般的な近畿地方の民家とどう関係があるのか、非常に興味深い。ただ、長くなり過ぎるので、これで終わる。

 

後姿。細い栗の柱を密に並べ立て、土壁を分厚くして構造的に補強している。

 

終わ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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