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世晃(1713~1791)의 그림 松都紀行帖에 묘사된 開城의 번화가 / 1757년 製作
松都紀行帖 - 조선 후기의 文臣 姜世晃이 1757년에 그린 그림
북한의 開城市 南大門에서 北部大路까지 1Km 구간은 전통 한옥 保存地區로써
이 지역의 한옥 기와집 300家屋은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건립된 조선시대의 傳統 家屋이다.
따라서 역사적 保存價値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런데 開城 한옥 保存地區의 주택을 자세히 보면
오른쪽의 家屋의 지붕은 기와 지붕이 아니다.
이런 형태의 지붕은 일본인에게는 생소할 것이다.
이런 형태의 지붕을 가진 집을 한국에서는 靑石집이라고 命名하며
이런 형태의 지붕을 靑石 지붕이라고 한다.
靑石 지붕은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도 있었으며
조선시대에는 강원도나 충청북도, 경기도 북부 開城에서
비싼 기와 지붕 대신 庶民層 집의 지붕 재료로써 愛用되었다.
靑石이란 薄板으로 쪼개지는 납작한 粘板岩으로
경기도 북부 지역에서는 채취하기가 쉬워서
비싼 기와 대신 지붕 재료로써 자주 사용되었다.
姜世晃(1713‾1791)の絵 松都紀行帖に描写された 開城の繁華街 / 1757年 製作
松都紀行帖 - 朝鮮後期の 文臣 姜世晃が 1757年に描いた絵
北朝鮮の 開城市 南大門から 北部大路まで 1Km 区間は伝統韓屋 保存地区として
が地域の韓屋瓦の家 300家屋は 15世紀から 19世紀まで
建立された 朝鮮時代の 伝統 家屋だ.
したがって歴史的 保存価値はどんなこととも比べることができない.
ところで 開城 韓屋 保存地区の 住宅を 詳らかに見れば
右側の 家屋の屋根は瓦屋根ではない.
こんな形態の屋根は日本人には疎いだろう.
こんな形態の屋根を持った家を韓国では 青石家だと 命名して
こんな形態の屋根を 青石 屋根だと言う.
青石 屋根は三国時代や高麗時代にもあったし
朝鮮時代には江原道や忠清北道, 京畿道北部 開城で
高い瓦屋根代わりに 庶民層 家の屋根材料として 愛用になった.
青石と言う(のは) 薄板で割れる平たい 粘板岩で
京畿道北部地域では採取しやすくて
高い瓦代わりに屋根材料としてよく使われ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