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공예
박
박공예는 박을 삶아서 반으로 쪼개거나 원하는 모양으로 잘라 속을 파내고 표면을 매끄럽게
손질하여 건조시킨다
건조된 박 표면에 민화 산수화 십장생 등 그림을 그리거나 완자무늬 태극무늬 방초무늬
귀갑 무늬 등 다양한 문양으로 표현하여 만든 민속 공예이다
도자기 나전칠기와 같은 고급 공예품을 아니지만
繪畵 투각 채색 낙화 등 다양한 기법으로 제작되는 예술품이다
박을 언제부터 생활도구로 사용하였는지 문헌으로 보면
고려시대 이규보 李奎報의 (東國李相國集)에 물을 퍼내는 바가지로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시대 (東國歲時記)에는 아이들이 겨울 부터 파랑 노랑 빨강으로 물들인 호리병 박을
몸에 지니고 다니다가 정월대보름 전야에 몰래 길에 버려 나쁜 액을 물리친다는 증표로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박은 호리병이나 바가지 등 생활도구로 사용되어 왔으나
1945년 플라스틱 제품의 출현으로 점차 우리의 생활 속에서 멀어졌고 박을 재배하는 농가도
줄어들었다
과거에는 부엌의 살림살이 생활도구로 사용되어 오던 박이 공예품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반 무렵이었다고 한다
초기의 박공예는 多産 無病長壽 등 주술적 목적의 繪畵 기법으로 제작되었으나 점차 자유로운
표현의 공예품이 제작되었다
공예가 서경순씨 작품입니다
박공예는 누구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동아일보 1982년 11월 1일 기사에 의하면 박공예 연구회 회장 이여옥 李如玉회장을
박공예를 한국에 정착시킨 인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李如玉 회장 인터뷰에 의하면
페루에 있던 조카가 표면에 무늬가 새겨진 그 곳의 바가지를 보내 주었는데 거기에서 힌트를 얻어
한국에 흔히 있는 박 바가지에 조각을 하면 훨씬 멋있겠다 라고 생각하여
박공예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李 女史의 박공예는
주로 인두나 조각칼을 사용해 겉 표면에 그림을 새겨 넣는 것인데
인두는 납을 때우는 용도의 인두를 납작하고 뽀족하게 갈아 만든 공예용 電氣 인두 입니다
1980년대 와서 물감을 많이 사용한 박 공예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는데
간단하게 붓으로 그림을 그려 가구 마감재로 쓰이는 바니쉬로 덧칠해 건조시키는 등
제작기법도 다양해졌습니다
朴工芸
朴
朴工芸は打ちこむ煮って半分で割るとか願う模様で切ってだまされる掘りだして表面を滑っこく
手入れして乾燥させる
乾燥した朴表面に民画山水画十長生など絵を描くとか丸字柄太極柄芳草柄
亀甲柄など多様な文様で表現して作った民俗工芸だ
陶磁器螺午漆器のような高級工芸品がいやだが
絵画 すかしぼり彩色落花など多様な技法に製作される芸術品だ
打ちこむいつから生活道具で使ったのか文献で見れば
高麗時代リ・キュボ 李〓報の (東国李相国集)に水を汲み出すひさごで使ったという記録があって
朝鮮時代 (東国歳時記)には子供達が冬から青イエロー赤で染めたとっくり朴を
身に持って通っている途中小正月前夜に密かに道に捨てて悪い額を退けるという印で
使ったという記録がある
こんなに打ちこんだとっくりやひさごなど生活道具で使われて来たが
1945年プラスチック製品の出現で徐徐に私たちの生活の中で遠くなったし打ちこむ栽培する農家も
減った
過去には台所の暮し向き生活道具で使われて来た朴が工芸品で脚光を浴び始めたことは
1970年代初盤頃だったと言う
初期の朴工芸は 多産 無病長寿 など呪い的目的の 絵画 技法に製作されたが徐徐に自由な
表現の工芸品が製作された
工芸家ソギョングスンシ作品です
朴工芸は誰によって初めて始まったのか分からないが
東亜日報 1982年 11月 1日記事によれば朴工芸研究会会長イヤー屋 李如玉会長を
朴工芸を韓国に定着させた人物に紹介しています
李如玉 会長インタビューによれば
ペルーにあった甥が表面に柄が刻まれた その所の ひさごを送ってくれたがそこでヒントを得て
韓国によくある朴ひさごに切れをすればずっと格好よいと思って
朴工芸を始めるようになったと言います
李 女史の朴工芸は
主に焼きごてや切れ刀を使って表表面に絵を刻んで入れることなのに
焼きごては鉛を 済ます用途の焼きごてが平たくてポゾックするように行って作った工芸用 電気 インもです
1980年代来て絵の具をたくさん使った朴工芸家人気を呼び始めたが
簡単に筆で絵を描いて行って締め切り嶺で使われるバニスィに上塗りして乾燥させるなど
製作技法も多様になりまし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