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보 2호
원각사는 지금의 탑골공원 자리에 있었던 절로, 조선 세조 11년(1465)에 세웠다. 조선시대의 숭유억불정책 속에서도 중요한 사찰로 보호되어 오다가 1504년 연산군이 이 절을 ‘연방원(聯芳院)’이라는 이름의 기생집으로 만들어 승려들을 내보냄으로써 절은 없어지게 되었다.
이 탑은 조선시대의 석탑으로는 유일한 형태로, 높이는 약 12m이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탑 구석구석에 표현된 화려한 조각이 대리석의 회백색과 잘 어울려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탑을 받쳐주는 기단(基壇)은 3단으로 되어있고, 위에서 보면 아(亞)자 모양이다. 기단의 각 층 옆면에는 여러가지 장식이 화사하게 조각되었는데 용, 사자, 연꽃무늬 등이 표현되었다. 탑신부(塔身部)는 10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3층까지는 기단과 같은 아(亞)자 모양을 하고 있고 4층부터는 정사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각 층마다 목조건축을 모방하여 지붕, 공포(목조건축에서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위에 얹는 부재), 기둥 등을 세부적으로 잘 표현하였다.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적 재료가 화강암인데 비해 대리석으로 만들어졌고, 전체적인 형태나 세부구조 등이 고려시대의 경천사지 10층석탑과 매우 비슷하여 더욱 주의를 끌고 있다. 탑의 윗부분에 남아있는 기록으로 세조 13년(1467)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으며, 형태가 특이하고 표현장식이 풍부하여 훌륭한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韓国国宝 2号
ウォンカク寺は今のタプゴル公園席にあったお寺で, 朝鮮世祖 11年(1465)に立てた. 朝鮮時代の崇儒抑仏政策の中でも重要な査察に保護されて来ている途中 1504年燕山君がこの寺を ‘連邦院(連芳院)’という名前の芸者集で作って僧侶たちを出すことで引きずって行った消えるようになった.
が塔は朝鮮時代の石塔では唯一の形態で, 高める約 12mだ. 大理石で作られたし塔隅々に表現された派手な切れが大理石の灰白色とよく似合ってもっと美しく見える.
塔を支える気団(基壇)は 3段になっていて, 右に出て見ればあ(亜)定木みたいだ. 気団の各階横面にはさまざまな飾りが派手に彫刻されたが竜, 獅子, 蓮華柄などが表現された. 塔身部(塔身部)は 10階で成り立っているし, 3階までは気団のようなあ(亜)定木模様をしているし 4階からは正四角形の平面を成している. 各階ごとに木造建築を模倣して屋根, 恐怖(木造建築で軒を差すために柱上に上げる不在), 柱などを詳細的によく表現した.
我が国の石塔の一般的材料がお影石なのに比べて大理石で作られたし, 全体的な形態や詳細構造などが高麗時代の敬天寺跡 10層石塔と非常に似ていてもっと注意をひいている. 塔の上部に残っている記録で世祖 13年(1467)に作られたことを分かって, 形態が珍しくて表現飾りが豊かで立派な傑作で指折り数えられてい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