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裁判長 -大韓毎日新報 1908年 5月15日字に載せられた広告で 61.042ウォン 33銭がコルブと言う(のは)ボストウィク

会社銀行部にあると言明されたしかし裁判過程で 10.560ウォンは地方人々から集めて

負けたということが明かされた

が金額はどうして広告で言及されなかったのか?

 

梁起鐸はこの質問に対して

61.042ウォンは新聞社で通じて受付された 全金額で他の金額に対しては分からない地方から集めた

10.560ウォンは新聞社で受け付けたお金ではないからよく分からないが総合所で直接受け付けたことだと

思う

10.560ウォンは 61.042ウォンに含まれなかったしマルタンに貸与した 10.000ウォンは 61.042ウォンの一部だと

思う

総合所に振込みされた 32.000ウォンホーム点滴に預置された 30.000ウォン皆 61.042ウォン 33前に皆

大韓毎日新報に広告されたし皆コルブと言う(のは)ボスウイークにあると述べた

 

 

 

 

ベセルが証人で出た

 

裁判長——証人が国債補償金一部をマルタンに貸与してくれたんだって?

ベセル——そうだ  5.000ウォン貸与してくれた

裁判長—25000ウォンではないか?

ベセル——私は二つの別個金額に対して説明したい総合所は 42000ウォン持っていたがこの中 32.000ウォンは大韓毎日新報から 移転になったことで 10.560ウォンは総合所で受け付けたことだ

が回った中に 30.000ホーム点滴上海銀行済物浦代理店に 移転になった

したがって総合所では 12000ウォンほど残っていた

マルタンに貸してくれた金額は新聞社収益から出たことだ  言い替えれば 22.500ウォンは私自分の

口座で 5.000ウォンは香港上海銀行預金から出たことだ

 

梁起鐸のマルタン 10.000ウォンに対して

ベセルはマルタンに何回もかけてお金を貸してくれたがそれが 10.000ほどなった時梁起鐸が

分かったようだ  梁起鐸に貸し下げに対して言った当時には貸し下げが実際で

行われなかったとだと述べた

 

裁判長——-25.000ウォンは金鉱持分投資のためにコルブと言う(のは)ボストウィク会社に移された  のか?

ベセル——そうだ

裁判長—-証人が総合所お金を金鉱持分に投資した同期は?

ベセル—-まず水眼鉱山に投資されたお金は韓国中で流通するはずなので韓国の産業を振興させるでしょう

が投資は非常に安全で収益が高いことと知られたこの投資は梁起鐸は分からなくて

尹雄烈バックヨングギュは分かっている

 

裁判長——5.000ウォンをマルタンに貸してくれたゴッウ担保を取って貸してくれたことか?

ベセル——ない約手で貸してくれた元々マルタンが 18ヶ月の内に任意に引き替えるようにした

しかし私が上海から帰って来て条件が変わって毎月 500ウォンずつ引き替えるようにした

もう二度支払い受けた利子が 9%で満足した

 

裁判長——コルブと言う(のは)ボストウィク銀行の預金に付いた載せようという証人がいただいたか?

ベセル——ない通帳に振り込まれただけだ

 

検事-私の考えに証人が先ほどもっと高い利子を受けるために 30.000ウォンをホーム点滴[上海銀行済物浦 ]で

 

移したと述べたことと思う

しかしお金がそこに長居をしなかった理由は?

ベセル—私はお金を移すほうが良いことなのか 12月に論議した正確な理由は忘れたが小切手に署名した

3人の受託者 [尹雄烈梁起鐸バックヨングギュ]に会うことができなかった基金の一部を金鉱持分に投資する

のの妥当性は 1月に論議になったが受託者たちはもうお金をホーム点滴に預置する事にしたと

言った

それで私は先にお金をコルブと言う(のは)ボストウィクで  から香港上海銀行に移したその日 25.000ウォンを

引き出したことだ香港上海銀行に実際に現金で  預金された金額は 5.000ウォンで 25.000ウォンは

コルブと言う(のは)会社の小切手に送った

 

検事—-私はこの金額を預金した日すぐ引き出す必要が何か分かりたい

ベセル-——金鉱持分投資に何回も協議があったこの協議終わりに梁起鐸が参加したが

彼はこの提案に反対したよって私は決まったとおり預金をしてからお金を引き出したことだ

 

 

検事—-お金の預金と係わって 3人の署名が必要だったのか?

ベセル—-そうだ

検事—-しかし証人は一人で預金を引き出すことができたんだって?

証人はマルタンに貸してくれた 27500ウォンの中に 22.500ウォンは自分の口座で貸してくれたことだと述べた  この金額の内容が何なのか明らかにしなさい

 

 

 

ベセル—-そのお金は大衆にから寄付されたことだもっと正確に言ってどんな特定個人たちから

寄付されたことだ

 

検事——これは新聞で明らかにしたのか?

 

ベセル——これは 61.042ウォン 33前の一部だ

 

検事——22.500ウォンは  国債補償  基金と別個だと証人が言ったことで入ったか?

 

ベセル—-ないこれは総合所基金と関係ないという意味だ 

 

裁判長——証人は総合所とどんな関連がないか?

 

 

ベセル—-あって私は名誉職位を受けたがハングルを読むことができなくてそれが何の意味なのか分からない

 

裁判長—-コルブと言う(のは)ボストウィク銀行にある新聞社の補償基金勘定預金はいくら残っているか?

ベセル——-6.432.48ウォンだ

 

ベセルはここで受付された金額とその処理状況を見せてくれる数字が書かれた紙  1枚を法廷に

提出した国債補償基金で現在まで受付された総額は 61.232ウォン 48銭だ

 

[ これは  1908年 5月15日以後受付された  金額が含まれているのに当時の総額は広告のように 61.042ウォン

33戦 2里ではなく 61.042ウォン 59前に 26前の計算手違いがあった ]

 

が中に 32.300ウォンは総合で 移転になったし 22.500ウォンはマルタンに貸してくれた残り差額で

コルブと言う(のは)ボストウィク銀行に大韓毎日新報の国債補償基金に預入されている金額は 6.432.48ウォンだ

 

裁判長—-どうして証人は 5月15日広告でお金の処理に対して明確に明らかにしないでお金の大部分が銀行にないのに銀行に預金されていると広告したのか?

 

 

ベセルは言い訳を立てて解き明かそうと努力して広告はただいくらの金額が銀行にあるか説明することであるだけ必ず残った銀行残高を意味するのではないなど役目をつけた  しかし質問が繰り返されよう

ベセルはそれは自分の過ちでもうちょっと注意を傾け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と自認めた

 

1908年 9月25日

 

梁起鐸——検事が無罪を要請して言うものがないが検事が最初被告が 140.000ウォンほどを横領したと論告した言葉が新聞に報道されたので私が無罪放兔になっても私の立場(入場)は困られたということを言いたい

 

 

 

 

 

 

 

 

 


양기탁 3차공판

재판장 -대한매일신보 1908년 5월15일字에 게재된 광고에서 61.042원 33전이 콜브란 보스트위크

회사 은행부에 있다고 언명되었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10.560원은 지방 사람들로 부터 모아

졌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금액은 왜 광고에서 언급되지 않았는가?

 

양기탁은 이 질문에 대해

61.042원은 신문사로 통해 접수된 全액수이며 다른 금액에 대해서는 모른다 지방으로 부터 모은

10.560원은 신문사에서 접수한 돈이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르지만 총합소에서 직접 접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10.560원은 61.042원에 포함되지 않았고 마르탱에게 대여한 10.000원은 61.042원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총합소에 이체된 32.000원 홈 링거에 예치된 30.000원 모두 61.042원 33전으로 모두

대한매일신보에 광고되었고 모두 콜브란 보스위크에 있다고 진술하였다

 

 

 

베델이 증인으로 나왔다

 

재판장 ----증인이 국채보상금 일부를 마르탱에게 대여해 주었다는데?

베델 ----그렇다  5.000원 대여해 주었다

재판장 --25000원 아닌가?

베델 ----나는 두가지 별개 금액에 대해 설명하고 싶다 총합소는 42000원 가지고 있었는데 이 중 32.000원은 대한매일신보로 부터 移轉된 것이고 10.560원은 총합소에서 접수한 것이다

이 돈 중에 30.000홈 링거 상하이 은행 제물포 대리점으로 移轉되었다

따라서 총합소에서는 12000원 가량 남아 있었다

마르탱에게 빌려 준 금액은 신문사 수익에서 나온 것이다  다시 말해서 22.500원은 나 자신의

구좌에서 5.000원은 홍콩 상하이 은행 예금에서 나온 것이다

 

양기탁의 마르탱 10.000원에 대해

베델은 마르탱에게 여러 차례 걸쳐 돈을 빌려 주었는데 그것이 10.000쯤 되었을 때 양기탁이

알았던 것 같다  양기탁에게 대여에 대해 말했을 당시에는 대여가 실제로

행해지지 않았다고 라고 진술했다

 

재판장 -----25.000원은 금광 지분 투자를 위해 콜브란 보스트위크 회사에 옮겨진  것인가?

베델 ----그렇다

재판장 ---증인이 총합소 돈을 금광 지분에 투자한 동기는?

베델 ---우선 수안 광산에 투자된 돈은 한국 안에서 유통될 것이므로 한국의 산업을 진흥시킬 것이다

이 투자는 매우 안전하고 수익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투자는 양기탁은 모르고

윤웅렬 박용규는 알고 있다

 

재판장 ----5.000원을 마르탱에게 빌려 준 것으 담보를 잡고 빌려 준 것인가?

베델 ----아니다 약속어음으로 빌려 주었다 원래 마르탱이 18개월 안에 임의로 상환하도록 했다

그러나 내가 상하이로 부터 돌아오고 조건이 바뀌어 매달 500원씩 상환하도록 하였다

이미 두 차례 지불 받았다 이자가 9%로 만족했다

 

재판장 ----콜브란 보스트위크 은행의 예금에 붙은 이자는 증인이 받았나?

베델 ----아니다 통장에 입금되었을 뿐이다

 

검사-내 생각에 증인이 아까 더 높은 이자를 받기 위해 30.000원을 홈 링거[상하이 은행 제물포 ]로

옮겼다고 진술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돈이 거기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이유는?

베델 --나는 돈을 옮기는게 좋은 것인지 12월에 논의하였다 정확한 이유는 잊었지만 수표에 서명한

3명의 수탁자 [윤웅렬 양기탁 박용규]를 만날 수 없었다 기금의 일부를 금광 지분에 투자하는

것의 타당성은 1월에 논의 되었는데 수탁자들은 이미 돈을 홈 링거에 예치하기로 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나는 먼저 돈을 콜브란 보스트위크로  부터 홍콩 상하이 은행에 옮긴 그 날 25.000원을

인출했던 것이다 홍콩 상하이 은행에 실제로 현금으로  예금된 금액은 5.000원이며 25.000원은

콜브란 회사의 수표로 보내졌다

 

검사 ---나는 이 금액을 예금한 날 바로 인출할 필요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

베델- ----금광 지분 투자에 여러 차례 협의가 있었다 이 협의 마지막에 양기탁이 참석했는데

그는 이 제안에 반대하였다 따라서 나는 결정된 대로 예금을 했다가 돈을 인출했던 것이다

 

검사---돈의 예금과 관련하여 3명의 서명이 필요했던가?

베델 ---그렇다

검사 ---그러나 증인은 혼자서 예금을 인출할 수 있었다면서?

증인은 마르탱에게 빌려 준 27500원 중에 22.500원은 자신의 구좌에서 빌려 준 것이라고 진술하였다  이 금액의 내용이 무엇인지 밝혀라

 

 

 

베델 ---그 돈은 대중으로 부터 기부된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해서 어떤 특정 개인들로 부터

기부된 것이다

 

검사----이것은 신문으로 밝혔던가?

 

베델----이것은 61.042원 33전의 일부다

 

검사----22.500원은  국채보상  기금과 별개라고 증인이 말한 것으로 들었는데?

 

베델---아니다 이것은 총합소 기금과 관련 없다는 뜻이다 

 

재판장 ----증인은 총합소와 아무 관련이 없는가?

 

베델 ---있다 나는 명예직위를 받았으나 한글을 읽을 수 없어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른다

 

재판장 ---콜브란 보스트위크 은행에 있는 신문사의 보상기금 계정예금은 얼마나 남아 있나?

베델 -----6.432.48원이다

 

베델은 여기서 접수된 금액과 그 처리상황을 보여 주는 숫자가 적힌 종이  1장을 법정에

제출하였다 국채보상기금으로 현재까지 접수된 총액은 61.232원 48전이다

 

[ 이것은  1908년 5월15일 이후 접수된  금액이 포함되어 있는데 당시의 총액은 광고처럼 61.042원

33전 2리가 아니라 61.042원 59전으로 26전의 계산 착오가 있었다 ]

 

이 중에 32.300원은 총합으로 移轉되었고 22.500원은 마르탱에게 빌려 주었다 나머지 차액으로

콜브란 보스트위크 은행에 대한매일신보의 국채보상 기금으로 예입되어 있는 액수는 6.432.48원이다

 

재판장 ---왜 증인은 5월15일 광고에서 돈의 처리에 대해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돈의 대부분이 은행에 없는데 은행에 예금되어 있다고 광고했는가?

 

베델은 핑계를 내세워 해명하려고 노력하여 광고는 단지 얼마의 액수가 은행에 있는가 설명하는 것일 뿐 반드시 남은 은행잔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등 구실을 대었다  그러나 질문이 반복되자

베델은 그것은 자신의 잘못이며 좀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다고 시인하였다

 

1908년 9월25일

 

양기탁 ----검사가 무죄를 요청하여 할 말이 없지만 검사가 애초 피고가 140.000원 가량을 횡령했다 라고 논고한 말이 신문에 보도 되었으므로 내가 무죄방면 되어도 내 입장은 난처해졌다 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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