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当麻寺・金堂」

 

金堂の拝観受付は本堂で行なわれる。

金堂・講堂・本堂のセット料金で600円。

 

 

弥勒菩薩坐像、681年の作品で国宝、金堂の本尊である。

 

大きさ220cm、日本で最も古い塑像仏像。

当麻寺創建当初の本尊だが、平安時代末期に戦火にあい、損傷が激しい。

両手と螺髪は木造による後付け。

 

一見して飛鳥時代の仏像とは異なる。

頭部、体部、脚部と、箱を積み重ねたような造形は、新羅の仏像の影響と言われる。

当麻一族が、新羅系の渡来人との意見もあり、新羅との関わりが興味深い。

 

正面から見ると堂々とした感じだが、横から見ると少々バランスが悪い。

ただ、本像のような丸々としたお顔に、堂々とした体躯という形式は、その後の日本の仏像製作に

少なからぬ影響を与えたと言われる。

 

 

四天王像、7世紀後半の作品で国宝

 

法隆寺像の次に古い四天王で、日本で最も古い脱活乾漆像である。

(写真後ろの多聞天は木造で、鎌倉時代の作品)

 

四天王像は、もともと金堂以外に安置されていたとされる。

本尊と同じく四天王像も傷みが激しく、広目天や増長天は体の下半分が木造となっている。

唯一、写真の持国天が全て乾漆。

踏まれる邪鬼は4体とも後付けだが、持国天と増長天のものが、当初の形態を

受け継いでいるとされる。

 

これら以外に、木造の吉祥天立像(11世紀)が存在したが、現在は東京国立博物館にある。

 

 

「当麻寺・講堂」

 

講堂の内部

 

講堂の本尊は、中央の阿弥陀如来坐像(重要文化財:鎌倉時代)である。

当麻寺の寺伝では、創建当初から阿弥陀如来が存在したと伝えるが、その可能性は

低いと言われる。

この阿弥陀如来は院派仏師の作で、平安末期の定朝様式と似ているようで異なる。

 

それ以外の像も全て重要文化財。

最も古い像は写真の1番右の一木造の地蔵菩薩で、製作は平安時代中期にまで遡る。

 

以前に講堂に存在し、現在博物館にあるのは、木造十一面観音立像(東京)と

木造阿弥陀如来坐像(ぐはり阿弥陀、奈良)で、ともに重要文化財である。

 

 

あと、今回は「西南院」には行かなかったが、ここも重要文化財の仏像を3体所蔵する。

 

 

 

重要文化財の「石燈籠」、7世紀後半

 

日本最古の石燈籠、金堂前にあり凝灰岩で作られている。

 

 

 

「大師堂」

 

本堂の北側にひっそりと建つ。

秘仏の弘法大師坐像を安置する。

 

 

 

 

本堂の裏に小高い丘があり、「当麻寺・奥の院」が存在する。

当麻寺とは別に、拝観料金を支払う必要がある。

 

 

 

「奥の院・本堂」

 

本堂は1604年の建立で重要文化財。

法然上人を本尊として祀っているので、御影堂でもある。

 

 

 

5月14日は、九州から来た観光客で賑わっていた。

普段は静かなのだが。

 

 

 

本堂の内部

 

内部は結構派手だ。左右に天女が描かれており、独特の雰囲気を醸し出している。

本尊は重要文化財の法然上人坐像(南北朝時代)。

脇壇に平安時代の地蔵菩薩立像を安置する。

 

 

 

1612年建立の「奥の院・大方丈」(重要文化財)は、残念ながら修理中で拝観できない。

 

 

 

「奥の院・楼門」

 

江戸時代初期の建立で重要文化財。

2階部分に鐘楼がある。

 

 

 

3月の「奥の院・浄土庭園」はあまり見所がない。

當麻寺(奥院)@葛城市-12

「奥の院・宝物館」

 

宝物館が公開中だった。様々な文化財を展示する。

 

 

二十五菩薩来迎像、室町時代の作品

 

 

国宝、倶利伽羅龍蒔絵経箱、平安時代の作品

 

 

写真がないが、重要文化財の「十界図屏風」(室町時代)が面白かった。

それ以外にも全48巻に及ぶ「紙本著色法然上人行状絵巻」(鎌倉時代・重要文化財)など、

様々な文化財を所蔵する。

 

 

当麻寺は、自分の家から遠くないので、何度も足を運びたい。

また違った発見があるかもしれない。

 

終わり。

 

 

 


다시 당마사, 그 5

 

「당마사·금당」

 

금당의 배관접수는 본당에서 행해진다.

금당·강당·본당세트 요금으로 600엔.

 

 

미륵보살좌상, 681년의 작품으로 국보, 금당의 본존이다.

 

크기 220 cm, 일본에서 가장 낡은 소상 불상.

당마사 창건 당초의 본존이지만, 헤이안 시대 말기에 전화에 맞아, 손상이 격렬하다.

양손과 나발은 목조에 의한 부록.

 

언뜻 봐 아스카 시대의 불상과는 다르다.

머리 부분, 체부, 각부와 상자를 겹쳐 쌓은 것 같은 조형은, 신라의 불상의 영향이라고 말해진다.

당마일족이, 신라계의 도래인이라는 의견도 있어, 신라와의 관계가 흥미롭다.

 

정면에서 보면 당당한 느낌이지만, 옆으로부터 보면 조금 밸런스가 나쁘다.

단지, 본상과 같은 환들로 한 얼굴에, 당당한 체구라고 하는 형식은, 그 후의 일본의 불상 제작에

적지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말해진다.

 

 

사천왕상, 7 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국보

 

호류사상의 다음에 낡은 사천왕으로, 일본에서 가장 낡은 탈활건칠로 만든 불상이다.

(사진 뒤의 다문천은 목조로, 가마쿠라 시대의 작품)

 

사천왕상은, 원래 금당 이외에 안치되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본존과 같이 사천왕상도 아픔이 격렬하고, 히로메하늘이나 증장천은 몸의 하반신이 목조가 되고 있다.

유일, 사진의 지국천왕이 모두서북옻나무.

밟히는 마귀는 4체 모두 부록이지만, 지국천왕과 증장천의 것이, 당초의 형태를

계승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것들 이외에, 목조의 길상하늘 입상(11 세기)이 존재했지만, 현재는 도쿄 국립 박물관에 있다.

 

 

「당마사·강당」

 

강당의 내부

 

강당의 본존은, 중앙의 아미타 여래좌상(중요문화재:가마쿠라 시대)이다.

당마사의 사전에서는, 창건 당초부터 아미타 여래가 존재했다고 전하지만, 그 가능성은

낮다고 말해진다.

이 아미타 여래는 원파불사의 작으로, 평안 말기의 죠쵸 양식과 닮아 있는 것 같고 다르다.

 

그 이외의 상도 모두 중요문화재.

가장 낡은 상은 사진의 1번 오른쪽의 한 그루의 나무조의 지장보살로, 제작은 헤이안 시대 중기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전에 강당에 존재해, 현재 박물관에 있는 것은, 목조 십일면관음 입상(도쿄)과

목조 아미타 여래좌상(바늘 아미다, 나라)으로 ,함께 중요문화재이다.

 

 

앞으로 , 이번은 「서남원」에는 가지 않았지만, 여기도 중요문화재의 불상을 3체 소장한다.

 

 

 

중요문화재의 「석등롱」, 7 세기 후반

 

일본 최고의 석등롱, 금당전에 있어 응회암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다이시도우」

 

본당의 북측으로 적막하게 세워진다.

밀교의 코우보우 대사좌상을 안치한다.

 

 

 

 

본당의 뒤에 작은 언덕이 있어, 「당마사·안쪽의 원」이 존재한다.

당마사와는 별도로, 배관요금을 지불할 필요가 있다.

 

 

 

「안쪽의 원·본당」

 

본당은 1604년의 건립으로 중요문화재.

호넨 고승을 본존으로서 모시고 있으므로, 미카게당이기도 하다.

 

 

 

5월 14일은, 큐슈로부터 온 관광객으로 활기차 있었다.

평상시는 조용하지만.

 

 

 

본당의 내부

 

내부는 상당히 화려하다.좌우에 선녀가 그려지고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본존은 중요문화재의 호넨 고승좌상(남북조 시대).

협단에 헤이안 시대의 지장보살 입상을 안치한다.

 

 

 

1612년 건립의 「안쪽의 원·대부분 키」(중요문화재)은, 유감스럽지만 수리중으로 배관 할 수 없다.

 

 

 

「안쪽의 원·누문」

 

에도시대 초기의 건립으로 중요문화재.

2층 부분에 종루가 있다.

 

 

 

3월의 「안쪽의 원·정토 정원」은 별로 볼만한 곳이 없다.

당삼사(오원)@카츠라기시-12

「안쪽의 원·보물관」

 

보물관이 공개중이었다.여러가지 문화재를 전시한다.

 

 

25 보살 와 영상, 무로마치 시대의 작품

 

 

국보, 구리카라용금칠한 그림경상, 헤이안 시대의 작품

 

 

사진이 없지만, 중요문화재의 「10계도 병풍」(무로마치 시대)이 재미있었다.

그 이외에도 전48권에 이르는 「카미모토저색호넨 고승 행장 그림 두루마기」(가마쿠라 시대·중요문화재) 등,

여러가지 문화재를 소장한다.

 

 

당마사는, 자신의 집에서 멀지 않기 때문에, 몇번이나 발길을 옮기고 싶다.

또 다른 발견이 있을 지도 모르다.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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