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国ソウル中心部で強制徴用労働者像の除幕式「日本は痛い歴史を永遠に記憶しよう」
http://www.asahi.com/articles/ASK8D4W3YK8DUHBI00S.html朝日新聞 2017.8.12
100万人以上の朝鮮人が軍艦島などに強制的に送られた
韓国の全国民主労組総連盟(民主労総)などが主導した市民団体は12日午後、ソウル中心部の竜山(ヨンサン)駅前広場で、日本統治時代に徴用されて日本企業で働いた徴用工を象徴する「強制徴用労働者像」の除幕式を行った。韓国で徴用工像が設置されるのは初めて。
「日本は若者たちを集めて行って、なぜ謝罪一言はないか。」強制徴用被害者キム・ハンス氏(100歳)も駆けつけて被害証言をして残虐な日本の強制徴用の実態を証言した。
進歩(革新)系の民主労総は、文在寅(ムンジェイン)政権の有力支援団体の一つ。同政権下で、国民世論にも理解が得られやすい徴用工問題を取り上げ、支持の拡大を図ったとみられる。
竜山駅前の国有地で行われた除幕式には約500人が参加。日本統治時代、長崎県にある三菱重工業の造船所で働いたという金漢洙(キムハンス)さん(98)や与党・共に民主党の議員らも出席した。金さんは「日本は若者たちを集めて行って、なぜ謝罪一言はないか。韓国政府も、その責任を問わず、代価を請求しなかった。私たちが死んでいないばかりたいか情けないことこの上ない」と語った。
市民団体は除幕式で「日本政府が公式に発表した数字」として、「半島から約70万人が徴用された」と主張した。
市民団体側は当初、3月1日の独立運動記念日に設置を試みたが、韓国国土交通省は、国有地への像の設置は国有財産法に違反するとし、設置を認めない立場を伝えていた。
同省は「法に沿った手続きを取る」としている。ただ、国土交通相は「共に民主党」議員が務めており、韓国内には、市民団体との衝突を避けて情緒法で設置を黙認するのではないかとの見方も出ている。
12日は午後6時から、ソウル近郊の仁川(インチョン)市でも徴用工像の除幕式が予定されている。
像は日本軍慰安婦被害者を称える「平和の少女像」作家ギムソギョン・ギムウンソン夫婦が製作した。
한국 서울 중심부에서 강제 징용 노동자상의 제막식 「일본은 아픈 역사를 영원히 기억하자」
http://www.asahi.com/articles/ASK8D4W3YK8DUHBI00S.html아사히 신문 2017.8.12
100만명 이상의 한국인이 군칸지마 등에 강제적으로 보내졌다
한국의 전국민주노조 총연합맹(민주 노총)등이 주도한 시민 단체는 12일 오후, 서울 중심부의 타츠야마(욘산) 역전 광장에서, 일본 통치 시대에 징용 되어 일본 기업에서 일한 징용공을 상징하는 「강제 징용 노동자상」의 제막식을 실시했다.한국에서 징용공상이 설치되는 것은 처음.
「일본은 젊은이들을 모아서 가서, 왜 사죄 한마디는 없는가.」강제 징용 피해자 김·한스씨(100세)도 달려 들어 피해 증언을 해 잔학한 일본의 강제 징용의 실태를 증언했다.
진보(혁신) 계의 민주 노총은, 문 재인(문제인) 정권의 유력 지원 단체의 하나.동정권하에서, 국민 여론에도 이해를 얻을 수 있기 쉬운 징용공 문제를 채택해 지지의 확대를 도모했다고 보여진다.
용산역전의 국유지에서 행해진 제막식에는 약 500명이 참가.일본 통치 시대, 나가사키현에 있는 미츠비시중공업의 조선소에서 일했다고 하는 금한수(김 한스)씨(98)나 여당· 모두 민주당의 위원들도 출석했다.김씨는 「일본은 젊은이들을 모아서 가서, 왜 사죄 한마디는 없는가.한국 정부도, 그 책임을 불문하고, 대가를 청구하지 않았다.우리가 죽지 않은(뿐)만 싶은가 한심한 것 이 이상 없다」라고 말했다.
시민 단체는 제막식에서 「일본 정부가 공식으로 발표한 숫자」로서, 「반도로부터 약 70만명이 징용 되었다」라고 주장했다.
시민 단체측은 당초, 3월 1일의 독립 운동 기념일에 설치를 시도했지만, 한국 국토 교통성은, 국유지에의 상의 설치는 국유재산법에 위반한다고 해, 설치를 인정하지 않는 입장을 전하고 있었다.
동성은 「법에 따른 수속을 취한다」라고 하고 있다.단지, 국토 교통상은 「 모두 민주당」의원이 맡고 있어 한국내에는, 시민 단체와의 충돌을 피해 정서법으로 설치를 묵인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견해도 나와 있다.
12일은 오후 6시부터, 서울 근교의 인천(인천) 시에서도 징용공상의 제막식이 예정되어 있다.
상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칭하는 「평화의 소녀상」작가 김소골·김운손 부부가 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