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통치 기간에 한글이 보급했는지 어떠했는지는 통계를 비교하면 된다.
문제는 비교하는 통계가 정확할지다.
일본 통치 기간의 1930년과 해방 후의 1945년 이후에 한글의 문맹퇴치율을 조사한 통계가 있다.
1930년의 통계는, 국세조사라고 하는 인구통계 조사를 집계한 것이다.
이쪽의 조사는 일본 통치 기간에 실시되었으므로 일본 측에 사료가 잘 남아 있다.
그런데 1945년 이후의 통계는, 어떤 조사를 했는지 잘 모른다.
잘 모르는 채 데이터만이 독보하고 있는 느낌이다.
위의 화상은namgaya33씨가 제시한 한국의 자료이다.
아마 이것은「학교안의 문맹자」(옴 분, 우리 교육, 2012)에 게재되고 있는 표라고 생각한다.
(한국어)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52569
실은 이것과 같은 자료가 일본에도 있다.
위의 화상은 「한국에 있어서의 국어·국사 교육」(모리타 요시오, 원서방, 1987)로부터 찍은 것이다.
(일본어)http://www.harashobo.co.jp/book/b367227.html
어느 쪽이 잘못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데이터에 차이가 산견된다.
화상에 있도록(듯이) 데이터의 기는 한국 문교부 「문교 월보」 제49호에 있지만, 과연 찾을 수 없었다.
또 다른 각도로 1945년 이후의 통계를 조사해 보면, 한국의 국가 기록원에 문맹자 조사표를 발견했다.
위의 화상은, 한국의 문교부(일본의 문부 과학성에 상당)가 작성한 「문맹 국민 퇴치 계획」에 기재된 통계이다.
(한국어) http://theme.archives.go.kr/next/hangeulPolicy/business.do
이 사료는 국무회의에 상정 한 자료로, 문맹 국민 퇴치 계획의 취지와 요강이 기재되어 있다.
이 통계는 단기 4286년으로 있어, 서기 1953년의 조사라고 추측된다.
우하가 12세 이상의 문맹자의 합계이지만,2,787,172명으로 기재되어 있어 이것도 또 숫자가 맞지 않는다.
한 번, 한국측에서 1945년 이후의 통계의 세탁 수선을 해 주면 좋다고 생각한다.
—————덧붙여 씀—————
namgaya33씨가 제시한표중 1945년의 통계의 한층 더 자세한 자료를 찾아냈으므로 보고한다.
해방 당시 남쪽의 시·도별 문맹자 통계이다.
논문 「한미 관계에 있어서의 정치 교육과 소프트 파워:미군정기의 문맹퇴치 교육 정책의 분석을 중심으로」(윤경훈)보다 발췌했다.
「13세 이상」이 되고 있고, 지금까지의 「12세 이상」이라고 표기는 다르지만,「합계」는 「10,253,138」(이)가 되고 있고, 인원수가 일치하고 있다.
다만, 「문맹자」의 「합계」는 일치하고 있지 않다.아마 미스프린트로, 계산하면 「7,980,902」(이)라고 일치한다.
데이터의 출전은 화상에 있도록(듯이) 「한국 교육10년사」(한국 교육10년사 간행회, 1960)답다.
—————덧붙여 씀—————
또 인터넷으로 주운 데이터이지만, 1945년 및 1948년의 문맹퇴치율(문맹율)의 자세한 데이터를 찾아냈으므로 보고한다.
「대한민국 교육 70년」부터 「표 12 해방 후, 한글 보급 상황」이다.
왼쪽에서 「지역」 「해방 당시 」 「정부 수립 당시 」이다.
왼쪽의 「지역」란의 맨 위는 「서울」에서, 맨 밑이 「제주」이다.
위로부터 2번째를 모른다.기계 번역에서는 「시합」이라고 번역되었다.
이 표를 보면, 1945년의 해방 당시의 문맹퇴치율(문맹율) 조사는, 서울을 대상외로 한 것이 되지만, 사실일까.
「시합」의 의미도 포함하고, 한국측의 견해를 듣고 싶다.
日本統治期間にハングルが普及したかどうかは統計を比較すればいい。
問題は比較する統計が正確かどうかだ。
日本統治期間の1930年と解放後の1945年以降にハングルの識字率を調査した統計がある。
1930年の統計は、国勢調査という人口統計調査を集計したものだ。
こちらの調査は日本統治期間に実施されたので日本側に史料がよく残っている。
ところが1945年以降の統計は、どういう調査をしたのかよく分からない。
よく分からないままデータだけが独り歩きしている感じだ。
上の画像はnamgaya33氏が提示した韓国の資料である。
おそらくこれは「学校の中の文盲者」(オムフン、我々教育、2012)に掲載されている表だと思う。
(韓国語)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52569
実はこれと同じような資料が日本にもある。
上の画像は「韓国における国語・国史教育」(森田芳夫、原書房、1987)から撮ったものだ。
(日本語)http://www.harashobo.co.jp/book/b367227.html
どちらが間違っているのか分からないが、データに差異が散見される。
画像にあるようにデータの基は韓国文教部「文教月報」第49号にあるが、さすがに探せなかった。
また別の角度で1945年以降の統計を調べてみると、韓国の国家記録院に文盲者調査表を発見した。
上の画像は、韓国の文教部(日本の文部科学省に相当)が作成した「文盲国民退治計画」に記載された統計である。
(韓国語) http://theme.archives.go.kr/next/hangeulPolicy/business.do
この史料は国務会議に上程した資料で、文盲国民退治計画の趣旨と要綱が記載されている。
この統計は壇紀4286年とあり、西暦1953年の調査と推測される。
右下が12歳以上の文盲者の合計だが、2,787,172人と記載されており、これもまた数字が合わない。
一度、韓国側で1945年以降の統計の洗い直しをしてくれたら良いと思う。
----------追記----------
namgaya33氏が提示した表のうち1945年の統計のさらに詳しい資料を見つけたので報告する。
解放当時南側の市・道別文盲者統計である。
論文「米韓関係における政治教育とソフトパワー:米軍政期の識字教育政策の分析を中心に」(尹 敬勲)より抜粋した。
「13歳以上」となっていて、これまでの「12歳以上」と表記は違うが、「計」は「10,253,138」となっていて、人数が一致している。
ただし、「文盲者」の「計」は一致していない。たぶん誤植で、計算すると「7,980,902」と一致する。
データの出典は画像にあるように「韓国教育十年史」(韓国教育十年史刊行会、1960)らしい。
----------追記----------
またインターネットで拾ったデータだが、1945年及び1948年の識字率(文盲率)の詳しいデータを見つけたので報告する。
「大韓民国教育70年」より「表12 解放後、ハングル普及状況」である。
左から「地域」「解放当時」「政府樹立当時」である。
左の「地域」欄の一番上は「ソウル」で、一番下が「済州」である。
上から2番目が分からない。機械翻訳では「試合」と翻訳された。
この表を見ると、1945年の解放当時の識字率(文盲率)調査は、ソウルを対象外にしたことになるが、本当だろうか。
「試合」の意味も含めて、韓国側の見解を伺いた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