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닥치는 대로 반일」이라고 하는 우민화 정책=한국
중앙 일보
영화 「아벤쟈즈/엔드 게임」의 열풍속에서, 2016년작 「싸우는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조용하게 공개되었다.고졸의 복싱 선수 출신으로, 벌써 1995년에 「건축의 노벨상」이라고 말해지는 프리트카상을 수상한 안도 타다오씨(77)의 다큐멘터리다.
나오시마의 지중 미술관, 제주(제주) 유민(유민) 미술관 등에 가 봐 안도 타다오에 대해 상당히 안 생각으로 있었지만, 지난 주말에 영화를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이상으로 그 지위가 훨씬 위대했기 때문에다.
일본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이, 코기둥의 강한 유럽에서도 그의 존재는 두드러지고 있다.1677년에 지어졌다라는 것을 끈 올바른 베네치아의 푼타·젯라·드가나 미술관의 개축을 유럽의 건축가는 아니고 안도 타다오에 일임 하는 만큼이기 때문이다.
안도 타다오가 매우 탁월한 인물이니까이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일본에 대한 유럽인의 깊은 외경의 생각도 근저에 흐르고 있다.안도 타다오라는 이름에 일본이라고 하는 브랜드가 결합해 매력이 최대화했다고 하는 것이다.
실제, 서구의 일본사랑은 어제 오늘의 일로는 없다.독일의 작가 헬만·Hesse(1877~1962)는 청춘의 필독서이며 지금은 방탄 소년단(BTS)에 인스피레이션을 준 책으로서 유명한 「데미 안」(1919년작)에 「키가 작은 세련된 사람, 일본인」을 데미 안의 동행자로서 등장시켜 일본에 대한 애정을 과시한다.Hesse와 같이 일본에 매료된 근대 유럽 지식인이나 예술가는 셀 수 없을 정도 많다.고호를 시작해 19 세기의 유럽 화가가 일본의 전통 목판화인 강호시대의 풍속화로부터 다대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서양의 일본사랑은 과거형은 아니고 현재 진행형이다.
문화로부터 산업에, 또 유럽으로부터 미국으로, 오히려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지난 주말 서울 성수동(손스돈)에 긴 열을 만든 「커피 업계의 애플」이라고 하는 블루 보틀과 그 애플의 2사 모두, 미국인 창업자가 일본에 매료되어 제품안에 일본의 영혼을 녹여 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일행으로 요약한다면, 한국인이 잘 말하도록 일본이 단지 돈으로 세계의 사람의 환심을 사 온 것은 아니고, 문화적인 깊이와 경이적인 장의 정신으로 세계의 사람을 매료해 왔다고 하는 것이다.그런데 한국이라고 하는 프리즘을 통하는 것만으로 일본은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된다.아무리 잊는 것이 어려운 구원이 있다라고 해도, 아무래도 일본을 한국이 비싼 문화적 수준의 발밑에도 둘 수 없을 정도의 야만의 나라로 해 버린다.눈만 확실히 닫고 있다면 좋지만, 일본을 깍아내리기 위해라면 왜곡도는 바보등 없다.
이러한 느낌이다.Hesse가 「데미 안」에 세련된 사람·일본인을 등장시킨 확실히 그 해의 1919년에 있던 3·1 운동 100주년을 앞에 두고, 유명한 한국사 강사인 솔·민소크씨는 있다 텔레비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해 일제의 석굴암(속크람) 훼손을 비난 했다.
「석굴암은 수학·기하학·과학의 완벽인 결정체로, 1000년 이상에 걸쳐서 완벽에 보존되어 왔지만, 일본이 질투해 시멘트와 콘크리트를 발라 손상시켰다」라고 한다.
기록은 완전히 다른 것을 말하고 있다.
1912년에 대규모 보수 공사에 들어간 당시 , 석굴암은 천정이 무너지고 흙에 파묻힌 상태였다.
일본으로서는 문화유산을 살리려고, 당시로서는 최신의 기술인 시멘트를 사용하고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방송 이후, 일본은 질투로 맹목이 되어 석굴암을 손상시킨 야만 국가로서 한국 대중의 뭇매로 되었다.
자료를 한 번 끈과 보풀 비밀이나 나쁜일이 드러남 하는 명백한 역사 왜곡이지만, 솔씨나 방송국이 사죄는 커녕 정정했다고 하는 이야기는 개(듣)묻지 않았다.
실은, 특별히 놀라는 것은 아니다.한국에서 「닥치는 대로 반일」은 언제나 이와 같이 면죄부를 받아 왔다.
다만, 솔씨의 석굴암 발언을 단지 버라이어티로 정리할 수 없는 것은,문 재인(문·제인) 정부가 되어 반일 선동이 번을 넘고 있고, 방송이 그 선봉적인 역할을 이루어 있기 때문이다.
금년의 3일절 100주년 기념 연설로, 문대통령은 「파르겐이(=붉은 놈, 공산주의자)라는 말과 섹칼(=색) 론은 우리가 하루라도 빨리 청산해야 하는 대표적인친일 잔재」라고 해, 반일이라고 하는 관제 민족주의〔최·잘지브 고려(고려) 대학 명예 교수〕의 기를 사양말고 거절해, 여당인 모두 민주당은 있다 재야 사학자의 「토착●구」발언을 「올바르다」라고 생각해 반일 장사에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방송이 이러한 행동을 한다.
사실을 푸대접 한 우리만의 이러한 「정신 승리」가, 조선 건국 이래, 최악의 전쟁으로 연결된 조선 통신사가 잘못된 판단과 무엇이 다를까.1592년, 황윤길(팬·윤길) 정사는 「외적의 침범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진언 했지만, 완전히 같은 것을 봐 온 카네나리1(김·손 일) 부사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눈은 쥐와 같고 무서운 것은 없다」로서 선조(손죠)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그리고 다음은 우리모두가 알고 있는 대로, 백성이 가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닥치는 대로 반일」은 국내 정치에 이용하기 쉬운 것인지도 모르지만, 국민을 바보로 해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다.
임진●란, 그리고 1997년 외환 위기때에 있을 수 있는(정도)만큼 괴로워 했는데, 우리는 사실을 사실 대로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그 단순한 상식마저 배울 수 없었다.
https://headlines.yahoo.co.jp/hl?a=20190510-00000012-cnippou-kr
【コラム】「手当たり次第反日」という愚民化政策=韓国
中央日報
映画『アベンジャーズ/エンドゲーム』の熱風の中で、2016年作『闘う建築家 安藤忠雄』が静かに公開された。高卒のボクシング選手出身で、すでに1995年に「建築のノーベル賞」といわれるプリツカー賞を受賞した安藤忠雄氏(77)のドキュメンタリーだ。
直島の地中美術館、済州(チェジュ)維民(ユミン)美術館などに行ってみて安藤忠雄について結構知ったつもりでいたが、先週末に映画を見て少なくない衝撃を受けた。漠然と考えていた以上にその地位がはるかに偉大だったからだ。
日本では言うまでもなく、鼻っ柱の強い欧州でも彼の存在は際立っている。1677年に建てられた由緒正しいヴェネツィアのプンタ・デッラ・ドガーナ美術館の改築を欧州の建築家ではなく安藤忠雄に一任するほどだからだ。
安藤忠雄が非常に卓越した人物だからでもあるが、ここには日本に対する欧州人の深い畏敬の念も根底に流れている。安藤忠雄という名前に日本というブランドが結合して魅力が最大化したということだ。
実際、西欧の日本愛は昨日今日のことではない。ドイツの作家ヘルマン・ヘッセ(1877~1962)は青春の必読書であり今は防弾少年団(BTS)にインスピレーションを与えた本として有名な『デミアン』(1919年作)に「背が低いおしゃれな人、日本人」をデミアンの同行者として登場させて日本に対する愛情を誇示する。ヘッセのように日本に魅了された近代欧州知識人や芸術家は数えられないほど多い。ゴッホをはじめ19世紀の欧州画家が日本の伝統木版画である浮世絵から多大な影響を受けていることは広く知られた事実だ。
そしてこのような西洋の日本愛は過去形ではなく現在進行形だ。
文化から産業に、また欧州から米国に、むしろその領域を拡張している。先週末ソウル聖水洞(ソンスドン)に長い列を作った「コーヒー業界のアップル」というブルーボトルとそのアップルの2社とも、米国人創業者が日本に魅了されて製品の中に日本の魂を溶かし込んだといっても過言ではない。
一行で要約するなら、韓国人がよく言うように日本が単にお金で世界の人の歓心を買ってきたのではなく、文化的な深さと驚異的な匠の精神で世界の人を魅了してきたということだ。ところが韓国というプリズムを通すだけで日本は全く違う国になる。いくら忘れることが難しい旧怨があるといっても、どうしても日本を韓国の高い文化的水準の足元にも置けないくらいの野蛮の国にしてしまう。目だけしっかり閉じているならよいが、日本をけなすためならわい曲もはばからない。
このような感じだ。ヘッセが『デミアン』におしゃれな人・日本人を登場させたまさにその年の1919年にあった三・一運動100周年を控え、有名な韓国史講師であるソル・ミンソク氏はあるテレビバラエティ番組に出演して日帝の石窟庵(ソックラム)き損を非難した。
「石窟庵は数学・幾何学・科学の完ぺきな結晶体で、1000年以上にわたって完ぺきに保存されてきたが、日本が嫉妬してセメントとコンクリートを塗って傷つけた」という。
記録は全く違うことを語っている。
1912年に大規模補修工事に入った当時、石窟庵は天井が崩れて土に埋もれた状態だった。
日本としては文化遺産を生かそうとして、当時としては最新の技術であるセメントを使って最善を尽くしただけだ。
それでも放送以降、日本は嫉妬で盲目になり石窟庵を傷つけた野蛮国家として韓国大衆の袋叩きにされた。
資料を一度ひもとけば露見する明白な歴史わい曲だが、ソル氏や放送局が謝罪どころか訂正したという話はついぞ聞かなかった。
実は、特に驚くようなことではない。韓国で「手当たり次第反日」はいつもこのように免罪符を受けてきた。
ただし、ソル氏の石窟庵発言をただバラエティで片付けることができないのは、文在寅(ムン・ジェイン)政府になって反日扇動が度を越していて、放送がその先鋒的な役割を果たしているからだ。
今年の三一節100周年記念演説で、文大統領は「パルゲンイ(=赤い奴、共産主義者)という言葉とセッカル(=色)論は我々が一日も早く清算しなければならない代表的な親日残滓」とし、反日という官製民族主義〔チェ・ジャンジブ高麗(コリョ)大学名誉教授〕の旗を遠慮なく振り、与党である共に民主党はある在野史学者の「土着●寇」発言を「正しい」と思って反日商売に使っているから、放送がこのような振る舞いをするのだ。
事実を冷遇した私たちだけのこのような「精神勝利」が、朝鮮建国以来、最悪の戦争につながった朝鮮通信使の誤った判断と何が違うだろうか。1592年、黄允吉(ファン・ユンギル)正使は「外敵の侵犯に備えなければならない」と進言したが、全く同じものを見てきた金成一(キム・ソンイル)副使は「豊臣秀吉の目はネズミと同じで怖いものはない」として宣祖(ソンジョ)の判断を曇らせた。そして後は私たち皆が知っているとおり、民が過酷な対価を支払わ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手当たり次第反日」は国内政治に利用しやすいのかもしれないが、国民を阿呆にして国を危機に陥れる。
壬辰●乱、そして1997年外国為替危機の時にあれほど辛い思いをしたのに、私たちは事実を事実通り見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その単純な常識さえ学ぶことができなかった。
https://headlines.yahoo.co.jp/hl?a=20190510-00000012-cnippou-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