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게시물 平安監司 향연에서 조선의 여러 춤에 대해 알아 보았습니다
그러면 조선의 宮中呈才에 대해 알아봅시다
궁중呈才는 궁중에서 나라의 각종 행사가 있을 때에 악기 연주에 맞추어 노래와 춤을
공연하는 것을 말한다
그림 1
園幸乙卯整理儀軌에 수록된 奉壽堂 進饌圖이다
正祖(재위 1776년~1800년)의 어머니 惠慶宮 洪氏의 탄신 60주년을 기념하는 회갑연의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惠慶宮 洪氏의 회갑연은 1795년 윤2월 9일 부터 16일 까지 華城行宮에서 열렸다
華城行宮은 왕이 지방에 갈 때 임시로 머무는 곳이다
華城行宮은 현재 경기도 수원에 있었다
惠慶宮 洪氏는 華城幸宮의 正殿 (왕이 조회를 보는 곳 )의 奉壽堂 안에 머무르고 있고
正祖는 奉壽堂 건물 왼쪽 병풍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런데 正祖와 惠慶宮 洪氏는 왕이며 왕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모습을 그리지 않았다
奉壽堂은 正祖가 어머니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수원 華城行宮에 세운 건물이다
장수를 기원하며 만년의 壽를 받들어 기원한다 라는 의미로 奉壽堂 이라고 이름을 붙였고
탄신 60주년을 기념하는 회갑연의 진찬례(進饌禮)를 거행하였다
進饌禮는 神을 위해 제물을 바치는 의식이다
正祖의 어머니 惠慶宮 洪氏의 회갑연으로 여성 무용수들의 공연이 펼쳐졌다
園幸乙卯整理儀軌에 수록된 獻仙桃
중국 宋나라의 敎坊歌舞에서 유래하였다
고려시대 문종 (재위 1046년~1083년)에 들어왔다
왕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왕모가 선계에서 내려와 3.000년에 한번 열린다는 불로장생의 복숭아를
바친다는 내용의 춤이다
의자에 앉을 사람은 惠慶宮 洪氏이지만 왕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모습을 그리지 않았다
園幸乙卯整理儀軌에 수록된 처處容舞
동서남북 중앙의 五方을 상징하는 白 黑 靑 紅 黃의 오색의 의상을 입은 5명의 남자가 추는
춤이다
處容舞는 고려시대 까지 무용수 1명이 추는 춤이었는데
조선왕조 세종(재위 1418년~1450년)때 무용수 5명이 춤을 추게 되었다
악학궤범 (樂學軌範)에 의하면
음력 섣달 그믐날에 疫神(전염병을 퍼뜨리는 귀신)과 나쁜 악귀를 물리치기 위해 행하는
나례 의식에서 處容舞를 2회에 걸쳐 추었다고 한다
樂學軌範은 1493년 왕명에 의해 제작된 악전이다
신라 헌강왕 때에 동해 용왕의 아들 處容이 자신의 아내와 몰래 동침한 疫神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서 쫓았다는 설화가 전해져 왔는데 이 때 處容이 추었다는 춤이 處容舞이다
(삼국유사 處容郞 望海寺)
處容舞는 처용의 형상을 문에 붙이고 악귀를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날을 맞이 할 수 있도록
기원하였다는 신라의 민간 신앙에서 시작되어 조선시대 궁중 呈才의 하나 궁중 무용으로
발전하였다
1493년 樂學軌範에 그려진 처용
팥죽 색에 치아가 하얀 神人 탈을 쓰고 납 구슬의 목걸이에 주석의 귀고리를 하고 검은색의 사모를
쓰는데 사모 위에는 악귀를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기운을 맞이 한다는 뜻을 담은 모란 2송이와
복숭아 열매 7개를 꽂았다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며 복숭아는 악귀를 물리치는 열매라는 의미다
舞鼓
壬寅進宴圖屛
1902년 제작
고려사 樂志에 의하면 고려 충렬왕 (재위 1274년~1308년)때
李混이라는 사람이 寧海에 귀양 갔을 때 바다 위에서 얻은 뗏목으로 큰 북을 만들어
두드리니 소리가 크고 웅장하여 춤을 추었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舞鼓는 고려시대 부터 전승되어 온 향악 呈才이다
춤의 형식은
북을 치는 사람 元舞와 元舞 주위를 돌면서 춤을 추는 挾舞로 나눈다
元舞가 북채를 손에 들고 시종 북을 에워싸고 마치 꽃 봉오리 위에 날아 오르는 나비 처럼
어르고 두드리며 돌고 있는 동안에 挾舞는 三枝花를 두 손에 들고 그 둘레에서 춤을 춘다
원래 2명이 추는 춤이었는데 조선시대 樂學軌範에 의하면 2명 4명 8명 등 그때 그때 경우에
따라 舞員을 늘리거나 줄이거나 하였다고 한다
이 춤은 현재까지 성행하는 700년의 전통의 춤이다
船遊樂
1795년 奉壽堂 進饌圖 그림 일부
園幸乙卯整理儀軌에 전하는 선유락 (船遊樂)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여러가지 물감으로 채색한 彩船을 설치하고 여러 기녀들이 나누어 서서 船을 띄우는 모습을 한다
닻줄을 끌면서 船 주위를 둘러싸고 춤을 춘다 세상에 전하기를 신라 때 부터 있었다고 한다
신라시대 歌舞百戱 중에 四仙樂府에 龍 馬 鳳 車 船이 있었는데 船이 船遊樂과 관련된다고 한다
歌舞百戱는 신라시대 나라의 각종 행사에 행하는 노래 춤 및 각종 기예의 총칭이다
조선시대 각 지방의 敎坊에서 공연된 춤으로 조선의 宮中呈才의 하나 궁중 무용으로 발전하였다
궁중에서 이 船遊樂이 처음 공연된 것은 1795년 正祖의 어머니 惠慶宮 洪氏의 회갑을 축하하는
奉壽堂에서 열린 공연이었다
조선시대 宮中呈才 중에 獻仙桃는 중국 유래이므로 唐樂이라고 하며 處容舞 劍舞 船遊樂
舞鼓는 삼국시대 고려시대 부터 전승되어 왔던 조선의 전통 음악이므로 鄕樂呈才라고 한다
前掲示物 平安監司 香煙で朝鮮の多くの踊るに対して調べました
それでは朝鮮の 宮中呈才に対して調べましょう
宮廷呈才は宮の中で国の各種行事がある時に楽器演奏に合わせて 歌と踊りを
公演することを言う
絵 1
園幸乙卯整理儀軌に収録された 奉寿堂 進饌図だ
正祖(在位 1776年‾1800年)のお母さん 恵慶宮 洪氏の誕辰 60周年を記念する回甲宴の
場面を描いた絵だ
恵慶宮 洪氏の回甲宴は 1795年 磨き2月 9日から 16日まで 華城行宮で開かれた
華城行宮は王が地方へ行く時臨時に泊まる所だ
華城行宮は現在京畿道水原にあった
恵慶宮 洪氏は 華城幸宮の 正殿 (王が問い合わせを見る所 )の 奉寿堂 中に泊まっているし
正祖は 奉寿堂 建物左側屏風がある所に腰を据えている
ところで 正祖と 恵慶宮 洪氏は王で 王のお母さんだから 姿を描かなかった
奉寿堂は 正祖がお母さんの長寿を祈るために水原 華城行宮に建てた建物だ
長寿を祈って晩年の 寿を奉じて祈るという意味で 奉寿堂 と名付けたし
誕辰 60周年を記念する回甲宴のジンチァンリェ(進饌礼)を行った
進饌礼は 神のためにお供えを捧げる意識だ
正祖のお母さん 恵慶宮 洪氏の回甲宴で 女性舞踊家たちの公演が開かれた
園幸乙卯整理儀軌に収録された 献仙桃
中国 宋国の 教坊歌舞で由来した
高麗時代文宗 (在位 1046年‾1083年)に入って来た
王の長寿を祈るために王母が仙界から下って 3.000年に一度開かれるという不老長生の桃を
捧げるという内容の踊りだ
椅子に座る人は 恵慶宮 洪氏だが王のお母さんだから姿を描かなかった
園幸乙卯整理儀軌に収録された妻処容舞
東西南北中央の 五方を象徴する 白 黒 青 紅 黄の五色の衣装を着た 5人の男が踊る
踊りだ
処容舞は高麗時代まで舞踊家 1人が踊る踊りだったが
朝鮮王朝世宗(在位 1418年‾1450年)時舞踊家 5人がダンスをするようになった
アックハックグェボム (楽学軌範)によれば
旧暦 師走 大晦日に 疫神(伝染病をまき散らす鬼)と悪い 悪鬼を退けるために行う
ついな意識で 処容舞を 2回にわたって踊ったと言う
楽学軌範は 1493年王命によって製作された楽典だ
新羅憲康王の時に東海竜王の息子 処容が自分の妻と密かに同寝した 疫神を歌を歌って
ダンスをして追ったという説話が伝わって来たがこの時 処容が踊ったという踊りが 処容舞だ
(三国有史 処容郎 望海寺)
処容舞は処容の形象を門に付けて悪鬼を退けておめでたい日を迎え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
祈ったという新羅の民間信仰で始まって朝鮮時代宮廷 呈才よるが宮廷舞踊で
発展した
1493年 楽学軌範に描かれた処容
パッチュッ色に歯牙が白い 神人 仮面をかぶって鉛玉のネックレスに柱石の耳輪をして黒い色の思慕を
使うのに思慕の上には悪鬼を退けておめでたい 機運を迎えるという意味を甘いことは牡丹 2輪と
桃実 7個をさした
牡丹は富貴を象徴して桃は悪鬼を退ける実という意味だ
舞鼓
壬寅進宴図屏
1902年製作
高麗史 楽志によれば高麗忠烈王 (在位 1274年‾1308年)時
李混という人が 寧海に流刑になって行った時海の上で得たいかだで 大きい太鼓を作って
たたいたら音が大きくて雄大壮厳でダンスをしたことで由来した
舞鼓は高麗時代から伝え受け継がれて来た郷楽 呈才だ
踊りの形式は
太鼓を打つ人 元舞と 元舞 周りを回りながらダンスをする 挟舞で分ける
元舞が太鼓のぱちを手に持って始終北を囲んでまるで花つぼみの上に飛びあがる蝶のように
あやしてたたきながら回っている間に 挟舞は 三枝花を両手に入ってそのまわりでダンスをする
元々 2人が踊る踊りだったが朝鮮時代 楽学軌範によれば 2人 4人 8人などその時その時場合に
よって 舞員をふやすとか竝びやしたと言う
が踊りは現在まで盛行する 700年の伝統の踊りだ
船遊楽
1795年 奉寿堂 進饌図 絵一部
園幸乙卯整理儀軌に伝える ソンユラック (船遊楽)に対する記録は次のようだ
さまざまな絵の具で彩色した 彩船を設置して多くの妓女たちが分けて立って 船を浮かべる姿をする
錨綱をひきながら 船 周りを取り囲んで ダンスをする世の中に伝えるのを新羅の時からあったと言う
新羅時代 歌舞百戯 の中に 四仙楽府に 竜 馬 鳳 車 船があったが 船が 船遊楽と係わると言う
歌舞百戯は新羅時代国の各種行事に行う歌踊り及び各種伎芸の総称だ
朝鮮時代各地方の 教坊で公演された踊りで朝鮮の 宮中呈才よるが宮廷舞踊で発展した
宮の中でこの 船遊楽が初めて公演されたことは 1795年 正祖のお母さん 恵慶宮 洪氏の還暦を祝う
奉寿堂で開かれた公演だった
朝鮮時代 宮中呈才 の中に 献仙桃は中国来由なので 唐楽と言って 処容舞 剣舞 船遊楽
舞鼓は三国時代高麗時代から伝え受け継がれて来た朝鮮の伝統音楽なので 郷楽呈才と言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