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平安監司) 향연圖 중에 浮碧樓 宴會圖의 그림 일부이다

平安監司  향연圖는 監司의 첫 부임을 환영하기 위해 3곳에서 열린 연회를 그린 그림이다

 

平安監司는 현재 북한의 평안도 지역의 觀察使를 말한다

平安道 觀察使의   監營은 평양에  설치되어 있었다

 

月夜船遊圖

浮碧樓 宴會圖

練光亭 宴會圖가 있다

 

부벽루 (浮碧樓)는 평양 대동강 기슭에 있는 고구려 시기의 (樓亭)이다

고구려 393년에 세운 永明寺의 부속 건물이었는데 당시에는 永明樓라고 불렀다고 한다

 

12세기에 와서 대동강의 맑고 푸른 물 위에 떠 있는 樓亭이라는 뜻으로

 

부벽루(浮碧樓)라고 부르게 되었다

 

浮碧樓는 保守와 재건을 반복하여

고려시대에 다시 재건하였고 임진왜란 당시 화재로 소실되어

 

조선시대 1614년에 다시 재건한 것이 현재의 건물이다

 

맨 앞에 붉은색 옷을 입고  앉은 6명과 다른 색깔 푸른색 계통의 옷을 입고 서있는 1명은

악사이고 양쪽으로 길게 앉은 여인들은 기녀이며 기녀 뒤에는 호위무사들이 있다

주위에는 마을 有志들과  구경하러 나온 마을 사람들이 있다

 

마을 有志는 마을에서 영향력있는 사람을 말한다

 

 

 

 

 

장막을 친 왼쪽으로 할머니 할아버지 아이 아주머니 등 연회를 구경하러 나온 마을 사람들로

가득하다  平安監司 환영회는 마을 전체 축제와 같다

오른쪽으로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눈에 뛴다

 

 

 

중앙에 앉은 사람이  (平安監司)이다

양쪽 옆으로 시중을 드는  사람이 있다

 

平安監司 앞에는 獻仙桃 處容舞 劍舞 舞鼓 등 4가지 춤이 펼쳐지고 있다

 

 

4가지 춤을 간단하게 소개하면

 

먼저 이 춤은 헌선도 (獻仙桃)이다

 

왕의 長壽를 위해 王母가 仙界에서 내려와 千歲靈桃를 헌상하는 내용의 춤이다

중국 宋나라의 교방악에서 演行되던 王母桃에서 기원된 춤으로 고려시대 문종 (재위 1046년~

1083년)에 들어왔다고 한다

 

 

 

 처용무 (處容舞)

 

신라 헌강왕 (재위 875년~886년)때에

동해 용왕의 아들 처용(處容)의 아내는 몹시 아름다웠는데  疫神  즉 전연병을 퍼뜨리는 귀신이

처용의 아내를 사랑하여 몰래 동침하였다  

처용이 집으로 돌아와 두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을 보고 처용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더니

疫神은 처용이 분노하지 않는 것에 감격하여 용서를 빌고

처용에게 앞으로 公( 處容)의 형상이 보이는 곳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말하며 떠났다고 한다

 

그 이후 백성들은 처용(處容)의 형상을 그려 문에 붙이고 나쁜 악귀를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날을 맞이 할 수 있도록 기원하였다고 한다

(삼국유사 권 2 處容郞 望海寺)기록에 전한다  

 

이 때 處容이 추었던 춤이 處容舞로 전해졌고 조선시대에 궁중무용으로 발전하였다

동서남북 중앙 五方을 상징하는  白 黑 靑 紅 黃 五色의 옷을 입은

5명의 남자들이 추는 춤이다

 

 

 

양쪽에 여인 2명이 칼춤을 추고 있다

 

劒舞의 유래는  東京雜記  증보문헌비고 등 에 전하는데

기록에 의하면

신라 소년  花郞  黃昌이 백제에 들어가 칼춤을 추다가 백제의 왕을 죽이고 자신도 죽었는데

 그 후 신라인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그 花郞의 얼굴 형상의 탈을 쓰고 칼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東京雜記의 官昌條에 의하면

李詹이  乙丑年  겨울에  慶州에 갔을 때 慶州 府尹 裵公이 향악을 베풀어 주었는데 뜰에서

소년이 칼춤을 추어서 그 유래를 물었더니

신라에 黃昌이라는 花郞이 나이가 15세 정도였는데 칼춤을 잘 추었다고 한다 라고

이야기를 하였다고 한다

 

慶州府尹은 현재의 慶州市長 정도 되겠다

裵公은 裵氏 성을 가진 사람다 여기서 公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東京雜記 官昌條에 의하면

 

고려말 조선초 사람 李詹은 그 신라 소년 花郞의 이름이 官昌인데 黃昌으로 잘못  전해진

것이라고 말하였다 한다

 

李詹의 주장은 그의 개인의 주장으로 읽으면 된다

 

劍舞는 소년이 탈을 쓰고 추었던 춤이었는데

조선시대에 와서 탈은 없어지고 여성인 기녀가 추는 춤으로 변화하였다

 

무고 (舞鼓)

고려시대  충렬왕 때에 李混이라는 사람이 寧海에 귀양 갔을 때 바다 위에서 뗏목을 얻었는데

그 뗏목으로 북(鼓)을 만들어  두드리며 춤을 추었던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처용무 (處容舞)에 쓰는 處容 탈의 머리에 꽂은 것은

모란과 복숭아 나뭇가지이다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며 복숭아 나뭇가지는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이다

 

 

 

 

 

 

 

 


新羅 1.100年の 処容舞

 

 

 (平安監司) 香煙図 の中に 浮碧樓 宴会図の絵一部だ

平安監司  香煙図は 監司の初部なのを歓迎するために 3ヶ所で開かれた宴会を描いた絵だ

 

平安監司は現在北朝鮮の平安道地域の 観察使を言う

平安道 観察使の   監営は平壌に  設置されていた

 

月夜船遊図

浮碧樓 宴会図

練光亭 宴会図がある

 

浮碧樓 (浮碧樓)は平壌大同江岸にある高句麗時期の (樓亭)だ

高句麗 393年に立てた 永明寺の部属建物だったが当時には 永明樓と呼んだと言う

 

12世紀に来て大同江の清くて青い水の上に浮かんでいる 樓亭という意味で

 

浮碧樓(浮碧樓)と呼ぶようになった

 

浮碧樓は 保守と再建を繰り返して

高麗時代にまた再建したし壬辰の乱当時火事で消失して

 

朝鮮時代 1614年にまた再建したことが現在の建物だ

 

一番の前に赤色服を入庫  座った 6人と違う色青色系統の服を着て立っている 1人は

楽士で両方へ長く座った女人たちは妓女で妓女後には護衛無事たちがある

周りには村 有志らと  見物しに出た村人々がいる

 

村 有志は村で影響力ある人を言う

 

 

 

 

 

帳幕を張った左にお婆さんお爺さん子供おばさんなど宴会を見物しに出た村人々で

一杯だ  平安監司 歓迎会は村全体祭りのようだ

右側に畑で働く人々が目に走る

 

 

 

中央に座った人が  (平安監司)だ

両方横で市中を持つ  人がいる

 

平安監司 前には 献仙桃 処容舞 剣舞 舞鼓 など 4種踊りが開かれている

 

 

4種踊りを簡単に紹介すれば

 

先にこの踊りはホンソンも (献仙桃)だ

 

王の 長寿のために 王母が 仙界から下って 千歳霊桃を献上する内容の踊りだ

中国 宋国のギョバングアックで 演行になった 王母桃で祈願された踊りで高麗時代文宗 (在位 1046年‾

1083年)に入って来たと言う

 

 

 

 処容舞 (処容舞)

 

新羅憲康王 (在位 875年‾886年)時に

東海竜王の息子処容(処容)の妻は大変美しかったが  疫神  すなわち電研病をまき散らす鬼が

処容の妻を愛して密かに同沈下だった  

処容が家に帰って来て二人の人が横になっていることを見て処容が歌を歌いながらダンスをしたら

疫神は処容が怒らないことに感激して容赦を謝って

処容にこれから 公( 処容)の形象が見える所には入らないと言いながら去ったと言う

 

その後民たちは処容(処容)の形象を描いて門に付けて悪い悪鬼を退けて

おめでたい日を迎え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祈ったと言う

(三国有史圏 2 処容郎 望海寺)記録に伝える  

 

この時 処容が踊った踊りが 処容舞で伝わったし朝鮮時代に宮庭舞踊で発展した

東西南北中央 五方を象徴する  白 黒 青 紅 黄 五色の服を着た

5人の男たちが踊る踊りだ

 

 

 

両方に女人 2人が剣舞を踊っている

 

劔舞の来由は  東京雑記  増補文献費でなどに伝えるのに

記録によれば

新羅少年  花郎  黄昌が百済に入って行って剣舞を踊っている途中百済の王を殺して自分も 死んだが

 その後新羅人たちが彼を追慕するためにその 花郎の顔形象の仮面をかぶって剣舞を秋期

始めたのが来由されたと言う

 

 

東京雑記の 官昌條によれば

李〓が  乙丑年  冬に  慶州に行った時 慶州 府尹 〓公が郷楽を施してくれたが庭で

少年が剣舞を踊ってその来由を聞いたら

新羅に 黄昌という 花郎が年が 15歳位だったが剣舞をよく踊ったと言うと

話をしたと言う

 

慶州府尹は現在の 慶州市長 位になる

〓公は 〓氏 性を持ったサラムダここで 公は人を示すことだ

 

 

東京雑記 官昌條によれば

 

高麗末朝鮮初人 李〓はその新羅少年 花郎の名前が 官昌なのに 黄昌で過ち  伝わった

のだと言ったと言う

 

李〓の主張は彼の個人の主張で読めば良い

 

剣舞は少年が仮面をかぶって踊った踊ることだったが

朝鮮時代に来て問題は消えて女性である妓女が踊る踊りに変化した

 

誣告 (舞鼓)

高麗時代  忠烈王の時に 李混という人が 寧海に流刑になって行った時海の上でいかだを得たが

そのいかだで北(鼓)を作って  たたきながらダンスをしたことで由来したと言う

 

 

処容舞 (処容舞)にかぶる 処容 仮面の頭にさしたことは

牡丹と桃木の枝だ

 

牡丹は富貴を象徴して桃木の枝は鬼を追うという意味だ

 

 

 

 

 

 

 

 

 



TOTAL: 8943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5343
No Image
9699 VS 7490 dkool 2017-01-17 1259 0
5342
No Image
전통과 J-pop 댄스 jlemon 2017-01-17 2429 0
5341
No Image
오키나와(류큐(ryukyu) 왕국) 2 jlemon 2017-01-15 2828 0
5340
No Image
오키나와(류큐(ryukyu) 왕국) 1 jlemon 2017-01-15 2502 0
5339
No Image
변하지 않는 한국 <탈아론> (1) dkool 2017-01-15 3030 1
5338
No Image
일본 민가원(nihonminkaen) jlemon 2017-01-15 3127 0
5337
No Image
전통을 지켰다! dkool 2017-01-11 1255 0
5336
No Image
Gothic & Lolita jlemon 2017-01-11 2069 0
5335
No Image
일본의 여성의 졸업식의 복장 jlemon 2017-01-11 3266 0
5334
No Image
옛, 일본의 여성의 머리 모양 jlemon 2017-01-11 2772 0
5333
No Image
성인식 jlemon 2017-01-09 2022 0
5332
No Image
금년은 엘리자베스 1세! dkool 2017-01-09 918 0
5331
No Image
일본인 Hollywood 스타 jlemon 2017-01-08 3662 0
5330
No Image
(′·ω·‘) 한국인의 역사 indonesia 2017-01-06 946 0
5329
No Image
코스프레 소녀 (1) masamasa123 2017-01-04 830 0
5328
No Image
1950 한국 dkool 2017-01-04 999 0
5327
No Image
신년의 기쁨을 말씀드리는 dkool 2017-01-02 742 0
5326
No Image
대일본 제국 시대의 KIMONO dkool 2016-12-28 1251 0
5325
No Image
신라 1.100년의 處容舞 namgaya33 2016-12-29 1690 0
5324
No Image
한국 전통 요리 건재 dkool 2016-12-23 974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