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사진을 통한 조선 이미지 왜곡과 생산
일본은 페리 제독에 의해 싸우지 않고 개항되고
식민지 개척에 관심없던 미국의 도움으로 근대화되면서
자신들은 우월한 탈출 아시아 인종으로 망상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선을 침략하고 조선의 근대화를 방해해서
교활하게 치밀하게 조선을 식민지 하기 위해 갖은
날조와 왜곡을 하고 조선을 비하하기 시작했는데
조선의 이미지를 왜곡해서 한국인은 미개하고 열등해서
일본이 조선을 통치해하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그 대표적 방책중 하나인 사진을 통한 조선 이미지 왜곡을 보자.
왜인들은 어떤 용서할 수 없는 짓을 하고 있었는가 ?
조선의 가장 하층민들의 가슴 노출 사진을 악의적으로 찍어 일반화
또 조선의 낙후된 지역의 사진들만 찍어서 일반화 시키고 있다.
이렇게 일본의 왜곡에 의해 조선의 이미지가 만들어지기 이른다.
아래 사진들을 보자
가슴을 노출한 여인 저고리가 심하게 짧다.
상당히 의도적인 노출로 보인다. 그런데 배경이 이상하지 않은가 ?
저고리가 비정상적으로 짧아서 부자연스럽게 가슴이 노출되고 있다.
장옷으로 온 몸과 얼굴까지 가리고 있는 사진이다.
사실 자세히 보면 위의 여인과 모두 같은 여인이였다.
배경은 일본의 스튜디오군요
이상하게 저고리가 몸에 맞지 않고 의도적으로 가슴을 노출 시키고 있다.
여기서 뒤의 풍경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의 배경은 도쿄의 한 스튜디오군요.
심지어 가슴을 노출한 여인도 일본의 여성인지 조선의 여성인지 국적도 불명
아무래도 일본의 여성으로 추정되지만 어떤가 ?
이것도 현재까지 일본인들이 자주 올리는사진인데
카메라를 응시하며 표정이 상당히 경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배경을 자세히 보면 이것도 역시 스튜디오에서 일본인이
악의적으로 찍은 사진인걸 알 수 있군요.
천민 계층의 머리에 물통을 들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아이 이런 사진을 찍고 있는데
누가 봐도 복장이나 배경은 천민 계급의 사람들이다.
심지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표정이 긴장한것 처럼 경직되어 있다.
부자연스럽게 치마가 내려가고 저고리 밖으로 의식적으로 가슴으로 노출시키고 있다 .
왜인들은 하층민을 붙잡아서 이런 포즈를 요청해서 사진을 찍고 있던게 아닙니까 ?
실제로 가슴을 노출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
가난한 하층민들이 아이를 낳고 모유 수유를 하던 경우나
가사노동중 가슴이 드러나는 경우 이외에 하층민에게 조차도
일부로 가슴을 노출시켜 다니는 경우는 없었다.
이 사진은 도성 밖 가난한 하층민들의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이지만 이런 모습조차 악의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이 조선의 일반적이고 대표적인 풍경인가 ?
일본은 이런 하위층 사진들을 대량으로 찍어서 세계에 배포하고 있었다.
한국인을 열등 인종으로 비하하고 식민지를 정당화 주장과 비하하기 위해서 였다.
그리고 사진을 이렇게도 이용하고 있었던 한국인 공개 처형 사진 배포해서
일본에 반항하면 한국인은 이렇게 된다는 것을 사진을 통해 각인 시키고 있군요.
당시 독립군이나 항倭한 사람들은 이렇게 공개처형 되고 사진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이것들 배부분 조선과 일본의 스튜디오를 통해 펴낸 `조선 풍속 풍경 사진첩”에 담겨있는 사진들이다. 가슴 노출 사진은 엽서로 제작돼 서구 유럽으로도 팔려나가면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이 덕분에 20세기 초 서구유럽에 알려진 조선의 컨셉트는 바로 가슴 노출이었다.
아무리 일제 강점기라고 하지만, 유학의 나라 조선에서 어떻게 이런 사진이 촬영됐을까. 사진에 등장하는 각종 소품들 역시 동일한 것이 많고. 조선의 어느 시골길에서 만난 여성들을 촬영한 것으로만 알았던 이 사진들이, 실제로는 스튜디오에서 모델을 고용해 의도적으로 조작된 것이 대부분이였다.
일본이 찍은 사진들에는 가슴을 노출한 조선여인의 사진만 있는 게 아니다. 헐벗고 굶주린 아이들, 게으른 남성들, 기생들, 총살당하는 의병들, 목에 칼을 쓰고 미소를 짖고 있는 죄수들 사진들도 있다. 하지만 이 사진들 모두가 가슴 노출 사진과 같이 조작되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왜곡된 것들이다.
일제는 왜 이런 조작과 왜곡을 했던 것일까. 일제는 조선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상징 조작이 필요했다. “조선은 미개하고, 야만스럽고, 낙후된 나라다. 그래서 일본이란 강대국의 보호를 받아야한다”는 논리 전개를 위해 이미지 조작을 해야했던 것이다.
당시 조선에 거주하던 선교사들은 조선의 풍경을 말하고 있다.
퍼시벌 로웰, <내 기억 속의 조선, 조선 사람들> (예담, 2001)
(259쪽)
여성의복으로는 매우 짧은 저고리에 풍성한 속곳과 속치마가 있다. 속치마는 서구 여성의 것과 비슷한 형태에 기다란 치마끈이 달려 있다. 이 끈은 인간의 신체 구조를 무시한 채, 치마를 될 수 있는 한 높이 올려 묶게 만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고리와 치마 말기 사이에는 종종 2내지 3인치 가량의 틈이 벌어져 유방이 약간 노출되는 경우도 생긴다. 한 가지 반드시 덧붙일 말은 이런 뜻하지 않은 일은 우물가에서 물을 길어 머리에 든 하위 계층에서나 볼 수 있는 우연일 뿐이다.
까를로 로제티, <꼬레아 꼬레아니> (숲과나무, 1996)
(112~113쪽)
세상의 어느 나라에도 한국에서처럼 엄격하게 여인들의 생활을 격리시키는 곳은 없다. 양반층의 여인이건 중류층의 여인이건 간에 집에서 나가는 일이 결코 없으며 할 수 없이 외출해야 할 때에는 반드시 완전히 차단된 가마를 이용해야 했다. 길에서 볼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여인들은 모두 사회적으로 최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며 이들 또한 대체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서울 여인들의 얼굴을 가리는 것은 머리에서부터 덮어씌운 초록색 비단외투로서 비록 소매 자락이 달려 있기는 하나 어떤 경우에도 그것을 입지는 않는다. 한편 도시 주변 농촌의 여인들은 이러한 외투 대신 흰 앞치마로 얼굴을 가리기도 한다. 이것이 한국 여인의 의복 중 가장 신기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독창적이며 어느 한국의 의상에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이 책에 실려 있는 사진들을 보면 된다. 한편 가슴을 드러내놓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인들은 모두 예외 없이 최하층 계급인 칠반에 속하는 사람들인데, 지금은 영국과 미국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거리에서 이들을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 일본이 찍은 사진처럼 조선 거리에서 가슴 노출이
일반적인 풍경인가 ? 다른 사진들을 보자
유교 사회에서 여성이 몸과 얼굴을 노출하는건 상당히 천박한 행위였다.
한국인들은 장옷으로 온 몸과 얼굴을 감추고 다니는군요.
그렇다면 당시 일본인들은 어떤가 ?
왜인들은 바지와 신발과 상의를 입지 않는게 일반적인
풍경이였다고 할 수 있다 정말 미개하고 천한 놈들이다.
어째서 왜인은 신발이 없습니까?
천박한 놈들이군요 상의와 바지를 입지않고 맨발이다 미개한 놈들
누더기를 걸쳐서 가슴이 튀어나오고
역시 맨발kkkk
어째서 왜인들은 신발이 없습니까 ?
왜인은 미개하고 천박하다.
남녀 할것없이 몸에 낙서를 하는 것이 왜인들의 전통입니다.
분명 이런 모습이였다k 서양의 문화는 위대하군요 k k k k
당시 서양인들과 일본인들은 이런 종류의 사진을 좋아하는것 같지만
아이를 업고 다니고 모유 수유를 편하게 하기 위함으로군요
그리고 가슴이 늘어지고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가슴 노출은 없었을것 같지만
이런식의 편협한 비하라면 나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어째서 메이지 정부가 금지한 천박한 풍습인 혼욕을 근래에까지 하고 있습니까 ?
왜인의 아이들은 옷을 입고 다니는 문화가 없었군요.
사실은 훈도시는 성인 왜인만 입고 있었다.
이런 놈들이기 때문인가 ? 이런 사진들이 모두
부락민이라고 왜곡하지 말기를 바라면서
아직까지 차별하고 있으면 곤란하다고
왜인 은혜를 원수로 갚지 말아라 !
日本の写真を通じる朝鮮イメージ歪曲と生産
日本はペリー提督によって争わないで 開港されて
植民地開拓に関心なかったアメリカの助けに近代化されながら
自分たちは優越な脱出アジア人種に妄想するようになった.
そして朝鮮を侵略して朝鮮の近代化を邪魔して
狡く緻密に朝鮮を植民地夏期のために 持った
捏造と歪曲をして朝鮮を卑下じ始めたが
朝鮮のイメージを歪曲して朝鮮人は未開で劣等で
日本が朝鮮を統治解夏すると主張するのに至る.
その代表的 方策中ひとつの写真を通じる朝鮮 イメージ歪曲を見よう.
倭人たちは どんな許すことができない仕業をしていたのか ?
朝鮮の仮装(家長) 下層民たちの胸露出写真を 悪意的に取って一般化
また朝鮮の立ち後れされた地域の写真だけ取って 一般化させている.
こんなに日本の歪曲に 義解朝鮮のイメージが作られるのぼる.
下の写真を見よう
胸を露出した女人チョゴリがひどく短い.
よほど意図的な露出で見える. ところで背景が変ではないか ?
チョゴリが非正常的に短くて不自然に胸が露出している.
ザングオッで全身と顔まで覆っている写真だ.
実は詳らかに見れば上の女人と皆 同じ女人だった.
背景は日本の スタジオですね
変にチョゴリが身に合わなくて意図的に胸を露出させている.
ここで 後の風景を注目する必要がある. これの背景は 東京のたいてい スタジオですね.
はなはだしくは 胸を露出した女人も日本の 女性なのか朝鮮の女性なのか国籍も不明
どうしても 日本の女性に推定されるがどうなのか ?
これも 現在まで日本人たちが よくオルリヌンサジンなのに
カメラを見つめて 表情がよほど硬直されていますところが
背景を詳らかに見ればこれもやっぱり スタジオで日本人が
悪意的に 撮った写真なのを分かりますね.
賎民階層の 頭にバケツを持ってカメラを見つめる子供こんな写真を撮っているのに
だれが見ても服装や背景は賎民階級の人々だ.
はなはだしくは カメラを見つめている人々は皆表情が緊張したことのように 硬直されている.
不自然にスカートが 下がって チョゴリの外で 意識的に 胸で 露出させている .
倭人たちは 下層民をつかまえてこんなポーズを要請して写真を撮っているのではないですか ?
実際に胸を露出する場合はどんな場合か?
貧しい 下層民たちが子供を生んで母乳授乳をした 場合や
家事労動中 胸が現われる場合以外に下層民にすら
一部で胸を 露出させて通う場合は なかった.
が写真は都城外 貧しい 下層民たちの 子供達のあどけない
姿だがこんな姿さえ悪意的に利用していた.
こんな姿が朝鮮の 一般的で代表的な 風景か ?
日本はこういう 下位層写真を大量で取って世界に配布していた.
朝鮮人を劣等人種で卑下じて 植民地を正当化 主張と卑下じるためにであった.
そして 写真をかくも利用していた朝鮮人公開処刑写真配布して
日本に反抗すれば 朝鮮人はこのようになるということを写真を通じて刻印させていますね.
当時独立軍や項倭一人々はこんなに公開処刑になって写真に利用されています.
これら梨部分 朝鮮と日本のスタジオを 通じて発行した `朝鮮風俗風景写真帖¥"に盛られている写真だ. 胸露出写真ははがきに製作されて西欧ヨーロッパでも売れて行きながら人気を呼んだと言う. このおかげさまで 20世紀初西欧ヨーロッパに知られた朝鮮のコンセプトはすぐ胸露出だった.
いくら日帝強点期だと言うが, 留学の国朝鮮でどんなにこんな写真が撮影されただろうか. 写真に登場する各種小品たちも等しいのが多くて. 朝鮮のどの 田舎道で会った女性たちを撮影したことだけで分かったこの写真が, 実際ではスタジオでモデルを雇って意図的に操作されたことが大部分だった.
日本が取った写真には胸を露出した朝鮮女人の写真だけあるのではない. ぼろを着て飢えた子供達, 怠けな男性たち, 芸者たち, 銃殺される義兵たち, 首に刀を使ってほほ笑みをほえている罪囚たち写真もある. しかしこの写真皆が胸露出写真と一緒に操作されるとかあるいは意図的に歪曲されたものなどだ.
日製はどうしてこんな操作と歪曲をしたのだろう. 日帝は朝鮮侵略と植民地支配を正当化するための象徴操作が必要だった. 朝鮮は未開で, 野蛮で, 立ち後れされた国だ. それで日本と言う(のは)強大国の保護を受け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論理展開のためにイメージ操作を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だ.
当時朝鮮に居住した 宣教師たちは 朝鮮の風景を言っている.
ポシボルロウェル, <私の記憶の中の朝鮮, 朝鮮人々> (イェダム, 2001)
(259ページ)
女性衣服では非常に短いチョゴリにふんだんな下着と湯巻がある. 中するが西欧女性の物と似ている形態に長たらしいスカート紐が走っている. この紐は人間の身体構造を無視したまま, スカートをできる限り高くあげて縛るようにする. するが それにもかかわらず, チョゴリとスカートではない間にはたびたび 2ないし 3インチほどのすき間ができて乳房がちょっと露出する場合も生ずる. 一つ必ず付け加える言葉はこんな意図しない事は井戸の周りで水を汲んで頭に 入った 下位階層でも見られる偶然であるだけだ.
カルルでロゼッティ, <コレアコレいや> (スブグァナム, 1996)
(112‾113ページ)
世の中のどの国にも韓国のように厳格に女人たちの生活を隔離させる所はない. 両班層の女人だか中流層の女人だか間に家から出る事が決してないし仕方なく外出しなければならない時には必ず完全に遮られたお御輿を利用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道で見られるわずかばかりの女人たちは皆社会的に最下層に属する人々でこれらも概して顔を覆っている. ソウル女人たちの顔を覆うことは頭から被せた緑色絹コートとしてたとえ袖裾が走っていることはあるがどんな場合にもそれを着ない. 一方都市周辺農村の女人たちはこのようなコート代わりに白い前掛けで顔を覆ったりする. これが韓国女人の衣服の中で一番不思議なことではないがそれでも独創的でどの韓国の衣装にも決して立ち後れないということを確認するためにはこの本に載せられている写真を見れば良い. 一方胸をさらして通りを歩き回る女人たちは皆例外なしに最下層階級である七組に属する人々なのに, 今はイギリスとアメリカ宣教師たちの努力で通りでこれらをほとんど見られなくなった.
実際に日本が 撮った写真のように 朝鮮距離(通り)で胸露出が
一般的な風景か ? 他の写真を見よう
儒教社会で女性が身と顔を 露出するのはよほど浅薄な行為だった.
朝鮮人たちはザングオッで全身と顔を隠して通いますね.
そうだったら 当時日本人たちはどうなのか ?
倭人たちはズボンと履き物と上着を着ないのが一般的な
風景だったと言える本当に未開で天旱やつらだ.
どうして倭人は履き物がないですか?
浅薄なやつらですね上着とズボンをはかないで素足だ未開なやつら
ぼろを着けて胸が飛び出して
やはり素足kkkk
どうして倭人たちは履き物がないですか ?
倭人は未開で 浅はかだ.
男女するまでもなく身に落書きをすることが倭人たちの伝統です.
確かにこんな姿だったk 西洋の文化は偉いですね k k k k
当時 西洋人たちと日本人たちはこんな種類の写真を好むようだが
子供を負って通って母乳授乳を楽にさせるウィハムウですね
そして 胸が垂れているのにそうではなかったら胸露出はオブオッウルゴッみたいだが
こういうふうの偏狭な 比べなさいといえば私も充分にできる.
どうして明治政府が禁止した浅薄な風習である混浴を近来にまで して ありますか ?
倭人の子供達は服を着て通う文化がなかったですね.
事実はふんどしは大人倭人だけ着ていた.
こんなやつらだからか ? こんな写真が皆
部落民だと歪曲しないように願いながら
いまだに差別していたら困ると
倭人 恩をあだで返さないで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