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江戸時代 - 間引きとこけし

일본 동북지방의 전통 목각인형의 유래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는 것 같다.
아이 솎아냄이 기원이라는 쪽과 그 증거가 없다는 양쪽으로 나뉘어 있다.
전설에 무슨 증거가 남겠는가?
목각인형에 대한 이야기를 몇가지 소개한다.
日本東北地方のこけしの来由に対して多くの論難があるようだ.
 間引きが起原という方とその証拠がないという両方へ分けられている.
伝説に何の証拠が残るか?
こけしに対する話をいくつ紹介する.

 

 “水子”という言葉は、昔、貧しさのために、生まれたば.かりの赤ん坊の口に糠などをつめて窒息Deathさせたり、縄で首をしめたりしてKillし、海辺や川岸や沢にすてたりしことから始まったとされています。
  泣く子をおどかすようにして眠らせる子守唄にこんなのがあります。
   ねんねんころりよ おころりよ
    ねんねんしないと 川流す
   ねんねんころりよ おころりよ
     ねんねんしないと 墓立てる
  だれもが知っている「シャボン玉」(作詞・野口雨情 作曲・中山晋平)の歌も、間引きの子を想ってつくられた童謡と言われています。 
   シャボン玉飛んだ 屋根まで飛んだ
     屋根まで飛んで こわれて消えた
   シャボン玉消えた 飛ばずに消えた
     生まれてすぐに こわれて消えた
   風々吹くな シャボン玉飛ばそ
  この「しゃぼん玉」は、野口雨情が幼くして亡くなった娘を偲んで書いたと言われています。
  温泉地のお土産屋さんに並んでいる「こけし人形」も「子消し」つまり、子を消すの意で、水子の霊を慰めるものとしてつくられたのだそうです。 
  わが子を捨てる(Killす)ことは、親にとって、とりわけ母親にとってどんなにつらく悲しいことであったか。罪の意識にも苦しめられたことでしょう。

 “미즈코”라는 말은, 옛날, 궁핍함을 위해서, 태어난지 얼마 안된 갓난아기의 입에 쌀겨등을 채워 질식사시키거나 줄로 목을 닫거나 해 죽여, 해변이나 강가나 늪에 내버리거나 해 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우는 아이를 위협하듯이 해서 재우는 자장가에 이런 건이 있습니다.
   잠잠 대구르르대구르르
    잠잠 하지 않으면 강 흘린다
   잠잠 대구르르대구르르
     잠잠 하지 않으면 무덤 세운다
  누구나가 알고 있는 「비눗방울」(作詞・野口雨情 作曲・中山晋平)의 노래도, 솎아냄의 아이를 생각해 만들어진 동요라고 말해집니다. 
   비눗방울 날아 지붕까지 날았다
     지붕까지 날아 부서져 사라졌다
   비눗방울 사라져 날지 않고 사라졌다
     태어나자마자 부서져 사라졌다
   바람들 불어 비눗방울 날리다
  이 「비누방울 구슬」은, 野口雨情가 어려서 죽은 딸을 그리워하고 썼다고 합니다.
  온천지의 선물가게에 줄지어 있는 「목각 인형 인형」도 「아이 지워」즉, 아이를 지우는 것 뜻으로, 미즈코의 영혼을 위로하는 것으로서 만들어졌던 것이다 합니다. 
  우리 아이를 버리는(죽인다) 것은, 부모에게 있어서, 특히 모친에게 있어서 아무리 괴롭고 슬픈 것이었는지.죄의식에도 괴롭힘을 당한 것이지요.

 

 東北地方の各地でこけし人形が売られています。現在では目のパッチリした可愛いこけし人形もあるようです。でも普通、こけし人形は目鼻立ちが極端に細く、おどろくほど個性に乏しいものです。今では多くの家の飾り棚にもあるこけし人形。その表情はどことなく寂しそうに見えませんか。

 このこけし人形は子どもの玩具だったのでしょうか。

 こけし人形は「子消し人形」から来ていると聞いたことがあります。江戸時代の日本では、堕胎・間引きが行われていました。村の人口が増えれば、生活が成り立っていきませんでした。現代からすれば、とんでもないことですが、人々が生きていくためには仕方のないことだったのです。もちろん、当時の人々にとってもそれは悲しいことでした。「七歳までは神の内」という考えがありました。7歳までの子どもは、神の世界と人の世界の間に生きているもので、神の世界に消えていくこともある存在と考えられました。7歳までにDeathんだ子どもは墓に入れない風習もありました。このように考えられずにはいられなかったのでしょう。

 子どもを失うことは、とりわけ女性にとって悲しいことであったに違いありません。なくした子どもの代わりに作られたのが、こけし人形だったのでしょう。こけし人形の悲しげな表情は、それを作った人の心を映しているように思えます。

 そのこけし人形は男たちが作ったのだと思います。こけし人形の表情は、寂しそうな表情ですが、安らかな表情でもあります。この安らかな表情は、男たちの女たちに対する思いやりの心の表れであったのでしょう。精一杯安らかな表情の人形を贈ることによって、女たちを慰めようとした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こけし人形は子どもの玩具として作られたものではありません。しかし、それはきっと子どもたちの玩具としても使われた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私はこけし人形を見ると、子どもたちに取り囲まれかわいがられているこけしと、母親が少し離れて見守っている光景を想像します。こけし人形となった子どもが、何も知らない姉妹たちにかわいがられること。このことは彼女たちにとって、うれしいことだったに違いありません。もし現実に私がその場にいたならば、彼女に「よかったね」と声をかけたい衝動に駆られるでしょう。

 いつの時代でも、子供を失うことは女性にとって悲しいことです。しかし、女性が責めら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悲しみの中にいる女性を責めたり非難することは、人間として恥ずべきことだと思います。こけし人形を見るとき、むらの人々の心の温かさを感じます。

http://finedays.org/pill/abortion.html

동북지방의 각지에서 목각 인형 인형이 팔리고 있습니다.현재는 눈을 크게 뜬 사랑스러운 목각 인형 인형도 있는 것 같습니다.그렇지만 보통, 목각 인형 인형은 눈이 극단적으로 가늘고, 놀라는 만큼 개성이 부족한 것입니다.지금은 많은 집의 장식선반에도 있는 목각 인형 인형.그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외로운 듯이 보이지 않습니까.
 이 목각 인형 인형은 아이의 완구였을까.
 목각 인형 인형은 「아이 지워 인형」으로부터 와있다고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에도시대의 일본에서는, 낙태・솎아냄을 하고 있었습니다.마을의 인구가 증가하면, 생활이 성립되어서 가지 않았습니다.현대로 보면, 터무니 없는 것입니다만,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물론, 당시의 사람들에 있어서도 그것은 슬픈 일이었습니다.「7세까지는 신의 품」이라고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7세까지의 아이는, 신의 세계와 사람의 세계의 사이에 살아 있는 것으로, 신의 세계에 사라져 가기도 하는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7세까지 죽은 아이는 무덤에 들어갈 수 없는 풍습도 있었습니다.이와 같이 생각할 수 있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겠지요.
 아이를 잃는 것은, 특히 여성에게 있어서 슬픈 것인 것이 틀림없습니다.없앤 아이 대신에 만들어진 것이, 목각 인형 인형이었을까.목각 인형의 슬픈 듯 한 표정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마음을 비추고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 목각 인형은 남자들이 만들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목각 인형의 표정은, 외로운 것 같은 표정입니다만, 편한 표정이기도 합니다.이 편한 표정은, 남자들의 여자들에 대한 배려의 마음의 표현이었겠지요.힘껏 편한 표정의 인형을 주는 것에 의해서, 여자들을 위로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요.
 목각 인형은 아이의 완구로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아이들의 완구로서도 사용된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는 목각 인형을 보면, 아이들에게 둘러싸져서 귀여워해지고 있는 목각 인형과 모친이 조금 떨어져 지켜보고 있는 광경을 상상합니다.목각 인형이 된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는 자매들에게 귀여워해지는 것.이것은 그녀들에게 있어서, 기쁜 일이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만약 현실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녀에게 「좋았어」라고 얘기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겠지요.
 어느시대라도, 아이를 잃는 것은 여성에게 있어서 슬픈 일입니다.그러나, 여성을 탓할 수 있을 것은 없었습니다.슬픔안에 있는 여성을 탓하거나 비난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부끄러운 일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목각 인형을 볼 때, 마을의 사람들의 마음의 따뜻함을 느낍니다.

 

 

 長蔵文書解説に、平井氏は「木地人形(こけし)は贅沢品にリストアップされているのである」として「ろくろを使って作った贅沢品とされていた木人形(こけし)」と述べる。平井氏は明確に「こけしは贅沢品」とみている。「こけしは贅沢品である」とは、今までの「こけし」研究では耳にしない「新説」「珍説」と聞こえる。

これも全く間違った認識ではないか。こけし関係者ば.かりでなく、ほとんどの人に「こけしは贅沢品ではない」という見方が一般的である。「こけしは庶民のみやげもの」であり、「高価な贅沢品ではない」ということであり、このことは、伝統こけし研究の「常識」であろう。

「こけしは、ろくろを使っているので贅沢品だ」と述べているが、庶民は「ろくろ」をみやげに買うのではない。買い求めるのは、ろくろを使って作られる「こけし」である。氏の認識だと、それならば同じ「ろくろ」を使った木地師の挽く他の木地玩具・おもちゃ、鉢、椀、盆、その他も当然贅沢品であり、禁令で全部禁止しなければならない。なぜなのか説明がない。「こけし」は贅沢品という認識は、自分で集めている、一部の人気作家の「高価な」「贅沢な」こけしをイメージしているのではないか。

こけしは温泉のお土産品として広まり、決して贅沢品ではない。高いものではない。だからその地方独特の味を持っていままで作られ続き、求められてきたのである。

いわゆる「贅沢禁止令」の対象は、「華美高価の品」であり「奢侈高値」の品を取り締まったもので、「こけし」はこの禁令には指摘されてはいないのである

それならばなぜ「こけし」が長蔵文書で禁止の品とされたのか。「こけし」が「間引きされた子の供養のためのもの」であったからである。間引きは禁制とされたが、こけしは贅沢品でなかったため、藩の禁止令として公に禁止できるものではなかったのである。
長蔵文書解説에, 平井씨는 「목각 인형은 호화품에 리스트업 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해 「녹로를 사용해 만든 호화품으로 되어 있던  목각 인형이라고 말한다.平井씨는 명확하게 「목각 인형은 호화품」이라고 보고 있다.「목각 인형은 호화품이다」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목각 인형」연구에서는 듣지도 못한 「새로운 학설」 「진설」이라고 들린다.

이것도 전혀 잘못된 인식이 아닌가.목각 인형 관계자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에게 「목각 인형은 호화품은 아니다」라고 하는 견해가 일반적이다.「목각 인형은 서민의 선물의」이며, 「고가의 호화품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어, 이것은, 전통 목각 인형 연구의 「상식」일 것이다.

「목각 인형은, 녹로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호화품이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서민은 「녹로」를 선물로 사는 것은 아니다.입수하는 것은, 녹로를 사용해 만들어지는 「목각 인형」이다.씨의 인식이라고, 그러면 같은「녹로」를 사용한 목공의 녹로를 사용한 다른 목각인형・장난감, 주발, 공기, 화분, 그 외도 당연히 호화품이며, 금지령으로 전부 금지해야 한다.왜인가 설명이 없다.「목각 인형」은 호화품이라고 하는 인식은, 스스로 모으고 있는, 일부의 인기 작가의 「고가의」 「사치스러운」목각 인형을 이미지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목각 인형은 온천의 선물품으로서 퍼져, 결코 호화품은 아니다.비싼 것으로는 없다.그러니까 그 지방 독특한 맛을 가지고 지금까지 만들어져 계속 되어,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있다.

이른바 「호화 금지령」의 대상은, 「華美高価의 물건」이며 「사치 고가」의 물건을 단속한 것으로, 「목각 인형」은 이 금지령에는 지적되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면 왜 「목각 인형」이 長蔵文書解説로 금지의 물건으로 여겨졌는가.「목각 인형」이 「솎아냄 된 아이의 공양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이다.솎아냄은 금제로 여겨졌지만, 목각 인형은 호화품이 아니었기 때문에, 번의 금지령으로서 공적으로 금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東北」「温泉」「木地師」という三つの要因が、こけし発生の三要素といえます。なかでも「木地師」というロクロ専門技術者集団がこけしを作り、東北地方に広まったのです。

 こけしの語源については諸説があります。厄除子(よけこ)、厄除子如来という疫病除けの玩具から変化したもの、あるいは小さな笥(はこ)にいれられる赤子、すなわち小笥子、あるいは「小芥子」と書き、その名のとおり「小さな芥子」芥子粒のように小さい人形の表現とするものなど、諸説があります。いずれにせよそれらに共通するものは赤子、疫病など、また全ての人を救いとる如来など。それらからひびいて来るものは通底奏音としてのDeathの影です。


 「こけし」「こげす」「こうけし」の元の意味は「子消し」「子消す」「子を消し」であったと私は思います。生活に困窮して子供が育てられないため、生まれたば.かりの赤子をKillしてしまう「間引き」です。

 東北地方をめぐる海流、南下する寒流は宮城金華山沖で北上して来た黒潮とぶつかり、東へそれていく。親潮の流れが強いと、寒流の冷たい水蒸気を含んだ季節風(ヤマセ)が吹きつけ、霧となって太陽を隠してしまう。この「寒い夏」が冷夏です。六月末あるいは七月に入っても暖房を必要とするほど寒い。宮沢賢治の「アメニモマケズ」の一節「サムサノナツハオロオロアルキ」の世界です。「ヤマセ」が吹くと稲は成熟せず枯Deathし、飢饉の秋となります。東北の大飢饉は江戸時代、元禄、宝暦、天明、天保の四大飢饉といわれ、それには例外なく子Killしを伴っていました。将来労働力の担い手とならない女児は間引かれさまざまな方法でKill害されました。赤子の頭のまだ柔らかい部分を手で押す、鼻口にぬれ紙を貼りつける、顔を乳房に押しつける、首を手で押さえつける、顔を水につけるなど様々な方法でKill害されました。可愛いわが子をKillさねばならない母親の心情はいかば.かりであったでしょうか。

 罪深い母親たちはDeath児への鎮魂のため、また自らの罪の贖いと魂の救済を如来の姿にもとめたのでした。こけしの見せるほのかな微笑みは救世観音如来の微笑みであったのです。

 「동북」 「온천」 「목각인형」이라고 하는 세 개의 요인이, 목각 인형 발생의 삼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 중에서도 「こうけし」이라고 하는 녹로 전문 기술자 집단이 목각 인형을 만들어, 동북지방에 퍼졌습니다.

 목각 인형의 어원에 대해서는 제설이 있습니다.액막이자, 액막이자 여래라고 하는 역병 없애의 완구로부터 변화한 것, 혹은 작은 상에 넣어지는 갓난아이, 즉 소상자, 혹은 「특산 인형」이라고 써, 그 이름대로 「작은 겨자」양귀비씨와 같이 작은 인형의 표현으로 하는 것 등, 제설이 있습니다.어쨌든 그것들에 공통되는 것은 갓난아이, 역병 등, 또 모든 사람을 구제 취하는 여래 등.그것들로부터 영향을 주어 오는 것은 통저주음으로서의 죽음의 그림자입니다.

 「목각 인형」 「개하급 관리」 「이렇게 지워」의 원래의 의미는 「아이 지워」 「아이 지운다」 「아이를 지워」에서 만났다고 나는 생각합니다.생활에 곤궁하고 아이가 자라지 않기 때문에, 태어난지 얼마 안된 갓난아이를 죽여 버리는 「솎아냄」입니다.

 동북지방을 둘러싼 해류, 남하하는 한류는 宮城金華山沖에서 북상해 온 쿠로시오와 부딪쳐, 동쪽으로 그대로 간다.쿠릴 해류의 흐름이 강하면 한류가 차가운 수증기를 포함한 계절풍을 내뿜어 안개가 되고 태양을 숨겨 버린다.이 「추운 여름」이 냉하입니다.6월말 혹은 7월에 들어가도 난방을 필요로 할 만큼 춥다.宮沢賢治의 「아메니모마케즈」의 일절 「삼사노나트하오로오로아르키」의 세계입니다.「계절풍」이 불면 벼는 성숙하지 않고 고사해, 기근의 가을이 됩니다.동북의 대기근은 에도시대, 元禄、宝暦、天明、天保의 4대기근이라고 해 거기에는 예외없이 아이 살인을 수반하고 있었습니다.장래 노동력의 담당자가 되지 않는 여아는 솎아내져서 다양한 방법으로 살해되었습니다.갓난아이의 머리의 아직 부드러운 부분을 손으로 누르는, 鼻口에 젖은 종이를 붙이는, 얼굴을 유방에 억누르는, 목을 손으로 억누르는, 얼굴을 물에 담그는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살해되었습니다.사랑스러운 아이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모친의 심정은 얼마나에서 만났는지요.

 죄많은 모친들은 죽은 아이에게의 진혼 때문에, 또 스스로의 죄의 속죄와 영혼의 구제를 여래의 모습에도 세웠던 것입니다.목각 인형이 보이는 희미한 미소는 구세관세음 보살 여래의 미소였습니다.


에도시대- 농노제하에서의 인구조절에서 동북지역의 솎아냄의 사례를 몇가지 소개하였다.
江戸時代 - 農奴制下での人口調節で東北地域の間引きの事例をいくつ紹介した.
http://blog.naver.com/marich77/40202208821

오늘은 佐賀藩의 에도시대의 인구변화를 살펴 보면서 솎아냄의 실상을 알아보자.
今日は 佐賀藩の江戸時代の人口変化をよく見ながら間引きの実際を調べよう.

 

佐賀藩の古文書をひも解くと女の赤子はKillしても構わないという認識が広くあったようです。

17世紀初頭に書かれた山本常朝の『葉隠』によると
「娘の子は育てぬがよし……頭子なとは格別、其外は捨て申すへしと也」
つまり長女以外は女性は育てなくてもいいと書かれています。
http://www.city.saga.lg.jp/up_download_file/s34624_20130321053146.pdf

사가번의 고문서를 읽어 보면 여자의 갓난아이는 죽여도 상관없다고 하는 인식이 넓게 있던 것 같습니다.
17 세기 초두에 쓰여진 山本常朝의 「엽은」에 의하면 「딸인 아이는 기르지 않는이 좋아……頭子와는 格別, 그외는 버려 말씀드리는에 해와 야」즉 장녀 이외는 여성은 기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쓰여져 있습니다.  

 

다음 사가번의 인구변천을 주의 깊게 살펴 봅시다.

사가번은

에도시대 - 기근 에서 소개한 1732年~1733年(享保17年~18年) 향보의大飢饉이 일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次の佐賀藩の人口移り変わりを注意深くよく見ましょう.

佐賀藩

江戸時代 - 飢饉

 http://blog.naver.com/marich77/40202557305

で紹介した 1732年~1733年(享保17年~18年) 享保の大飢饉が起きた所でもあります.

 

 

http://wpedia.mobile.goo.ne.jp/wiki/2370456/%8D%5D%8C%CB%8E%9E%91%E3%82%CC%93%FA%96%7B%82%CC%90l%8C%FB%93%9D%8Cv/16/

 

사가번의 남성 대비 여성의 인구 비율은 1676년 61.10%~1864년 92.88%로 지속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인구비율 60% 라는 숫자로 부터 얼마나 많은 여성이 솎아내졌는지를 보여 주고 있는 증거입니다.
佐賀藩の男性對女性の人口の割合は 1676年 61.10%~1864年 92.88%で持続的に変わっています.
女性の人口割合 60% という数字からどれだけ多い女性が間引きし出したのかを見せてくれている証拠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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