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종로]
위 사진의 장소는 엄밀하게 말하면 북촌으로 규정되는 齋洞, 嘉會洞, 三淸洞 일대는 아니지만
북촌은 넓은 의미로 정의하면 청계천과 鐘閣의 북쪽에 있는 동네라는 뜻으로
사진에 찍힌 구역이 바로 鐘路大路와 鐘閣 북쪽에 해당된다.
조선 말기 黃玹의 著書인 [梅泉野錄] 卷1 上에 의하면
”서울의 大路인 鐘閣 以北을 북촌이라 부르며 老論 이하 권세있는 양반들이 살고있고...”
라고 기록되어 있어 鍾路大路 북쪽 지역을 북촌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알수있다.
朝鮮時代北村写真
[1901年鐘路]
上の写真の場所は厳密に言えば北村に規定される 斎洞, 嘉会洞, 三清洞 一帯ではないが
北村は広い意味で定義すれば 清渓川と 鐘閣の北にある町内という意味で
写真に取れた区域がすぐ 鐘路大路と 鐘閣 北に当たる.
朝鮮末期 黄〓の 著書である [梅泉野録] 巻1 上によれば
ソウルの 大路である 鐘閣 以北を北村と呼んで 老論 以下権勢ある両班たちが暮しているし...
と記録されていて 鍾路大路 北地域を北村で規定していることを分か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