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농노…(들)물은 것은 있지만, 어디서 (들)물었는지조차 기억하지 않았다.

거기서 옛날들에 학교에서 사용한 교과서와 그 참고서를 찾아 조사해 보았습니다.

 

「농노」 villain, serf, Leibeigene 

 장원내의 농민의 대다수.가족·주거·경구등의 소유권은 인정되지만, 이전과 직업선택의 자유가 없는 반자유민.영주에 대해서 부역·공납 그 외의 의무를 져, 봉건사회의 전생산 노동을 담당했다.

 

 고등학교의 세계사의 교과서에는 「농노」의 설명이 있었습니다.일본사의 교과서에는 없었습니다.

 이 말이 나온 것은, 로마 제국이 게르만 민족 대이동을 계기로서 서서히 붕괴하고, 제후가 장원을 지배하고 있던 봉건사회의 시대입니다.

 

「봉건사회」 feudal society

 고대 노예제 사회와 근대 자본주의 사회와의 중간에 있는 발전 단계의 사회 형태.서구와 일본의 중세에 전형적으로 성립했다.서구의 특색은, 자급 자족을 원칙으로 하는 농본적 자연 경제이며, 농노가 생산 노동을 담당한다.

 계급·직능·신분이 세습적으로 된 신분제 사회에서, 성직자·귀족이 지배 신분으로서 주된 생산수단(토지)과 노동력(농민)을 소유, 지배한다.

 영주 가신 사이에는 계층적인 군신(주종) 관계가 성립한다.봉건사회의 성립은 지극히 장기에 걸치는 것이다.

 

「봉건 제도」 feudalism

 광의적으로는 봉건사회와 동의에도 이용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봉건사회속에서, 봉토의 수수를 중심으로 형성된 군신(주종) 관계를 말하는 것이 많다.로마의 은혜 대지제와 게르만의 종사제가 결합되어 성립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 특색은 「왕」(king)보다 , 「공」(duke), 「후」(earl), 「백」(count), 「아이」(viscount), 「남자」(baron)에 이르는 계층적 구성으로, 사적 권력과 사법이 공적 권력과 공법으로 우월하는 분권 사회인 점에 있다.

 

 「농노」는 없었습니다만 「봉건 제도」의 설명은 일본사의 교과서에도 나옵니다.조금 봐 비교해 봅시다.

 

「봉건 제도」 

 서양사로 이용하는 「feudalism」의 (뜻)이유.은혜와 봉공에 의해서 성립되는 무사의 주종 관계를 가리키는 경우와 무사가 주종 관계를 가지고 지배하는 정치·사회제도까지 넓게 의미하는 경우가 있다.후자의 의미로 생각하면 가마쿠라 시대는 고대부터 봉건에의 과도기로, 일본 봉건 제도는 남북조의 쟁란 이후에 확립한다고 생각되고 있다.

 

 서양에서는 「왕」과「기사」, 일본에서는 「오나」와「타케시」의 주종 관계와 그 관계에 의해서 보장된 「토지」나 「농민」의 지배권이 포인트같습니다.

 그러면 봉건 제도 이전의 「토지」나 「농민」의 지배는 어땠어요 의 것인지.

 

「노예제<로마>」

 대량의 노예를 주로 농업으로 혹사.로마 사회 생산력의 기초.노예 보충을 위한 전쟁은 경제활동이기도 했지만, 노예는 반란원이기도 했다.

 

「라티훈디움」 latifundium

 노예 사용에 입각하는 대토지 경영.과수 재배가 주.자영적 경영이 주요한가, 상품 생산이 주요한가는 논쟁점.제2회 포에니 전쟁 이후 급속히 발달, 중소 농민의 몰락을 촉진.

 

「코로누스」 colonus

 이동의 자유 없는 것 농노적 농민.토지 첨부 소작인이라고 번역한다.가족과 간단한 농구의 소유를 인정받고 있으므로, 노예보다는 농노에게 가깝다.팍스=로마나기에 군사력의 한계에 이른 로마에는 포로 노예의 유입이 감소하며 갔으므로, 노동력 확보를 위해, 혼인을 인정받은 해방 노예와 몰락한 자유 농민으로 형성된 것 같다.3 C무렵부터 증가.

 

「해방 노예」 

 강제 노동의 생산성은 낮기 때문에, 2 C 이후, 보수·증수책으로서 공사 소유자에 의한 노예 해방이 진행.

 

 토지의 소유권은 잘 모릅니다.아무것도 쓰지 않은 곳을 보면, 보통으로 사적 소유가 인정되고 있던 것은 아닐까요.농업의 생산 주체는 노예로부터 농노로 바뀌어 갔다고 있습니다만, 잘 모릅니다.

 일본의 경우를 보고 갑니다.

 

「반전수수법」

 6세 이상의 사람에게 구모데를 반급 하는 제도로, 요시오 2반, 양녀는 그 3분의 2, 천민의 가인· 나노비는 양민(백성)의 3분의 1으로 정해졌다.반전은 6년마다 실시.당의 균전법을 모방해, 농민의 생활을 보증해 징세 대상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

 

「구모데」

 반전수수법에 의해 6세 이상의 사람에게 줄 수 있어 종신 사용할 수 있는 논. 

 

「놈(노비)」

 집자의 뜻으로, 씨인의 집들에 예속 해, 아내 노예로서 사역 지난.

 

「3세 일신법」

 723년 개간 장려의 목적으로 새롭게 구지를 만들어 개간한 사람은, 자·손·증손의 3세까지, 구래의 시설을 이용했을 경우는 본인 일대의 사유를 인정한 법.

 

「간전 오랫동안 사재법」

 743년 발포.723년의 3세 일신법을 대신하고, 간전의 영구 사유를 인정했다.다만 1위의 500정부터 첫위·서민의 10정에 이를 때까지, 신분에 의해서 간전 소유 면적에 한도를 마련했다.

 

「장원」

 743년의 간전 오랫동안 사재법이래 개발이 진행되어 중앙의 귀족·지샤등이 소유한 토지.성립 사정으로부터 봐 자간지계, 기부지계, 잡역면계 장원등을 생각된다.무가 세력에 점차 침해되어 태합 검지에 의해, 제도상 소멸했다.

 

 제도적으로 토지의 사적 소유는 인정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그것이 형해화해 사유지의 장원이 퍼졌겠지요.농업의 생산 주체는 노예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어떨까요.

 태합 검지 이후의 농민이 농노라고 한다면, 그 이전의 농민은 어떤 존재인가.원래 봉건사회와 농노는 떼어낼 수 없는 관계인가 등 의문은 깊어질 뿐입니다.

 

 옛날들의 교과서로부터 조사해 보았지만, 이 근처가 한계군요.그리고는 KJ의 현자들에게 맡깁니다.


日本に農奴はいたのかいないのか

農奴…聞いたことはあるけど、どこで聞いたのかすら憶えていない。

そこで昔々に学校で使った教科書とその参考書を探して調べてみました。

 

「農奴」 villain, serf, Leibeigene 

 荘園内の農民の大多数。家族・住居・耕具などの所有権は認められるが、移転と職業選択の自由のない半自由民。領主に対して賦役・貢納その他の義務を負い、封建社会の全生産労働を担当した。

 

 高校の世界史の教科書には「農奴」の説明がありました。日本史の教科書にはありませんでした。

 この言葉が出てきたのは、ローマ帝国がゲルマン民族の大移動を契機として徐々に崩壊して、諸侯が荘園を支配していた封建社会の時代です。

 

「封建社会」 feudal society

 古代奴隷制社会と近代資本主義社会との中間にある発展段階の社会形態。西欧と日本の中世で典型的に成立した。西欧の特色は、自給自足を原則とする農本的自然経済であり、農奴が生産労働を担当する。

 階級・職能・身分が世襲的になった身分制社会で、聖職者・貴族が支配身分として主な生産手段(土地)と労働力(農民)を所有、支配する。

 領主家臣間には階層的な君臣(主従)関係が成立する。封建社会の成立は極めて長期にわたるものである。

 

「封建制度」 feudalism

 広義的には封建社会と同義にも用いるが、一般的には封建社会の中で、封土の授受を中心に形成された君臣(主従)関係をいうことが多い。ローマの恩貸地制とゲルマンの従士制が結びついて成立したものとされる。

 その特色は「王」(king)より、「公」(duke)、「侯」(earl)、「伯」(count)、「子」(viscount)、「男」(baron)に至る階層的構成で、私的権力と私法が公的権力と公法に優越する分権社会である点にある。

 

 「農奴」はありませんでしたが「封建制度」の説明は日本史の教科書にも出てきます。ちょっと見比べてみましょう。

 

「封建制度」 

 西洋史で用いる「feudalism」の訳。御恩と奉公によって成り立つ武士の主従関係を指す場合と、武士が主従関係をもって支配する政治・社会制度まで広く意味する場合がある。後者の意味で考えると鎌倉時代は古代から封建への過渡期で、日本封建制度は南北朝の争乱以後に確立すると考えられている。

 

 西洋では「王」と「騎士」、日本では「大名」と「武士」の主従関係と、その関係によって保障された「土地」や「農民」の支配権がポイントのようです。

 それでは封建制度以前の「土地」や「農民」の支配はどうだったのか。

 

「奴隷制<ローマ>」

 大量の奴隷を主に農業で酷使。ローマ社会生産力の基礎。奴隷補充のための戦争は経済活動でもあったが、奴隷は反乱源でもあった。

 

「ラティフンディウム」 latifundium

 奴隷使用に立脚する大土地経営。果樹栽培が主。自営的経営が主か、商品生産が主かは論争点。第2回ポエニ戦争以降急速に発達、中小農民の没落を促進。

 

「コロヌス」 colonus

 移動の自由無き農奴的農民。土地付き小作人と訳す。家族と簡単な農具の所有を認められているので、奴隷よりは農奴に近い。パックス=ロマーナ期に軍事力の限界に達したローマへは捕虜奴隷の流入が減少していったので、労働力確保のため、婚姻を認められた解放奴隷と、没落した自由農民とで形成されたらしい。3C頃から増加。

 

「解放奴隷」 

 強制労働の生産性は低いので、2C以降、報酬・増収策として公私所有者による奴隷解放が進行。

 

 土地の所有権はよく分かりません。何にも書いていないところをみると、普通に私的所有が認められていた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農業の生産主体は奴隷から農奴に変わっていったとありますが、よく分かりません。

 日本の場合をみていきます。

 

「班田収授法」

 6歳以上の者に口分田を班給する制度で、良男2反、良女はその3分の2、賎民の家人・私奴婢は良民の3分の1と定められた。班田は6年ごとに実施。唐の均田法にならい、農民の生活を保証し徴税対象を確保するのが目的。

 

「口分田」

 班田収授法により6歳以上の者に与えられ、終身使用できる田。 

 

「奴(奴婢)」

 家っ子の意で、氏人の家々に隷属し、家内奴隷として使役さる。

 

「三世一身法」

 723年開墾奨励の目的で新たに溝池をつくって開墾した者は、子・孫・曾孫の3世まで、旧来の施設を利用した場合は本人一代の私有を認めた法。

 

「墾田永年私財法」

 743年発布。723年の三世一身法に代って、墾田の永久私有を認めた。ただし一位の500町より初位・庶人の10町に至るまで、身分によって墾田所有面積に限度を設けた。

 

「荘園」

 743年の墾田永年私財法以来開発の進んで中央の貴族・寺社などが所有した土地。成立事情からみて自懇地系、寄進地系、雑役免系荘園などが考えられる。武家勢力に次第に侵害され、太閤検地により、制度上消滅した。

 

 制度的に土地の私的所有は認められていなかったようです。それが形骸化して私有地の荘園が広がったのでしょう。農業の生産主体は奴隷ではないと考えますがどうでしょうか。

 太閤検地以後の農民が農奴だというのなら、それ以前の農民はどういった存在なのか。そもそも封建社会と農奴は切り離せない関係なのかなど疑問は深まるばかりです。

 

 昔々の教科書から調べてみたけど、このあたりが限界ですね。あとはKJの賢者たちに任せ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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