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궐도안[西闕圖案 보물 1534호] 원래는 밑그림만 그려져 있지만, 위의 그림은 채색을 입힌 것
정궁[正宮]인 경복궁[景福宮]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궐[西闕]로 불려진 경희궁[慶熙宮]
자연지세에 따른 자유로운 배치가 잘 나타난 궁궐로 5대 궁궐 중, 가장 아름다웠다고 한다.
경희궁[慶熙宮]의 전각 배치
1910년 2월의 덕수궁[德壽宮] 평면도
덕수궁[德壽宮]은 원래 조선 초기 성종의 형 월산대군(月山大君)의 저택이었다. 임진왜란 때, 임시
궁궐로 사용되었다.
이후 광해군이 이 행궁[行宮]을 경운궁[慶運宮]이라 이름 붙였다.
고종은 경운궁[慶運宮]을 수리하고 일본군에게 신변에 위협을 느껴 아관파천[俄館播遷] 이듬해인
경운궁[慶運宮]으로 거처를 옮겼다.
순종은 1907년 즉위해 창덕궁[昌德宮]으로 옮기면서 이곳에 남게된 고종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으
로 덕수(德壽)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경운궁[慶運宮]은 덕수궁[德壽宮]으로 불리게 됐다.
조선 시대 궁궐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으며, 개인 저택을 궁궐로 개축하였기 때문에 전각 배치도 정
연하지 못하다. 그리고 석조전(石造殿)과 정관헌(靜觀軒) 등 서양식 건물이 들어서 있어서 고유한
궁궐의 양식과는 다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덕수궁 석조전 [德壽宮石造殿]
西燕図案[西闕図案 宝物 1534号] 元々は下図だけ描かれているが, 上の絵は彩色を加えたこと
正規の宮[正宮]である景福宮[景福宮] 西の方にあると言って西燕[西闕]と呼ばれた慶喜宮[慶煕宮]
自然地税による自由な配置がよく現われた宮廷で 5台宮廷中, 一番美しかったと言う.
慶喜宮[慶煕宮]の全角配置
1910年 2月の徳寿宮[徳寿宮] 平面図
徳寿宮[徳寿宮]は元々朝鮮初期成宗の兄さん(型)月産台だね(月山大君)の邸宅だった. 壬辰の乱の時, 臨時
宮廷で使われた.
以後光海君がこの仮宮[行宮]を慶運宮[慶運宮]と名付けた.
高宗は慶運宮[慶運宮]を修理して日本軍に身近に脅威を感じて俄館播遷[俄館播遷] 翌年の
慶運宮[慶運宮]で居所を移した.
従順は 1907年即位して昌徳宮[昌徳宮]で移しながらこちらに残るようになった高宗の長寿を祈るトッウ
でドックス(徳寿)という名付けた. 以後慶運宮[慶運宮]は徳寿宮[徳寿宮]と呼ばれるようになった.
朝鮮時代宮廷の中一番規模が小さくて, 個人邸宅を宮廷に改築したから全角配置図情
軟らかくない. そして石造殿(石造殿)とゾンググァンホン(静観軒) など洋式建物が立ち入っていて固有した
宮廷の様式とは違う姿を現わしている.
徳寿宮石造殿 [徳寿宮石造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