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명분을 좇았지만 떠나온 고향 땅에 대한 향수는 어쩔 수 없었다. 김충선이 남긴 시문에는 그 애뜻한 향수가 곳곳에 찾아 볼 수 있다. 

 

의중에 결단하고 선산에 하직하고

친척과 이별하며 일곱형제와 두 아내 일시에 다 떠나니

슬픈 마음 설운 뜻이 없다 하면 빈말이라

- 술회가-

 

 

남풍이 건듯 불어

행여 고향소식 가져가급히 일어나니 그 어인 광풍인가

홀연히 바람 소리만 날 뿐 볼 수가 없네

허탈히 탄식하고 앉았으니

이내 생전에 골육지친(骨肉至親) 소식 알 길이 없어

글로 서러워하노라

-남풍유감-

 

 

그는 후손들에게 이같은 가훈을 남겼다.

”절대로 영달을 바라지 말 것이며 농사짓고 살라. 여유 있을 때 틈틈히 공부하며 사람답게 보내라.”

 

 

 

 

 

 

 

 

 

멋있지? 훌륭한 사람이다. 감탄이 절로 난다. 일본 우익들이 김충선에 반만 닮았어도 그렇게 날조하고 왜곡하지 않을텐데...

 

 

뒤늦게 밝혀진 진실

1915년 모하당문집이 재간되자 일본학자들은 “이와 같은 매국노가 동포 중에 있는 사실을 믿는 이가 있는 것은 유감의 극”이라고 할 만큼 증오의 대상이 됐다. “조선이 꾸민 조작극”이라는 말까지 나왔고 이런 분위기는 1960년대까지 이어졌다.  1970년대 일본에서 국부로 추앙받는 소설가 시바 료타로가 우록동을 방문해 책을 쓰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었다. 이후 NHK방송은 ‘출병에 대의 없다-풍신수길을 배반한 사나이 사야가’라는 다큐멘타리를 내보냈다. 일본에서 출판된 소설 중에 김충선을 제재로 했거나 조금이라도 언급하고 있는 소설은 8권이나 된다. 또한 조선 연구가 나카무라 히데야키의 고증과 소설가 시바 료타로 등에 의해 소개되어 사야가, 김충선의 실존과 그의 고향인 우록동은 지금도 많은 수학여행단과 연간 1,000명의 일본인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다. 1998년 동시에 한일 교과서에 김충선에 대한 이야기가 실렸다.

 

서울대학교사범대학 1종도서 중학교 도덕교과서

임진왜란 때, 일본에 “사야가‘라는 무사가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무사수업과 더불어 글도 열심히 읽어 문무를 겸비한 무사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야가는 가토 기요마사의 좌선봉장이 되어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그런데 진격하는 도중 신기한 것을 목격하였다. 그것은 어떤 농부의 일가족이 피란을 가는 광경이었다.

수천 명의 왜군이 조총을 쏘며 달려들고 있는데도, 농부는 늙은 어머니를 업고, 농부의 아내는 보따리를 이고 아이의 손목을 잡은 채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산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그 광경은 사야가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저렇게 어질고 착한 백성들을 해치는 것은 성현의 가르침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밤을 고민하던 끝에, 사야가는 자신을 따르는 군사를이끌고 우리나라에 귀순해 왔다.

 

문부성검증제교과서 고교일본사A

가토 기요마사의 선봉에 산 사야가는 1592년(분로쿠원년) 4월, 조선침입 직후에 일본군을 배반하고 조선군에 가담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사야카’는 조선의 예의와 중화문물이 발달한 모습을 흠모하여 부하를 이끌고 조선 측에 투항했다고 한다. 그는 히데요시의 행동에 비판적이었다. 그 뒤 ‘사야가’는 조선군에 합류, 일본군과 싸우며 공적을 올리고 김충선이란 이름으로 조선에 뼈를 묻었다. 항왜는 ‘사야가’뿐만 아니라 상당한 수에 이르는데 이것은 조선 출병이 오랫동안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1597년 말의 울산농성에서는 군량미와 물 부족, 추위로 인해 조선 측에 투항하는 자가 늘어 가토 기요마사는 투항하는 것을 엄하게 통제했다.


re:sumatera //要請した資料 3番目

名分を従ったが浮かび出た故郷地に対する郷愁は仕方なかった. 金忠善が残した詩文には彼 エトッした香水が あちこちに捜してみることができる. 

 

意中に決断して先山に去って

親戚と別れて七兄弟と二人の妻一遍にすべて去ったら

悲しい心雪雲意味がないと言えば社交辞令だから

- 述懐が-

 

 

南風がかけたようにフランス語

若や故郷消息がジョがグブヒ起きたらその御印狂風か

忽然と風音だけ私をだけ見られないね

ホタルヒ歎息して座ったから

以内在世に骨肉之親(骨肉至親) 消息分かるあてがなくて

文で悲しがる

-南風残念-

 

 

彼は子孫たちにこのような家訓を残した.

絶対に栄逹を望まないはずで耕作して燃やす. 余裕のある時トムトムヒ勉強して人らしく送りなさい.

 

 

 

 

 

 

 

 

 

格好よいでしょう? 立派な人だ. 感歎が自然に出る. 日本右翼たちが金忠善に半分だけ似ていてもそのように捏造と歪曲しないのに...

 

 

一歩遅れて明かされた真実

1915年暮夏当たり文集が才幹されると日本学者たちは “このような売国奴が同胞の中にある事実を信じる人があることは残念の劇”と言うほど憎悪の対象になった. “朝鮮が構えた造作劇”という言葉まで出たしこんな雰囲気は 1960年代までつながった.  1970年代日本で局所に仰ぎ敬う小説家司馬遼太郎がウロックドングを訪問して本を書きながら雰囲気が少しずつ変わった. 以後 NHK放送は ‘出兵に大義ない-プングシンスギルを裏切った男サヤが’というドキュメンタリーを出した. 日本で出版された小説の中に金忠善を制裁にしたとか少しでも言及している小説は 8冊もなる. も 朝鮮研究がNakamuraヒデヤキの考証と小説家司馬遼太郎などによって紹介されてサヤが, 金忠善の実存と彼の故郷であるウロックドングは今も多くの修学旅行団と年間 1,000人の日本人観光客たちが捜す名所だ. 1998年 同時に韓日 教科書に金忠善に対する話が積まれた.

 

ソウル大学校師範大学 1ゾングドで中学校道徳教科で

壬辰の乱の時, 日本に ¥"サヤが‘という無事があった. 彼は幼いごろから無事授業といっしょに文も熱心に読んで文武を兼備した無事だった. 壬辰の乱が起きると, サヤがは加藤紀要マーサの左禅鳳凰模様タンスになって我が国に上陸した. ところで進撃する途中不思議なことを目撃した. それはどんな農夫の一家族が避乱を行く光景だった.

数千名医倭軍が弔銃をうちながら飛びかかっているにも, 農夫は老けたお母さんを業苦, 農夫の妻は包みを載せて子供の手首を取ったまま少しも崩れることなしに山道を上がっていた. その光景はサヤがに深い感銘を与えた. あのように善良で善良な民たちを害することは聖賢の教えるに行き違うという気がした. 何日夜を悩んだ終りに, サヤがは自分に付くグンサルルイクルで我が国に帰順して来た.

 

文部省検証制教科で高校日本史A

加藤紀要マーサの先鋒に住んだサヤがは 1592年(分路区元年) 4月, 朝鮮侵入直後に日本軍を裏切って朝鮮軍に加わった. 記録によれば ‘さやか’は朝鮮の礼儀と中華文物が発達した姿を欽慕して部下を導いて朝鮮側に投降したと言う. 彼は秀吉の行動に批判的だった. その後 ‘サヤが’は朝鮮軍に合流, 日本軍と戦って功績をあげて金忠善と言う(のは)名前で朝鮮に骨を埋めた. ハングウェは ‘サヤが’だけでなく相当な数に至るのにこれは朝鮮出兵が長い間持続したからだ. 1597年末の蔚山座り込みでは軍糧米とかむ不足, 寒さによって朝鮮側に投降する者が増えて加藤紀要マーサは投降することを厳しく統制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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