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한국은 왜 반일인가?
 

우선 하나에,『교육의 탓』이다.



그럼,“왜 ”한국에서는 반일 교육을 하는 것인가?



그것은, 한국에 있어서 그것이

아무래도 『필요이니까 』

이다.

   

그런데, 한국에 있어서,“왜 ”반일이 필요인 것일까.

 



★한국의 사정 『비참한 속국이었던 역사를 숨기고 싶은 』





 

세계로 알려지도록(듯이), 조선은 쭉 중국의『속국』였다.

기록이나 물적 증거도 국내외에 다 셀수 없을 정도(수록) 남아 있어 유학 경험이 있는 한국인에도 스스로 속국인 것을 인정하고 있다.

원래 한국의 낡은국기에까지「대청국속(청=중국)」라고 써 있었다이니까속국이었던 (일)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은 국가 레벨로「속국이었던 과거」를 지워 없애고 싶었다.



낡은 국기가 발견되었을 때도,한국 국내의 뉴스에서는「대청국속」라고 하는문자를 컷하고 보도했을 정도이다.

 

 

실은 이 한국의감정적 문제는「반일」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선, 조선과 청(중국)이 어느 정도의 종속 관계였구나.



조선이라고 하는 것은, 중국의 속국 중(안)에서도 류큐(현재의 오키나와)보다 낮은 지위였다. 원래, 중국의 속방 중(안)에서도조선의 지위는 가장 낮고, 하국 속의 하국이었다.



천조의 조가의 자리에서는, 천관이 적색의 예복을 입고 있던 것에 대해,조선의 사신만은 이색의 목을 둥글게 판의 옷이다.



또, 류큐의 사신은 롱을 타고 궁정에 들어가는데 대해,조선의 사신은 롱을 타는 것을 금지되고 있던일이

「계음수필」에 쓰여져 있다.



그리고, 이조 시대의 신민은 류큐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고 한탄하고 있다.



         (노랑 후미오『한국은 일본인이 만든』토쿠마 서점)

 
 

복장도 달랐고, 롱에도 탈 수 없었다. 신분이「가장 낮은」이니까 어쩔 수 없다. 신분이 낮음은 조선이어떤 취급을 받고 있었는지를 보면보다 명백하게 된다.



・조선 국왕은 청의 황제에 의해서

임명

된다.

・조선 국내의 사건은 모두 황제에

보고

해야 한다.

・조선 국왕은 청의 사절을 서울성문까지

마중

없으면 안 된다.

・조선

국왕의 지위는, 청나라의정신보다

도 아래.

・조선 정부에는,

화폐의 주조권

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조선 정부에는 청나라에의 식량, 병사 제공의

요구권

도 없다.

・조선은 청나라에 세세하게 정해진

공품을 내는 것 외에, 매년,3000마리,3000마리, 각지의미녀3000명을 추려 뽑아헌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선 국왕이 종주국의 키요쿠니 황제에 봉정한 공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이 단 한 개 있던 것만으로, 조선 국왕은 은1 백냥금을 벌금으로 해서 지불한 후에, 연공에의 담보를 3년간 정지한다고 하는 어려운 처벌을 받고 있다.





조선 국내에도 그 자취가 있다.



 현재 서울의 성문이 있던 장소에는「독립문」라는 것이 지어졌지만, 옛날 그 자리소에는『영은문』라고 하는 문이 있어, 그것은

「조선왕이 9회두를지면에 두드려 붙여 켜 붙여 부디 청의 사자를 맞이하는 」

라고 한다

굴욕적인 예속의 상징의 문이었다.

이 영은문으로『조선의 국왕』가 땅에 엎드려 조아림해 마중나간 것은, 중국의「왕」는 아니게중국의『사자』이다.



조선은 그만큼까지 국가로서“아래”에 보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1000년에 걸치는 노예와 같은 낮은 취급은, 그들 조선 민족의『민족기질』에 심각한 영향을 주게 된다.






조선 민족의 민족 기질을 간단하게 설명하려면 , 한국인의 이름이「돈(김)」나「박(파크)」등과 같이원패턴이 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알기 쉽다.


1.한국인은 오랫동안 중국의 속국으로서 낮은 신분에 있었기 때문에, 낮은 신분의 사람이나 빈곤자, 약자, 나아가서는 신체장애자등에의 학대를「아래의 사람이 깔볼 수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위의 사람이아래의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은 당연」라고 생각하는 민족적 경향이 정착하고 있었다.굴욕을「당연」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넘을 수 없을 정도(수록), 천년의 예속이라고 하는 것은 길었다.

2.조선은 시달리는 사람의 반동으로서보다 낮은 사람을 학대하는 「귀족 사회」가 길게 계속 되었다.그 때문에, 가계가 나쁘면 노력은 거의 무의미했다.귀족이 유복한도, 노예가 궁핍한 것도, 태어난 집으로 결정되었다.

3.이윽고 낮은 신분에 있는 사람이「자신의 선조는 명문이었다」라고 생각하고 싶어져, 어느덧 「가짜 가계도를 사는」또는 「가계 도표를 그려 바꾸는」일로 저변에서 시달리는 신분으로부터 일발 역전을 완수하는 것이 유행해 버렸다.

4.그 결과, 모두가「한정된 같은명문(양반이라고 한다)의 이름」가 되어, 형태상으로는모두가 같은 명문의 가계 출신의 사람이라는 것이 되었다.
  반대로 저변(백정이라고 한다)의 출신자는 역사의 어둠으로 사라져 갔다. 현재, 어느 한국인에 (들)물어도「 나는 유서 있는 양반의 출신이다!」라고 대답한다.지금은 이제(벌써) 백정의 자손이어도 그 자각조차 없어져 있다.
 





원부터 종주국・중국도 성의 종류는 적지만, 그 일부를 카피한 속국 중(안)에서, 한층 더계보의 위장을 해「명문・양가의 성」에게만 좁혀져 간모아 두어 한국인의 성은 극단적으로 종류가 적은 것이다.





여기서 한국인의 민족 특성을 다시 정리하면 , 우선,『누구보다“과거나 선조”를 자랑하고 싶어하는 민족 』이다고 하는 것. 민족의 과정상, 보기 흉한 과거에 대한 컴플렉스가 강한 것이다.



그리고『노력하지 않고 거짓말이나 세공으로 이긴 편이 될 수 있는 것에 재미를 붙& 민족 』이다고 하는 것.과거의 역사를 고쳐 쓰는 것으로 명문이 될 수 있던 나라의 사람들인 것이다.



이러한 성질을 가지는 그들에게는,조선 민족의 역사는 너무 너무 비참했다. 즉 통들 너무 해서 스스로의 과거를 되돌아 보는 것이 고통인 것이다.



그러므로, 독립한 후에

“민족 의식을 높이기 위한애국 교육”로 칭하고

, 『우리 나라는 5000년간 한번도 타국에 지배된 것이 없는 독립국인』라고 하는“거짓의 영광의 역사”를 마치 진실과 같이 국민에게 철저히 가르치는것으로 했던 것이다.



이것이 한국의 애국 교육의 과정이다.



★일본의「훌륭한 병합」가 반대로 원수가 된다







일본은 조선 병합시에

월등함

에 조선을 풍부하게 했다.



한국인은 그것을 전혀 믿으려고 하지 않지만, 한국의 교과서에 실려 있지 않은 것뿐으로 증거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이러한「병합전의 궁핍함」는 한국에서는

은폐

되고 있다.


■이자베라・버드가 본 서울



도시이며 수도인으로서는, 그조말좌파 실로 형용하기 어렵다.

 예절상 이층건물의 집은 지어지지 않고, 따라서 추정 25만명의 주민은 주로 미로와 같은 길의「바닥」로 살고 있다.



 골목의 상당수는 짐을 쌓은 우끼리가 엇갈리지 못하고, 하우와 인간이라면 간신히 엇갈릴 수 있는 정도의 폭 밖에 없다.게다가, 그 폭은 집들로부터 나온대변, 뇨의오물을 받는 구멍이나 도랑에서 좁힐 수 있고 있다.심한 악취가 하는 그 구멍이나 도랑의 옆에 기꺼이 모이는 것이, 흙먼지 투성이가 된반나체의 아이들과 개선 떡 저지르는 봐 눈의 큰 개로,개는 오물 중(안)에서 굴러돌거나 양지에서 눈 깜박임 하고 있다.



 서울의 경치의 하나는 시냇물이라고 할까 하수라고 할까 수로이다.뚜껑이 없는넓은 수로를 검게 고인 물이  이전에는 자갈이었던 강바닥에퇴적한 배설물이나 티끌의 사이를악취를 감돌게 하면서천천히 흘러 간다.물 되지 않는 혼합물을 통고기응이다 , 시냇물 되지 않는웅덩이에서 세탁하고 있는 여자들의 모습.



 Seoul에는예술품이 전혀 없고,공원도 없으면봐야 할 모임도 극장도 없다.다른 도시라면 있는 매력이 Seoul에는 죄다 빠져 있다.

 낡은 도이지만,고적도 도서관도 문헌도 없고,종교에는 전연무관심이었기 때문에 사원도 없다.

 결과적으로 청나라나 일본의 어떤 초라한 마을에라도 있는 당당한 종교 건축물이 주는 박력이 여기에는 없다.

 (“Korea and Her Neighbours” by Isabella Lucy Bird 『조선 기행―영국 부인이 본 이조 말기』이자베라・L・버드)

근면한 일본인에게는 문화와 기술이 있었다. 나라가 풍부하게 된 것은 분명할 것이다.



1910년의 병합으로부터 1945년의 독립까지의단 35년간에 여기까지의 발전을 한 나라는 세계에도 그 밖에 없다.



그럼 일본은 도대체 어떤 마법을 사용했는가?



실은 마법은 아니다.문자 그대로몸을 자르는 것노력이다.예를 들어,



・조선이 무계획적인 낭비로 반제 불능이 되어 있던막대한빚(외국으로부터의 빚+국채)을인수체라로 했다.

일본의 국가 예산으로학교등의 교육기관이나 재판소, 상하수도, 공원, 병원, 경찰서, 도로, 수력 발전소, 농지, 철도등의문화적 생활에 필요한 시설을 만들었다.

・일본의 돈으로 조선 전 국토에 5000교의근대 초등학교를 건설해,
 근대 교육을 해한글을 필수로 배우게 했다.

・일본의 기술과 자본에 의해 2차 산업을9배나 성장시키는 것과 동시에 1차・3차 산업도큰폭으로늘렸다.

・의료와 위생 환경을 향상시켜평균수명을 26세부터 42세에까지 비약적으로 늘렸다.

인구를 2배까지 늘려, 그 인구가 전원이 먹어서 갈 수 있을 정도의 경이적인식료 공급력을 주었다.

・온 세상의 어느 나라도 돈을 빌려 주었지만들 없는 극빈 후진국에, 대여도
도 두려워하지 말고세계 제일 싼 금리로 돈을 빌려 주었다.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자금이나 자재등의「물적 지원」뿐만이 아니고, 「인적 지원」「기술 지원 」도 동시에 갔다.





이와 같이 일본은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 한반도에“기적 ”로 불릴 정도의 대폭적인 발전을 가져왔던 것이다.


 이지만,한국은 이러한일본의 공적을 모두 은폐

했다.





조금 생각하면 아는 것이지만, 조선은 세계 제일 가난했던 만큼이 아니고,기술도 자원도 아무것도 없었다이니까 일본의 힘없이 급성장등에서 올 리가 없다.아무것도 없었는데  빚만 있었기 때문에 병합을 바랬던 것이다.



목조의 황폐한 집에서 잡곡을 먹어 목욕하는 습관도 가지지 않는 토인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던 한국이, 『단 수십년에』빌딩이 나란히 서는 거리에 살아, 미를 주식에 청결한 환경에서 사는 국제적으로도 풍부한 나라의 하나가 되어 있다.

어느 의미기적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일본의 노력에 의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기적의 발전은

모두 한민족의 능력

에 의하는 것이다」와 국민을 세뇌했다.



「궁핍했던 시대」도 계속 숨기고 있다.





한국인의 특징의 하나지만, 『한국인은 한국인을 칭찬해 뜯는 』. 그것은 애국 교육이라고 하는 이름의 반일 세뇌의 사전 준비이다. 








 ~현대 한국인이 모르는 일본 통치 이전의 노예 사회 ~

  「한국인이 조선 왕조를 그리워해,일본의 통치를 받지 않고 조선 왕조가 계속했다면더 오늘의 생활이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시의 조선의실태에 대해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와 청소년은, 깨끗한 길과 깨끗한 집, 갖추어진 옷차림, 품위있는 말씨의 텔레비젼의 역사 드라마를 보면서, 조선도 그 나름대로 훌륭한 사회에서외세의 침략이 없었으면 조용하고 평화로운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지와착각한다.
 그러나 일본이 오기 전의 조선은, 너무나 미개로 비참했다고 말하는 사실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금완섭『친일파를 위한 변명』보다 )





금완섭이 이 책을 냈을 때, 무려그는 즉시 체포되었다.



그가「이런 일로 투옥한다면 일본 대사관에 망명하지 않을 수 없는」와 항의해 간신히 석방된 후도, 이 책은한국 정부에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유해 도서로 지정되어 일반 서적과 함께 판매할 수 없게 규제해, 사실상의 판매 금지 처치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금완섭과 같이 진실을 아는 사람이 일부에 들어가는 것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교과서에서는 수치않다 기울 수 있는도 없게을 가르쳐 그것이 한국에서는「상식」로서 믿을 수 있고 있다.

(일본의 모HP보다 w)


久々に韓国反日について

韓国はなぜ反日か?
 
まず一つに、『教育のせい』である。

では、“なぜ”韓国では反日教育をするのか?

それは、韓国にとってそれがどうしても『必要だから』である。
   
さて、韓国にとって、“なぜ”反日が必要なのだろうか。
 

★韓国の事情 『惨めな属国だった歴史を隠したい』

 
世界で知られるように、朝鮮はずっと中国の『属国』だった。
記録や物的証拠も国内外に数え切れないほど残っており、留学経験のある朝鮮人にも自ら属国であったことを認めている。
そもそも韓国の古い国旗にまで「大清国属(清=中国)」と書いてあったのだから属国だったことは否定しようがない

しかし韓国は国家レベルで「属国だった過去」を消し去りたかった。

古い国旗が発見された時も、韓国国内のニュースでは「大清国属」という文字をカットして報道したほどである。
 
 
実はこの韓国の感情的問題は「反日」に密接な関係がある。
まず、朝鮮と清(中国)がどの程度の従属関係だったか。

朝鮮というのは、中国の属国の中でも琉球(現在の沖縄)よりも低い地位だった。 そもそも、中国の属邦の中でも朝鮮の地位は最も低く、 下国のなかの下国であった。

天朝の朝賀の席では、千官が赤色の礼服を着ていたのに対し、朝鮮の使臣だけは異色の丸首の衣である。

また、琉球の使臣は籠に乗って宮廷に入るのに対し、朝鮮の使臣は籠に乗ることを禁じられていたことが
「渓陰漫筆」に書かれている。

そして、李朝時代の臣民は琉球以下の扱いを受けたと嘆いている。

         (黄文雄『韓国は日本人が作った』徳間書店)
 
 
服装も違ったし、籠にも乗れなかった。 身分が「最も低い」のだからしかたない。 身分の低さは朝鮮がどんな扱いを受けていたかを見ればより明白になる。

・朝鮮国王は清の皇帝によって任命される。
・朝鮮国内の事件は全て皇帝に報告しなければならない。
・朝鮮国王は清の使節をソウル城門まで出迎えなければならない。
・朝鮮国王の地位は、清国の廷臣よりも下。
・朝鮮政府には、貨幣の鋳造権すら与えられてない。
・朝鮮政府には清国への食糧、兵士提供の要求権もない。
・朝鮮は清国に細かく定められた貢品を出す以外に、毎年、3000頭、3000頭、各地の美女3000人を選り抜いて貢がなければならない
 
 朝鮮国王が宗主国の清国皇帝に奉呈した貢文に気に入らない言葉がたった一つあっただけで、朝鮮国王は銀1万両を罰金として払った上に、年貢への見返りを3年間停止するという厳しい処罰を受けている。


朝鮮国内にもその名残がある。

 現在ソウルの城門のあった場所には「独立門」というものが建てられたが、昔その場所には『迎恩門』という門があり、それは「朝鮮王が9回頭を地面に叩きつけて擦りつけ、ひれ伏して清の使者を迎える」という
屈辱的な隷属の象徴の門だった。
この迎恩門で『朝鮮の国王』が 土下座して出迎えたのは、中国の「王」ではなく中国の『使者』である。

朝鮮はそれほどまでに国家として“下”にみられていたのだ。

この1000年に渡る奴隷のごとき低い扱いは、彼ら朝鮮民族の『民族気質』に深刻な影響を与えることになる。



朝鮮民族の民族気質を簡単に説明するには、朝鮮人の名前が「金(キム)」や「朴(パク)」などのようにワンパターンになった理由を説明するのがわかりやすい。

1.朝鮮人は長い間中国の属国として低い身分にあったため、低い身分の者や貧困者、弱者、ひいては身障者などへの虐待を「下の者が下に見られるのは仕方のないこと、上の者が下の者を見下すのは当然のこと」と考える民族的傾向が定着していた。屈辱を「当然」と考えなければ精神的に乗り越えられないほど、千年の隷属というのは長かった。

2.朝鮮は虐げられる者の反動として、より低い者を虐げる「貴族社会」が長く続いた。そのため、家系が悪ければ努力はほとんど無意味だった。貴族が裕福なのも、奴隷が貧しいのも、生まれた家に決定された。

3.やがて低い身分にある者が「自分の先祖は名門だった」と思いたくなり、いつしか「偽の家系図を買う」または「家系図を書き換える」ことで底辺で虐げられる身分から一発逆転を果たすことが流行してしまった。

4.その結果、皆が「限られた同じ名門(両班という)の名前」になり、 形の上では皆が同じ名門の家系出身の者ということになった。
  逆に底辺(白丁という)の出身者は歴史の闇へと消えていった。 現在、どの韓国人に聞いても「私は由緒ある両班の出身だ!」と答える。今はもう白丁の子孫であってもその自覚すらなくなっている。
 


元より宗主国・中国も姓の種類は少ないが、その一部をコピーした属国の中で、さらに系譜の偽装が行われ「名門・良家の姓」にのみ絞られていったため、朝鮮人の姓は極端に種類が少ないのである。


ここで朝鮮人の民族特性をまとめ直すと、まず、『誰よりも“過去や先祖”を誇りたがる民族』であるということ。 民族の成り立ち上、醜い過去に対するコンプレックスが強いのである。

そして『努力せずに嘘や小細工で勝ち組になれることに味をしめた民族』であるということ。過去の歴史を書き換えることで名門になることができた国の人々なのである。

このような性質を持つ彼らには、朝鮮民族の歴史はあまりにも惨めすぎた。 つまり痛々しすぎて自分たちの過去を振り返るのが苦痛なのである。

それゆえ、独立した後に“民族意識を高めるための愛国教育”と称して、 『我が国は5000年間一度も他国に支配されたことの無い独立国である』という“偽りの栄光の歴史”をあたかも真実のように国民に教え込むことにしたのである。

これが韓国の愛国教育の成り立ちである。

★日本の「見事な併合」が逆に仇になる


日本は朝鮮併合時に桁外れに朝鮮を豊かにした

韓国人はそれを全く信じようとしないが、韓国の教科書に載っていないだけで証拠はいくらでもある。

だが、このような「併合前の貧しさ」は韓国では隠蔽されている。

■イザベラ・バードが見たソウル

都会であり首都であるにしては、そのお粗末さはじつに形容しがたい。
 礼節上二階建ての家は建てられず、したがって推定25万人の住民は主に迷路のような道の「地べた」で暮らしている

 路地の多くは荷物を積んだ牛同士が擦れ違えず、荷牛と人間ならかろうじて擦れ違える程度の幅しかない。おまけに、その幅は家々から出た糞、尿の汚物を受ける穴か溝で狭められている。酷い悪臭のするその穴や溝の横に好んで集まるのが、土ぼこりにまみれた半裸の子供たちと疥癬もちで かすみ目の大きな犬で、犬は汚物の中で転げまわったり、日向でまばたきしている。

 ソウルの景色のひとつは小川というか下水というか水路である。蓋のない広い水路を黒くよどんだ水がかつては砂利だった川床に堆積した排泄物や塵の間を悪臭を漂わせながらゆっくりと流れていく。水ならぬ混合物を手桶にくんだり、小川ならぬ水たまりで洗濯している女達の姿。

 Seoulには芸術品がまったくなく公園もなければ見るべき催し物も劇場もない。他の都会ならある魅力がSeoulにはことごとく欠けている。
 古い都ではあるものの、旧跡も図書館も文献もなく宗教にはおよそ無関心だったため寺院もない。
 結果として清国や日本のどんなみすぼらしい町にでもある堂々とした宗教建築物の与える迫力がここにはない。
 ("Korea and Her Neighbours" by Isabella Lucy Bird 『朝鮮紀行―英国婦人の見た李朝末期』イザベラ・L・バード)

勤勉な日本人には文化と技術があった。 国が豊かになったのは明らかだろう。

1910年の併合から1945年の独立までのたった35年間でここまでの発展をした国は世界にも他にない。

では日本はいったいどんな魔法を使ったのか?

実は魔法ではない。文字通り身を切るような努力である。たとえば、


・朝鮮が無計画な浪費で返済不能になっていた莫大な借金(外国からの借金+国債)を肩代わりしてチャラにした。

日本の国家予算で学校などの教育機関や裁判所、上下水道、公園、病院、警察署、道路、 水力発電所、農地、鉄道などの文化的生活に必要な施設を作った。

・日本の金で朝鮮全土に5000校もの近代小学校を建設し、
 近代教育をしてハングルを必修で学ばせた。

・日本の技術と資本により2次産業を9倍も成長させると同時に1次・3次産業も大幅に伸ばした。

・医療と衛生環境を向上させて平均寿命を26歳から42歳にまで飛躍的に延ばした。

人口を2倍まで増やし、その人口が全員が食べていけるほどの驚異的な食料供給力を与えた。

・世界中のどの国も金を貸したがらない極貧後進国に、貸し倒
れも恐れずに世界一安い金利で金を貸し与えた。

・発展のために必要な資金や資材などの「物的支援」だけでなく、 「人的支援」「技術支援」も同時に行った。


このように日本は弛まぬ努力により朝鮮半島に“奇跡”と呼ばれるほどの大幅な発展をもたらしたのである。

 だが、韓国はこれらの日本の功績を全て隠蔽した


少し考えればわかることだが、朝鮮は世界一貧乏だっただけでなく、技術も資源もなにもなかったのだから日本の力なしに急成長などできるわけがない。なにもなかったのに借金だけあったから併合を望んだのだ。

木造のあばら家で雑穀を食って風呂に入る習慣も持たない土人のような生活をしていた韓国が、『たった数十年で』ビルが立ち並ぶ街に住み、米を主食に清潔な環境で暮らす国際的にも豊かな国のひとつになっている。
ある意味奇跡的ではあるが、それは日本の努力によるものである。

しかし韓国政府は、

「奇跡の発展は全て韓民族の能力によるものだ」と国民を洗脳した。

「貧しかった時代」のことも隠し続けている。



韓国人の特徴の一つなのだが、『韓国人は韓国人を褒めちぎる』。 それは愛国教育という名の反日洗脳の下準備である。 




 ~現代韓国人が知らない日本統治以前の奴隷社会~

  「韓国人が朝鮮王朝を慕い、日本の統治を受けず朝鮮王朝が継続したならもっと今日の暮らしが良くなっていると考えるのは、当時の朝鮮の実態についてきちんと分かっていないためだ。
 
 特に子供と青少年は、きれいな道ときれいな家、整った身なり、上品な言葉遣いのテレビの歴史ドラマを観ながら、朝鮮もそれなりに立派な社会で外勢の侵略がなかったならば静かで平和な国家を保てたろうと錯覚する。
 しかし日本が来る前の朝鮮は、あまりに未開で悲惨だったという事実を知らねばならない。」 (金完燮『親日派のための弁明』より)


金完燮がこの本を出した時、なんと彼はただちに逮捕された。

彼が「こんなことで投獄するなら日本大使館に亡命せざるをえない」と抗議してようやく釈放された後も、この本は韓国政府に都合が悪いので有害図書に指定され、一般書籍と一緒に販売できないように規制し、事実上の販売禁止処置を受けてしまった。

そして、金完燮のように真実を知る者が一部にはいるにも関わらず、韓国の教科書では恥ずかしげもなくを教え、それが韓国では「常識」として信じられている。

(日本の某HPより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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