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정치 외교 문화 언어 종교 과학 경제 군사 등 여러 분야가 통합된 단체 입니다
타국을 보는 시각은
여러 분야로 통합된 국가로서 그 국가의 밝고 어두운 곳을 동시에 보고 판단하는 시각이
중요 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 분야에 주목하고 전체 라고 판단 하거나
어떤 사건에 주목하고 그 사건을 그 나라의 모든 분야에 걸치고 과장 되게 이야기 하는 것은
위험 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들면 일본 정치인의 독도 영유권 발언이 있었을때 한국에서 일장기를 찢는 등
과격 시위가 있었습니다 이런 과격 시위에 대해 한국에서도 여론이 좋지 않지만
일본의 방송 신문으로 한국의 과격 시위 현장이 보도 되어 한국은 굉장한 반일 국가 라고
생각하는 일본인도 있는것 같습니다
현대인은 tv 인터넷 신문 등 언론 매체에서 정보를 얻고 각 분야의 전문가의 지식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문가 라고 하지만
특히 역사에 대한 평가는 학자에 따라서 견해의 차이가 있습니다
역사의 견해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 국민의 공통된 역사인식은 있습니다
공통된 역사 인식의 형성은 대부분의 국민이 경험한 시대적 사건이나 그 시대가 낳은
문화를 함께 공유 하면서 형성 되는 것입니다
한국인의 반일 정서는 역사와 관련이 많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 7년의 전쟁 ..일본의 명분은 明으로 가는 길을 열어 달라는 것이었으나
많은 문화재 약탈과 도공들의 강제 납치 등 만행이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일본군은 자신들의 戰功을 보고 하기 위해 한국인의 귀와 코를
베어 소금에 절이고 일본으로 가져 갔다 당시 그 공포는 대단하여 조선의 민중은
일본군을 귀와 코를 베어 가는 괴물 이라는 뜻으로 耳鼻野 라고 불렀다
조선의 어머니들은 아이가 울면
울지 말아라 이비야 [耳鼻野]가 온다 라고 겁을 주었다 현재도 아이가 위험한 물건을 만지거나
하면 耳鼻野 라고 외치는 것이 남아 있다 임진왜란 당시에 晋州城 南原城 전투가 치열했던 이유로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지방에 아직 耳鼻野 언어는 남아 있다
일본 교토에 있는 한국인의 귀 무덤 코 무덤 입니다
일본은 이 무덤을 후세에 남기고 일본의 武力을 과시 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군에 의해 귀와 코가 잘린 한국인은 12만 6000명 이라고 한다
2차대전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약 9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유럽에서의 2차대전으로
예의주시 하고 있던 미국이 참전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는 일본의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眞珠灣] 기습 때문 입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에 대해 미국 정부의 공식적 사죄는 없었고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 위령제에
주일 미국 대사의 참석은 없었지만
오바마 대통령 정부 이후에 주일 미국 대사 .유엔 사무총장 까지 히로시마 평화의 제전에
참석 하였습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일이며 핵무기 없는 평화의 염원이
참석의 취지였지만 이 참석으로 미국內에 진주만 기습 태평양 전쟁의 유족들을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형성 되었습니다
이유는 일본이 먼저 일으킨 전쟁 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인들 중에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에 대해 일본은 뻔뻔스럽게 피해자 행동을 한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뻔뻔스러운 피해자의 대상은 원폭 희생자가 아니라 일본 이라는 국가에 대한
발언 입니다
히로시마 평화의 제전을 보는 한국인의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일본이 전쟁에 대한 반성 보다
원폭의 희생자를 이용해 피해자 입장만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 하기 때문 입니다
2차대전 전범 처리 문제도 불합리 하게 진행 되었습니다
731부대 세균전 자료를 미국에 넘기는 댓가로 일본 천황은 전쟁 책임으로 부터 면죄부가 주어졌고
실제 명령을 내린 직속 상관이 아니라 전쟁의 최전선에서 일했던 한국인 포로 감시원 23명이
전범으로 사형 되었습니다
1948년 인도네시아 바타비아 전범 재판소의 네덜란드 위안부 여성의 책임자 처벌과 비교 됩니다
미국 일본의 합의에 의한 전범 처리는 조선과 아시아 민중의 피해는 외면 되고 은폐 되어 왔습니다
이것은 일본의 역사 왜곡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 되었습니다
임진왜란 일제시대 2차대전 [태평양 전쟁]
역사를 국가적 시각에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민중의 시각에서 역사적 사실에 주목하고
올바른 국가관 역사관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반일 반미 차원은 아닙니다
임진왜란 2차대전으로 일본의 민중도 피해자 라는 것에 동의 하지만
전쟁으로 입은 민중의 피해는 전쟁을 일으킨 국가의 최고 권력자가 1차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国家は
政治外交文化言語宗教科学経済軍事など多くの分野が統合された団体です
他国を見る視覚は
多くの分野に統合された国家としてその国家の明るくて暗い所を同時に見て判断する視覚が
重要だと思います
ある一分野に注目して全体だと判断するとか
ある事件に注目してその事件を その国のすべての分野にかけて誇張されるように話すことは
危ないと思います
例えば日本政治家の独島領有権発言があった時韓国で日の丸を裂くなど
過激デモがありましたこんな過激デモに対して韓国でも世論が良くないが
日本の放送新聞で韓国の過激デモ現場が報道されて韓国はすごい反日国家だと
思う日本人もいるようです
現代人は tv インターネット新聞など言論媒体で情報を得て各分野の専門家の知識に頼る
傾向があります
専門家だと言うが
特に歴史に対する評価は 学者にしたがって見解の違いがあります
歴史の見解の違いがあるが一般的国民の共通された歴史認識はあります
共通された歴史認識の形成は大部分の国民が経験した時代的事件やその時代が生んだ
文化を一緒に共有しながら形成になることです
韓国人の反日情緒は歴史と関連が多いです
1592年壬辰の乱 7年の戦争 ..日本の名分は 明に行く道を開いてくれというのだったが
多くの文化財掠奪と陶工たちの強制拉致など蛮行があった
豊臣秀吉の命令で日本軍は自分たちの 戦功を報告するために朝鮮人の鬼瓦鼻を
ベア塩に漬けて日本に持って行った 当時その恐怖は すごくて朝鮮の民衆は
日本軍を鬼瓦鼻を枕にして行く化け物でありなさいという意味で 耳鼻野 だと呼んだ
朝鮮のお母さんたちは子供が泣けば
泣かないでね耳鼻なの [耳鼻野]が来るだと脅かした現在も子供が危ない品物を触るとか
すれば 耳鼻野 だと叫ぶのが残っている壬辰の乱当時に 晋州城 南原城 戦闘が熾烈だった理由で
慶尚道全羅道 忠清道地方にまだ 耳鼻野 言語は残っている
日本京都にいる朝鮮人の耳墓鼻墓です
日本はこの墓を後世に残して日本の 武力を誇示するための目的に作ったことと見える
日本軍によって鬼瓦鼻の切られた朝鮮人は 12万 6000人と言う
2次大戦広島 原爆投下で約 9万名の死亡者が発生しましたヨーロッパでの 2次大戦で
注視していたアメリカが参戦するようになる決定的きっかけは日本の 1941年 12月 7日
真珠湾 [真珠湾] 不意打ちのためです
広島長崎原爆に対してアメリカ政府の公式的お詫びはなかったし広島原爆犠牲者慰霊祭に
週間アメリカ大使の参加はなかったが
オバマ大統領政府以後に 週間アメリカ大使 .UN事務総長まで広島平和の祭殿に
参加しました
広島長崎原爆は人類歴史上最初の仕事や核武器ない平和の念願が
参加の主旨だったがこの参加でアメリカ内に 真珠湾不意打ち太平洋戦争の遺族たちを中心に
反対世論が形成になりました
理由は日本が先に起こした戦争というのです
韓国人たちの中に 広島長崎原爆に対して日本は図図しく被害者行動をすると
言ったりします図図しい被害者の対象は原爆犠牲者ではなく日本でありなさいという国家に対する
発言です
広島平和の祭殿を見る韓国人の心の不便な理由は日本が戦争に対する反省見る
原爆の犠牲者を利用して被害者立場(入場)だけ強調していると思うからです
2次大戦戦犯処理問題も不合理に進行になりました
731部隊細菌戦資料をアメリカに越す代価で日本天皇は戦争責任から兔罪符が与えられたし
実際命令を下した直属上官ではなく戦争の最前線で働いた朝鮮人虜監視院 23人が
戦犯で死刑になりました
1948年インドネシアバタビア戦犯裁判所のオランダ慰安婦女性の責任者処罰と比較になります
アメリカ日本の合意による戦犯処理は朝鮮とアジア民衆の被害はそらんじれば良いし隠蔽になって来ました
これは日本の歴史歪曲の言葉尻を提供したのがなりました
壬辰の乱日帝時代 2次大戦 [太平洋戦争]
歴史を国家的視覚で見る観点から脱して民衆の視覚で歴史的 事実に注目して
正しい国家観歴史観が何なのか悩まなければなりません
反日反米次元ではないです
壬辰の乱 2次大戦で日本の民衆も被害者ということに同意するが
戦争で口は民衆の被害は戦争を起こした国家の最高権力者が 1次的責任を持たなければならないと
思い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