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世宗 15卷, 4年(1422 壬寅 / 명 영락(永樂) 20年) 1月 1日(己未)
日食。 上以素服, 御仁政殿月臺上救蝕, 侍臣侍衛如儀, 百官亦以素服, 會于朝房救蝕。 日復光, 上, 下階向日四拜。 以術者李天奉推步先一刻, 杖之。
일식이 있으므로, 임금이 소복(素服)을 입고 인정전의 월대(月臺) 위에 나아가 일식을 구(救)하였다. 시신(侍臣)이 시위하기를 의식대로 하였다. 백관들도 또한 소복을 입고 조방(朝房)에 모여서 일식을 구하니 해가 다시 빛이 났다. 임금이 섬돌로 내려와서 해를 향하여 네 번 절하였다. 추보(推步)628) 하면서 1각(刻)을 앞당긴 이유로 술자(術者) 이천봉(李天奉)에게 곤장을 쳤다.
日食があるので、王が素服を着て仁政殿の月台の上にさらに日食を救している。侍臣が侍衛することを意識するようにした。百官もまた、素服を着て、朝房に集まって、日食を救して再度光が出た。王が踏み石に降りて日に対して、4回の遙拜げであった。推步しながら、1刻を前倒しした理由として術者 李天奉に棍杖を打った。

 

조선실록의 일식에 대한 기록이다.
李天奉이 일식을 예보했는데 예보한 시간보다 15분 늦게 일식이 일어났다.
당시 일식이 일어 나면 왕이 부복하여 일식을 救하였는데 단순히 15분을 더 기다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늘이 왕을 거부했다는 의미로 받아 들여 졌으므로  정치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의미로 받아 들여졌다.
조선시대의 시간을 살펴보면
朝鮮実録の日食の記録である。
李天奉が日食を予報した時間より15分遅れで日食が起こった。
当時、日食が起きると王が俯伏して、日食を救しましたが、単純に15分を待っていたという意味ではなく、天が王を拒否したという意味で受け入れれたものであり、政治的に非常に重要な意味で受け入れられた。
朝鮮時代の時間をみると、


일다경(一茶頃) : 5분~20분 사이 (뜨거운 차 한잔을 마실 정도의 시간)
일각(一刻) : 약 15분 정도
한식경(食頃) : 약 30분 정도 (밥 한 끼를 먹을 정도의 시간)
한 시진(時辰) : 2시간
一茶頃:     5分〜20分の中に(熱いお茶を飲むほどの時間)
一刻:        約15分
一食頃:    約30分(御飯を食べるくらいの時間)
一時辰:    2時間


七政算으로 정확한 일식 시간을 계산이 가능했다는 것은 이전의 투고에서 설명했지만 조선시대의 표준시간은 어떻게 측정했을까?
日星定時儀를 살펴보자.
七政算に正確な日食の時間を計算することが可能だったのは、以前の投稿で説明したが、朝鮮時代の標準的な時間は、どのように測定しただろうか?
日星定時儀を見てみましょう。

 

日星定時儀의 구조와 기능
  일성정시의는 물홈이 파여져 있는 받침대와 승천하는 용의 모양으로 조각된 자루, 그리고 자루 끝의 용의 입에 물려져 있는 십자거가 있다. 이 십자거 위에는 세 개의 환이 있다. 周天度分環,日晷百刻環,,星晷百刻環이 차례로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놓여 있다. 그 위에는 界衡이란 것이 있으며 界衡의 중간에 작고 가느다란 두 용 막대에 의해 수직으로 지탱되어 있는 定極環이 있다. 각각에 대해 특징은 다음과 같다.
日日星定時儀の構造と機能
 日星定時儀は水溝を持っている架台と昇天する竜の形に彫刻された柱、柱の端の竜の口がかんでいる十字距がある。この十字距の上には3つの環がある。周天度分環,日晷百刻環,,星晷百刻環が順番に外から內に置かれている。その上には界衡というのがあり、界衡の中央に小さく、細い2つの棒が垂直に支えられている定極環がある。それぞれの特徴は以下の通りです。

 

周天度分環:
周天度가 새겨져 있다. 周天度의 1도는 4분으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周天丸에는 모두 1461개(1주천인 365.25×4=1461.00)의 눈금이 새겨져 있다. 양쪽 옆에는 귀가 있어 움직임을 도와준다. 십자거 위에 놓인 세 개의 환중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다.
  周天丸으로 동지 새벽 전 자정에 북극 제 2성을 관측하여 천구를 재는 첫 눈금으로 삼으며, 16년이면 1분을 물린다.
周天度分環:
周天度が刻まれている。周天度の1度は4分に分かれているため周天丸には、すべての1461個(1周天度 365.25 × 4 = 1461.00)の目盛が刻まれている。両方の横には耳がおり、移動を手伝ってくれる。十字距の上に置かれた3つの環の中に最も外側に位置する。周天丸に冬至の前日の子正に北極星の第2の星を観察して、天球を測定する最初のグリッドに申し立てたものであり、16年には1分を後退させる。

日晷百刻環: 십자거 위의 세 개의 환중 가운데에 위치한다. 고정되어 있어 움직이지 않으며, 환의 위에는 백각의 눈금이 새겨져 있다. 매각은 6분으로 되어 있다. 주간의 시각결정에 사용한다. 간의를 쓰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한다.
日晷百刻環:十字距の、上記の3つの環の中央に位置する。固定されており、動かないし、環の上に百刻の目盛りが刻まれている。每刻は、6分になっている。昼間の時刻の決定に使用する。簡儀 を使くのと同じ方法とする。

星晷百刻環: 日晷百刻環과 맞물려 가장 안쪽에서 움직이며 도는 환으로 두 개의 귀가 안쪽 양 옆에 있다. 日晷百刻環과 마찬가지로 환의 위에 백각눈금이 새겨져 있는데 매각은 6분으로 하였다.
  동지 전날 새벽 자정을 시작으로 매일 1도씩 이동해 가며 사용한다.
星晷百刻環:日晷百刻環と相まって、最も内側に動き、回転する環で2つの耳が內側の兩の横にある。日晷百刻環と同様に、環の上に百刻の目盛りが刻まれており、每刻は6分にした。
 冬至の前日の子正を起点に、毎日1度ずつ移動しながら使用する。

 

定極環: 내환과 외환의 연결로 되어 있으며, 定極環의 중심은 십자거와 계형 중심의 구멍과 일직선 상으로 일치하여 북극성을 향하게 되어 있다. 관측지점의 정확한 북극출지(위도)를 맞추는 역할을 하며 동시에 양쪽 끝에 구멍이 있어 계영의 양끝의 구멍을 실을 넣어 이어지게 되어 있는데 이 실이 별의 운동을 관측하는 역할을 한다.
定極環:内環と外環の連結しっており、定極環の中心には十字距と界衡の中心の穴と一直線上に一致して、北極星を向いている。観測点の正確な北極出地(緯度)をマッチさせる役割を果たし、同時に両方の端に穴があり、界衡の両端の穴に糸を入れてつながるされており、この糸が星の動きを観察する役目をする。

 界衡: 모두 4개의 구멍이 있고 양끝에는 빈 곳이 있다. 4개의 구멍으로 실(명주실)이 통하는데 이 실은 계형 빈곳의 중앙을 가로질러 환의 눈금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양 끝에 귀가 있어 움직일 수 있게 하며 중앙의 좌우에는 정극환을 지지하는 작은 두 마리의 용이 끼워지는 구멍이 있다.
 界衡:すべての4つの穴があり、両端には、空きがある。 4つの穴に糸(シルク)が通って,糸は界衡の空所の中央を横切って環の目盛を読むことができます。両端に耳あり動かせるように、中央の左右には、正極環を支持する小さな2匹の龍が入れられる穴がある。

 

받 침대: 직사각형 모양의 대에는 가장자리를 따라서 수로, 즉 물홈과 못( 둥그렇게 물이 고이게 되어 있다고 해서 연못이라 부른다)이 있다. 이 못과 수로에 물을 넣어 일성정시의의 전체 수평을 맞춘다. 또한 가느다란 바늘을 비벼 자성이 일어나게 한 다음 바늘의 가운데에 수수깡을 끼워 물위에 놓음으로써 자북 방향을 알기도 한다.
架台:長方形の台の端に沿って水路、つまり水溝と池がある。この池の水路に水を入れて日星定時儀の全体の水平を合わせる。また、細い針を 摩擦させて、磁性が起こるようにしてから、針の中にきびがらを入れ水に置いて磁北の方向を知ることもある。

 세종실록에 日星定時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있다.
위에서 설명했으므로 일본어 번역은 생략한다.
Joseph Neehdam은 자신의 저서 The hall of heavenly records에서 책의 표지로 日星定時儀를 소개하고 있다.
世宗実録の日星定時儀についての詳細な記録がある。
上記で説明したので、日本語の翻訳は省略する。
Joseph Needhamは、自身の著書The hall of heavenly recordsからの本の表紙に日星定時儀を紹介している。

世宗 77卷, 19年(1437 丁巳 / 명 정통(正統) 2年) 4月 15日(甲戌)
初, 上命作晝夜測候之器, 名曰日星定時儀, 至是告成, 凡四件, 一置內庭, 飾以雲龍; 餘三件, 但有趺以受輪柄, 植柱而捧定極環。 一賜書雲觀, 以爲占候之用; 二分賜咸吉、平安兩道節制使營, 以爲軍中警守之備。 又命承旨金墩製序、銘曰:
 
儀象尙矣。 自堯、舜至漢、唐, 莫不重之, 其文備見於經史。 然去古旣遠, 其法不詳。 恭惟我殿下以聖神冠古之資, 萬機之暇, 留神於天文法象之理, 凡古所謂渾儀、渾象、圭表、簡儀與夫自擊漏、小簡儀、仰釜ㆍ天平ㆍ懸珠日晷等器, 制作無遺, 其欽若昊天、開物成務之意至矣。然日周有百刻, 而晝夜居半, 晝則測晷知時, 器已備矣, 至於夜則《周禮》有以星分夜之文, 《元史》有以星定之之語, 而不言所以測用之術。於是命作晝夜時刻之器, 名曰日星定時儀。
 
其制用銅爲之, 先作輪勢準赤道有柄。 輪經二尺、厚四分、廣三寸, 中有十字距, 廣一寸五分, 厚如輪。 十字之中有軸, 長五分半、經二寸。 北面剡掘, 中心存一釐以爲厚。 中爲圜穴如芥。 軸以貫界衡, 穴以候星也。下有蟠龍, 含輪柄, 柄厚一寸八分, 入龍口一尺一寸, 出外三寸六分。 龍下有臺, 廣二尺、長三尺二寸, 有渠有池, 所以取平也。 輪之上面, 置三環, 曰周天度分環, 曰日晷百刻環, 曰星晷百刻環。 其周天度分環居外運轉, 外有兩耳, 經二尺、厚三分、廣八分。 日晷百刻環居中不轉, 經一尺八寸四分, 廣厚與外環同。 星晷百刻環居內運轉, 內有兩耳, 經一尺六寸八分, 廣厚與中外環同, 有耳, 所以運也。 三環之上, 有界衡, 長二尺一寸、廣三寸、厚五分。 兩頭中虛, 長二寸二分、廣一寸八分, 所以不蔽三環之畫也。 腰中左右, 各有一龍, 長一尺, 共捧定極環。 環有二。 外環內環之間, 勾陳大星見; 內環之內, 天樞星見, 所以正南北赤道也。 外環經三寸三分、廣三分, 內環經一寸四分半、廣四釐, 厚皆二分, 些少相接如十字。 界衡兩端虛處內外, 各有小穴, 定極外環兩邊亦有小穴, 以細繩通貫六穴而結於界衡之兩端, 所以上候日星, 而下考時刻者也。 周天環, 刻周天度, 每度作四分, 日晷環, 刻百刻, 每刻作六分, 星晷環亦刻如日晷, 但子正過晨前子正, 如周天, 過一度爲異耳。 用周天環之術, 先下水漏, 得冬至晨前子正, 以界衡候北極第二星所在, 以誌輪邊, 仍以周天初度之初當之, 然年久則天歲必差, 以《授時曆》考之, 十六年有奇, 退一分, 六十六年有奇, 退一度, 至是須更候以定之。 北極第二星, 近北辰而最赤明, 衆所易見, 故以之測候耳。 日晷環用, 如簡儀。 用星晷環之術。初年冬至初日晨前夜半子正爲始, 當周天初度之初。 一日一度, 二日二度, 三日三度, 至三百六十四日乃三百六十四度, 次年冬至初日字正三百六十五度, 一日空度三分, 二日一度三分, 至三百六十四日乃三百六十三度三分, 又次年冬至初日三百六十四度三分, 一日空度二分, 二日一度二分, 至三百六十四日乃三百六十三度二分, 又次年冬至初日三百六十四度二分, 一日空度一分, 二日一度一分, 至三百六十五日乃三百六十四度一分, 是謂一盡, 盡則復初。 夫人事動靜之機, 實關於日星之運行, 而日星之運行, 昭著於儀象之中。 古之聖人, 必以爲治道之首務, 堯之曆象、舜之在璇璣是已。 我殿下制作之美意, 直與堯、舜同一揆, 吾東方千古以來未有之盛事也。 嗚呼至哉! 是宜銘之, 昭示來世, 臣墩敢拜手稽首而獻銘。
처음에 임금이 주야 측후기(晝夜測候器)를 만들기를 명하여 이름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라 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이룩됨을 보고하였다. 모두 네 벌[件]인데, 하나는 내정(內庭)에 둔 것으로 구름과 용을 장식하였으며, 나머지 셋은 다만 발이 있어 바퀴자루[輪柄]를 받고 기둥을 세워 정극환(定極環)을 받들게 하였다. 하나는 서운관(書雲觀)에 주어 점후(占候)에 쓰게 하고, 둘은 함길·평안 두 도의 절제사 영에 나누어 주어서 군중의 경비하는 일에 쓰게 하였다. 또 승지 김돈(金墩)에게 명하여 서(序)와 명(鉻)을 짓게 하니, 그 글에 이르기를,
 
“의상(儀象)은 더 말할 것 없이 요·순으로부터 한·당에 이르기까지 모두 귀중히 여겨서 그 글이 경사(經史)에 갖추어 나타났으나, 예전과 시대가 멀어서 그 법이 자세하지 아니하였는데, 삼가 생각하건대, 우리 전하께서는 세상에 뛰어난 신성(神聖)한 자질로써 정무를 보살피는 여가에 천문법상(天文法象)의 이치에 유념하시어, 무릇 예전에 이르는바, 혼의(渾儀)·혼상(渾象)·규표(圭表)·간의(簡儀) 등과 자격루(自擊漏)·소간의(小簡儀)·앙부(仰釜)·천평(天平)·현주(縣珠)·일구(日晷) 등의 그릇을 빠짐 없이 제작하게 하셨으니, 그 물건을 만들어 생활에 이용하게 하시는 뜻이 지극하시었다. 그러나 하루의 시각이 1백 각이요, 그리고 밤과 낮이 반씩이로되 낮에는 햇볕을 헤아려서 시간을 아는 그릇은 이미 갖추었으나, 밤에 이르러서는 《주례(周禮)》에 별을 보고 밤 시각을 구분하는 글이 있고, 《원사(元史)》에도 별로써 시각을 정하는 말이 있으나 그 측정하는 방법은 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에 밤낮 시각을 알리는 그릇을 만들기를 명하여 이름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라 하였다. 그 제도는 구리[銅]를 써서 만들었는데, 먼저 바퀴를 만들어 세(勢)를 적도(赤道)에 준하여 자루[柄]가 있고, 바퀴의 지름[徑]은 2척, 두께는 4분, 넓이는 3촌이다. 가운데 십자거(十字距)가 있는데, 넓이는 1촌 5분, 두께는 바퀴와 같다. 십자 가운데는 축이 있는데, 길이는 5분 반이고 지름은 2척이다. 북쪽 면을 깎아 파되, 중심에 1리(釐)를 두어서 두께를 하고 가운데 둥근 구멍을 겨자[芥]씨 같이 만들었다. 축은 계형(界衡)을 꿰고, 구멍은 별을 살피는 것이다. 아래에는 서리고 있는 용의 모양을 만들어 바퀴 자루를 물고 있는데, 자루의 두께는 1촌 8분이며 용의 입에 1척 1촌이 들어가고 밖에 3촌 6분이 나왔다. 용의 밑에는 대가 있는데, 넓이는 2척이고 길이는 3척 2촌이며, 도랑과 못을 만들었는데, 수평(水平)을 취한 것이었다. 바퀴의 윗면에 세 고리[環]를 놓았는데, 이름을 주천도분환(周天度分環)·일구백각환(日晷百刻環)·성구백각환(星晷百刻環)이라 한다. 그 ‘주천도분환’은 밖에 있으면서 움직이고 돌며, 밖에 두 귀[耳]가 있는데 지름은 두 자, 두께는 3분, 넓이는 8분이다. ‘일구백각환’은 가운데에 있어 돌지 아니하고, 지름은 1척 8촌 4분이고, 넓이와 두께는 밖의 것과 같다. ‘성구백각환’은 안에 있어 움직이고 돌며, 안에 두 귀가 있는데, 지름은 1척 6촌 8분이고, 넓이와 두께는 안팎 고리와 같다. 귀가 있는 것은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세 고리의 위에 계형(界衡)이 있으니, 길이는 2척 1촌, 넓이는 3촌, 두께는 5분인데, 양쪽에 머리가 있고 가운데는 비었으며, 길이는 2촌 2분이고, 넓이는 1촌 8분으로, 세 고리[環]의 그림을 덮지 못하게 한 것이다. 허리의 중간 좌우에 각각 용이 하나씩 있으니, 길이는 1척이고, 함께 ‘정극환(定極環)’을 받든다. ‘정극환’이 둘이 있는데, 바깥 고리와 안 고리의 사이에는 구진대성(句陳大星)이 나타나고, 안 고리의 안에는 천추성(天樞星)이 나타나니, 남북의 적도를 바르게 하는 것이다. 바깥 고리는 지름이 2촌 3분이고, 넓이가 3분이며, 안 고리는 지름이 1촌 4분 반, 넓이가 4리(釐)이고, 두께는 모두 2분인데 약간 서로 대여서 십자와 같다. ‘계형’ 두 끝에 빈 곳의 안팎에 각각 작은 구멍이 있고, ‘정극환’ 바깥 고리의 양쪽에도 작은 구멍이 있어, 가는 노끈으로 여섯 구멍[六穴]을 통해 꿰어서 ‘계형’의 두 끝에 매었는데, 위로는 해와 별을 살피고 아래로는 시각을 알게 한 것이다. ‘주천환(周天丸)’에는 주천도(周天度)를 새기되, 매도(每度)를 4분으로 하고, ‘일구환(日晷環)’은 1백 각을 새기되, 매각(每刻)을 6분으로 하였다. 성구환도 일구환과 같이 새겼으나, 다만 자정이 신전자정(晨前子正)에 지나서 하늘이 일주(一週)하는데, 1도를 더 지나가는 것과 같이 다름이 있다. ‘주천환’을 사용하는 법은, 먼저 수루(水漏)를 내려서 동지 신전자정을 맞추고, ‘계형’으로 북극 둘째 별이 있는 곳을 살펴서 바퀴 가에 표시하고, 인해 주천 첫 도의 초에 맞게 한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 되면 천세에 반드시 차가 생기니, 《수시역(授時曆)》으로 상고하면, 16년이 약간 지나서 1분이 뒤로 물러나고, 66년이 약간 지나서는 1도가 뒤로 물러나므로, 이에 이르러 다시 살펴서 정한다. 북극 둘째 별은 북극에서 가깝고 가장 붉고 밝아서, 여러 사람이 보기 쉽기 때문에 이것으로 측후(測候)한다. ‘일구환’의 사용은 ‘간의(簡儀)’와 같고, ‘성구환’을 사용하는 법은 첫해 동지 첫날, 새벽 전 밤중 자정을 시초로 하여 ‘주천환’ 초도의 초에 맞게 하여 하루에 1도, 이틀에 2도, 사흘에 3도로 하여 3백 64일에 이르면 곧 3백 64도가 되고, 다음해 동지 첫날 자정에는 3백 65도가 되니, 하루에 공도(空度)가 3분이고, 이틀에 1도 3분으로 3백 64일에 이르면 곧 3백 63도 3분이 된다. 또 다음해 동지 첫날에는 3백 64도 3분이니 하루의 공도가 2분이고, 이틀에 1도 2분으로, 3백 64일에 이르면 곧 3백 63도 2분이 된다. 또 다음해 동지 첫날에는 3백 64도 2분이니 하루의 공도가 1분이고, 이틀에 1도 1분으로 3백 65일에 이르면 곧 3백 64도 1분이 되니 이를 일진이라고 이른다. 일진(一盡)이 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무릇 인사의 동정(動靜)하는 기틀[機]은 실로 해와 별의 운행(運行)하는 법칙에 매였고, 해와 별의 운행은 의상 가운데 밝게 나타나므로, 옛 성인이 반드시 정치하는 도의 첫째 일로 삼았으니, 요의 역상(曆象)과 순의 선기(璇璣)가 이것이다. 우리 전하께서 제작하신 아름다운 뜻은 곧 요·순과 더불어 법을 같이 하였으니, 천고에 내려오면서 일찍이 없던 거룩한 일이다. 아아, 지극하도다. 이를 마땅히 새겨서 후세에 밝게 보여야 할 것이므로 신(臣) 돈이 감히 손으로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명을 지어 올리노라.”


朝鮮時代の科学技術 - 日星定時儀(ハングル版)

世宗 15巻, 4年(1422 壬寅 / 人ヤングラック(永楽) 20年) 1月 1日(己未)
日食。 上以素服, 御仁政殿月台上救蝕, 侍臣侍衛如儀, 百官亦以素服, 会于朝房救蝕。 日復光, 上, 下階向日四拜。 以術者李天奉推歩先一刻, 杖之。
和食があるので, 賃金が素服(素服)を着て仁政殿のワルデ(月台) 上にひいては和食を句(救)した. 死体(侍臣)がデモするのを意識どおりした. 百官たちもまた素服を着て粗放(朝房)に集まって和食を求めたら日がまた輝いた. 賃金が踏み石で下って日に向けて四番(回)お辞儀をした. 追補(推歩)628) しながら 1各(刻)を繰り上げた理由でスルザ(術者) 利川峰(李天奉)に棍杖を打った.
日食があるので′王が素服を着て仁政殿の月台の上にさらに日食を救している。侍臣が侍衛することを意識するようにした。百官もまた′素服を着て′朝房に集まって′日食を救して再度光が出た。王が踏み石に降りて日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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