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 기독교는 정치적으로 이용했을뿐.
사실 한국에 기독교는 토마스 선교사로 처음 조선에 왔으나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것은 6.25 이후 미국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던 시대다.
미국이 남조선을 전쟁에서 엄청난 피를 흘려서 구했다. 하지만 당시 이승만은 두려웠다.
경제도 역사도 혈통도 하나 겹치지 않았던 거지 조선이 미국의 도움을 받을려면 끈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거지 노예 조선에서 외교.경제 어느것 하나 미국의 발을 잡을수 없었다.
결국 고민끝에 남조선 군대 작전권을 넘기고 미군의 철수를 막았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아직도 부족했다. 뭔가 새로운 강력한 끈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종교였다. 종교는 민족을 넘어서 신앙을 바탕으로 강력한 연결 고리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한국은 작은 시골 마을까지 교회 1개씩 무조건 있는 나라가 되었다.
피부도 머리색도 다른 나라의 종교가 시골 마을까지 급속도로 퍼져 나가고 현재 한국 국교로 불러도 전혀 손상이 없는 엄청난 종교가 되었다.
수백년동안 반도를 지배해 왔던 불교는 단 50년만에 기독교에 밀려버렸다.
이것의 한국 기독교의 현실
반면 수백년동안 반도의 최고 종교였던 불교는 시골 마을에선 볼수 없다. 하지만 기독교는 시골 작은 마을까지 점령했다.
南朝鮮キリスト教は政治的に利用しただけ.
実は韓国にキリスト教はトーマス宣教師で初めて朝鮮へ来たが本格的に広がり始めたことは 6.25 以後アメリカの助けが切実に必要だった時代だ.
アメリカが南朝鮮を戦争でおびただしい血をこぼして求めた. しかし当時李承晩は恐ろしかった.
経済も歴史も血統も一つ重ならなかったんだ朝鮮がアメリカの助けを借りようとすれば紐が必要だったのだ.
しかし乞食奴隷朝鮮で外交.経済どれひとつアメリカの足を取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結局悩み末に南朝鮮軍隊作戦圏を越して米軍の撤収を阻んだ. しかしこれではまだ不足だった. 何か新しい力強い紐が必要だった.
それがちょうど宗教だった. 宗教は民族を越えて信仰を土台で力強い連結掛けがねになったのだ.
それで今韓国は小さな田舍村まで教会 1個ずつ無条件ある国になった.
肌も頭色も他の国の宗教家田舍村まで急速に広がって行って現在韓国国交と呼んでも全然損傷がないおびただしい宗教になった.
数百年間半島を支配して来た仏教はただ 50年ぶりにキリスト教に滞ってしまった.
これの韓国キリスト教の現実
一方数百年間半島の最高宗教だった仏教は田舍村では見られない. しかしキリスト教は田舍小さな村まで占領し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