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 101권, 10년( 1479 기해 / 명 성화(成化)
전 경력 이인규를 인견하여 일본의 풍속·학문·관대 등을 물어보다
신이 또 7월에 황제(皇帝)의 나들이를 보았는데, 연(輦)을 타고 다녔으며, 우인(優人-광대)이 우리 나라 조관(朝官)과 부인(婦人)의 옷을 입고 그 앞에서 연희(演戲)하였습니다. 그 나라의 풍속은 불교를 심하게 믿어서, 절이 여염(閭閻)의 반이나 되고, 현달(顯達)한 관원(官員)일지라도 나이가 40을 넘으면 곧 머리를 깎으며, 신 등이 처음 도착하였을 때에도 절에서 묵었습니다. 곁에 대숲이 있는데, 도둑이 야음(夜陰)을 타서 공격하려 하므로, 신 등이 늘 막느라고 괴로와서 편히 자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또 묻기를,
“대신(大臣)의 직명(職名)은 어떠하던가?”
하니, 대답하기를,
“가장 높은 것이 관제(管提)이고, 다음이 좌무위(左武衛)이고, 다음이 대화수(大和守)인데, 그 나라의 토전(土田)을 나누어 관제가 그 반을 갖고 남은 두 신하가 또 나머지 반씩을 다스리며, 돈을 내어 황제를 공봉(供奉)합니다.”
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시사(市肆)가 있어서 교역(交易)하던가?”
하니, 대답하기를,
“시사는 자못 우리 나라와 비슷하나, 땅이 메마르고 백성이 가난하여 무역하는 물건은 여러 가지 해산물에 지나지 않으며, 그 부녀자들이 머리를 풀어 꾸미고 동백기름을 바르고서 낮에 모여 저자[市]를 이루었다가 밤이 되면 간음(姦淫)하여 생업을 돕습니다.”
성종 101권, 10년( 1479 기해 / 명 성화(成化)
전 경력 이인규를 인견하여 일본의 풍속·학문·관대 등을 물어보다
신이 또 7월에 황제(皇帝)의 나들이를 보았는데, 연(輦)을 타고 다녔으며, 우인(優人-광대)이 우리 나라 조관(朝官)과 부인(婦人)의 옷을 입고 그 앞에서 연희(演戲)하였습니다. 그 나라의 풍속은 불교를 심하게 믿어서, 절이 여염(閭閻)의 반이나 되고, 현달(顯達)한 관원(官員)일지라도 나이가 40을 넘으면 곧 머리를 깎으며, 신 등이 처음 도착하였을 때에도 절에서 묵었습니다. 곁에 대숲이 있는데, 도둑이 야음(夜陰)을 타서 공격하려 하므로, 신 등이 늘 막느라고 괴로와서 편히 자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또 묻기를,
“대신(大臣)의 직명(職名)은 어떠하던가?”
하니, 대답하기를,
“가장 높은 것이 관제(管提)이고, 다음이 좌무위(左武衛)이고, 다음이 대화수(大和守)인데, 그 나라의 토전(土田)을 나누어 관제가 그 반을 갖고 남은 두 신하가 또 나머지 반씩을 다스리며, 돈을 내어 황제를 공봉(供奉)합니다.”
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시사(市肆)가 있어서 교역(交易)하던가?”
하니, 대답하기를,
“시사는 자못 우리 나라와 비슷하나, 땅이 메마르고 백성이 가난하여 무역하는 물건은 여러 가지 해산물에 지나지 않으며, 그 부녀자들이 머리를 풀어 꾸미고 동백기름을 바르고서 낮에 모여 저자[市]를 이루었다가 밤이 되면 간음(姦淫)하여 생업을 돕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