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조약에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표기하고 있다”-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어 ?
초안을 보면 5차까지 모두 한국 땅이라고 표시, 미국이 입장을 갑자기 바꿔 일본 땅이라고 6차에서
한차례 표기, but 결국 합의가 불가능, 따라서 아예 한국 땅, 일본 땅이라는 표현 자체가 삭제.
1.「SF조약에 관해서 근거를 수반한 논리적인 해석」
->연합국은 1952년 일본을 재독립시켜 주기로 결의했는데, 1951년 대일본강화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1950년 구일본 영토 처리에 관한 합의서 를 작성했다. 이 합의서 제3항에는 한국에 반환할 영토는 한반도 본토와 그 주변의 모든 섬인데, 대표적인 예로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와 함께 독도를 리앙쿠르 바위섬이라는 명칭으로 병기하여 한국 영토로 처리할 것을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 이는 연합국이 독도를 한국 영토로 판정, 반환시킨 사실을 드러내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 + 연합국의 샌프란시스코 대일본강화조약 초안을 미국이 작성했는데, 제1차 초안에서 제5차 초안까지는 명문으로 독도가 한국 영토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초안이 일본의 임시과도정부에 새나갔다. 이에 일본은 독도를 “미공군 레이더 기지와 기상관측소로 제공하겠다”라고 맹렬 로비에 돌입, 그 결과 제6차 미국 초안에서 독도는 일본 영토에 포함되었다. )
-> 그러나 초안을 바꾸려면 40여 개 국이 그 내용을 회람하고 동의해야만 가능했다.
물론 미국의 제6차 초안은 다른 연합국 나라들이 동의하지 않았다. 이에 제7차~제9차 미국 초안에서 독도의 이름은 아예 빠져버렸다. 결국 영국이 제3차 초안까지 재작성 했는데, 초안이 2개 있을 수 없다는 미국측의 설득에 의해 영·미합동초안을 작성했고,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인된 연합국의 대일본강화조약에는 독도의 이름이 누락되어 있는, 일본의 억지 주장에 대한 강력한 근거가 된 것이다.
(SF조약 관련 글은, http://kr.blog.yahoo.com/yang1955/1536 에서 참조 하였습니다.)
너희들은 독도를 합법적으로 편입했어?
일본의 어업인 나카이 요자부로는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것을 알고 일본 정부를 통해 한국에 임대 청원서를 제출하려고 했다. 그런데 해군성과 외무성 관리(기모쓰케 가네유키, 야마자 엔지로) 등의 사주를 받고 1904년 영토편입 청원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당시 내무성 관리(이노우에 서기관)는 “한국 땅이라는 의혹이 있는 쓸모없는 암초를 편입할 경우 우리를 주목하고 있는 외국 여러 나라들에게 일본이 한국을 병탄하려고 한다는 의심을 크게 갖게 한다”며 독도 영토편입 청원에 반대하였다.
이러한 경위에 더하여, 러일전쟁이라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전쟁 기간 중인 1905년 1월 일본 각의 결정과 2월 일본 시마네현의 독도편입 조치는 실제에 있어 대한제국에 아무런 문의나 통보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대한제국이 1900년 10월 25일 칙령 41호(자료 1)로 독도를 울릉군의 관할 구역으로 규정하였기 때문에 1905년 일본의 일방적인 시마네현의 편입 조치는 당연히 무효 행위이다.
한국은 1906년 3월 울릉도를 방문한 시마네현 관리들로부터 편입사실을 전해 들은 후에 그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울릉군수는 이 사실을 그 다음날 즉시 강원도 관찰사와 중앙정부에 보고하였다. 보고를 받은 내부대신과 참정 대신은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라며, 사실관계를 다시 조사할 것을 지시하였다. (자료 2)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미 1905년 11월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된 상태였기 때문에 어떠한 외교적 항의의 수단이 없었다.
대한매일신보(1906. 5. 1)와 황성신문(1906. 5. 9) 등의 언론이 일본의 독도 영토편입 조치의 불법성을 보도하였다.
이에 관한 존 반다이크 하와이대 교수(국제법) :
”시마네현 고지는 일본의 한국 강점을 위한 강압·군사적 행위의 일부이다. 세계는 그것을 비난했고, 일본도 한국 침략의 부당성을 인정 했다. 독도 영유권 주장은 한국에 대한 영유권 주장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한국 병합이 부당하므로 독도 편입도 부당하다.”
「조약법에 관한 빈(비엔나) 협약」31조와 48조를 알고있다?.
독도가 SF조약에 나와있지 않은 것으로 일본령임을 간주하는 것은
한반도의 4800여개의 도서를 반환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무효.
” 러스크 서간이 존재하는데? wwww “
러스크 서간의 해당구절 “1905년 시마네현 고시 이전 한국이 지배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고~”부분에서 “시마네현고시”는 금반언의 원칙 위반으로 증거효력이 없기때문에 해당 구절은
미국의 “착오”로 작성된 것이므로 빈 협약 48조 위반에 의해 해당구절은 효력이 없다.
참고로, 불소급 원칙은 원래 모든 법의 기초이기 때문에
(헌법 등 거의 모든 법에 불소급 원칙이 존재) 뭐라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조약법에 관한 빈 협약은 본래 “관례법”으로 이전까지의 판례를 기초로 들어 조약 판단에 대해서 가치판단의 척도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팔마스섬과 같은 “판례”를 드는 너희의 주장도 논파당하는 것
처음부터 SF조약 자체를 근거라고 가져오는 것 자체가 무리.
미국은 계속 입장 번복 중이고 kkkk 러스크 서간? kkkkkk 서간의 뜻부터 배우세요
일본인 가운데, 일본 정부의 주장도 모르는 놈이 있어서 내가 특별히 정리했으니까
가서 읽고 자국의 정부가 어떤 것을 주장하는가 - 배우세요 껄껄껄
/kr/exchange/theme/read.php?tname=exc_board_11&uid=10087&fid=10087&thread=1000000&idx=1&page=1&number=6990
SF条約に独島を日本地だと表記している-と勘違いする人がいて ?
下書きを見れば 5次まで皆韓国地だと表示, アメリカが立場(入場)を急に変えて日本地だと 6次で
一度表記, but 結局合意が不可能, したがって初めから韓国地, 日本地という表現自体が削除.
1.「SF条約について根拠を伴った論理的な解釈」
->連合国は 1952年日本を再独立させてくれることに決意したが, 1951年大日本講和條約を締結するために 1950年九日本領土処理に関する合意書を作成した. この合意書第3項には韓国に返還する領土は韓半島本土とその周辺のすべての島なのに, 代表的な例で済州島, 巨文島, 鬱陵島とともに独島をリアングクル岩島という名称に兵器して韓国領土で処理することを明瞭に明らかにしている. これは連合国が独島を韓国領土で判定, 返還させた事実を現わす非常に貴重な資料だ.
( + 連合国のサンフランシスコ大日本講和條約下書きをアメリカが作成したが, 第1次下書きで第5次下書きまでは名門で独島が韓国領土に含まれていた. ところでこの下書きが日本の臨時過渡政府に漏れた. ここに日本は独島を米空軍レーダー基地と気象観測所で提供すると猛烈ロビーに突入, その結果第6次アメリカ下書きで独島は日本領土に含まれた. )
-> しかし下書きを変えようとすれば 40余個お吸物がその内容を回覧して同意すればこそ可能だった.
もちろんアメリカの第6次下書きは他の連合国国々が同意しなかった. ここに第7次‾第9次アメリカ下書きで独島の名前はてんから抜けてしまった. 結局イギリスが第3次下書きまで再作成したが, 下書きが 2個ありえないという米国側の説得によって零・未合同下書きを作成したし, 1951年 9月サンフランシスコで調印された連合国の大日本講和條約には独島の名前が抜け落ちされている, 日本の減らず口主張に対する力強い根拠になったのだ.
(SF条約関連文は, http://kr.blog.yahoo.com/yang1955/1536 で参照しました.)
君たちは独島を合法的に編入したの?
日本の漁業であるNakaiヨザブでは独島が韓国領土というのが分かって日本政府を通じて韓国に賃貸請願書を提出しようと思った. ところで海軍省と外務省管理(ギモスケがネユキ, 野馬者N.Gで) などの運勢を受けて 1904年領土編入請願書を提出した.
しかし, 当時内務省管理(Inoue書記官)は “韓国地という疑惑がある益体もない障害物を編入する場合私たちを注目している外国多くの国々に日本が韓国を併呑しようと思うという疑心を大きく持つようにする”と独島領土編入請願に反対した.
このような経緯に加えて, 露日戦争という日本の韓半島侵奪戦争期間中の 1905年 1月日本閣議決定と 2月日本島根県の独島編入措置は実際において大韓帝国に何らのお問い合わせや通報もなしに一方的に成り立った. も, 大韓帝国が 1900年 10月 25日勅令 41号(資料 1)で独島を鬱陵邑の管轄区域で規定したから 1905年日本の一方的な島根県の編入措置は当然無效行為だ.
韓国は 1906年 3月鬱陵島を訪問した島根県役人たちから編入事実を伝えて聞いた後その事実を初めて分かるようになった. 鬱陵軍需はこの事実をその翌日直ちに江原道観さつ使と中央政府に報告した. 報告を受けた内部代わりと参政代わりは ‘独島が日本領土というのは全然根拠がないこと’と言いながら, 事実関係をまた調査することを指示した. (資料 2)
しかし韓国政府はもう 1905年 11月ウルサヌックヤックで外交権が剥奪された状態だからどんな外交的抗議の手段がなかった.
大韓毎日新報(1906. 5. 1)と黄城新聞(1906. 5. 9) などの言論が日本の独島領土編入措置の不法性を報道した.
ここに関するゾーンバンダイックハワイ大教授(国際法) :
島根県煮こむのは日本の韓国強制占領のための強圧・軍事的行為の一部だ. 世界はそれを責めたし, 日本も韓国侵略の不当性を認めた. 独島領有権主張は韓国に対する領有権主張と同じだ. したがって韓国併合が不当なので独島編入も不当だ.
「条約法に関するヴィン(ヴィアンナ) 協約」31兆と 48兆が分かっている?.
独島が SF条約に出ていないことで日本領なのを見做すことは
韓半島の 4800余個の図書を返還されなかったと言うことと同じなので無效.
チォックバリラスク書簡が存在するのに? wwww
ラスク書簡の該当句節 ¥"1905年島根県考試以前韓国の支配した跡が見えなかったし‾¥"部分で ¥"島根県考試¥"は禁反言の原則違反で証拠效力がないから該当の句節は
アメリカの ¥"手違い¥"に作成されたことなので空の協約 48兆違反によって該当句節は效力がない.
参照で, 不遡及原則は元々すべての法の基礎だから
(憲法などほとんどすべての法に不遡及原則が存在) 何とすることはできませんが.
条約法に関する空の協約は本来 ¥"慣例法¥"に以前までの判例を基礎で入って条約判断に対して価値判断の尺度を下げているのだ.
これを否定することは腕マス島のような ¥"判例¥"を持つ君逹の主張も論破される の
はじめから SF条約自体を根と持って来ること自体が無理.
アメリカはずっと立場(入場)繰り返し変更の中で kkkk ラスク書簡? kkkkkk 書簡の意味から学んでください
日本人の中, 日本政府の主張も分からない奴があって私が特別に整理したから
行って読んで自国の政府がどれを主張するか - 学んでくださいコルコルコ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