ミリタリー

金鍾泌(キム・ジョンピル)元首相「日本中の新聞社を回って叱ってやった」

http://joongang.joins.com/article/684/17736684.html?ctg=1000
中央日報(韓国語) 2015.5.6


 慰安婦問題は、歴史的に重要な問題だが韓日会談で1回も取り上げられなかった。1951年から65年までの行った14年間の会談で慰安婦問題は一度も議題に上げたことはない。62年11月、私は大平外相と請求権交渉を繰り広げるも、この話は取り出さなかった。

 理由は知らなかったのではなく慰安婦の年齢がまだ30代から40代前半で若かったからだ。凄惨な苦労を経験した後、やっと母国に戻って結婚をして子供を産んで家族を養うたのに過去の歴史と傷を取り出すのは2重、3重の苦痛を抱かせることだったからだ。だが、今慰安婦は数分後も生きてるかどうか分からない。だからアベは慰安婦が安心してこの世を去ることが出来るようにするべきだ。

 光復(解放)70年である今年、21世紀地球村で日本が孤立すれば1人で生きていくことはできない。日本は過去に痛みを与えた韓国・中国などと共存・共有できる道を開かなければならない。

 昨年日本政界の大物である小沢一郎を叱ってやった。「お前も行き過ぎるほど右翼だが安倍の極右には呆れる。30年代軍国主義そのまま再現するようだ。このままでは必ず問題が生ずる。集団的自衛権など危険な思想を孤立無援軍のように必死で推し進めて何の利益が有るか。慰安婦問題も私たちが正当な解決法をみな出したのでアベが全て私達の条件を飲んで反省して謝る姿を見せなさい。」と要請した。小沢は黙黙と頷くと「(日本に帰って)総理に話します」とだけ答えた。

 過去の歴史に対する日本の態度はドイツのメルケル総理と正反対だ。 メルケルはナチのホロコーストを永遠に反省して謝罪する。 慰安婦問題ホロコーストの殺害規模は小さいが日本は必ずこの過去を記憶して謝罪しなくてはいけない。

 2001年は年初から韓国・日本両国が過去の問題を置いて葛藤が激しくなった。読売新聞は3月2日付社説で‘日本は思想の多様性を許容する国だ’という呆れた記事で‘挺身隊は慰安婦ではなくて戦争の時勤労のために動員された人達’と言い張って中国と韓国が「歴史歪曲」と抗議するのを‘干渉’と呆れる批判をした。慰安婦が強制動員されたという‘歴史の史実‘を「作り話」と表現したのだ。

 当時一線から退いていた私も行っていられなかった。 リュ・フンス(ハンナラ党)、イ・ヨンス(新千年民主党)議員と一緒に読売新聞本社を襲撃して社長室ドアを突進して入った私は渡辺ツネオ会長を大声で叱りつけた。「オイ、ツネオ!こんな恥知らずな事なんでする? お前の年齢が私と同じだからお前が注意しておけば、このような恥知らずな文が出てこなかったことだ。 この文を誰が書いたか? これ使った論説委員みな呼び出せ!」渡辺にこんな大声で叱りつけることが出来るのも長年の友人だからだ。彼は昨年日本文芸春秋9月号に使った寄稿で私を“韓国経済の爆発的成長を実現させた功労者”で表現していたよ。

 しばらくすると文を書いた当事者を含んで編集局長と論説委員が集まったので私が叱りつけてやった。「あなた方、ジナ事変(中日戦争・1937〜45年)が起きた時何歳か。その当時に日本軍隊仕事の手伝いをする人々の服装を分かるか。 ハンティング帽子かぶってスメエリ(襟が首をまいてぴたっと整えるように作った洋服)で、このようなやつらが歩き回って「生産手段がなくて人々が足りない。 それで女たちが生産機関に行って仕事をすれば金を儲けてその金をお母さん・お父さんに送ることができて、良くないか’このようにだまして慰安婦を連行した。


金鍾泌元首相が目撃した強制連行の現場のスケッチを元に描いた絵

 私はこの強制連行の場面を私の二つの目ではっきり見た。このように募集した女性たちを一部は生産機関に配置したが大部分は直ちに強制的に中国に送っておいて慰安婦役割をさせたが。それを作り話と捏造するか?」私の怒号に渡辺会長はもちろん論説委員のうち誰も返事をできなかったよ。彼らは慰安婦を‘貧しくてからだを売る女たち’という程度で間違って認識していた。

 ついでに日本の報道機関全てをひと回り回ってやった。翌日は朝日新聞を探して日本歴史教科書の歪曲状態を詳しく知らせたし、その翌日は産経を探して報道態度を叱咤した。

 その間日本の良心的な知識人は慰安婦強制動員を認めた。 日本アサヒ新聞従軍記者イトウ(伊藤正徳)が代表的な例だ。 彼は太平洋戦争終戦後使った『帝国陸軍の最後』(1960・文芸春秋社)という本で慰安婦の存在を比較的詳しく記録した。

 この本によれば小手先が少しあるとみられる女は工場に連れていったがそうではない女は中国大陸に引っ張っていって軍隊慰安婦で作った。日本軍隊が満州に行けば慰安婦も満州に、越南(ベトナム)に行けば越南(ベトナム)に連れていった。その後、ニューギニアに向かったが、アメリカ潜水艦が撃った魚雷に当たって従軍慰安婦も一緒に沈没して死んだのだ。ところがイトウの本はさほど経過せず日本で探してみるのが難しくなった。 おそらく誰かが慰安婦の証拠をなくすためにそのようなことをしただろう。


Amazonで普通に売っている本の表紙


 慰安婦の話を取り出すのが難しかった韓国社会の雰囲気は70年代も似ていた。1971年5月〜72年3月まで10ヶ月の間既存韓国・日本協定の請求権と別に日帝時代民間人被害者補償をさせるため‘対日民間請求権申告’窓口を開いたことがある。金額では韓国国民から約40億ウォンの申告が受け付けられたが、我が国の国民から慰安婦被害が申告された事例は一件もなかった。申告の70%は銀行預金であったしその他に国債・生命保険・郵便貯金・会社債・戦争死亡者などに関することだった。慰安婦問題を告発して人類普遍的な人権の価値を訴えるには時代が早すぎたためだろう。


김종필 전 수상 「일본안의 신문사를 꾸짖어 돌았다」

김종필(김・존 필) 전 수상「일본안의 신문사를 돌아 꾸짖어 준 」

http://joongang.joins.com/article/684/17736684.html?ctg=1000
중앙 일보(한국어) 2015.5.6


 위안부 문제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제이지만 한일 회담에서 한번도 다루어지지 않았다.1951년부터 65년까지가 간 14년간의 회담에서 위안부 문제는 한번도 의제에 올렸던 적은 없다.62년 11월, 나는 오오히라 외상과 청구권 교섭을 펼치는 것도, 이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이유는 몰랐기 때문에는 없게 위안부의 연령이 아직 30대에서 40대 전반에 젊었기 때문이다.처참한 고생을 경험한 후, 겨우 모국으로 돌아오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가족양노래의 것에 과거의 역사와 상처를 꺼내는 것은 2중, 3중의 고통을 안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 위안부는 몇분 후도 살고 있는지 어떤지 모른다.그러니까 아베는 위안부가 안심하고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듯이) 해야 한다.

 광복(해방) 70년인 금년, 21 세기 지구촌에서 일본이 고립하면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일본은 과거에 아픔을 준 한국・중국등과 공존・공유할 수 있는 길을 열지 않으면 안 된다.

 작년 일본 정계의 거물인 오자와 이치로를 꾸짖어 주었다.「너도 지나치는 만큼 우익이지만 아베의 극우에는 기가 막힌다.30년대 군국주의 그대로 재현하는 것 같다.이대로는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집단적 자위권 등 위험한 사상을 고립 무원군과 같이 필사적으로 추진해 무슨 이익이 있을까.위안부 문제도 우리가 정당한 해결법을 모두 냈으므로 아베가 모두 저희들이 조건을 받아들여 반성해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세요.」라고 요청했다.오자와는 묵묵히 수긍하면 「(일본에 돌아가고) 총리에게 이야기합니다」와만 대답했다.

 과거의 역사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와 정반대다. 메르켈은 나치의 대량학살을 영원히 반성해 사죄한다.위안부 문제 대량학살의 살해 규모는 작지만 일본은 반드시 이 과거를 기억해 사죄하지 않으면 안 된다.

 2001년은 연초부터 한국・일본 양국이 과거의 문제를 두어 갈등이 격렬해졌다.요미우리 신문은 3월 2 일자 사설로‘일본은 사상의 다양성을 허용 하는 나라다’라고 하는 기가 막힌 기사로‘정신대는 위안부가 아니라 전쟁때 근로를 위해서 동원된 사람들’라고 말해 쳐 중국과 한국이「역사 왜곡」와 항의하는 것을‘간섭’와 기가 막히는 비판을 했다.위안부가 강제 동원되었다고 하는‘역사의 사실‘를「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당시 일선으로부터 물러나고 있던 나도 가고 있을 수 없었다. 류・훈스(한나라당), 이・욘스(새천년 민주당) 의원과 함께 요미우리 신문 본사를 습격해 사장실 도어를 돌진해 들어간 나는 와타나베 트네오 회장을 큰 소리로 몹시 꾸짖었다.「오이, 트네오!이런 철면피인 일이니까 해? 너의 연령이 나와 같기 때문에 너가 주의해 두면, 이러한 철면피인 문장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 문장을 누가 썼어?이것 사용한 논설위원 모두 호출해라!」와타나베에 이런 큰 소리로 몹시 꾸짖을 수 있는 것도 오랜 세월의 친구이기 때문이다.그는 작년 일본 문예춘추 9월호에 사용한 기고로 나를“한국 경제의 폭발적 성장을 실현시킨 공로자”로 표현하고 있었어.

 잠시 후에 문장을 쓴 당사자를 포함해 편집국장과 논설위원이 모였으므로 내가 몹시 꾸짖어 주었다.「여러분, 지나 사변(중일 전쟁・1937〜45년)이 일어났을 때 몇 살인가.그 당시에 일본 군대 일돕기를 하는 사람들의 복장을 알까. 헌팅 모자인가인 체하며 스메에리(옷깃이 목을 뿌려 딱 정돈하도록(듯이) 만든 양복)로, 이러한 녀석들이 걸어 다니며「생산수단이 없어서 사람들이 부족하다. 그래서 여자들이 생산 기관에 가서 일을 하면 돈을 돈을 벌어 그 돈을 엄마・아버지에게 보낼 수 있고, 좋지 않는가’이와 같이 속여 위안부를 연행했다.


김종필 전 수상이 목격한 강제 연행의 현장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그린 그림

 나는 이 강제 연행의 장면을 나의 두 살의 눈에서는 잘라 보았다.이와 같이 모집한 여성들을 일부는 생산 기관에 배치했지만 대부분은 즉시 강제적으로 중국에 보내 두어 위안부 역할을 시켰지만.그것을 만들어낸 이야기와 날조 할까?」 나의 꾸중에 와타나베 회장은 물론 논설위원의 쳐 아무도 대답을 할 수 없었어요.그들은 위안부를‘궁핍해서 몸을 파는 여자들’라고 하는 정도로 잘못해 인식하고 있었다.

 하는 김에일본의 보도 기관 모두를 한층 돌아 주었다.다음날은 아사히 신문을 찾아 일본 역사 교과서의 왜곡 상태를 자세하게 알렸고, 그 다음날은 산케이를 찾아 보도 태도를 질타 했다.

 그 사이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은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했다. 일본 아사히 신문 종군기자 이토우(이토 쇼토쿠)가 대표적인 예다.그는 태평양전쟁 종전 후 사용한『제국 육군의 최후 』(1960・문예춘추사)라고 하는 책으로 위안부의 존재를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했다.

 이 책에 의하면 잔재주가 조금 있다고 보여지는 여자는 공장에 데려갔지만 하지 않는 여자는 중국 대륙에 끌어들이고 가 군대 위안부로 만들었다.일본 군대가 만주에 가면 위안부도 만주에, 월남(베트남)으로 가면 월남(베트남)으로 데려갔다.그 후, 뉴기니로 향했지만, 미국 잠수함이 쏜 어뢰에 해당되어 종군위안부도 함께 침몰해 죽었던 것이다.그런데 이토우의 책은 그다지 경과하지 않고 일본에서 찾아 보는 것이 어려워졌다. 아마 누군가가 위안부의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 그러한 일을 했을 것이다.


Amazon로 보통으로 팔고 있는 책의 표지


 위안부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어려웠던 한국 사회의 분위기는 70년대나 비슷했다.1971년 5월〜72년 3월까지 10개월간 기존 한국・일본 협정의 청구권과 별로 일제 시대 민간인 피해자 보상을 시키기 위해‘대일 민간 청구권 신고’창구를 열었던 적이 있다.금액으로는 한국 국민으로부터 약 40억원의 신고를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우리 나라의 국민으로부터 위안부 피해가 신고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신고의70%는 은행예금이었고 그 외에 국채・생명보험・우체국 저금・회사채・전쟁 사망자 등에게 관한 일이었다.위안부 문제를 고발해 인류 보편적인 인권의 가치를 호소하려면 시대가 너무 빨랐기 때문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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