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善化寺を出て、華厳寺を目指す。大同は綺麗な店が増えてきているようだが、自分のような得体の知れない観光客には愛想が悪い。入ろうとしても睨まれるか、避けようとする店員しかいない。

 

 

  中国は8月はよく雨が降るようだ。デコボコだらけの道が多いので、水溜りが多く出来ている。途中、恐ろしい臭いが漂ってきたので見てみたら、便所だった。

 

 

  一方、華厳寺前の道はよく整備されている。善化寺から華厳寺まで歩いて10分少々程度かかったかな。写真は華厳寺の正面。華厳寺は東向きに建ってます。

 因みに、拝観料は70元。紫禁城より高い!遂に1000円超えである。

 

 

  華厳寺に入った。

 入って思ったことは「広い。よく整備されている」。拝観料は高いが、観光客は善化寺より多い。確かに見所は多そうだし、繁華街の近くにあるので行き易いのだろう。ただ、ほとんどは観光客で、生活に根ざした寺院という雰囲気ではないが。

 寺は下寺と上寺に分かれている。写真は下寺。中央に見える大きな建物が普光明殿で、左右に切妻の建物を置き、普光明殿の正面に正門である天王殿を置く。多くは清時代に再建されたものらしい。

 

 

 四天王像

 

 

  普光明殿。ここで大人と子供が入り混じった10人程度の集団に遭遇した。周囲の人と少し雰囲気が違うので、もしやと思い、注目して聞いていると、やはり韓国語で話していた。自分は「韓国人ですか?」と韓国語で問いかける。「そうです。」との答え。「私は日本人です。」と言うと、非常に喜んでくれた。特に男の子は手を差し出し、握手もしてくれました。

 因みに彼らは旅行者ではなく、中国に滞在しているそうだ。確かに旅行者の観光だと、普通はここには来ないと思う。大同は西洋人も多いけど、大同城内では全く出会わなかった。

 

 

 下寺は広い。伽藍の南側には普賢閣と、その奥に華厳宝塔が建っている。写真の普賢閣は遼時代風の建物。

 

 

 「華厳宝塔」。高さ43.5m、中国で2番目に高い木塔である。3階建てに見えるが、間に暗層があり、実際は5階建て。この塔は上まで上れます。

 この位置で写真を撮っていると、「I LOVE JAPAN」の声が塔の上から聞こえてきた。上を見ると先程の韓国の子供達だった。

 

階段を上がると組物が目の前に。こういうのは堪りませんw 頭貫も台輪も通肘木も物凄く立派。

 

 

 韓国人の子供達が降りてきた。韓国人の大人達はこの塔に上らなかったようだ。

 

 

一番上まで上がってきた。柱は上が細く、下が太いタイプで、韓国風に言うなら「ミンフリム」である。

 

 

 東側を眺める。正面の入母屋の建物は簿伽教蔵殿。

 

 

 東南側。古い家が壊され、再開発が進む。

 

 

 「簿伽教蔵殿」は1038年の建立で、華厳寺最古の建物。内部に遼時代の塑像仏像を安置し、壁付きの経蔵である「壁蔵」が周囲を取り囲む。壁蔵は2層の楼閣建築となっており、非常に精巧に出来ている。

 

 

さて、それでは上寺を目指そう。華厳寺は敷地が広大。そして、境内は音楽が延々と流され、静かさとは無縁である。

 

 

 上寺の中央に鎮座する大雄宝殿が見えてきた。基壇もかなり高い。

 

 

 

 上寺の入口は普光明殿の後ろにある。ここから入ります。

 

 

 

 

 「大雄宝殿」、1140年

 

 正面9間・53.7m、側面5間・29mの巨大な単層寄棟の建物である。単層の建物では中国最大。組物は2手先を基礎とし、中備には蛙股を置いて成の低い2手先組物を置く。また、中央間の中備に60度方向の斜きょうを入れ、中央間から左右2間隣の脇間の中備に2手先組物に45度方向の斜きょうを入れるなど、少々複雑。

 この建物は遼時代に建てられたが、金時代に建て替えられた。頭貫の木鼻が無装飾なのは遼時代的な特徴である。

 

 内部は広大で、掃除係りの女性が2人存在した。柱の配置も独特で、左右両端間の梁行柱筋は5間で6本の柱が立つが、それ以外は長い虹梁を渡し、3間・4本の柱が立つのみである。その上部は明時代に作られた天井で隠され、構造は見えない。

 

 

 大雄宝殿の後姿。さすがにここまで大きいと迫力がある。壁高欄には「吉」の文字が入れられていた。

 

 

 華厳寺を出る。しまった、華厳寺の前の広場の写真を撮り忘れた。で、拝借写真。簿伽教蔵殿の壁蔵を模したと思われる建物が広場を取り囲んでいた。

 自分は広場を出てタクシーを拾い、大同城を後にした。

 

 

 終わり

 

 


중국의 사원·게곤절

 

 

  선화사를 나오고, 게곤절을 목표로 한다.대동은 깨끗한 가게가 많아지고 있는 것 같지만, 자신과 같은 정체의 모르는 관광객에게는 붙임성이 나쁘다.들어가려고 해도 감시받는지, 피하려고 하는 점원 밖에 없다.

 

 

  중국은 8월은 자주(잘) 비가 내리는 것 같다.울퉁불퉁 투성이의 길이 많기 때문에, 웅덩이가 많이 되어있다.도중 , 무서운 수상하지만 감돌았기 때문에 보면, 변소였다.

 

 

  한편, 게곤 테라마에의 길은 자주(잘) 정비되고 있다.선화사로부터 게곤절까지 걸어 10분 조금 정도 걸렸는지.사진은 게곤절의 정면.게곤절은 동쪽 방향으로 세워지고 있습니다.

 덧붙여서, 배관료는 70원.자금성보다 높다!결국 1000엔 추월이다.

 

 

  게곤절에 들어갔다.

 들어가고 생각한 것은 「넓다.자주(잘) 정비되고 있다」.배관료는 비싸지만, 관광객은 선화사보다 많다.확실히 볼만한 곳은 많은 것 같고, 번화가의 근처에 있으므로 가기 쉽겠지.단지, 대부분은 관광객으로, 생활에 기인한 사원이라고 하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절은 시모데라와 우에데라로 나누어져 있다.사진은 시모데라.중앙으로 보이는 큰 건물이 보광명전으로, 좌우에 뱃집지붕의 건물을 두어, 보광명전의 정면으로 정문인 천왕전을 둔다.많게는 청시대에 재건된 것 같다.

 

 

 사천왕상

 

 

  보광명전.여기서 어른과 아이가 들어와 섞인 10명 정도의 집단에 조우했다.주위의 사람과 조금 분위기가 다르므로, 어쩌면이라고 생각해, 주목해 (듣)묻고 있으면, 역시 한국어로 하고 있었다.자신은 「한국인입니까?」라고 한국어로 물어 본다.「그렇습니다.」라는 대답.「 나는 일본인입니다.」라고 하면, 매우 기뻐해 주었다.특히 사내 아이는 손을 내밀어, 악수도 해 주었습니다.

 덧붙여서 그들은 여행자가 아니고, 중국에 체재하고 있다고 한다.확실히 여행자의 관광이라고, 보통은 여기에는 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대동은 서양인도 많지만, 대동 성내에서는 전혀 만나지 않았다.

 

 

 시모데라는 넓다.가람의 남쪽에는 보현각과 그 안쪽에 게곤 보탑이 세워지고 있다.사진의 보현각은 료시대풍의 건물.

 

 

 「게곤 보탑」.높이 43.5 m, 중국에서 2번째로 높은 목탑이다.3층건물로 보이지만, 사이에 암층이 있어, 실제는 5층건물.이 탑은 위까지 오를 수 있습니다.

 이 정도치로 사진을 찍고 있으면, 「I LOVE JAPAN」의 소리가 탑 위로부터 들려 왔다.위를 보면 조금 전의 한국의 아이들이었다.

 

계단을 오르면 공포가 눈앞에.이런 것은 감선w 두관도 대륜도 통주목도 무섭고 훌륭함.

 

 

 한국인의 아이들이 내려 왔다.한국인의 어른들은 이 탑에 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맨 위까지 올라 왔다.기둥은 위가 가늘고, 아래가 굵은 타입으로, 한국풍으로 말한다면 「민후림」이다.

 

 

 동쪽을 바라본다.정면의 입안방의 건물은 부가교장전.

 

 

 동남측.낡은 집이 깨뜨려지고 재개발이 진행된다.

 

 

  「부가교장전」은 1038년의 건립으로, 게곤절최고의 건물.내부에 료시대의 소상 불상을 안치해, 벽첨부의 경장인 「벽장」이 주위를 둘러싼다.벽장은 2층의 누각 건축이 되고 있어 매우 정교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그러면 우에데라를 목표로 하자.게곤절은 부지가 광대.그리고, 경내는 음악이 끝없이 흘러가 조용함과는 무연이다.

 

 

 우에데라의 중앙에 자리잡는 타이유우 호텐이 보여 왔다.기단도 꽤 높다.

 

 

 

 우에데라의 입구는 보광명전의 뒤에 있다.여기로부터 들어갑니다.

 

 

 

 

  「타이유우 호텐」, 1140년

 

 정면 9간·53.7 m, 측면 5간·29 m의 거대한 단층기동의 건물이다.단층의 건물에서는 중국 최대.공포는 2 손끝을 기초로 해, 안구체적으로는 와고를 두어 성의 낮은 2 손끝 공포를 둔다.또, 중앙간안구체적으로 60도 방향의 경사 오늘을 넣어 중앙간에서 좌우 2간 근처의 협간안구체적으로 2 손끝 공포에 45도 방향의 경사 오늘을 넣는 등, 조금 복잡.

 이 건물은 료시대에 지어졌지만, 긴토키대에 다시 세워졌다.머리 장군목코가 무장식인 것은 료시대적인 특징이다.

 

 내부는 광대하고, 청소 담당의 여성이 2명 존재했다.기둥의 배치도 독특하고, 좌우 양단간의 량행주근은 5간에 6개의 기둥이 서지만, 그 이외는 긴 홍량을 건네주어, 3간·4개의 기둥이 설 뿐이다.게다가 부는 명시대에 만들어진 천정에서 숨겨져 구조는 안보인다.

 

 

 타이유우 호텐의 뒷모습.과연 여기까지 크면 박력이 있다.벽고란에는 「길」의 문자가 들어가 있었다.

 

 

 게곤절을 나온다.큰일난, 게곤 테라노마에의 광장의 사진을 찍는 것을 잊었다.그리고, 배차사진.부가교장전의 벽장을 본떴다고 생각되는 건물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자신은 광장을 나오고 택시를 잡아, 대동성을 뒤로 했다.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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