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平等院鳳凰堂・阿弥陀如来坐像

 

浄瑠璃寺・九体阿弥陀仏

 

 

平安時代後期、特に末法思想が現実のものと認識されだした11世紀以降、日本では熱に浮かされたように阿弥陀仏の造立が盛んになる。

法界寺の創建が1051年、末法元年とされたのが1052年だから、法界寺もまた、末法到来を前提に建立されたのは言うまでもない。

 

ただ、現在の法界寺の阿弥陀如来像は創建当初の物ではない。創建から平安時代終わりまでに5体もの阿弥陀如来像の存在が確認されているが、現在の物は1098年造立のものと考えるのが有力なようだ。

 

 

 

国宝「阿弥陀如来坐像」

 

さて、法界寺の阿弥陀如来である。

一見して、平等院鳳凰堂の阿弥陀如来に倣った仏像だと分かる。

いわゆる「定朝様式」の仏像である。

 

仏師・定朝が作った鳳凰堂の阿弥陀如来像は、平安時代後期の貴族社会で絶賛され、その後に阿弥陀如来像を作る者は皆、鳳凰堂像を手本とした。

中には鳳凰堂像の顔や体の寸法を正確に測り、そっくり同じ物を作らせた者までいたという。

 

この仏像は大きさが280cmと、鳳凰堂像(278cm)と寸法的にはほとんど同じである。

ただ、見た印象は結構異なる。

 

 

鳳凰堂像

 

鳳凰堂の阿弥陀如来像は、目をしっかりと見開いている。

それも、アクの強さを感じさせる眼差しではなく、理性的な奥深さを備えた目をしている。

丸顔だが、全体から見るとあまり太った印象を与えず、頭と体のバランスも良い。

 

 

一方の法界寺像。

同じく丸々とした顔だが、鳳凰堂像よりさらにふっくらとしているように感じる。

この顔はかなりの体脂肪率でなければ実現できないだろうw

 

目が非常に細く、アップで見なければ開いているかどうか分からない。

また、その丸々とした顔が、あまり太っていない身体にポンと乗っているように見えて、バランスが少々悪い。

さらに、真横から見ても、顔は大きいが体の奥行きがあまり無く、やはり大きな頭部がポンと乗っているように見えてバランスが良くない。

 

まあ、平安後期の定朝様式の仏像は、写実的な仏像を狙ったものではなく、あくまで重量感を払拭したやさしい仏像なので、これはこれで良しとすべきなのだろう。

そういう面から見ると、この法界寺像は、鳳凰堂像のような聡明さは感じられないが、鳳凰堂像よりさらに繊細で、やさしさに満ちている。

見ていて非常に和む阿弥陀様なのである。

 

 

須弥壇は阿弥陀堂建立時のもの。

四天柱には仏像が描かれている(重要文化財)が、かなり薄くなっている。

 

 

四天柱内部の壁画(重要文化財)

 

白壁部分に描かれた壁画は何とか分かるが、木材部分の極彩色はほとんど分からない。

因みに、側周り(側柱筋)の白壁部分は現在無地だが、明治時代の改修前はこの部分にも絵が描かれていたらしい。

建物内部は、主に2つの開けられた扉から差し込む自然光で照らされているだけなので、暗い。

これが、全ての扉が開け放たれれば、もっと明るくなり、仏像の表情や壁画なども、よりはっきりと分かるだろう。

 

 

 

台座は阿弥陀如来造立の時のもの。

 

 

 

光背の縁光部分には、左右に各7体の飛天が付く。

縁光部分は阿弥陀如来造立時のものではなく、鎌倉時代の阿弥陀堂建立の時に付けられたと考えられている。

 

 

四天柱内部の天井は、折上小組格天井とし、花形の天蓋を吊るしている。

この天蓋もまた、鎌倉時代、阿弥陀堂建立の時に作られた。

 

まとめると、阿弥陀如来像、光背(縁光を除く)、台座が1098年造立時のもので、天蓋、須弥壇、光背の縁光部分が阿弥陀堂建立時・鎌倉時代のもの。

いずれにせよ、これだけの物が残っているだけでも大変貴重である。

 

 

つづく

 

 

 


호우카이지, 그 2

 

평등원봉황당·아미타 여래좌상

 

죠루리사·9체 아미타불

 

 

헤이안 시대 후기, 특히 끝법사상이 현실의 것이라고 인식되기 시작한 11 세기 이후, 일본에서는 열중한 것처럼 아미타불의 조립이 활발하게 된다.

호우카이지의 창건이 1051년말 법원년으로 여겨졌던 것이 1052년이니까, 호우카이지도 또, 끝법도래를 전제로 건립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단지, 현재의 호우카이지의 아미타 여래상은 창건 당초의물은 아니다.창건으로부터 헤이안 시대 마지막까지 5체의 아미타 여래상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지만, 현재의 물건은 1098년 조립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유력한 것 같다.

 

 

 

국보 「아미타 여래좌상」

 

그런데, 호우카이지의 아미타 여래이다.

언뜻 보고, 평등원봉황당의 아미타 여래에게 모방한 불상이라고 안다.

이른바 「죠쵸 양식」의 불상이다.

 

불사·죠쵸가 만든 봉황당의 아미타 여래상은, 헤이안 시대 후기의 귀족 사회에서 절찬되어 그 후에 아미타 여래상을 만드는 사람은 모두, 봉황당상을 표본으로 했다.

안에는 봉황당상의 얼굴이나 몸의 치수를 정확하게 측정해, 전부 같은 물건을 만들게 한 사람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 불상은 크기가 280 cm로 봉황당상(278 cm)과 치수적으로는 거의 같다.

단지, 본 인상은 상당히 다르다.

 

 

봉황당상

 

봉황당의 아미타 여래상은, 눈을 제대로 봐 열려 있다.

그것도, 악의 힘을 느끼게 하는 시선이 아니고, 이성적인 깊숙함을 갖춘 눈을 하고 있다.

둥근얼굴이지만, 전체로부터 보면 별로 살찐 인상을 주지 않고, 머리와 몸의 밸런스도 좋다.

 

 

한편의 호우카이지상.

같은 환들로 한 얼굴이지만, 봉황당상보다 더 포동포동한 것처럼 느낀다.

이 얼굴은 상당한 체지방율이 아니면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w

 

눈이 매우 가늘고, 업으로 보지 않으면 열려 있을지 모른다.

또, 그 환들로 한 얼굴이, 별로 살쪄 있지 않은 신체에 폰이라고 타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밸런스가 조금 나쁘다.

게다가 바로 옆으로부터 봐도, 얼굴은 크지만 몸의 깊이가 별로 없고, 역시 큰 머리 부분이 폰이라고 타고 있는 것처럼 보여 밸런스가 좋지 않다.

 

뭐, 평안 후기의 죠쵸 양식의 불상은, 사실적인 불상을 노린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중량감을 불식한 쉬운 불상이므로, 이것은 이것대로 좋다로 해야 할일 것이다.

그러한 면으로부터 보면, 이 호우카이지상은, 봉황당상과 같이 총명함은 느껴지지 않지만, 봉황당상보다 더 섬세하고, 쉬움으로 가득 차 있다.

보고 있어 매우 누그러지는 아미타불 같다.

 

 

슈미단은 아미다도우 건립시의 것.

4천주에는 불상이 그려져 있는(중요문화재)가, 꽤 얇아지고 있다.

 

 

4천주내부의 벽화(중요문화재)

 

흰 벽 부분에 그려진 벽화는 어떻게든 알지만, 목재 부분의 극채색은 거의 모른다.

덧붙여서, 옆주위(측주근)의 흰 벽 부분은 현재 무지이지만, 메이지 시대의 개수전은 이 부분에도 그림이 그려져 있던 것 같다.

건물내부는, 주로 2가 열린 문으로부터 찔러넣는 자연광으로 비추어지고 있을 뿐이므로, 어둡다.

이것이, 모든 문이 열려 발해지면, 더 밝아져, 불상의 표정이나 벽화등도, 보다 분명히 알 것이다.

 

 

 

대좌는 아미타 여래 조립때의 것.

 

 

 

후광의 연 광부분에는, 좌우에 각 7체의 비천이 붙는다.

연 광부분은 아미타 여래 조립시의 것이 아니고, 가마쿠라 시대의 아미다도우 건립때에 붙일 수 있었다고 생각되고 있다.

 

 

4천주내부의 천정은, 절상소조격천정으로 해, 인기의 천개를 매달고라고 있다.

이 천개도 또, 가마쿠라 시대, 아미다도우 건립때에 만들어졌다.

 

정리하면, 아미타 여래상, 후광(연 광을 제외하다), 대좌가 1098년 조립시의 것으로, 천개, 슈미단, 후광의 연 광부분이 아미다도우 건립시·가마쿠라 시대의 것.

어쨌든, 이만큼의 물건이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몹시 귀중하다.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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