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ある韓国人たちは『「先占」と「固有領土論」は両立しない』と主張する。

 根拠は『「先占」とは「無主地」に対する領土取得だ。歴史的に日本の領土なら「無主地」ではない。よってこの「先占」は無効』というものだ。

 しかし結論から言うと、これらの批判は国際法の理解力が足りていないにすぎない。「先占」と「固有領土論」は両立するのである。その理由を説明していきたい。

 

判例から見る国際法の要求

 「パルマス島事件判決」はアメリカとオランダがパルマス島の領有権を争ったものである。

 アメリカはスペインからの割譲で領土権を得たとしており、オランダは元々オランダ領だったと主張した。

 裁判では「スペインの権原」と「オランダの権原」が検討された。

 しかし判決の根拠となったのは「特定の権原(先占や時効など)では無く」、「継続的かつ平和的な実効的占有」がその根拠となった。

 裁判所は「権原の有無」を問題にするのではなく、「権原(もしくは主張)の相対的な強さ(relative strength)」によって主権を有する国を決めるようになったのである。場合によってはそれらの権原(主張)は複数提示されるだろう。

 また「パルマス島事件判決」では、いったん獲得された権原が維持されているか否かを帰属決定の判断要素ともした。「権利の創設」と「権利の維持」は区別されるものであり、権利の維持には「実効的占有」が不可欠となった。つまり「未成熟な権原(歴史的・原始的権原)」は「現在の国際法が要求する条件である実効的占有」に代替される必要性が指摘されたのである。

 これらの法理論はそれ以降の「国際裁判」で重要な地位を占めるようになった。

 

日本の竹島に対する「歴史的権原」

 19世紀に日本が近代国家として開国し、国際法を受容するようになった。このため周辺領域つまり周辺の諸島の帰属を明確にする必要が生じた。

 さて国際法を受容する前にはその地域には国際法が適用されない。この場合は国際法を受容する以前の「その地域の領土決定ルール」が有効となる。

 日本における「領土決定ルール」とは「実際に日本で日本の領土と考え、日本の領土として取り扱い、他の国がそれを争わなければ、それで領有するには十分であったと認められる」というものである。

 竹島に関連しては朝鮮と日本の間には「争いはない」事が確認されている(そもそも韓国側には竹島に対する正確な知見さえ有していなかった)。また日本人が日本政府公認で漁猟を行い、実見に基づく絵図・地図が作成されるといった歴史的権原を有していた。

 しかし「歴史的に日本の有する権原」では、「国際法的にも確実に日本の領土である」と断言できるほど十分に条件を満たしてはいない恐れがあった。

 このために、日本は「歴史的権原」が「国際法上の権原」によって代替・補強される必要が生じたのである。

 

「国際法的権原」

 そこで日本政府は1905年2月、竹島を島根県に編入する閣議決定が行われ島根県に編入した。

 島根県編入後、日本政府は竹島に対する「実効的支配」を強化した。島根県知事の視察、県の調査団の派遣、漁業取締規則の改正による竹島のアシカ猟の許可漁業指定、官有地台帳への登載、民間人への貸付手続きと、賃貸使用料の国庫への納入等である。

 このようにして、日本は竹島に対する「領有の根拠」を「歴史的権原から国際法上の権原へと代替・強化した」のである。

 

「継続的かつ平和的な実効的支配」

 さて1905年2月の島根県編入は「先占」の法理による。

 韓国人たちの疑問提起は『「先占」とは「無主地」に対する領土取得だ。歴史的に日本の領土なら「無主地」ではない。よってこの「先占」は無効』というものだった。

 しかし今までに説明したように、「歴史的権原」が「有効な国際法的権原(実効的支配)」へ代替すべきなのは国際法の要求である。重要なのは「有効な国際法的権原(実効的支配)」を確立することであり、その方法として『「先占」の手順を踏んではいけない』という制約は存在しないのだ。それどころか「先占」という形態を取ることにより、日本が疑いのない形で「実効的支配」を行使していることを示したと評価できる。

 またパルマス島事件の判決文では「継続的かつ平和的な実効的支配」という表現の後で括弧をつけて「いわゆる時効」と記述されている。そもそも「先占」と「時効」の差は、その領域が「無主地」か「既に領有された領域」かという違いでしかない。しかし「先占」と「時効」の両方とも「実効的支配」が必要とされており(実効的支配の期間に差はあるものの)実質的には差はない。

つまり日本が「竹島に対して実効的支配を行った」という事実が重要なのであり、それが「無主地」に対してなのか「既に日本によって領有された領域」なのかを論じるのは無意味なのである。


「고유의 영토론」과「선점」의 양립

 

 

어느 한국인들은 「 「선점」과「고유 영토론」은 양립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근거는 「 「선점」이란 「무주지」에 대한 영토 취득이다.역사적으로 일본의 영토라면 「무주지」는 아니다.따라서 이 「선점」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나 결론으로부터 말하면, 이러한 비판은 국제법의 이해력이 충분하지 않는에 지나지 않는다.「선점」과「고유 영토론」은 양립하는 것이다.그 이유를 설명해 나가고 싶다.

 

판례로부터 보는 국제법의 요구

  「파르마스섬사건 판결」은 미국과 네델란드가 파르마스섬의 영유권을 싸운 것이다.

 미국은 스페인으로부터의 할양으로 영토권을 얻었다고 하고 있어, 네델란드는 원래 네델란드령이었다고 주장했다.

 재판에서는 「스페인의 권원」과「네델란드의 권원」이 검토되었다.

 그러나 판결의 근거가 된 것은 「특정의 권원(선점이나 시효 등)은 아니고」, 「계속적 또한 평화적인 실효적 점유」가 그 근거가 되었다.

 재판소는 「권원의 유무」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권원(혹은 주장)의 상대적인 힘(relative strength)」에 의해서 주권을 가지는 나라를 결정하게 되었던 것이다.경우에 따라서는 그러한 권원(주장)은 복수 제시될 것이다.

 또 「파르마스섬사건 판결」에서는, 일단 획득된 권원이 유지되고 있는지 아닌지를 귀속 결정의 판단 요소라고도 했다.「권리의 창설」과「권리의 유지」는 구별되는 것이어, 권리의 유지에는 「실효적 점유」가 불가결이 되었다.즉 「미성숙인 권원(역사적·원시적 권원)」는 「현재의 국제법이 요구하는 조건인 실효적 점유」에 대체되는 필요성이 지적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법리론은 그 이후의 「국제 재판」으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일본의 타케시마에 대한 「역사적 권원」

 19 세기에 일본이 근대국가로서 개국해, 국제법을 수용하게 되었다.이 때문에 주변 영역 즉 주변의 제도의 귀속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생겼다.

 그런데 국제법을 수용하기 전에는 그 지역에는 국제법이 적용되지 않는다.이 경우는 국제법을 수용하기 이전의 「그 지역의 영토 결정 룰」이 유효가 된다.

 일본에 있어서의 「영토 결정 룰」이란 「실제로 일본에서 일본의 영토라고 생각해 일본의 영토로서 취급해, 다른 나라가 그것을 싸우지 않으면, 그래서 영유 하려면 충분했다고 인정된다」라고 하는 것이다.

 타케시마에 관련해 조선과 일본의 사이에는 「분쟁은 없다」것이 확인되고 있다(원래 한국측에는 타케시마에 대한 정확한 지견마저 가지지 않았었다).또 일본인이 일본 정부 공인으로 어업을 실시해, 실견에 근거하는 그림·지도가 작성된다고 하는 역사적 권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일본이 가지는 권원」에서는, 「국제법적으로도 확실히 일본의 영토이다」라고 단언할 수 있는 만큼 충분히 조건을 채우지는 않을 우려가 있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역사적 권원」이 「국제법상의 권원」에 의해서 대체·보강될 필요가 생겼던 것이다.

 

「국제법적 권원」

 거기서 일본 정부는 1905년 2월, 타케시마를 시마네현에 편입하는 각의 결정을 해 시마네현에 편입했다.

 시마네현 편입 후, 일본 정부는 타케시마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강화했다.시마네현 지사의 시찰, 현의 조사단의 파견, 어업 단속 규칙의 개정에 의한 타케시마의 강치렵의 허가 어업 지정, 칸유치 대장에의 게재, 민간인에게의 대출 수속과 임대 사용료의 국고에의 납입등이다.

 이와 같이 하고,일본은 타케시마에 대한 「영유의 근거」를 「역사적 권원으로부터 국제법상의 권원으로 대체·강화했다」 것인다.

 

「계속적 또한 평화적인 실효적 지배」

 그런데 1905년 2월의 시마네현 편입은 「선점」의 법리에 의한다.

 한국인들의 의문 제기는 「 「선점」이란 「무주지」에 대한 영토 취득이다.역사적으로 일본의 영토라면 「무주지」는 아니다.따라서 이 「선점」은 무효」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설명한 것처럼, 「역사적 권원」이 「유효한 국제법적 권원(실효적 지배)」에 대체해야 하는 것은 국제법의 요구이다.중요한 것은 「유효한 국제법적 권원(실효적 지배)」를 확립하는 것이어, 그방법으로서 「 「선점」의 순서를 밟아선 안 된다」라고 하는 제약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그 뿐만 아니라 「선점」이라고 하는 형태를 취하는 것으로, 일본이 혐의의 없는 형태로 「실효적 지배」를 행사하고 있는 것을 나타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 파르마스섬사건의 판결문에서는 「계속적 또한 평화적인 실효적 지배」라고 하는 표현의 후에 괄호를 붙여 「이른바 시효」라고 기술되고 있다.원래 「선점」과「시효」의 차이는, 그 영역이 「무주지」인가 「이미 영유 된 영역」일까하고 말하는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그러나 「선점」과「시효」의 양쪽 모두 「실효적 지배」가 필요하게 되고 있어(실효적 지배의 기간에 차이는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차이는 없다.

즉 일본이 「타케시마에 대해서 실효적 지배를 실시했다」라고 하는 사실이 중요해서 있어, 그것이 「무주지」에 대해서인가 「이미 일본에 의해서 영유 된 영역」인가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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