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ファイル:Keihan7200-newcolor.JPG

11月3日、京都に行きました。

 

最近あちこち行き過ぎてるので、金銭的に大変。

京都に行くにも、車にするか、電車にするかで迷う。今回は電車を選択。

ご老体であるミニキャブの走行距離を増やし過ぎたくなかったし、

やはり車の方が何かとお金がかかるしね。

 

「妙法院」が3日から特別公開なので、この拝観を中心にする。

後は「三十三間堂」と「六波羅蜜寺」も立ち寄った。

従って、電車は京阪電車、おけいはんだ。

 

 

 

蓮華王院の本堂、別名「三十三間堂」。1266年の再建で、国宝。

 

京阪七条から徒歩10分くらい。拝観料は600円。

ここは子供の時に行ったきり。

本堂は桁118m以上、梁16m以上、幾多の戦乱や大地震にも耐えてきた名建築である。

 

ここは外人が多かったな。西洋人系が目立つ。

 

 

 

これは、お堂を出た所で撮影した写真。三十三間堂の裏側。

堂内の撮影は禁止。

 

 

 

お堂の裏側、南西側。

江戸時代に通し矢が行なわれた場所。

 

ファイル:Toshi-ya 00.jpg

18世紀後半、歌川豊春の絵に描かれた通し矢の模様。

 

 

 

 

 

その後、「妙法院」に立ち寄る。

 

妙法院は最澄によって開かれたと伝えられ、天台三門跡と称された名門寺院。

後白河法皇、豊臣秀吉との関わりが深い。

因みに三十三間堂は、妙法院の管理下にある。

 

 

庫裏の前で拝観料を支払う。600円なり。

撮影は厳禁。庫裏も、庭や宸殿も全部NG。もったいない。

そして重要文化財の大書院には入れない。ガードが固すぎるな・・・

 

 

「庫裏」、16世紀末の建造で、国宝。

桁約22m、梁約24mの大規模な庫裏である。

 

桃山時代、この庫裏で1000人もの僧侶の食事を作っていたというから、そりゃあデカい。

因みに国宝の庫裏は2つしかなく、もう1つは松島の瑞巌寺の庫裏。

 

 

ファイル:Myohoin03s2040.jpg

庫裏の内部。

 

内部は土間・板間・座敷に分かれる。座敷には入れません。

土間と板間は天井を張らず、豪快な屋根裏の架構を見渡せる。

 

学生らしき案内係の女性がここを含め、全ての建物に配置されている。

それにしても、庫裏だけでも撮影OKにしてほしい。立派な庫裏なんだから。

 

 

やっぱり屋根裏はいい。

梁の上に桁行梁が乗り、さらにその上に梁が乗る。

その梁の上に、小屋束が林立し、小屋貫が走りまくる。

厳島神社の千畳閣よりも、はるかに屋根が高いので、こちらの方が見応えがある。

煙出しから明かりが差し込むので、小屋組が大規模であっても千畳閣より見やすい面もある。

 

暫し、板の間に座って天井を眺めていた。

すると、係りの女性が「どうされましたか?」だって。「天井を眺めてます」としか答えられんw

どうやら、この天井の素晴らしさが分からないみたいだ。

 

 

 

庫裏を出て、白書院、護摩堂、聖天堂を巡り、宸殿に入る。

全部廊下で繋がっており、その間に美しい庭がある。

全部撮影NGだ。

 

 

 

手前にある檜皮葺の建物が「宸殿」。明治31年の再建。

奥に見えるのが、庫裏。

 

宸殿は明治31年の再建で、桁7間・梁6間。前面1間を吹き放ち、3室に分かれる。

 

撮影絶対NG。

案内係の女性達は、監視役でもあるのではないか。

ふと、前に行った円満院の宸殿を思い出した。

あちらは重要文化財なのに、撮影し放題で、誰もいないから寝そべっても問題ないw

 

あと、宸殿の前に小さな本堂がある。

 

 

 

ファイル:Letter from the viceroy of Portuguese India .gif

 

「ポルトガル国印度副王信書」、国宝

 

妙法院の国宝は、庫裏の他にこれがある。

1588年、ポルトガルのインド副王から豊臣秀吉に宛てた外交文書だ。

秀吉の手元に届いたのは1591年。

西洋関連での国宝は、これただ1つ。その意味でも非常に貴重である(非公開)。

 

 

ファイル:Myohoin02s2040.jpg

庫裏の南側にある「玄関」と「大書院」は、重要文化財。

 

1619年頃の建築で、女御御殿の建物を移築したもの。屋根はこけら葺。

 

 

この後、六波羅蜜寺まで走って行った。

ダイエットしたので楽々走れました。

 

 


묘법원에 갔습니다.

 

파일:Keihan7200-newcolor.JPG

11월 3일, 쿄토에 갔습니다.

 

최근 여기저기 지나치고 있기 때문에, 금전적으로 큰 일.

쿄토에 가기에도, 차로 하는지, 전철로 할까로 헤맨다.이번은 전철을 선택.

노체인 미니 택시의 주행거리를 너무 늘리고 싶지 않았고,

역시 차가 무엇인가 돈이 들기도 하고.

 

「묘법원」이 3일부터 특별 공개이므로, 이 배관을 중심으로 한다.

후는 「산쥬산겐도 근처마을의 연꽃왕원」과「로쿠하라밀사」도 들렀다.

따라서, 전철은 쿄토와 오사카 전철, 둘 수 있는 있어 땜납.

 

 

 

연꽃왕원의 혼도우, 베츠묘 「산쥬산겐도 근처마을의 연꽃왕원」.1266년의 재건으로, 국보.

 

쿄토와 오사카 7죠로부터 도보 10분 정도.배관료는 600엔.

여기는 아이때에 간 채.

본당은 자리수 118 m이상, 대들보 16 m이상, 무수한 전란이나 대지진에도 참아 온 명건축이다.

 

여기는 외국인이 많았다.서양인계가 눈에 띈다.

 

 

 

이것은, 당을 나온 곳에서 촬영한 사진.산쥬산겐도 근처마을의 연꽃왕원의 뒤편.

당내의 촬영은 금지.

 

 

 

당의 뒤편, 남서측.

에도시대에 먼거리의 과녁을 쏨이 행해진 장소.

 

파일:Toshi-ya 00.jpg

18 세기 후반, 우타가와 도요하루의 그림에 그려진 먼거리의 과녁을 쏨의 모양.

 

 

 

 

 

그 후, 「묘법원」에 들른다.

 

묘법원은 최징에 의해서 열렸다고 전해져 천태종 미카도 자취라고 칭해진 명문 사원.

후 시라카와 법황, 도요토미 히데요시와의 관계가 깊다.

덧붙여서 산쥬산겐도 근처마을의 연꽃왕원은, 묘법원의 관리하에 있다.

 

 

절의 부엌의 전으로 배관료를 지불한다.600엔이든지.

촬영은 엄금.절의 부엌도, 뜰이나 신전도 전부 NG.아깝다.

그리고 중요문화재의 대서원에는 들어갈 수 없다.가이드가 너무 단단하데···

 

 

「절의 부엌」, 16 세기말의 건조로, 국보.

형약 22 m, 량약 24 m의 대규모 절의 부엌이다.

 

모모야마 시대, 이 절의 부엌에서 1000명의 승려의 식사를 만들고 있었다고 하기 때문에, 그렇다면 아 크다.

덧붙여서 국보의 절의 부엌은 2개 밖에 없고, 또 하나는 마츠시마의 서엄사의 절의 부엌.

 

 

파일:Myohoin03s2040.jpg

절의 부엌의 내부.

 

내부는 토방·판간·다다미방으로 나누어진다.다다미방에는 들어갈 수 있습니다.

토방과 판간은 천정을 치지 않고, 호쾌한 지붕 밑의 가구를 바라볼 수 있다.

 

학생인 듯한 안내계의 여성이 여기를 포함해 모든 건물에 배치되어 있다.

그렇다 치더라도, 절의 부엌만으로도 촬영 OK로 하면 좋겠다.훌륭한 절의 부엌이니까.

 

 

역시 지붕 밑은 좋다.

대들보 위에 도리 간수대들보가 타, 한층 더 그 위에 대들보가 탄다.

그 대들보 위에, 오두막다발이 하야시다치 해, 오두막관이 마구 달린다.

이쓰쿠시마 신사의 천첩각보다, 아득하게 지붕이 비싸기 때문에, 이 쪽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굴뚝으로부터 빛이 찔러넣으므로, 오두막조가 대규모여도 천첩각보다 보기 쉬운 면도 있다.

 

잠깐, 마루방에 앉고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면), 담당의 여성이 「어떻게 하셨습니까?」(이)래.「천정을 바라보고 있습니다」라고 밖에 대답할 수 있는 w

아무래도, 이 천정의 훌륭함을 모르는 것 같다.

 

 

 

절의 부엌을 나오고, 시로쇼원, 고마도우, 쇼텐당을 돌아 다녀, 신전에 들어간다.

전부 복도에서 연결되고 있어 그 사이에 아름다운 뜰이 있다.

전부 촬영 NG다.

 

 

 

앞에 있는 히노키피즙의 건물이 「신전」.메이지 31년의 재건.

안쪽으로 보이는 것이, 절의 부엌.

 

신전은 메이지 31년의 재건으로, 자리수 7간·대들보 6간.전면 1간을 불어 발해, 3실로 나누어진다.

 

촬영 절대 NG.

안내계의 여성들은, 감시역이라도 있는 것은 아닌가.

문득, 앞에 간 원만원의 신전을 생각해 냈다.

저쪽은 중요문화재인데, 촬영해 마음껏으로, 아무도 없기 때문에 엎드려 누워도 문제 없는 w

 

그리고, 신전의 전에 작은 본당이 있다.

 

 

 

파일:Letter from the viceroy of Portuguese India .gif

 

「포르투갈국 인도부왕서신」, 국보

 

묘법원의 국보는, 절의 부엌 외에 이것이 있다.

1588년, 포르투갈의 인도부왕으로부터 도요토미 히데요시 앞으로 보낸 외교 문서다.

히데요시의 수중에 닿은 것은 1591년.

서양 관련으로의 국보는, 이것다만 1개.그 의미에서도 매우 귀중하다(비공개).

 

 

파일:Myohoin02s2040.jpg

절의 부엌의 남쪽에 있는 「현관」과「대서원」은, 중요문화재.

 

1619년경의 건축으로, 후궁 저택의 건물을 이축한 것.지붕은 비늘즙.

 

 

이 후, 로쿠하라밀사까지 달려 갔다.

다이어트 했으므로 손쉽게 달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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