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再社(斎舍)と言う(のは)簡単に言わば有力な先祖の墓に祭祀を執り行なうために建立されたことで儒教文化がたくさん残っている安東を中心に周辺地域にかなり多い数残っている. 再社建築の大部分は 先祖の墓所と近くの外れに位するうえ公共建築ではない特定家門が立てた史蹟な建築で一般家庭の中で祭祀を執り行なう家が多くはあるがよほど簡略化されて家門単位の祭祀に参加する家は多くないから初めからこんな用途の建築があったのか知り合いは珍しいだろう.

 どの 宗教や思想や複雑で体系化された教理や理論が あるが一般的に分かるように儒教は例(礼)を 重要視思ってこれによる意識が発達した. 人間が生きて行きながら経験するようになる冠婚喪祭(冠婚喪祭)の礼法があるのにその中種類が多くて気難しいのが祭礼(祭礼)だった. 長年の戦争で地に落ちた道徳と制度を直すために 17世紀は例(礼)が強調された時代として礼学( 外にも家門の系図を研究して編纂する系譜学(譜学)が発達し始めて 先祖に対する 祭祀がよほど重要になった.

 

 士大夫の祭祀は 4台奉仕(奉祀)としてお父さん, お爺さん, 曽祖父, 高祖父とお母さん, お婆さん, 曽祖母, 高祖母まで勤めて世代が移ると家の祠堂に仕えて多くのご先祖とともに 1年に一度ずつ祭祀を執り行なう. この外にも時期によって過ごす祭祀や業績の高い先祖は祠堂に一つの先祖で縛らないで別に過ごす不天位(不遷位) 祭祀など よほど多様だったから宗家では少なくとも1年に 10番(回)以上の祭祀を執り行なわ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このなかに墓祭り(墓祭)があるのに門中(門中)の詩調(始祖)やイブヒャングゾ(立郷祖), 中始祖(中始祖)から 5対照以上まで一緒に仕えることで時制(時制)とも言う. 時期は普通 3月や 10月, 場所は詩調の墓所になってこの時多い子孫たちが一緒に某でハムに祭祀を執り行なってお互いに交流をして家門の結束を押し堅める.

 

 

 

 詩調(始祖)やイブヒャングゾ(立郷祖), 中始祖(中始祖)の墓所は風水地理によって最高の明堂に位置づくようになるのに自然的な条件は人間の意図とは一致しないから氏族村と遠い所に位する場合も多かったが良い席なら関係がなかった. 墓祭りを執り行なう時がなればあちこちに住んでいた子孫たちが先祖の墓所で集まるようになるのにこんな理由で近くに作られるようになったことが再室(斎室)だ. 過去交通が発達しなくて来るのに何日がかかったから遠い所に住む人はあらかじめ来てとどまったり家門によって多くは 100人以上が参加したりしたので多くの人員たちの宿泊を解決して祭祀を準備する施設が必要になった.

 

 

 

 墓祭りの参席者たちは祭祀がある前日まで再室(斎室)に到着しなければならないし祭祀に捧げる食べ物を準備してゾンサチォング(典祀庁)に保管する. 行政や財政, 祭祀準備は実質的に責任者である類似(有司)がこの過程を指揮して普通 3‾4人位でもっと多いかも知れない. 祭日朝役員たちが集まって祭祀で決まった儀礼を担当する祭官(祭官)らを決めてこれが終われば除数(祭需)を点検して除数を先頭で参礼である(参礼人)らが一列で墓所に向ける. この時儀礼動線(儀礼動線)は行った道を繰り返さないという原則によって行く文科終わって入って行く門が違う.

 墓所に到着すれば決まった儀礼によって祭祀を執り行なって終われば皆帰って来て樓閣やテチョンに集まって来年を計画する会議を持って終われば食べ物を分けて食べることで終わる. 午後くらいにすべて終わって近くに暮す人々は帰るが遠く暮す人々は一日, 二日位泊まってから帰る.

 

 

 再社(斎舍)建築は功績な施設ではない家門の単位で作られる施設で比較的遅く発生した類型だから決まった形式がなくて多様な形式で存在するのに一般民家のような姿で作られるとか他の建築物を改造するとか他の儒教建築をモデルに作られるとか複合される類型で存在する. それぞれ規模も違って明らかに定義することができる形式はない.

 

 

 しかし構成上の要件は充足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のにその中一つが墓所近くに立てられ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 のにちょっと落ちていても建物が墓所と芳香性や象徴性で繋がれ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 そして機能的に墓祭り(墓祭)の過程で起きる行為を収容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に多くの人員が宿泊することができる部屋がなければならないし集まって会議ができる広い 樓床と食べ物を準備することができるテチョン, 使われる服や器などの物品を保管することができる倉庫などが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そして外部的には家門を誇示して内部的には序列との関係を現わすことができる象徴的な構造を持た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墓祭りは 1年に 1回, 汲んで見ると準備や仕上げまで 1週間以内に終わる 墓祭りのために多くの費用をかかって 派手とか巨大な規模の再室を立てるということは無理な計画で家門の監査によって参加人員や予算などを考慮して適正な規模を決め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普段よく管理することも重要したので別に土地を用意して 施設維持や祭祀に使われる費用を用意して管理人を置いて建物と墓所管理はもちろん土地の農業まで管理するようにした.

 

 

 多くの人が宿泊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いくつかの部屋を用意したが参加人員が多い場合それも不足で会議場所である 樓床は宿泊場所で使われたりした. 参加人員の中にも位階があるから事情によって墓祭りで象徴的な人物である宗孫(宗孫), 宗孫が幼い場合代わりに墓祭りを導く担当(受任), 元老や顧問(顧問)役目をする人々は特別に独立的で重要な位置にある部屋を決めたりした.

 

 

 儀礼的空間の中心はテーチョンと 樓床なのに安東の規模がある再社(斎舍)たちはたいていテチョンと 樓を同時に持っている. テチョンは類似(有司)の指揮の下お膳を調えて元老たちの実務的な会議が開かれるのに比べて 樓床はウムボックリェ(飲福礼 : 祭祀を行った食べ物を分けて食べること)と雨が降る時墓祭りを行うなど もっと公式的な場所になる. テチョンが類似(有司)が中心になる場所なら 樓床は宗孫(宗孫)を中心に門中(門中)の交流場所になる. これ 象徴的な場所の配置関係によって 再社(斎舍)建築の特徴が現われる.  

 

 

 

 徐徐に近代化, 現代化になりながら生活で儒教の影響はぼんやりして行ったが相変らず儒教文化は民間信仰と結合して民衆の宗教で時代によって変わって行った仏教文化とともに韓国文化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決める巨大な柱で残っている.

 時代によって教祖化(教條化)になって 閉鎖性をたたえたことは事実だがどの思想や発生段階を通して隆盛な時期を経っている途中健康性を失って分裂して衰退して力を失って他の思想で取り替えられることはカトリックや仏教などの他の思想にも有り勝ちに見られることで短所にだけかたよって全体を見ないで非難にだけかたよることは愚かな事だ. ここで儒教思想をまともに理解している人はいくらあることか? 論語 一冊でもまともに読んで見た人はいることか.

 

 

 

 教宗が時代の役目を喪失して統一新羅ではない混乱期に禅宗が流入されて取り替えられて仏教が時代の 役目を喪失して高麗末期に性理学が流入されて取り替えて近代には西洋の思想が流入されて取り替えられたように精神文化でも物質的文化でも時代によって地域によって変化されてそこに適応する. もちろん閉鎖的な時間と空間では変化が違うように現われるとかのろく現われるなど詳細的には差を持っている.

 引導で始まった仏教でも地理的に近いほど共通点が多いがまともによく見たら確かに違ってそこによる 普遍性と特殊性を一緒に持っているし影響を取り交わしながら発達して衰退するのだ. 空の下永遠なことはなくて完全に新しいことはないのだ. ないと言ったらあれほど文化をまともに理解するの できない のだ. 儒教も中国で始まったが 韓国の儒教は中国と確かに違って日本刀も他ののだ. 反日や嫌韓意識に縛られてお互いに 卑下の方だけで 思考が発達したらそれは不幸な事で 止揚に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だ.

 


제사를 위한 건축, 재사(齋舍)

 재사(齋舍)란 간단하게 말하자면 유력한 조상의 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건립된 것으로 유교문화가 많이 남아있는 안동을 중심으로 주변지역에 상당수 남아있다. 재사건축의 대부분은 조상의 묘소와 가까운 변두리에 위치하는데다 공공건축이 아닌 특정 가문이 세운 사적인 건축이고 일반 가정 중에서 제사를 지내는 집이 많긴 하지만 상당히 간략화되어 가문 단위의 제사에 참가하는 집은 많지 않기 때문에 아예 이런 용도의 건축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어느 종교나 사상이나 복잡하고 체계화된 교리나 이론이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알다시피 유교는 예(禮)를 중요시 여기고 이에 따른 의식이 발달하였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예법이 있는데 그 중 종류가 많고 까다로운 것이 제례(祭禮)였다. 오랜 전쟁으로 땅에 떨어진 도덕과 제도를 바로잡기 위해 17세기는 예(禮)가 강조된 시대로서 예학( 외에도 가문의 족보를 연구하고 편찬하는 보학(譜學)이 발달하기 시작하고 조상에 대한 제사가 상당히 중요하게 되었다.

 

 사대부의 제사는 4대 봉사(奉祀)로서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부, 고조부와 어머니, 할머니, 증조모, 고조모까지 지내고 세대가 넘어가면 집안의 사당에 모시고 여러 조상들과 함께 1년에 한번씩 제사를 지낸다. 이 외에도 시기에 따라 지내는 제사나 업적이 높은 조상은 사당에 하나의 조상으로 묶지 않고 따로 지내는 불천위(不遷位) 제사 등 상당히 다양했기 때문에 종가집에서는 적어도1년에 10번 이상의 제사를 지내야 했다.

 이 가운데 묘제(墓祭)가 있는데 문중(門中)의 시조(始祖)나 입향조(立鄕祖), 중시조(中始祖)부터 5대조 이상까지 함께 모시는 것으로 시제(時制)라고도 한다. 시기는 보통 3월이나 10월, 장소는 시조의 묘소가 되고 이 때 많은 후손들이 함께 모이며 함께 제사를 지내고 서로 교류를 하고 가문의 결속을 다진다.

 

 

 시조(始祖)나 입향조(立鄕祖), 중시조(中始祖)의 묘소는 풍수지리에 따라 최고의 명당에 자리잡게 되는데 자연적인 조건은 인간의 의도와는 일치되지 않기 때문에 씨족마을과 먼 곳에 위치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좋은 자리라면 상관이 없었다. 묘제를 지낼 때가 되면 곳곳에 살고 있던 후손들이 조상의 묘소로 모이게 되는데 이런 이유로 근처에 만들어지게 된 것이 재실(齋室)이다. 과거 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오는데 며칠이 걸렸기 때문에 먼 곳에 사는 사람은 미리 와서 머무르기도 하고 가문에 따라 많게는 100명 이상이 참석하기도 했으므로 많은 인원들의 숙식을 해결하고 제사를 준비할 시설이 필요하게 되었다.

 

 

 묘제의 참석자들은 제사가 있기 전날까지 재실(齋室)에 도착해야 하고 제사에 바칠 음식을 준비하여 전사청(典祀廳)에 보관한다. 행정이나 재정, 제사준비는 실질적으로 책임자인 유사(有司)가 이 과정을 지휘하며 보통 3~4명 정도이며 더 많을 수도 있다. 제삿날 아침 임원들이 모여 제사에서 정해진 의례를 담당할 제관(祭官)들을 결정하며 이것이 끝나면 제수(祭需)를 점검하고 제수를 선두로 참례인(參禮人)들이 일렬로 묘소로 향한다. 이 때 의례 동선(儀禮動線)은 갔던 길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나가는 문과 끝나고 들어가는 문이 다르다.

 묘소에 도착하면 정해진 의례에 따라 제사를 지내고 끝나면 모두 돌아와서 누각이나 대청에 모이며 내년을 계획하는 회의를 가지고 끝나면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으로 끝난다. 오후 쯤에 다 끝나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은 돌아가지만 멀리 사는 사람들은 하루, 이틀 정도 머물다가 돌아간다.

 

 

 재사(齋舍)건축은 공적인 시설이 아닌 가문의 단위로 만들어지는 시설이고 비교적 늦게 발생한 유형이기 때문에 일정한 형식이 없고 다양한 형식으로 존재하는데 일반 민가와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진다든지 다른 건축물을 개조하거나 다른 유교건축을 모델로 만들어지거나 복합되는 유형으로 존재한다. 각각 규모도 다르고 뚜렷하게 정의할 수 있는 형식은 없다.

 

 

 하지만 구성상의 요건은 충족되어야 하는데 그 중 하나가 묘소 근처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으로 약간 떨어져 있더라도 건물이 묘소와 방향성이나 상징성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기능적으로 묘제(墓祭)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행위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많은 인원이 숙식할 수 있는 방이 있어야 하고 모여서 회의를 할 수 있는 넓은 樓마루와 음식을 준비할 수 있는 대청, 사용되는 옷이나 그릇 등의 물품을 보관할 수 있는 창고 등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가문을 과시하고 내부적으로는 서열 간의 관계를 드러낼 수 있는 상징적인 구조를 가져야 했다.

 

 

  묘제는 1년에 1회, 길어봐야 준비나 마무리까지 1주일 이내에 끝나는 묘제를 위해 많은 비용을 들여 화려하거나 거대한 규모의 재실을 세운다는 것은 무리한 계획으로 가문의 사정에 따라 참가인원이나 예산 등을 고려하여 적정한 규모를 결정해야 했다. 평소에 잘 관리하는 것도 중요했으므로 따로 토지를 마련하여 시설유지나 제사에 쓰이는 비용을 마련하고 관리인을 두어 건물과 묘소 관리는 물론 토지의 농사까지 관리하게 했다.

 

 

 많은 사람이 숙식해야 하므로 여러 개의 방을 마련했지만 참가인원이 많을 경우 그것도 부족해 회의장소인 樓마루는 숙박장소로 쓰이기도 했다. 참가인원 중에도 위계가 있기 때문에 사정에 따라 묘제에서 상징적인 인물인 종손(宗孫), 종손이 어릴 경우 대신 묘제를 이끄는 수임(受任), 원로나 고문(顧問)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특별히 독립적이고 중요한 위치에 있는 방을 배정받기도 했다.

 

 

 의례적 공간의 중심은 대청마루와 樓마루인데 안동의 규모가 있는 재사(齋舍)들은 대개 대청과 樓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대청은 유사(有司)의 지휘 아래 상을 차리고 원로들의 실무적인 회의가 열리는데 비해 樓마루는 음복례(飮福禮 : 제사지낸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와 비가 올 때 묘제를 치르는 등 더 공식적인 장소가 된다. 대청이 유사(有司)가 중심이 되는 장소라면 樓마루는 종손(宗孫)을 중심으로 문중(門中)의 교류장소가 된다. 이 상징적인 장소의 배치관계에 따라 재사(齋舍)건축의 특징이 드러난다.  

 

 

 점차 근대화, 현대화가 되면서 생활에서 유교의 영향은 희미해져 갔지만 여전히 유교문화는 민간신앙과 결합하여 민중의 종교로 시대에 따라 변화해간 불교문화와 함께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거대한 기둥으로 남아있다.

 시대에 따라 교조화(敎條化)되고 폐쇄성을 띈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사상이나 발생단계를 거쳐 융성한 시기를 지나다가 건강성을 잃고 분열하고 쇠퇴하여 힘을 잃고 다른 사상으로 대체되는 것은 카톨릭이나 불교 등의 타 사상에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으로 단점에만 치우쳐 전체를 보지 않고 비난에만 치우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여기에서 유교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는 것인가? 論語 한권이라도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있는 것인가.

 

 

 교종이 시대의 역할을 상실하여 통일신라 말기 혼란기에 선종이 유입되어 대체되고 불교가 시대의 역할을 상실하여 고려 말기에 성리학이 유입되어 대체하고 근대에는 서양의 사상이 유입되어 대체된 것처럼 정신문화든 물질적 문화든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변화되고 거기에 적응한다. 물론 폐쇄적인 시간과 공간에서는 변화가 다르게 나타나거나 더디게 나타나는 등 세부적으로는 차이를 가지고 있다.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라도 지리적으로 가까울수록 공통점이 많겠지만 제대로 살펴본다면 분명히 다르며 거기에 따른 보편성과 특수성을 함께 가지고 있고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발달하고 쇠퇴하는 것이다. 하늘 아래 영원한 것은 없고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는 것이다. 아니라고 한다면 그만큼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유교도 중국에서 시작되었지만 한국의 유교는 중국과 분명 다르며 일본도 역시 다른 것이다. 반일이나 혐한의식에 묶여 서로 비하 쪽으로만 思考가 발달한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이며 止揚되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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