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歴史に詳しくないので、立て逃げです。

 

高麗軍に侵略を受けた日本の壱岐・対馬の二島では、住民は男はことごとく殺され、女は生きたまま手に穴を空けられ、数珠のように繋がれ、捕虜として船に吊るされた。二百人の童男童女は高麗軍に連れ去られ、忠烈王に献上された。

 

 前期倭寇は日本人が中心で、元寇に際して元軍とその支配下にあった高麗軍によって住民を虐殺された対馬・壱岐・松浦・五島列島などの住民が中心であり、「三島倭寇」と総称された。連れ去られた家族を取り戻すためであった事例もあり、実際に家族と再会した記録も残っている。

 後期倭寇の中心は私貿易を行う中国人であったとされ、『明史』日本伝にも真倭(本当の日本人)は10のうち3であるとも記述されている。

 

「武藝圖譜通志」
「倭軍と対陣すると、倭軍はたちまち死に物狂いで突進してくる。
我が軍は、手に槍を持ち、剣を帯びていても、その剣は鞘を出る暇も無く、
槍は矛先を交えることもできずに、凶刃のもとにやられてしまうのである」

 

程宗猷 「単刀法選」
日本刀法は神秘的だ。
左右への変化がすさまじく誰にも予測できない。
そのせいで槍を持ってしても毎回日本刀に負けてしまう。

 

屈大均
日本人が全力で動くとき風のように漂って動く。
常に寡兵で陣に入って、たくさんの兵も抵抗できない。
その刀の使い方は、長い方で構え守り、短いほうで止めを刺す。
しゃがんでいるかのごとく低く移動し、決して下がらない。
相手が何人いようと対応する、日本列島の中だけの絶技である。

 

戚継光 「紀効新書・長刀解」
此は日本人が我が国に攻めてきた時初めてわかったことである。
彼らは舞うような歩法を用い、前方への突進力は光が閃くようで我ら明の兵は気を奪われるのみだった。
日本人はよく躍動し、一度動き出せば丈あまり、刀の長さは五尺なので一丈五尺の間合でも攻撃される。
我が兵の剣では近づき難く、槍では遅すぎ、遭遇すればみな両断されて殺される。
これは彼らの武器が鋭利であり、さらに両手で振れるため強力で重い刀を自在に用いているためである。
こちらもただやられてばかりではない。
武士には遠くからの鳥銃が有効である。
だが武士は全く臆せず攻めたり刺したりできる至近まで突っ込んでくる
兼ねてよりこの銃手が弾を込める間に時間を取られて接近を許すことが多い
その勢いを止められない
武士の刀捌きは軽くて長く
接近を許した後の我が軍の銃手の動きは鈍重すぎる。
われわれの剣は銃を捨てて即座に対応するための有効な武器ではないのだ。
それゆえ我々も日本式の長い刀を備えるべきだ。

 

「揮刀如神」
倭、性殺を好み一家一刀を蓄えざる者なく童にしてこれを習い壮にしてこれに精し。
故に短兵相接するは乃ち倭奴の長ずる所、中国の民の敵し難き所なり。
その嫌う所の物は火器のみ。
然るに多くの鳥銃手を擁して居ながら我兵勝てぬのは外でもない。
倭人は戦いに臨んで命を忘れるが、我兵はこれを臨んで即ち恐れ走るため、
その鉛子は地に堕ち、あるいは薬線が法なく、手震え、目眩み、天を仰いで空しく発する為なり。

 

李氏朝鮮宰相、柳成竜「懲毖録」
日本武士は歩兵で、打ち振る刀は、三、四尺におよび、鋭利無比のものであった。
武士はその鋭い刀を左右にはげしく打ちふるい、人馬の区別なく斬り伏せた。
全くその勢いには抗すべき道がなかった。

 

「朝鮮王朝宣祖修正実録」
天兵(明兵)短剣騎馬にして火器なく、道険しく、泥深くして馳テイする能はず
賊(日本武士)長刀を奮ひて左右に突闘し鋭鋒敵なし

 

 

 

 

戚継光は倭寇に対抗する「鴛鴦陣」を発案。

11人による小型の陣を作って、一人二人の倭寇に対した。この作戦によって、戚継光は対倭寇戦に、ただの一度も敗戦していない。

前列の牌(盾)、狼筅(ろうせん。枝がついたままの竹を武装化したもの)で斬り込みを防ぎつつ、その後ろの長槍(2名)で相手を攻撃、また最後尾の叉把(さすまた)で刀を引っ掛け落とそうという5人一組(2列縦隊で10人が基本隊形)、決して離れず=鴛鴦(えんおう。雌雄それぞれ半身の鳥で終生くっついていると言われる)の布陣。まさに大人数で対抗しつつ、一人一人がやる事は単純にしたのである。

 

 

 

「狼筅」

枝付きの竹に刃を付けて、枝による防御で日本刀により切っ先を切り落とされないようにした対日本刀用の槍。

竹という植物の属性として、硬いけど大変しなやかである。これがえらい効果を表したのだ。なんと凶暴無比な倭刀が叩き切ろうとしても、しなって切断できなかったのだ。しかも弓矢の矢さえも斜めにはじいて、多少は盾の役もしたらしい。日本刀で切り払われても残った枝が相手を傷つけ、さらに小枝に挟まると、脱出もすぐにはできないで困ったという。

 

 

 

倭寇の撃退に成功した明の将軍・戚継光は、対倭寇戦で得た陰流剣術の目録を研究し『辛酉刀法』を著した。

 

「苗刀」

武術としての苗刀は、1621年に程宗猷が『単刀法選』を著したことに始まる。程宗猷は、日本の刀術を学んだという劉雲峰なる人物に学んだという。次いで、1644年に呉殳が『単刀図説』を著した。現在まで伝わる苗刀の技法は、この二書の内容がもとになっている。苗刀は劈掛拳に併伝されていることが多い。

近代に至り、1927年に中央国術館で「二路苗刀」という套路(形)が制定された。

 

 

剣道vs苗刀

 

 

おまけ

 

 

「朝鮮勢法」

本国剣


일본인와 묘도

역사에 자세하지 않기 때문에, 세워 도망입니다.

 

고려군에 침략을 받은 일본의 이키·대마도의 후타지마에서는, 주민은 남자는 죄다 살해당하고 여자는 산 채로 손에 구멍을 뚫을 수 있고 염주와 같이 연결해져 포로로서 배적되었다.2백명의 동남 동녀는 고려군에 데리고 사라져 충렬왕에게 헌상 되었다.

 

 전기 일본인는 일본인이 중심으로, 원구에 즈음하여 원군과 그 지배하에 있던 고려군에 의해서 주민이 학살된 대마도·이키·마츠우라·오도 열도등의 주민이 중심이며, 「미시마 일본인」라고 총칭되었다.데리고 사라진 가족을 되찾기 때문에 있던 사례도 있어, 실제로 가족과 재회한 기록도 남아 있다.

 후기 일본인의 중심은 나무역을 실시하는 중국인이었다고 여겨져 「명사」일본전에도 진 야마토(진짜 일본인)는 10중 3이다고도 기술되고 있다.

 

「무예도보통지」
「야마토군과 대진하면, 야마토군은 금새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돌진해 온다.
우리 군은, 손에 창을 가져, 검을 띠고 있어도, 그 검은 칼집을 나올 틈도 없고,
창은 비난의 화살을 섞을 수도 하지 못하고 , 흉기의 아래에서 당해 버리는 것이다」

 

정종유 「단도법선」
일본도법은 신비적이다.
좌우에의 변화가 굉장하게 누구에게도 예측할 수 없다.
그 탓으로 창을 가지고 해도 매회 일본도에 져 버린다.

 

굴대균
일본인이 전력으로 움직일 때 바람과 같이 감돌아 움직인다.
항상 적은 병력으로 진에게 들어오고, 많은 군사도 저항할 수 없다.
그 칼의 사용법은, 긴 분으로 지어 지켜, 짧은 편으로 급소를 찌른다.
주저 앉고 있을까와 같이 낮게 이동해, 결코 내리지 않는다.
상대가 몇 사람 있으려고 대응하는, 일본 열도안만의 절 기술이다.

 

척계광 「기효신서·장도해」
차는 일본인이 우리 나라에 공격해 왔을 시 처음으로 안 것이다.
그들은 춤추는 보법을 이용해 전방에의 돌진력은 빛이 섬공양으로 우리들명의 군사는 기분을 빼앗길 뿐이었다.
일본인은 자주(잘) 약동 해,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키 너무, 칼의 길이는 5자이므로 10자5자의 사이합에서도 공격받는다.
우리 군사의 검에서는 가까워지기 어렵고, 창에서는 너무 늦어서 조우하면 모두 양단 되어 살해당한다.
이것은 그들의 무기가 예리하고, 한층 더 양손으로 흔들리기 위해 강력하고 무거운 칼을 자재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있다.
이쪽도 단지 당하고만 있어는 없다.
무사에게는 멀리서의 새총이 유효하다.
하지만 무사는 전혀 겁먹지 않고 공격하거나 찌르거나 할 수 있는 지근까지 돌진해 온다
겸해보다 이 총손이 총알을 담는 동안에 시간이 걸려지고 접근을 허락하는 것이 많다
그 기세를 멈출 수 없다
무사의 칼다루기는 가볍고 길고
접근을 허락한 후의 우리 군의 총손의 움직임은 너무 둔하다.
우리의 검은 총을 버려 즉석에서 대응하기 위한 유효한 무기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일본식의 긴 칼을 갖추어야 한다.

 

「휘도여신」
야마토, 성 살을 좋아해 일가 단칼을 저축 바구니자 없게 동으로 하고 이것을 배워 장으로 해 이것에 정령 해.
고로단병상 접하고는 내야마토놈이 성장하는 곳, 중국의 백성의 대항해 난 나무소든지.
그 싫어 하는 곳의 물건은 화기만.
어떤에 많은 새총손을 껴안아 있으면서 아병 이길 수 없는 것은 밖도 아니다.
왜인은 싸움에 임하고 생명을 잊지만, 아병은 이것을 임해 즉 무서워해 달리기 위해,
그 연자는 땅에 저속해져 혹은 약선이 법 없고, 손 떨려 현기증 봐, 하늘을 바라봐 허무하게 발하기 때문에(위해) 되어.

 

이씨 조선 재상, 유성룡 「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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